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21화 (121/620)

< -- 간웅 7권 -- >1. 개가 판을 치는 대전 앞마당!피바람이 몰아치는 광풍의 시간들이 끝이 순식간에 났고 나는 햇살 같은 백화를 찬찬히 봤다. 내 갑작스러운 키스에 백화는 붉은 장미 빛으로 변했고 상기된 내 얼굴은 그저 백화만 볼 뿐이다.

예전 시인인 그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보고 있어도 항상 그립다.

지금 딱 백화를 바라보는 내 마음일 거다. 그리고 난 그저 백화에게 고마울 뿐이다. 내 말에 아무런 이유도 달지 않아줘서 고맙고 또 이 참담한 열풍과도 같은 피바람이 부는 광풍 속에서 굳건히 맞서서 살아남아줘서 고맙고 항상 내게 힘이 되어줘서 고마울 뿐이었다.

그리고 항상 그녀의 눈동자에 나를 담아줘서 고맙다. 그런데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무엇 하나 해 준 것이 없기에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아마도 권력쟁투에 혈안이 된 모든 자들이 이전투구를 벌이고 서로 소리장도의 품고 있는 이 황도개경에서는 백화에게 해 줄 것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하고 권력을 쫒는 자들의 검이 되거나 경계를 해야 하니 그 매 순간마다 숨이 턱턱 막혀 나란히 백화를 바라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이 개경황도를 벗어날 기회가 생겼다. 이제 과감히 모든 것을 뿌리치고 욕심내지 않고 걸음을 옮긴다면 비록 춘부로 살지언정 누군가를 웃으며 보며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검을 겨누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렇게 벗어날 수 있는 때였다.

“가자! 백화야! 이제 집에 가자.”

모든 일을 마친 후의 허무함이라고 할까? 난 담담히 백화에게 말했다. 그리고 백화 역시 내 마음을 아는 지 말없이 가늠한 턱으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보면 볼수록 검은 든 무인보다는 대갓집 규수의 기품이 흐르는 백화였다.

‘왜 난 이렇게 허무하지?’의종황제는 모든 것을 쉽게 내려놨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는 듯 했다. 벗어나야 할 때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허무한 마음은 내가 진정 소인배라는 증거일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다.’지금 권력을 잡은 이의방은 곧 권력을 잃고 죽게 될 것이다.

물론 역사처럼 흐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권력이 크면 클수록 빠르게 썩어가는 법이다. 또한 힘을 얻은 자가 같이 동고동락을 한 부하를 그것도 자신에게 견줄만한 자를 옆에 두고 권력의 풍요를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제왕들이 그리고 권력자들이 토사구팽의 수순을 밟았으니 말이다.

‘저 함성은 후일 누군가를 위해 또 울릴 것이다.’난 이 대전 앞마당에서 환호성을 치는 장졸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저들은 승리자로 불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상할 만큼 허전했다.그때 나와 백화의 키스를 다른 이가 보지 못하게 막아줬던 사람들이 나만의 거사(?)가 끝난 것을 알고 둘러싼 원을 풀었다.

그리고 천천히 별초 낭장 박현준이 다가왔다.

“진정 성공적이면서 치열한 거사였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이제는 숨을 쉬지 않는 고깃덩이가 된 문신들과 승리자라 생각하며 온갖 죄악을 저지른 응양군 장졸의 시체를 봤다.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오늘의 죽음을.물론 자신들의 죽음을 예견하는 자는 드물 것이다. 하지만 저기 죽어가는 자들은 오늘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을 거다. 그래서 미안했다.그들을 나의 거사를 위해 사지로 몰아넣었기에 미안했다. 하지만 내 사는 길에 또 저런 일이 닥친다면 난 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 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사람이 사는 방법이니 말이다.그리 되고 싶지 않다면 지금 먹은 마음이 변하기 전에 이 개경 황도를 떠나 북변으로 가든 남변으로 가든 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 단숨에 정리가 되었으니 성공한 쿠데타라고 할 수 있지요.”

내 말에 박현준이 그 뜻을 말로 나를 빤히 봤다. 맞다. 고려 사람들은 내가 무심히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실수를 한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박현준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무엇인가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는 증거일 것이다.

“대전으로 가셔야지요. 모두 다 환호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회생 공도 그러실 때입니다.”

별초 낭장 박현준은 내가 대전으로 가서 이번 거사의 승리를 자축할 거라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 순간은 내가 물러설 때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이의방이 홀로 기꺼이 승리를 만끽하기 위해 비켜주는 것이 내가 그와 적이 되지 않는 방법이다.

처음 얻으려 했던 것을 다 얻었으니 물러설 때다.’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 꿈이 보현원에서 말을 탈 때보다는 한없이 커져 있었지만 그 꿈을 결실을 이 황도개경에서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는 아니야!’난 다시 대전을 봤다.

비록 이 거사를 성공시키는데 이의방이 그저 늙은 역시 정중부의 목을 벤 것이 전부라고는 하지만 지금 이 승리의 순간은 온전히 이의방이 만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또한 모든 백성들은 이 대전 앞마당의 거사를 이의방의 지략으로 꾸며진 것으로 알겠지만 그래도 나는 상관이 없다.

나는 그저 내 안락함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야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쉬고 싶었다.

쉬지 않고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짧은 시간들이었지만 그 긴장감은 그 어떤 무료함보다 나를 학대했다.

“장부는 물러설 자리를 찾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전으로 가시지 않는다는 말씀이시오?”

별초낭장 박현준이 내게 조심히 물었다.

“대전은 이제 그들만의 잔치가 될 겁니다.”

난 피식 웃으며 대전전각을 봤다. 이제 진짜 의종의 상황제 공표가 이루어질 것이고 신 황제 옹립을 위한 발표가 있을 것이다.

저 대전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은 승리자처럼 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천년만년 이어지지는 분명 않을 것이다.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권불십년이라고 했다. 또한 화려한 꽃도 10일을 가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곳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항상 불안해하고 항상 누구를 의심해야 하는 상태에서 얻을 것은 없고 쌓이는 것은 욕심뿐일 것이다.그런 면에서 저 대전은 이제 이전투구의 장이 될 것이다.

‘처음부터 고려를 바로 새운다는 명분 따위는 없으니 모두 다 크고 작은 개가 되겠지.’그리고 그때 앞으로 표독함이 삵과 다르지 않을 작은 개가 될 채원은 개선장군의 모습으로 대전 정문 문지방을 넘으며 죽어가는 시체들을 툭툭 발로 차며 들어왔다.

“이 썩은 고깃덩이 꼴이 되려고 우리에게 대항을 했군! 병신들 하하하! 퉤!”

채원은 죽어 바닥에 서글피 쓰러진 시체를 모욕했고 나는 그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죽음은 자는 모든 죄를 사해지는 것인데,,,,,,.’난 이 순간 채원의 사람 됨됨이를 알 수가 있었다.

무엇이든 같이 일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했다. 욕심이 하늘을 찌르고 덕이 없는 자이니 무인들이 진정 듣기 싫은 무부의 표본이 분명할 것이다.

아니 무부도 되지 못하는 칼을 든 망나니인 거다.‘이 이전투구에 패악을 부리는 작은 개가 되겠군.’이 순간 그저 인상을 찡그려야 할 뿐이다.

저 채원이 불학무식하여 패악을 저지른다고 해도 이제는 내가 신경을 쓸 일이 아니다. 언젠가는 하늘을 찌르는 자신의 욕심이 자신을 삼켜버릴 테니 말이다.

“이 대전의 장은 이전투구의 장이 되겠군요.”

난 별초 낭장 박현준을 보며 말했다.

“스스로 물러나시려는 겁니까?”

별초 낭장 박현준은 나를 보며 물었다.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옳을 겁니다.”

“모든 일을 다 준비하고 이 순간 물러난다니 참으로 현명하십니다.”

나를 별초 낭장 박현준은 조금은 다른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가지고 싶다.

북변으로 나가고 싶다.’난 북변으로 갈 마음을 정했다.

뛰어난 식견과 선견지명이 있으신 스승님과 내가 알고 있는 역사가 더해진다면 북변에 내가 꿈꾸는 모든 것을 담을 수도 있을 것이다.이래서 사람의 꿈이나 야망은 끝이 없이 성장하는 생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것이 있어야 한다.재화도 충분히 아니 마르지 않게 가져야 하고 인재도 길게 내 앞에 늘어져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다 부족한 시점이니 별초 낭장 박현준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책사는 스승님과 문극겸이면 된다.

문장필을 내 부대의 좌장으로 박현준을 우장으로 쓰면 좋으련만,,,,,,.’난 순간 그런 욕심이 났다. 이 욕심이 내 발목을 잡는 걸 거다.

또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험한 욕심은 바로 사람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일 것이다. 조조가 운장을 얻고자 할 때 수많은 재화와 계집 그리고 적토마를 내어줬으니 끝내 그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배신을 당했다.

그 일화를 통해 운장의 사람됨은 충신으로 부각되어 중원에서 가장 많은 사당을 가지게 했지만 그를 얻으려 했던 조조는 그저 그 일화의 조연으로 전락해 버렸다.이만큼 사람을 얻는 일은 쉽지 않았다.

“네놈은 여기에도 있군.”

채원이 걸어와 나를 보며 이죽거렸다.처음 채원은 내가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내가 충분히 자신의 혀처럼 굴 거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 거였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후일 더럽게 이전투구의 장에 뛰어든다고 해도 채원의 밑에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사지와 생지를 구분할지 알아야 하고 채원은 반드시 죽어나갈 사지가 분명했다.

‘욕심은 항상 화를 부른다. 그리고 네놈이 저 대전 안에 있는 무신들 중 가장 먼저 죽게 될 것이다.’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채원이 나를 노려봤다.

“이의방은 속였지만 나는 못 속인다.”

“예?”

난 이 순간 놀란 표정을 의도적으로 해서 채원을 봤다.

“두고 보면 알 것이다. 영악하다 못해 패악한 놈!”

채원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려 백화를 봤다.

“어린놈이 가지기에는 과분한 계집이군. 검을 다룰 줄 아니 가시가 있는 장미더냐? 아니면 독이 있는 각시투구 꽃이더냐?”

“그저 저는 백화이옵니다.”

백화는 문제를 만들지 않겠다는 듯 채원의 농을 차분히 받았다.

“백가지의 꽃? 그 향기도 그리 하더냐? 저 녀석의 품이 서운하다면 내게로 오는 것은 어떠하냐?”

순간 채원은 절대 내 앞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말이 적을 만드는 순간이었다.

“아직 추워보지 못해 서운한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시 가볍게 농을 차분함으로 받아쳤다. 역시 이리 차분할 때는 차분해지는 백화였다.

“하하하! 역시 겨우 위장이 품을 계집은 아니다. 하하하!”

채원은 그렇게 말하고 흑심이 가득한 눈으로 백화를 봤고 그 순간 백화는 얼굴이 굳어지더니 자신도 모르게 검 잡이에 손이 갔다. 이런 면에서 나는 백화보다 못한 놈이 분명할 것이다.

“어떠냐? 네가 나에게 온다면 귀하게 여겨 줄 것이다.”

난 이 순간 채원이 나를 도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이 순간부터 채원은 작은 개가 되려고 마음을 먹은 걸 거다."말씀이 과하십니다. 어린 새는 가지를 가려 앉고 여인은 사내의 품을 바꾸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백화가 조심히 말했다.

“호호호! 미색에 뛰어난 무위에 말하는 것까지 문신 놈 대가닥 규수 같으니 네 삶도 그리 편치는 않을 것이다.”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나를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참은 것이다. 그러고 어느 정도 채원의 농도 받아주는 거였다. 백화가 그렇게 나를 위해 참으니 나는 이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밀려왔다.

자신의 여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쓰레기와 상종을 하는 것을 봐야 하는 사내는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아무리 냉철한 생각으로 소리장도를 품었다고는 해도 이 순간은 참을 수 없다.

이 순간을 참는다면 병신 고자인 거다. 소리장도!병법에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하여 안심시킨 뒤에 허를 찔러 공격하는 계책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분명 아니었다.

이 순간 나는 내 마음의 소리장도를 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난 순간 채원을 겁 없이 노려봤다. 내 눈빛이 사나워지는 것을 보고 백화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 순간에도 나를 걱정하는 것이다.

“말씀이 심하십니다. 대의를 성공시켜 고려를 바로 잡으신 분이 소인배의 언사를 스스럼없이 하신다면 대의거사들의 대의가 백성들에게 비웃음꺼리가 될 것입니다.”

이 순간이 통쾌할 수는 있지만 그 통쾌함만큼 위급함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내 말에 백화도 긴장을 했고 별초낭장 박현준은 자신도 모르게 지그시 검에 손이 가고 있었다. 그것만 봐도 지금 위급한 순간일 것이다.

“뭐라? 네 지금 뭐라 한 것이냐?”

채원이 나를 불같이 노려봤다. 그 눈빛은 추악하게 굶주린 불곰 같았다. 그리고 이제 나와 채원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선 것이다.

“거사의 대의를 조심히 말씀 올렸습니다.”

나 역시 지지 않고 채원을 노려봤다. 이미 내 주변의 차갑게 식어갔고 나를 주군으로 모시는 10여명의 여무사들은 사태를 요주시하고 있었다.

물론 여차하면 별초낭장 박현준과 별초들도 나를 위해 검을 뽑아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확신은 100프로가 아닐 것이다. 이 순간 진정 나를 위해 검을 뽑아줄 자는 백화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위장 따위가 뭐라고 한 것이냐?”

원래 근본이 없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질책하여 할 말이 없어지면 신분이나 직책을 들먹이며 소리를 지르는 법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하는 소리가 너 몇 살이나 처먹었냐는 거였다. 내가 살던 현대도 그랬듯 이 고려도 다를 것이 없었다.

목소리 큰놈이 이긴다!이건 어리석은 자들의 진리였다. 그리고 난 채원이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지금 검을 당장 뽑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겨우 위장 따위에게 소리를 지르는 정도니 쉬이 검을 뽑을 수 있는 위인이 아니었다.

이제 불안한 마음도 없다. 그리고 마음껏 질러 봐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결단이 서는 순간 내 세 치의 혀는 천금의 보검보다 빠르고 예리하게 움직였다.

‘겨우 산원 따위가! 태후와 황제폐하께서도 나를 막지는 못했다.’이건 자만심이 아니라 내게 용기를 주는 되새김이었다.

“저도 위장이나 채원님께서도 산원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직급이 낮다하여 대의의 뜻도 낮은 것은 아니옵니다. 또한 제가 대의를 위해 행한 것이 채산원보다 낮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놈이 진정 죽고 싶은 것이냐!”

순간 버럭 채원이 소리를 질렀고 바로 일촉즉발의 순간으로 변했다. 지금 나를 노려보고 있는 채원은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검을 절대 뽑지 않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기에 내 혀가 움직인 거였다.그리고 백화는 채원이 검을 뽑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고 별초낭장 박현준도 채원이 검을 뽑는다면 이 자리에서 참할 것 같은 눈으로 채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를 위해 검을 뽑아줄 자가 한 명 더 늘었군.’별초낭장 박현준의 사람됨이 채원을 능가하고 무인이라 여기기 충분했다.그것을 눈치를 챘는지 채원은 쉽게 검을 뽑지는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뽑을 마음이 없었다. 그러니 소리를 버럭 지른 거였다.

“왜 이의방이 하사한 여무사를 함부로 몇 품으니 무서운 것이 없더냐?”

“사내가 계집을 누구도 함부로 품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 자가 있다면 견구라고 불릴 것입니다.”

“뭐라?”

다시 채원이 나를 노려봤다.

“계집의 뒤에 숨어 주둥이만 산 어린놈 주제에.”

채원의 말을 통해 나는 채원이 내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백화를 데리고 다니기는 하지만 10여명의 여 무사를 데리고 있는 것은 이의방도 모르는 일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채원은 불같이 다시 나를 노려보다가 으슥한 숲에서 아낙을 만난 산적처럼 호탕이 웃었다.

“하하하! 어린놈아! 그 목 잘 간수하고 있어라. 네 목은 이제 앞으로 내 것이다. 내 반드시 베어주마.”

채원은 내게 위협이 되도록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검으로 싸우지는 않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실제로 무력을 행사하려는 자는 말보다 검이 앞서는 법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싸울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검을 뽑아들지 않는다면 나의 백화와 별초낭장 박현준이 검을 뽑을 명분이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 썩은 개새끼는 이의방과 이고와 함께 이 정변의 주축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보낸다는 것은 상처받은 백화의 마음을 내가 어루만져주지 못하는 거였다. 그런데 그 순간 하늘이 내게 채원을 욕보이게 하라고 기회를 줬는지 피 냄새가 진동하는 이 대전 앞마당에 덩치가 큰 사냥개 3마리가 거침없이 뛰어들었다.멍! 멍멍! 컹! 컹컹!지금 대전으로 뛰어든 사냥개는 기세등등하여 향락에 빠져 있던 의종이 사냥을 나갈 때 앞장을 섰던 바로 그 사냥개들일 것이다.

며칠째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먹이를 주는 자가 없고 굶주렸기에 줄을 끊고 이렇게 피 냄새가 진동하는 곳으로 뛰어든 것이다. 정말 이 대전은 참으로 이제는 이전투구의 모습 그 자체인 것이다.

멍! 멍! 멍!

“이 개새끼가!”

난 고개를 돌려 뛰어드는 사냥개 세 마리를 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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