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6권 -- >
“하하하! 졸지에 듬직한 사위를 얻어 좋겠네. 이 산원!”
이고의 너털웃음에 이의방도 무겁던 표정이었던 이의방도 피식 웃어버렸다.
“내 사위가 되려면 아직 공이 부족하다.”
“너무하십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됩니다.”
난 지금은 아이처럼 투정을 부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랑 나랑 언제 목이 잘릴지도 모르는 판에 네놈 장가는 무슨! 장인이랑 사위랑 같이 저잣거리 장대에 머리가 꽂혀 시정잡배의 구경거리가 되고 싶은 것이냐?”
난 이 순간 인상을 찡그리는 척을 했다.
그리고 이의방도 내가 사위가 되겠다는 말에 그리 싫지 않은 듯 했다. 이것으로 한숨은 돌린 것이다.
사실 나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빠르게 왔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힘을 가져야 한다. 임기응변도 한두 번이고 하늘이 굽어 살피는 것도 한 두 번인 것이다.
결국 사내나 무장은 스스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 이제 네가 나를 위해 준비한 마지막 꾀를 내놔 봐라.”
이 순간 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급한 불은 껐다.
’난 그리고 힐끗 이고를 봤다. 이것은 은혜라면 은혜일 것이다.
‘잊지 않겠습니다.’난 그렇게 생각을 하며 채원을 어떻게든 끝장을 내줄 생각을 했다.
‘어디 두고 보자! 익양후가 등극을 하면 네가 첫 내 재물이다.’난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은 의심을 푼 이의방을 봤다.
“우선 궁궐 밖은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될 것이옵니다.”
“궁궐 밖은 걱정을 마라?”
“그렇습니다. 용호군 대장군과 을우 대장군이 난적 정중부의 응양군을 막아 줄 것입니다.”
순간 이의방은 놀라 나를 봤다. 그리고 그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아마 저 안도의 한숨은 나를 죽이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일 것이다.
만약 나를 죽였다면 황궁으로 난입을 하는 응양군을 끝내 막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한 걸 거다.이런 상태가 내게는 딱 좋다.
내가 반드시 필요하고 그런 내가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상태!그게 내가 움직이기 딱 좋은 거다.‘북변으로 가지전에 좀 끌어 모을 시간이 필요해!’난 그런 생각을 했다.
원래 사람은 흙 파먹고 사는 존재는 아니다. 흙 파먹고 사는 것은 지렁이고 나는 지렁이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또 스승님의 말씀처럼 북변에 있는 속말말갈을 내가 흡수하려면 상당한 재물과 사병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년 정도 내가 채원보다 더 악착 같이 재화를 모을 시간이 필요한 거였다.‘내 채원이 끌어 모은 것부터 턴다.
’난 다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리고?”
“이의방 행수께서는 내일 대전으로 나가서야 할 것입니다.”
순간 이의방이 얼굴을 찡그렸다. 이것은 그에게 다시 목숨을 걸라는 말인 것이다. 태자가 이의방을 도모하고자 할 때 내가 그를 사지로 몰았다. 그런데 이번에 또 그를 사지로 몰고 있는 것이다.
“네놈은 장인을 계속 사지로 모는 구나!”
난 이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나를 사위로 삼으려는 거야!’정말 이 순간 나는 이 고려에서 일등 사윗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로 따지면 대통령 가문에서 나를 사위로 감겠다고 하고 또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겸직하는 사람이 나를 사위로 삼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 거였다.하지만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둘 다 오래 못 갈 자리다.’하지만 이미 내 입으로 한 말이니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이었다.
“가셔야 하옵니다. 마지막 난적 정중부의 목을 베는 분이 이 고려의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겁니다.”
내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가 지금까지 이렇게 정중부의 대항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두 가지는 명분이 있다는 것과 또 거사의 주역이라는 거다.
그리고 내가 보고한 것대로 일이 되면 대전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난적 정중부는 정말 역신이 되는 것이다.‘역신의 목은 줍는 자가 임자지.’내 말에 이의방은 나를 빤히 봤다.
“역신인 정중부의 목을 줍는 자가 임자겠구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장 빠르게 거사를 마무리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우두머리의 목을 치면 졸개는 꼬리를 내리는 법이지.”
“그렇습니다. 중랑장 한 섬 공이 결사대를 적의 경계병 사이에 심어놓았다고는 해도 이 행수님과 저게 살아남을 수 있는 거리는 254보이옵니다.”
“254보?”
“그렇습니다. 대전에서 대전을 아우르는 담과 문까지의 거리입니다.”
“세심하게 챙겼구나!”
“그렇사옵니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할꼬?”
이고가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할지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채원 산원을 정리해 달라고 하고 싶습니다.”
순간, 이고의 눈빛이 놀라움에 동궁이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붉어졌다.
“뭐라?”
“조금 전 살벌한 분위기는 모두 채원 산원의 이간질 때문이지 않습니까?”
난 그렇게 말하며 이의방을 봤다.
“부인하지 않겠다.”
“가장 무섭고 강한 적보다 가까이에 있으며 아군의 틈을 벌리기 위해 이간질을 하는 아군이 더 무서운 적인 것입니다. 이 고려의 뿌리인 고구려가 왜 멸망을 했는지 기억해 주십시오. 내분입니다. 이의방 행수님!”
밀어붙일 때는 강하게 물이 붙어야 하는 거다.
“알았다. 회생아!”
내 말에 이고도 이의방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떻게 거사 동지를 그렇게 토사구팽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게는 못하지. 채원을 그렇게 팽 시킨다면 후일 누가 우리를 따르겠느냐?”
이의방은 후일까지 생각하는 듯 말했다.
“나머지 결사대를 이용해서 만일을 대비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고 산원께서는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럼 나는 사지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이고는 나를 보며 웃었다. 이럴 때보면 무척이나 천진난만한 모습의 이고일 것이다.
“그 대신 얻는 것도 그리 크지 않으실 것입니다.”
“벗이 챙겨주는데 뭐가 걱정이냐.”
“그렇사옵니다. 이제 바로 실행에 옮겨야 할 때입니다.”
이미 해는 지고 있었다. 그럼 곧 내일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그 내일에 모든 것이 결정이 되는 것이다.
“모든 일이 잘되어야 할 것인데,,,,,,.”
담이 큰 이의방도 긴장을 하는 것 같았다.
“난적 정중부는 저의 계략이 충분히 방심을 하고 있고 저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사옵니다. 하늘은 저희의 노력을 그냥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우리가 승리하는 것이 황실과 사직에 더 이로울 것이야!”
이의방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렇사옵니다. 우리가 난신은 될지언정 역신은 되지 않으니 하늘이 이 고려를 버리지 않는다면 분명 내일 하늘은 우리를 굽어 살피실 것이다.”
태후 전 복도.허리에 창검을 찬 정중부 정중부의 모습과 함께 뒤에 두 명의 교위들이 그를 호위하듯 따르는 모습을 보고 복도의 나인들은 기겁을 해서 파르르 떨었다.
“태후마마께 고하여라.”
지금 상장군 정중부를 맞이하고 있는 상궁은 다행히 해월이었다. 무서운 표정을 주눅이 들게 말하고 있는 상장군 정중부를 보며 지그시 해월은 입술을 깨물고 있을 뿐이었다.
“태후마마께서는 병환 중이라 상장군께서는 뵈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태후마마께서 쾌차한 후에 발걸음을 하시는 것이 옳은 줄 아옵니다. 발걸음을 물리시지요.”
“태후께서 나를 기다리실 것이다.”
상장군 정중부는 짧게 말했다.
“하오나 병환 중이시옵니다. 그 병환은 나로 인해 생긴 것이니 내가 풀어드리면 될 것이 아니냐!”
상장군 정중부의 얼굴에는 조소가 섞여 있었다.
“왜 이리 밖이 소란한 것이냐?”
앙칼진 늙은 여자의 목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병환이라고 하시기 에는 목청이 쩌렁쩌렁 울리시는구나!”
다시 상장군 정중부가 조롱을 하듯 해월을 보며 말했다.
“상장군이 태후마마를 뵙기를 청하옵니다.
“드리라!”
태후의 명령이 떨어졌고 그 순간 스르륵 문이 열렸다.
“드시지요. 상장군!”
그 순간 해월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고 상장군 정중부는 지금까지 당한 수모를 갚아주는 것 같아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태후 전 방안.공예태후는 차분히 자리에 앉아 있었고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금 촛대는 파란 불꽃을 피우며 애가 타는 태후의 마음처럼 잘도 타고 있었고 그 앞에 정승처럼 상장군 정중부가 물끄러미 태후를 보고 있었다.
지금 상장군 정중부는 마치 자신이 승리자라도 된 듯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공예태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물론 마음속에서는 공예태후 역시 내일만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로 나를 찾으신 겁니까?”
마치 공예태후가 급한 것처럼 뭔 상장군 정중부에게 물었다. ‘회생의 말이 들어맞고 있음이야!’공예태후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마지막 밤에 상장군 정중부가 온다면 어떻게든 약하게 보여서도 그렇다고 해서 상장군 정중부의 비위를 상하게 해서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회생은 공예태후에게 한 상태였다.마치 지금 회생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드라마의 배우처럼 잘도 연기를 하고 있었다.
오직 그 전체의 흐름은 감독인 회생만이 아는 것이고 배우들은 장면 하나하나만을 아는 것뿐이지만 회생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앉으시오.”
태후가 상장군 정중부에게 자리를 권했다.
“어찌 신하된 자가 자리에 앉을 수가 있겠나이까?”
상장군 정중부의 말에 공예태후는 기도 안찬다는 듯 피식 웃었다.
“신하된 자가 예법을 잊어 그럼 황제를 폐위하는 것이요? 그런 망극한 일이 있는데 같이 대좌 좀 했다고 뭐라 달라지겠소.”
이 순간 상장군 정중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래 황제까지 폐위시키기 위해 중론을 모은 상장군 그대가 늙은 태후는 왜 찾으신 것이요.”
말에 모진 뼈가 담겨 있는 태후였다.
“제가 태후마마의 근신을 덜어드리겠나이다.”
상장군 정중부의 말에 태후는 회생이 한 말을 떠올렸다.‘내 아들인 황제를 허수아비 상황제로 만들어주겠다고 하겠지.’태후는 그런 생각을 하며 상장군 정중부를 놀랜 눈으로 봤다. 확실히 살아온 세월이 있고 이 구중궁궐의 암투에 승리한 태후이다 보니 그 연기력은 타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엇이라고 하셨는가?”
“제가 태후마마의 근심을 덜어드리겠나이다.”
“이 늙은이의 근심을?”
“그렇사옵니다.”
“어떻게 말인가?”
태후의 말에 물끄러미 상장군 정중부를 태후를 봤다.
“황제폐하를 폐위의 길에서 제가 구명해 드리겠나이다. 황제폐하를 상황제로 추대를 하고 태자마마를 후로 봉하여 황실의 황망함을 최소한으로 하겠나이다.”
이 순간 태후는 놀라는 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회생의 예상대로 착착 일은 진행됐다. 어쩌면 이렇게 회생이 모든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현대에서 죽기 전에 드라마 극본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황제를 상황제에 추대한단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이미 황제 폐하께서는 윤허하신 일이옵니다.”
그 순간 태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라가 아무 말이나 마구 하는 상장군의 저 모진 입을 찢어발기고 싶은 태후였다.
“그대와 황제께서 이미 결정한 일인가?”
“그렇사옵니다. 황제폐하는 기꺼이 상황제로 물러나신다고 하셨나이다.”
상장군 정중부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는 것을 보고 태후는 못 이기는 척을 했다.
“그래 황제께서는 다른 말씀은 없으신가?”
이것을 상장군 정중부는 태후의 항복 선언이라고 여기고 씩 웃었다. 그리고 이 순간 상장군 정중부의 머릿속에는 황제가 한 말이 스쳐지나갔다.‘황실의 외척이 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상장군 정중부는 그렇게 생각을 하며 자신의 아들인 균을 떠올렸다.
“있었사옵니다.”
“무엇이요? 상장군!”
태후의 눈빛은 다소 누그러져 있는 듯했다.
“황제께서는 영화궁주마마를,,,,,,.”
상장군 정중부는 차마 자신의 입으로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런 염치가 있는 것을 봐서는 아예 짐승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황제가 무엇을 말한 것이요? 영화궁주가 왜요?”
“저의 미력한 아들 균을 영화궁주의 부마로 삼으시겠노라 하셨사옵니다.”
상장군 정중부의 말에 공예태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하지만 이런 굴욕도 내일이면 끝이 난다는 생각에 애써 참고 있는 공예태후였다.
“황제께서 그렇게 말씀 하신 것이요?”
“그렇사옵니다.”
“알겠소."상장군 정중부의 눈에는 자포자기를 하는 듯 보였다. 그와 동시에 상장군 정중부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제 본격적인 말을 할 모양이었다.
“태후마마!”
“왜 그러시오? 더 할 말이 있으신 게요?”
“그러하옵니다. 내일 대전의 양위 식에 참석해 주시옵소서. 충희 황자님께서 이 고려의 지존이 되시는 뜻 깊은 날이옵니다.”
상장군 정중부의 말을 돌려서 말하면 공예태후의 장자인 의종이 폐위나 다름없는 상황제로 정해지는 날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리다. 내 익양후를 비롯하여 모든 황실 사람들을 데리고 참석을 할 것이오.”
이것으로 상장군 정중부는 자신의 완벽한 승리로 모든 것이 귀결된다고 여겼다.‘이제 10년이 지나면 이 고려는 왕 씨의 것이 아니라 도천밀서의 주인인 정 씨의 것이 되는 것이야!’상장군 정중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해월이 말했듯 내가 몸이 좋지 않소. 그러니 이제 물라가 주시겠소.”
“송구하옵니다. 신 상장군 정중부 물러나옵니다.”
상장군은 살짝 허리를 숙여 조심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오직 태후는 회생의 얼굴만 떠올리고 있었다.‘내 그 아이를 믿을 것이야!’태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렇게 새로운 하늘이 열리기 위한 밤은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