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30화 (130/620)

< -- 간웅 7권 -- >

“그러다가 강일천 대장군이 내 목을 따오라 하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그렇게 제 주군은 패악을 일삼는 분이 아니옵니다.”

“내가 난적이 된다면?”

“제가 떠나면 그만이옵니다.”

“나를 베지 않을 건가?”

“벨 것입니다.”

순간 난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뒤에서 비수를 꽂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난 무위가 그리 강하지 않지. 그러니 앞에서 비수를 내 심장에 꼽는 것도 막을 수 없어.”

난 솔직하게 말했다.

“최소한 제 검으로는 베지 않을 것입니다. 어찌 되었던 이 고려를 한 번은 구 하셨으니 이 고려의 신하된 자로 한 번은 구명해 드릴 것입니다. 주군의 명이라 하여도. 하지만 제 주군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별초 낭장 박현준은 확정을 하듯 말했다.‘박현준은 계륵이군!’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인상을 찡그렸다."알았네. 그대의 뜻은 충분히 알았어."더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백화가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올 것 같았다.'이제 올 시간이 됐는데,,,,,,.'난 그렇게 박현준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조금은 접어두고 백화를 기다릴 생각을 했다. 당장 안 되는 일에 애걸복걸 할 필요는 없다.

'우선은 문장필 공에게 기대를 거는 수밖에.'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그럼 나가보겠습니다."

"그러시게. 이제는 밖에서 밤을 새우지 말고 내 사택으로 들어와 지내."

"예.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집 탁주가 꽤 좋습니다."

"하하하! 그런가?"

"그렇습니다."박현주는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아마 내가 이 고려에 온 후로 첫 실패라면 실패일 것이다.

백화는 부엌에서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긴 검을 쓰는데도 화려하기까지 한 백화지만 여염집 아낙이 되어 부엌칼을 쓰는데도 제법이었다.

다다닥! 다다닥!도마의 요란한 칼질 소리와 함께 가지런히 썰리고 있는 식재료를 보며 이 집의 부엌일을 맞고 있는 여자들은 놀라고 있었다.

“어찌 그리고 곱게 써십니까?”

아낙들은 백화의 칼질이 놀랍기만 했다. 사실 그녀들은 지금 백화가 무슨 요리를 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일반 백성이 먹는 음식은 소박함 그 자체였지만 지금 백화는 한껏 회생을 위해 멋과 맛을 내고 있는 거였다. 정말 이 순간 백화는 스스로도 이 순간이 행복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어느 부잣집 안방마님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보이는가?”

“그렇습니다. 쇤네들은 이렇게는 못할 겁니다.”

“겉만 번지르르 하지 아무 것도 없다오.”

백화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낙들은 지금 백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음식이 처음 보는 거였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이게?”

“예. 만드시는 것 이름말입니다.”

“구절판이라는 궁중 요리네. 황제폐하께서 드시는 것이지.”

백화의 말에 아낙들은 놀라 백화를 다시 봤다. 어디 아낙들이 궁중요리를 보기나 했겠는가?

“구절판이라고요?”

“그렇다네.”

"황제폐하가 드시는 음식이라고요?"아낙들은 놀라 백화를 봤다."뭘 그렇게 놀라는가?"

"아, 아닙니다."

"호호호! 황제폐하께서 드시는 것을 보니 놀라운가?"백화는 이 아낙들이 정말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그렇습니다."

"호호호! 놀랄 것 없네."백화는 다시 웃었다. 그리고 이 요리를 먹고 환하게 웃을 회생을 떠올리며 다시 웃었다. 원래 음식이라는 것이 만드는 사람이 즐거우면 맛도 따라오는 법이다.

지금 백화가 만드는 구절판은 궁중음식이었다.구절판!구절판은 궁중식과 민간식으로 크게 구분된다.

물론 민간식도 문벌대가들이나 먹었던 것이 구절판이다. 그러니 이렇게 양인의 아낙들은 그 자체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걸인의 삶까지 떨어졌다고 다시 회생에게 구제(?)된 아낙들이기에 더욱 구절판을 볼 수가 없었다.어떻게 보면 하루 주린 배를 채우기도 급급한 양인들이 이렇게 화려한 음식을 본다는 자체도 이상할 것이다.

“이게 그렇게 신기한가?”

“이렇게 색색이 들어가는 음식은 또 처음 봅니다.”

“그렇지. 참으로 화려한 음식 중에 하나지.”

백화는 즐거운 마음에 아낙들의 말을 하나하나 다 대답을 해줬다.

“구절판이라는 것이 또 진 구절판과 마른 구절판의 2가지로 나눠지네.”

이 순간 백화선생의 요리강좌가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마 백화가 기분이 좋아서 이러는 걸 거다.

“그렇습니까? 백화 마님!”

순간 아낙 하나가 백화를 마님이라고 불렀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것인가?”

“예? 쇤네가 잘못한 것입니까?”

백화의 물음에 아낙 하나가 자신이 잘못했는지부터 걱정을 했다. 이것이 바로 남의집살이를 하는 사람의 본성일 것이다.

“아니 잘못한 것은 아니고,,,,,,.”

백화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흥선 도련님이 그렇게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흥선이?”

“그렇습니다.”

“알았네.”

“그렇게 불러도 되는 거지요? 흥선 도련님께서는 주인마님의,,,,,,.”

백화는 아낙의 말을 듣고 속으로는 좋아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이미 밝은 빛이 감돌았다.

“그렇게 불러도 되는 거지요?”

“편하게 부르시게.”

백화는 그렇게 대충 말했다. 하지만 마님이라는 소리가 싫지 않은 백화였다.

“예. 마님! 그런데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렇지.”

“이게 왜 구절판인 줄 아나?”

기분이 좋으니 말이 많아지는 백화였다.

“이유가 있습니까?”

“이 음식을 올려놓은 판이 바로 구절판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네.”

구절판은 요리를 담는 기명(器皿)을 말하기도 하는데, 둘레에 8개의 칸과 가운데 1개의 으로 모두 9가지를 담을 수 있게 되어 있는 목기로, 대개 나전칠기로 만들어져 미술공예품으로도 귀하게 여긴다. 그리고 다시 기분이 좋아진 백화선생이 자랑을 하듯 요리 강좌가 이어졌다.

“진 구절판은 미나리·오이·달걀지단노른자와 흰자·전복·해삼·새우·삶은 닭고기·쇠고기·표고버섯·석이버섯·느타리버섯·도라지 중에서 계절과 기호에 맞추어 8가지를 선정하여 길이가 같게 가늘게 썰어서 기름에 볶아 빛깔을 맞추어 차례로 담는다네.”

지금 말한 음식재료 중 이 아낙들이 먹어본 것은 느타리버섯과 도라지 그리고 닭고기가 전부였다. 특히 전복이나 새우 같은 해산물은 입어는커녕 눈으로도 먹어보지 못했다. 그만큼 해산물이 귀한 시대였다.

“중앙에는 밀가루에 달걀흰자를 섞어 종이처럼 얇게 부친 전병을 둥글게 오려서 담는다네.”

사실 밀가루도 무척이나 귀한 재료였다.

“그렇습니까? 정말 대단한 것만 들어가네요.”

“그렇다네. 그러니 황제폐하께서 드시는 음식이지.”

“아 그렇군요.”

“뜨거운 전병을 포개어 담으면 서로 붙기 쉬우므로 사이사이에 실백을 조금씩 놓으면 되네.”

“아 예!”

“먹을 때는 이 밀전병에 둘레에 담은 볶음요리를 조금씩 놓고 싸서 간장에 찍어 먹으면 되네. 먹어 볼 텐가?”

순간 백화의 말에 놀라 아낙들이 기겁을 했다.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은 마십시오. 아직 주인마님도 안 드셨는데 쇤네들이 어찌 입을 됩니까?”

아낙들이 백화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원래 음식은 하는 사람이 먼저 먹는 법이라네. 호호호!”

백화는 그러고 차분히 구절판에 담아놓은 것 말고 남은 것을 싸서 제일 가까운 아낙의 입에 넣어줬다.

“마님!”

“먹어보게. 그래도 제법 먹을 만 할 것이야!”

당연히 먹을 만 할 것이다. 황제가 먹던 음식이니 양인의 입에는 자르르 녹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 이렇게 맛난 거군요.”

백화가 입에 넣어준 구절판을 먹은 아낙이 놀라 백화를 보며 말했다.

“그렇다네. 거기 적이 다 되었으면 상에 올려주게. 내가 직접 가져가지.”

“예. 마님!”

그렇게 회생을 위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다소 화려하지만 그래도 딱 회생과 자신이 먹을 만큼의 양이었다.

“나머지는 자네들이 먹게.”

“예?”

순간 아낙들은 다시 놀랐다.

“이 쇠고기도 저희 먹어도 되는 겁니까?”

“드시게. 남기면 어디에 쓰겠나?”

"이 황제폐하가 드신다는 구, 뭐시기도,,,,,,."

"그냥 편히 들게."역시 기분이 좋아야 인심도 좋아지는 법이다. 백화는 지금 최상의 기분인 거였다.

“감사하옵니다. 마님!”

아낙들은 그렇게 말을 하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하지만 당장 아낙들은 그 음식을 입에 넣지는 못했다.

“이거 우리 개똥이 주면 좋아 할 거야!”

“그래 우리 똘이도 가져다주면 좋아 할 거야!”

그렇게 아낙들은 자기 입에 넣는 것보다 새끼 입에 넣으려 했다. 이것이 부모일 것이다.

“그래도 적이도 좀 가져다 줘야지?”

자기 아들 개똥이 준다던 아낙이 만적의 이름이 떠올라 말했다.

“적이?”

“그래. 애미 없이 자라서 횅한 것이 영 가엽타!”

그 말에 나머지 아낙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집었던 소고기 산적과 구절판 요리를 조금씩 내놓았다.가난하게 살아도 정을 가지고 사는 아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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