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28화 (128/620)

< -- 간웅 7권 -- >

“그러니 앞으로 내 앞에서는 스스로 낮추지를 마라.”

“예. 상공!”

난 다시 백화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이고 그나저나 배가 등에 붙었다. 배고프지?”

난 스스로도 느글거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이야기를 주제를 바꿨다. 물론 배가 등가죽에 붙은 것은 사실이었다.

“소녀가 상을 차려오겠습니다.”

“백화가 직접?”

“그렇사옵니다. 그러고 보니 상공께 식사 한 번을 차려드리지 못했습니다.”

여자의 가장 큰 기쁨은 자신의 남자에게 무엇인가를 해서 먹이는 걸 거다. 그리고 백화 역시 내게 뭔가 먹이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

“바빴잖아.”

“예. 상공! 가서 조금만 쉬고 계시면 소녀가 드실 것을 차려오겠습니다.”

“고마워! 그런데 아직도 내 주변에 별초들과 박현준이 있나?”

난 아무리 주의 깊게 살펴도 박현준의 낌새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 같이 무력이라고는 보잘 것도 없는 것에게 별초의 수장인 박현준이 들킬 리가 없는 걸 거다.

“있사옵니다. 조금 전 상공의 말씀을 듣고 토악질까지 했습니다.”

박화는 그렇게 말하고 배시시 웃었다. 이 순간 백화는 새색시 같아 보였다. 그리고 나 역시 약간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그럼 내 방으로 좀 오라고 해.”

난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부끄러울 때는 이 방법이 최고인 거다.

‘담판을 지어야지.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북변으로 가기 위해서는 내가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방이 있는 전각으로 갔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백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여전히 날 보고 있겠지.’난 그런 생각을 들었다. 내가 비록 별초낭장 박현준의 위치를 찾지 못해도 백화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것이 텔레파시라는 걸 거다.‘내가 너를 보듯 너도 나만 보는구나!’다시는 백화를 내 스스로 그런 사지에 백화를 밀어 넣어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했다.

난 쭉 주변을 둘러봤다.그러고 보니 내 사택이 되어 버린 전 김돈중의 사택은 고래의 등 같은 기와로 된 전각이 무려 4채도 넘었다. 그리고 곡식창고로 쓰는 곳도 꽤 많이 있었고 또한 열어보지는 않은 창고가 꽤 더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창고들을 가져야겠지.’난 그런 결심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훔칠 수 있는 창고가 있다는 것이다. 아니 훔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충분히 고려를 구했으니 이 정도의 보상은 작은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 정도는 가져도 돼!'이 숭겸 어른이 하루살이 이야기를 내게 말해줬지만 지금 그 말은 시냇물에 흐르는 물과 같은 걸 거다.

이미 내가 거대한 대하를 생각하고 있는데 이미 시냇물의 물은 흘러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내가 꿈꾸는 대하에 섞여 하나가 됐다.'이게 다 고려를 위한 것이야!'난 다시 내 마음대로 생각을 했다. 이것은 어쩌면 찜찜함 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분명 없었다.

“그나저나 정말 배가 고프네. 백화가 무엇을 해 가지고 올까?”

백화가 뭘 해줄지 잔뜩 기대를 걸며 내 방으로 걷고 있을 때 흥선과 만적이 뭔가 땅바닥에 열심히 적고 있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고 난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왜 만적이 내 가솔이 되었을까?’이게 궁금했다.

물론 내가 억쇠를 받아드렸기에 그의 아들인 만적도 가솔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운명을 바꿔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만적은 민란에 실패를 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그의 운명을 바꿔주고 싶기도 했다.‘하여튼 흥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참으로 이것은 답답하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정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선아!”

나는 흥선을 불렀다. 그러자 흥선은 놀라 나를 보다가 방끗 웃으며 달려왔다. 그 순간 너무나 귀엽고 정이 가는 흥선이었다.‘저놈의 웃음 때문이야!’난 그런 생각을 하며 흥선을 따라오는 만적을 봤다.‘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

“오셨습니까? 형님!”

“그래. 왔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이냐?”

난 단도직입적으로 흥선에게 물었다. ‘분명 글을 가르친다고 할 것이야!’흥선은 무척이나 영악한 아이다. 그러니 내가 왜 묻는지 정확하게 알고 대답을 할 것이다.

“만적에게 자기 이름 석 자 쓰는 방법과 사내라면 품어야 할 마음 셋을 써 주었습니다.”

“사내라면 품어야 할 셋이라?”

“그렇습니다. 형님!”

“그게 뭐냐?”

“그 으뜸은 충이요. 그 다음은 효요. 마지막은 인입니다.”

이것은 흥선의 말처럼 사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덕목인 것이다.

“충과 효와 인이라?”

“그렇습니다. 형님!”

흥선의 대답에 나는 만적을 힐끗 봤다.

“괜한 것을 가르쳤구나!”

내 말에 흥선은 인상을 찡그렸다.

“왜요?”

“충을 알면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되고 효를 알면 아비의 처지를 알게 되고 인을 알면 이 세상이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니 스스로 좌절하거나 거세가 반발하게 된다.”

“하지만 그 셋을 모르면 어찌 사람입니까? 짐승이지.”

“대로는 짐승으로 사는 것이 편할 때가 있다. 또한 인간이 짐승보다 우월하다 여기지마라. 내 보기에는 금수보다 못한 것들이 참으로 많고 많구나!”

내 말에 뒤에 있는 만적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은 이제 아무리 내가 말려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흥선아!”

“예. 형님!”

“만적과 따로 이야기를 좀 하고 싶구나!”

내 말에 흥선은 놀라 나를 빤히 봤다.

“어서!”

난 처음으로 흥선에게 인상을 찡그렸다.

“예. 형님!”

그렇게 내가 인상을 찡그리니 흥선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피해줬고 이제는 만적과 나만 남게 됐다. 그리고 나는 물끄러미 만적을 봤다.‘눈이 누구보다 총명해 보인다.

’이런 아이는 영악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영악함이 끝내 이 아이를 역적으로 만들 것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것이 난 걱정이 됐다.

내 안에 들어온 아이니 아무 일 없이 살다가 죽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었다.

“적아!”

“예. 주인마님!”

“네가 너의 주인이기는 하느냐?”

내 질문에 만적은 놀라 나를 봤다.

“모시니 주인이지 않습니까?”

“틀렸다.”

“예?”

“모신다고 다 주인은 아니다. 마음으로 섬겨야 주인이다. 너는 나를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냐?”

난 이 순간 만적이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래 아직 모를 것이다.”

“예.”

“글을 배우고 싶으냐?”

“그렇습니다. 흥선 도련님께서 무식은 죄라고 하셨습니다.”

“맞다. 무식은 죄다. 하지만 학문을 한다고 모두 다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지식과 지혜는 문명 차이가 있다.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지식만 머리에 가득 차있는 자가 되고 싶으냐? 지혜로운 자가 되고 싶으냐?”

“저는,,,,,,.”

“그래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지혜로운 자가 되고 싶습니다.”

만적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나를 빤히 보며 대답을 했다.

“그래. 학문은 지식을 주기는 하지만 지혜를 주지는 못한다. 그러니 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 거라.”

“그 지혜는 무엇을 배우면 되는 것입니까? 주인마님!”

“자기의 분수를 알 때 생기는 것이 바로 지혜다.”

내 말에 만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제가 글을 배우는 것이 걱정이 되십니까?”

“그래. 걱정이 된다. 너는 억쇠의 아들이다. 그러니 내가 걱정을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양인이 꿈꿀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그 이상을 꿈꾸고 배우는 양인은 항상 삶이 고달프다.”

이 말은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나 역시 지금 무척이나 고달프고 힘이 들었다.

“저를 걱정해주시시는 겁니까?”

“그래. 나는 너를 걱정한다. 너는 내가 돌봐야 할 내 가솔이지 않느냐.”

“예. 감사하옵니다. 주인마님!”

“그럼 글을 배워 장사를 해 보는 것은 어떠하냐?”

난 이 순간 만적의 인생을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 운명은 개척하는 자의 몫이니 말이다. 그리고 만적을 통해 시험을 해 보고자 하는 마음도 존재했다. 만적의 운명이 바뀌고 이름이 바뀐다면 나 역시 그래 될 수 있을 것 같았다.'내가 그의 운명을 바꿔 줄 수도 있다.'난 그런 생각을 했다.

“장사라고요? 주인마님께서 제가 글을 배워 상인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그래. 흥선에게 재주를 배우고 글을 배워라. 그리고 장사를 해서 거상이 되는 것도 사내로써는 한 인생 걸어 볼만하다. 고려보다 더 넓은 세상도 있다. 그러니 너의 총명함이라면 노력에 따라 거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거, 거상이라고요?”

“그래. 벽란도를 아우르는 거상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떠냐?”

“제가 그런 깜냥이 되겠습니까?”

만적은 흥선과 며칠 있었다고 아이가 쓰지 못할 단어를 사용했다.

“하고자 하면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내 말에 만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보겠습니다. 주인마님!”

“그럼 내일 부터는 도끼질을 하지 말고 저잣거리에 나가서 가장 돈이 될 물건을 하나씩 사와라.”

난 그렇게 말하고 품에 들어 있는 은병 하나를 만적에게 내밀었다.‘세상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지를 알려주지.’만적은 내가 내민 은병을 보고 기겁을 했다.

은병 하나가 백미 다섯 섬의 가치가 있었다. 그러니 놀라는 걸 거다. '은병의 가치를 안다는 건가?'나 역시 만적의 표정에 올랐다.

이것만 봐도 만적은 셈이 밝은 아이였다.

“이, 이건,,,,,,.”

“이것으로 돈이 될 것이 뭔지 사오너라. 어서 받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난 다시 만적을 채근했다.

“예. 주인마님!”

그때 저 멀리서 별초낭장 박현준이 나를 보며 천천히 걸어왔다.

“그래. 되었다. 가 봐라!”

내 말에 만적은 허리를 굽혀 내게 절을 하고 조심히 돌아섰다. 그리고 난 그런 만적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그냥 거상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내가 너를 밀어줄 것이다.

’난 그렇게 다짐을 했다. 따지고 보면 만적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보다 대양을 호령하는 거상이 좋을 것이다.4. 회생의 다짐을 받으려는 의종!공예 태후의 처소가 있는 전각.공예 태후의 전각 안에는 무척이나 차분했다.

그저 공예태후와 황제 그리고 영화공주만이 차분히 마지막 정을 나누고 있었다.

“회생이 꽤나 늦는구려! 황상!”

태후는 해가 지고도 오지 않고 있는 회생을 기다리며 의종에게 말했다.

“보는 눈이 많으니 눈을 피하기 위해 깊은 밤이나 되어야 올 것입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항상 회생은 이 늙은이를 기다리게 합니다.”

“그렇기는 합니다.”

의종도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차분히 옆에 앉아 있는 영화공주가 태후와 오라비인 의종이 누구를 말하는지 몰라 궁금한 눈빛으로 가만히 보고 있었다.그러고 보니 영화공주도 무척이나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뭘 그렇게 궁금한 눈으로 보누?”

태후가 영화공주의 궁금증을 알아차리고 영화공주에게 물었다.

“회생이 누구입니까?”

“이 황실을 받쳐줄 아이지.”

태후의 말에 영화공주는 놀라 빤히 태후를 봤다.

“이 황실을 받쳐준다고요?”

“그래. 공주도 잘 지켜보고 그의 성격을 잘 파악해야 할 것이야!”

태후의 말에 영화공주는 놀라 태후를 뚫어지게 봤다.

“그렇게 대단한 위인입니까?”

“그래. 어리지만 그리고 겨우 위장이지만 그가 이 황실을 한 번 구했다.”

태후의 말에 영화공주는 더욱 놀랍기만 했다.

“저는 어마마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통 모르겠사옵니다.”

“그래. 모르겠지.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 그가 대단한 아이라는 게야.”

태후는 다시 회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너랑은 참으로 잘 어울리겠구나!”

순간 태후의 말에 다시 한 번 영화공주는 놀랐다.

“그래. 왜 그렇게 놀라누?”

“겨우 위장이라면서요? 그런데 저랑 어울리다니요.”

“직위가 무엇이 그리 중요하겠냐?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중요하지.”

“그래도 하지만,,,,,,.”

“왜 그런 눈빛이누?”

태후는 서글픈 눈빛을 보이는 영화공주를 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어마마마!”

“너는 황실의 안위를 위해 회생을 꼭 잡아야 할 것이야!”

이건 놀랍고도 또 놀라운 일일 것이다.

“그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어마마마!”

“그래. 나는 그를 볼 때마다 젊은 날 강일천 대장군을 보는 것 같구나!”

이 순간 의종은 놀라 태후를 빤히 봤다. 사실 태후와 용호군 대장군의 관계를 의종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강일천 대장군이 용호군 대장군으로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원래 강감찬 장군의 가문은 김부식의 가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그런 문신대가였다. 그런 곳의 장자가 스스로 용호군 대장군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사연이 있다는 것을 의종은 알고 있었다.

또한 그것이 자신의 어머니인 태후와의 이루지 못한 연정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놀라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용호군 대장군 강일천은 이 황실을 지키는 검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또한 역심을 품은 정중부가 바로 이 황실을 무너트리지 못한 것 역시 용호군 대장군 강일천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정도입니까? 어마마마!”

의종은 놀라 태후에게 물었다.

“황상도 회생에게 많은 것을 부탁하지 않았소.”

“그렇기는 하지만 소자는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늙으면 사람 보는 눈이 생기는 법이라오. 회생이 이 황실에서 돌아서지 못한다면 이 황실은 무탈할 것입니다. 황상!”

물론 그 생각은 의종도 가지고 있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아무런 세력도 없이 또 아무런 힘도 없이 이 고려를 구했어요. 그러니 그가 역신 정중부처럼 역심을 먹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 그 말씀은,,,,,,.”

의종은 그렇게 말하고 영화공주를 봤다. 그리고 이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영화공주는 놀라워 두렵기까지 했다.

“그에게 영화를 내어줘야지요.”

드디어 태후는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

“어마마마!”

영화 공주는 놀라 눈이 커졌다.

“왜 서운한 것이냐?”

“그, 그게 아니라,,,,,,.”

“이것이 황실 여인의 운명이다.”

태후는 다른 말도 하지 않고 운명 하나로 영화공주에게 말해 회생을 자신의 낭군으로 받아드리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영화공주는 자신의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