< -- 간웅 7권 -- >
“그렇사옵니다.”
내 말에 태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우선은 지켜보자는 의미가 분명할 거다. 지금 공예태후도 한 걸음에 천리를 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내게 유혹의 미끼를 두 개나 던져 놨으니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그 미끼를 무느냐? 물지 않느냐 일 것이다.
“알았네. 우선은 그리 하시게. 차가 식으니 이제 차를 드시게.”
태후는 내게 차를 권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종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태후마마 소신이 이제 물러나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이 자리가 자네에게는 가시방석인가?”
태후는 내 마음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내게 영화공주를 찍어 붙이지 못해 안달이 난 걸 거다.
“송구하옵니다.”
“알았네. 내 황제와 상의를 해 보지.”
태후는 그렇게 말을 하고 힐끗 의종을 봤다. 이것이 공예태후의 고충일 것이다.
“괜찮습니다. 어마마마!”
“고맙습니다. 이 어미를 이해해주셔서.”
“예. 어마마마!”
그리고 의종이 나를 봤다.
“그런데 태자는 언제 진도로 떠날 것 같나?”
“곧 떠날 것입니다.”
“곧 이라,,,,,,.”
“그렇습니다. 공식적으로 즉위식이 이루어지기 전에 떠날 것입니다.”
“그렇겠지.”
의종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제는 태자도 뭐도 아닌 내 아들을 잘 부탁하네.”
이것은 아버지로 진점을 담아서 내게 청을 하는 거였다.
“아무 걱정 마십시오. 필부로 살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 천수를 다 누리실 것입니다.”
“그래. 그랬으면 좋겠네. 속된 권력을 쫒지 말고 그랬으면 좋겠어.”
역시 의종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 같다.
“제가 가는 길에 태자님을 만나 뵙겠습니다.”
“그러시게. 이 아비가 말했다고 단단히 일러주게. 이 황궁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말라고.”
“예. 황제폐하! 소신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아마 이 순간이 의종과는 마지막 일 것이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만약 의종이 끝내 역사대로 김보당에게 휘말려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을 한다면 나는 또 내 생존을 위해 이제는 이 가여운 황제에게 계략을 써야 할 것이다.아니 그때면 나도 어느 정도 힘을 얻고 있을 것이니 내가 스스로 황제를 맞설지도 몰랐다.
“저는 천지신명께 간절히 축언 드리옵니다.”
“무엇을?”
“황제폐하를 다시는 뵙지 않기를 축언드릴 것입니다.”
내 말에 황제는 지금 내가 한 말이 걱정과 위협 그리고 경고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아는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나를 봤다.
“그렇게 하겠네. 그렇게 할 것이야!”
“예. 황제폐하!”
난 그렇게 말하고 황제를 위해 천천히 큰 절을 올렸다. 원래 임금에게는 3배다. 그렇게 난 크게 절을 하며 바닥에 이마를 찍었다.
쿵!쿵!쿵!그렇게 난 소리가 크게 나게 머리를 9번 찍었다. 이것은 내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하는 행동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역사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 또한 나로 인해 역사가 바뀌는 것도 원하지 않다.하지만 이번만은 그렇게 꼭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이러는 걸 거다.
이럴 때보면 나는 충신이거나 그게 아니면 조울증 환자일 것이다. 그리고 정말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몰랐다.‘난신 김보당의 꼬임에 넘어 가지 마소서!’난 그렇게 다시 마음속으로 당부를 했다 내 행동에 태후는 놀라 나를 봤고 지금까지 쌀쌀맞았던 영화공주도 나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는 듯 했다.
어쩌면 이것은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이며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눈동자를 먹먹하게 만드는 행동일 것이다.지금 이 순간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의종을 이제는 황제로 보지 않았다.
말이 좋아 상황제이지 죄인과 같은 거였다. 그러니 이렇게 이마를 땅에 찍으면서 마지막 절을 하는 내가 더욱 놀랍고 미더운 거였다.그렇게 난 절을 하고 조심히 일었다.
“소신 회생! 물러나겠나이다.”
“고맙다. 내 잊지 않겠다.”
의종은 그렇게 말하고 난 조심히 뒤로 물러났고 그때 영화공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웅을 해 드리고 오겠습니다.”
이 순간 영화공주의 말투부터 달려졌다. 내 진심어린 행동에 그녀 역시 나를 다시 본 거였다. 하지만 난 영화공주의 바뀐 말투가 달갑지 않았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영화공주는 내게 득보다는 실이 되는 존재가 분명하니 말이다.
“그래. 그래야지.”
태후도 영화의 말이 옳다고 고개를 끄덕였다.‘안되는데,,, 밖에 백화가 있는데.’난 그런 생각을 하며 찰나의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황공하옵니다. 공주마마!”
“아닙니다. 제가 조금 회생 공을 오해한 것 같습니다.”
영화는 시원시원한 성격인 듯 내게 그렇게 말했다.
“가지시오. 황실을 보위할 충신에게 배웅이 없어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영화공주가 앞장을 섰다.
“열라!”
“예. 공주마마!”
상공이 조심히 문을 열었다. 이의방의 장군방.이의방은 차분히 장군방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지금 그는 눈을 감고 있었으나 온통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도 무비가 떠올랐다.‘벌써 집에 들어가지 않은지가 한 달이 넘었군!’이의방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의방은 이제 상황제가 된 거둥 행렬을 따라 나와서 거사를 도모했기에 한 달이 넘게 집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였다.그리고 역신 정중부를 제거하기 위해 절치부심할 때는 떠오르지 않던 작은 걱정들과 여전히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무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는 식솔의 걱정보다 무비가 자꾸 눈에 밟히는 이의방이었다.‘회생이 네가 괜한 근심을 안겨줬군.’이의방은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미 원망을 해도 늦은 상태였다.
자꾸만 이의방의 감은 눈에 어두운 암흑 대신에 무비의 밝은 빛 같은 얼굴이 떠오르니 이성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는 하지만 이의방은 자꾸 무비를 탐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끓었다.‘이것은 불충이며 역심인데,,,,,,.’만약 의종이 폐위를 당했다면 지금 이의방이 품은 마음에 구차한 변명거리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구차한 변명이 아니라 어떠한 것도 이의방이 먹은 그 탐욕스러운 흑심을 숨겨주지 못할 것 같았다.
‘무비라! 무비라,,,,,,.’지금 이 순간 이의방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이의방의 이성은 멈추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의방의 본능은 이미 무비의 옷을 벗기고 가슴을 만지며 그 향취를 탐하고 있었다.
영웅은 호색이라고 했다. 그 말까지 떠오르는 이의방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어떠한 변명꺼리라도 찾고 싶은 이의방이었다. 하지만 이의방은 다른 말은 모르고 있었다.
영웅은 호색이지만 그 호색한 영웅은 계지 때문에 대의를 망치고 죽게 된다. 그래서 미인계가 나온 것이다.이 순간 회생은 본의 아니게 이의방에게 미인계를 사용한 꼴이 된 것이다.
“으음,,,,,,.”
그때 한섬이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주군! 한섬입니다.”
“한 장군 들어오시게.”
이의방은 이제 한섬을 한 장군이라 불렀다.
“찾으셨사옵니까?”
“인수인계는 어떻게 되고 있나?”
“인수인계를 받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응양군으로 20년입니다.”
“그렇지. 그래서 자네가 응양군에 있는 것이네.”
“예. 주군!”
“그것만 명심하게 응양군은 내 군이 되어야 할 것이네. 내 친위대 말이야!”
이 순간 이의방은 다소 위험한 발언을 했다.원래 응양군과 용호군은 황제의 군대다. 그런데 지금 응양군을 이의방은 정중부가 사용한 것처럼 쓰려하고 있었다.
물론 정중부가 응양군을 친위대처럼 사용한 것은 며칠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의방의 마음에는 용호군 대장군 강일천이 지휘하는 용호군처럼 응양군이 그렇게 자신에게 충성을 다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주군! 제가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상장군 진준에게는 참한 계집을 몇 붙여줘.”
“계집이라고요?”
“그 방중술이 좋은 계집들 말이야. 계집의 치마폭에 쌓여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이제 이의방은 응양군 상장군을 허수아비로 만들 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사실 뭐 그냥 둔다고 해도 크게 방해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철저한 허수아비를 만드는 것 역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 이의방이었다.
“예. 주군!”
“자네도 알겠지만 진준 그 늙은이는 타고난 호색한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벽란도에 가봐. 거기에 진준의 구미에 맞는 것들이 제법 있을 것이야!”
벽란도라는 말에 한섬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색목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하하! 그거 좋군.”
색목인!벽란도에는 아주 가끔이지만 색목인 노예들이 실려 오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한몫 크게 잡으려는 아랍상인들이 가끔 들려서 그렇게 노예 거래를 하기 때문에 색목이 있는 거였다.
처음 금발의 색목인이 벽란도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사람이라고 여지기 않고 짐승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똑같은 이목구비에 똑같은 사지를 가진 것을 보고 특별히 다른 취향이 있는 고관대작들이 앞 다퉈 사들였고 제법 색목인들이 잘 팔렸다.물론 색목인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원나라 때부터였다. 하지만 벽란도가 국제무역항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원나라 보다 더 먼저 색목인을 생활(?)에 사용한 거였다.
“그런데,,,,,,.”
“왜 그러는 건가?”
“아닙니다.”
이의방은 이미 한섬이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다. 사실 무신들은 봉록에도 극심한 차별을 받았었다.
“자금이 문제구만!”
“송구하옵니다. 주군!”
한섬의 말에 이의방은 작은 보합을 한섬에게 내밀었다.
“가져다 쓰게. 작지는 않을 것이야.”
“이것은?”
“최준이 조금 내게 가져다주더군.”
“최준이라면 환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곧 넉넉한 재물이 들어올 것이네. 그러니 잘 준비를 해 봐.”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럴 일은 정말 없겠지만 진준이 색목인 계집의 배 위에서 졸을 하면 한 장군 자네가 곧 상장군이야!”
이의방의 말에 한섬은 기겁을 했다. 지금 이의방이 한 말은 벼락출세를 넘어서는 거였다.
“주, 주군!”
“뭘 그렇게 놀라나? 내가 제일 어려울 때 나를 도운 자네를 나는 잊지 않을 것이야! 난 저잣거리에 걸린 정중부와는 다르네.”
그랬다. 이미 정중부의 목은 저잣거리에 걸렸다. 그리고 그의 아들 정균의 목도 걸렸고 정중부의 혈족 중 9족 이내의 남자의 씨라는 씨는 모두 잡아다가 죽였다.
정말 황실의 분노는 어디까지 갈지 이의방도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또한 정중부의 가솔 중 계집들은 모두 관노로 북변으로 보내졌다. 정말 모처럼 이 고려 조정이 일사분란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거였다.
“황공하옵니다.”
순간 너무나 감격스러워 한섬이 말실수를 했다.
“으음! 지금 자네 내 목도 저잣거리에 걸고 싶은가?”
“죄, 죄송하옵니다.”
“나는 난신적자가 될지는 모르나 역신은 내 목이 잘린다고 해도 되지 않을 것이네. 내 후손에 역신의 불도장을 찍게 하여 살게 두지는 않을 것이야!”
“예. 주군.”
이의방은 그렇게 말하고 한섬을 보며 씩 웃는 듯 했다,‘황제께 그대로 전하겠지.’궁궐에는 벽에도 귀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자는 바로 최준이었다. 그렇게 최준은 작은 것을 내어주고 큰 것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최준의 반간계라는 것을 이의방은 모르고 있었다.정말 계략과 계략이 판을 치는 황궁인 것이다. 그리고 최준이 이의방에게 접근을 해서 줄을 덴 것은 오직 고려 황실과 제자이며 아들처럼 생각하는 회생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영화공주와 밖으로 나섰다.정말 이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말없이 긴 복도를 걸을 뿐이었다. 그런데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영화공주였다.
“그 아이 때문이지요?”
영화공주는 내가 하대를 하지 않았다. 그의 오라비도 그리고 태후도 내게 하대를 하지 않으니 이제 영화공주도 하대를 하지 않는 거였다. 그 만큼 나는 이 순간 이 황실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 아이라니요?”
“이름이 백화지요.”
난 영화공주의 말에 그저 인상을 찡그릴 뿐이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답이 서지 않았다.
백화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황족이라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기에 그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누구도 내 앞에서 그 아이라고 백화를 부를 수 없다.
“그 아이 때문에 나와의 혼례도 언약식도 거부를 한 것 아닌지요?”
“송구하옵니다. 공주마마!”
정말 이 순간 영화공주는 태의원에서 내가 소리를 지르며 분노한 그때를 기억해 낸 모양이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참 신기하네요?”
“무엇이 말씀이옵니까?”
“아무리 힘을 잃은 황제이고 늙으신 태후하고는 하지만 이 제국의 지존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한 치의 떨림도 없더니 백화의 이야기를 하니 그렇게 부끄러워하시니,,,,,,”
“그 역시 송구하옵니다.”
“제가 그렇게 매력이 없답니까? 아니면 이 고려의 황실이 그리 구미에 당기지 않습니까?”
난 순간 놀랍다 못해 기겁을 했다.
“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옵니까? 송구하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대의 눈은 나를 단 한 번도 보지 않았습니다. 참 이상하게 내 마음이 요상해서 서럽네요. 그럼 빼앗아 볼까요?”
이건 절대 웃자고 하는 농담이 아니다. 아마 영화공주도 여자이기에 여자의 오기가 발동하는 게 분명했다.
“예?”
내 반문에 영화공주는 나를 빤히 봤다. 뭘 그런 눈으로 보냐는 그런 것 같다.
“빼앗고 싶어집니다.”
난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난 여자의 집착과 독선 그리고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잘 알고 있다.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남자지만 대부분 남자가 만들어낸 그 역시를 무너트리는 것은 여자의 집착과 독선 그리고 미모라는 것을 너무나 난 잘고 있었다.내가 자꾸 자신을 밀어내니 오기가 생기는 모양이다.
만약 내가 영화공주를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여복이 아니라 여난이 될 것이다.
“송구하옵니다.”
난 이 순간 조금은 강하게 나가야 했다.
“그대는 내게 그 말 밖에 하지 못합니까요?”
영화공주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기분이 상한 게 분명했다. 이럴 때는 강하게 결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쏟아지는 관심이 두렵다. 그리고 영화공주가 부담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