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6권 -- >상장군 정중부의 장군방.상장군 정중부는 거만한 자세로 나인을 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중랑장 한 섬이 차분히 서서 그를 호종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낭장 박순필이 나인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이 순간 박순필은 상장군 정중부의 책사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거였다.
“황제폐하가 나를 부르신다?”
“그렇사옵니다. 지금 당장 독대를 하고자 하십니다.”
“독대라,,,,,,.”
상장군 정중부는 말꼬리를 흐렸지만 흐뭇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하옵니다. 쇤네는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그러시게.”
그렇게 나인은 조심히 물러났다. 이제 이 방에 남은 것은 상장군 정중부와 중랑장 한섬 그리고 낭장인 박순필 뿐이었다.
“드디어 황제가 굴복을 했군요.”
박순필은 상장군 정중부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렇지. 오래 버틸 수는 없는 상황이니 이제야 내게 백기를 든 것이지.”
“맞습니다. 상장군! 아무리 그래도 폐주보다는 상황제가 좋지 않겠습니까?”
중랑장 한 섬도 상장군 정중부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 아부가 담긴 말을 했다.
“그래. 이제 모레면 이 고려는 내 손아귀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야!”
상장군 정중부는 흐뭇하게 웃었다.
“경하 드리옵니다. 상장군!”
중랑장 한 섬이 다시 아부를 했다.
“모든 일은 대전에서 이루어질 것이옵니다.”
박순필이 상장군 정중부를 보며 말했다.
“그렇지. 양위를 발표하는 것도 그렇게 되는 것이고 또한,,,,,,,.”
순간 상장군 정중부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렇사옵니다. 가시는 길에 걸리는 것들 모두를 제거하는 일도 그곳이야 할 것이옵니다.”
박순필은 상장군 정중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대전 외각을 경계하는 것을 철저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곧 내 정적을 제거하는 선발대가 될 것이다.”
상장군 정중부는 중랑장 한 섬을 보며 말했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또한 박 낭장이 500의 군사들을 이끌고 바로 대전으로 난입을 해야 할 것이야!”
이 순간 상장군 정중부는 자신과 척을 지고 있는 많은 대소신료들과 이의방을 비롯한 이고와 채원을 그 참에 제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예. 상장군!”
“이의방을 비롯해서 이고와 채원을 모두 제거할 것이야!”
“예. 상장군! 만반의 준비를 하겠습니다.”
박순필이 다부지게 대답을 했다.
“항상 눈 안의 가시 같은 용호군 대장군 강일천도 오라고 해.”
“강일천 대장군까지 도모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박순필과 한 섬은 놀라 상장군 정중부를 봤다.
“그래야지. 그래야 내가 가는 길이 쉬워지지.”
그 순간 박순필과 한 섬은 속으로 기겁을 했다.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이 이 순간 권력을 장악하고 문하시중이 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 말씀은,,,,,,.”
순간 박순필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와 동시에 상장군 정중부가 박순필을 노려봤다.
“왜 그러는가?”
“아, 아니옵니다.”
“강일천을 제거하려하는 것은 더 이상 군부가 황실의 여인에게 농락당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렇사옵니까?”
“그렇다. 그리고 무신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조정을 이끌어갈 수 있는 고려를 만들 것이다.”
마치 상장군 정중부는 자신이 앞으로 이끌어갈 국정을 공표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박 순필과 한 섬은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을 하고 있었다.물론 한 섬은 회생에게 들어 그가 역천을 꿈꾸고 있는 것에 증거를 잡는 순간이기도 했다.
‘역시 회생의 말이 맞아 떨어지는 것이야!’중랑장 한 섬은 상장군 정중부를 보며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소응과 을우까지 다 오라고 해! 모두 다 제거를 할 거이야!”
“이 소응 대장군과 을우 대장군까지요?”
박 순필은 더욱 놀라 상장군 정중부를 봤다.
“그래. 이 소응 그 자는 주제도 모르게 딴 마음을 품고 있어. 또한 을우 그 자는 항산 눈에 가시 같은 놈이야! 내게 척을 지는 모든 자를 그날 대전에서 정리를 할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거가 되어야 장군의 자리가 생기는 겁이지.”
상장군 정중부는 중랑장 한 섬을 보며 피식 웃고 나서 말했다.
“그, 그렇사옵니까?”
“한 섬 네가 내가 장군의 자리가 아니라 이제는 대장군의 자리를 줘야겠군. 하하하!”
상장군 정중부는 호탕하게 웃었고 그 순간 중랑장 한 섬은 멋쩍게 웃었다. ‘간악한 놈!’한 섬은 멋쩍게 웃으며 속으로 상장군 정중부를 욕했다.
그렇게 이 밤에 상장군 정중부는 정중부대로 자신의 야망을 위해 일을 도모하고 있었다.벽란도에 자리 잡고 있는 난전 거리.나와 백화는 야심한 밤에도 형형색색의 등을 밝힌 난전 거리를 걷고 있었다.
정말 이곳은 별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치 야시장이 서는 동대문 같군!’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 고려 시대에도 이렇게 크고 화려한 야시장이 있을 줄은 차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난전들의 주인은 세상에 모든 인종들을 다 모아놓은 것 같았다.‘저들은 아랍인이잖아.’난 터번을 쓴 아랍인들을 보고 고려가 얼마나 해상 대외 무역이 활발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치 베트남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분명 안남국 사람들 일 것이다. ‘상아로 된 장신구를 팔고 있군.’난 힐끗 백화를 봤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녀를 안남국 상인이 행상을 펼친 곳으로 이끌었다.
“저기로 가자!”
“예. 상공.”
그가 장을 펼친 곳에는 상아로 된 장신구들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다.
“하나만 골라봐라.”
“예? 상공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너에게 주고 싶구나!”
순간 백화는 어염집 아낙처럼 나를 보며 행복한 표정을 했다. 이 행복감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하겠지만 그렇게 백화는 행복해 했다.
“소녀는 괜찮사옵니다. 상공.”
“아니다. 내가 골라주마!”
난 좌판에 놓여 있는 장신구중 백화에게 어울릴 것 같은 비녀 하나를 골랐다. 물론 그것은 내 생각일 것이다. 원래 남자는 여자가 원하는 것을 잘 고르지 못한다. 하지만 이 순간 난 백화를 위해 골라주고 싶었다.'조금 가지고 나오길 잘 했다.'난 내 품 안에 있는 은병을 떠올렸다.
“그거 좋습니다.”
안남국 상인이 어눌한 고려 말로 내게 헤헤거리며 말했다.
“이게 좋아 보이지?”
“그렇습니다. 나리! 헤헤헤!”
“그래 이게 얼마냐?”
“은병 하나이옵니다.”
안남국 상인의 말에 난 품에 넣어둔 은병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고 손에 든 상아 비녀를 백화에게 건넸다.
“헤헤헤! 정인에게 주시는 것이면 각인도 해 드립니다.”
안남국 상인은 내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역시 돈 가진 놈이 이런 곳에서는 왕이니 그럴 것이다.
“각인?”
“그렇습니다. 정인에게 드리는 마음의 정표이니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거 좋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현대나 과거나 다 이렇게 상술은 여자의 마음을 얻고자하는 남자에게로 향해 있는 거였다.
“내가 할 수 있나?”
“직접 하시겠습니까?”
안남국 상인은 내게 굽실거리며 물었다.
“가능하면 그렇게 하고 싶은데.”
“가능하기는 하옵니다.”
“그럼 내가 직접 하지.”
난 그렇게 말을 하며 안남국 상인이 왜 각인을 하라고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물품에 흠집을 내면 교환이 불가능하니 그렇게 하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나도 모르게 안남국 상인을 보며 피식 웃었다.
‘상술이 대단하네.’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안남국 상인은 내게 예리한 조각칼 비슷한 것을 내밀었다.
“이것으로 하면 됩니다. 나리!”
“그래. 이리 주게.”
난 바로 조각칼을 받아들고 비녀를 물끄러미 봤다.‘뭐라고 쓰지?’난 힐끗 백화를 봤다. 그리고 난 내 솔직한 마음을 각인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천천히 날카로운 조각칼로 상아로 된 비녀에 내 마음을 새겨 넣었다.
-사랑해서 항상 그립다!난 그렇게 백화에게 줄 비녀에 내 마음을 담았다. 내가 비녀에 새길 동안 백화는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 됐다.”
난 백화를 보며 방끗 웃어 보였다.
“여기!”
난 조심스럽게 백화를 보며 백화의 머리에 상아로 된 비녀를 꼽아줬다.
“고맙사옵니다. 상공.”
“나중에 더 좋은 거 해 줄게.”
아마 세상에 모든 남자들이 자신의 여자에게 그렇게 말할 것이다. 난 이 순간 모든 것을 잊고 백화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을 오래 갈 수가 없었다.
‘난 참 나쁜 놈이다.’난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벽란도 포구.고려왕조의 선대는 강충(康忠)이나 작제건(作帝建)의 혼인설화가 모두 바다와 관련되어 있는데서 볼 수 있듯이 신라 말에 일어났던 해상세력으로 추측된다. 작제건의 혼인설화는 고려왕조를 용의 후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설화일 것이다.
작제건은 고려 태조 왕건의 할아버지가 되는 인물이다. 태조 2년에 태조가 3대조고을 추존할 때 할아버지인 의조에게 주어진 칭호이다.
왕건의 조상에 호경이 있어 성골장군이라 하였다. 그 아들 강충(康忠)은 서강 영안촌 부자의 딸 구치의를 맞아 보육을 두었고, 그의 딸 진의는 당나라 숙종과의 사이에서 작제건을 낳았는데, 작제건은 왕건의 할아버지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 스스로 왕 씨가 고귀한 혈통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작제건은 활을 잘 쏘아 상선을 타고 아버지를 찾아 당나라에 가던 중 서해에서 용녀를 만나 함께 돌아와서 아들 넷을 낳았는데, 장남이 용건(龍建)으로 뒤에 융(隆)이라 하였으며, 태조 왕건을 낳았다고 한다.
그것을 통해 왕 씨들은 스스로 용의 후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인지 고려 때에는 해상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핵심이 바로 벽란도였다.그래서인지 고려는 일찍부터 중국과의 통교를 통해 교역하였다.
태조 17년 7월에는 고려 상선이 후당(後唐) 등주(登州)에 가서 교역하였고, 같은 해 10월에는 고려의 배가 청주(靑州)에서 무역을 하였으며, 광종 9년에는 후주(後周)에서 비단 수천필로 구리를 무역해 온 기록도 있다. 이러한 대외무역의 중심지가 바로 벽란도였다.
개경에서 30리 떨어진 황해안에 위치한 벽란도는 원래 예성항으로 불렀으나 그 곳에 있던 벽란정(碧瀾亭)의 이름을 따서 벽란도라고 불리게 됐다. 고려 전기의 대외무역은 송(宋)을 비롯하여 요(遼)·금(金)·일본(日本) 등 주변 나라와 행해지고 있었으며 멀리 아라비아의 대식국(大食國)과도 교역할 만큼 교역의 대상이 광범위했다.
각국의 해상선단이 개경의 문호인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를 중심으로 몰려옴으로써, 벽란도는 국제무역항으로 번창했다. 특히 송과의 무역은 매우 중요했는데 이때 항로는 남북항로가 주된 간선이었다.
북선항로는 산동 등주(登州) 방면에서 동북 직선로에 의해 대동강 어구를 거쳐 옹진항 또는 예성강에 이르는 항로였고, 남선 항로는 명주(明州)에서 동북으로 흑산도에 이르고 다시 동북행하여 서해안 도서를 거쳐 예성강에 이르는 항로였는데, 문종대 까지는 주로 북선항로가, 이후에는 주로 남선항로가 발달하였다. 상행위 뿐 아니라 중국의 사신이 올 때에도 우벽란정에 조서(詔書)를 안치하고, 좌벽란정에서 사신을 대접하였으며, 이곳에서 개경까지는 동서로 도로를 만들어 놓는 등 외교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그렇게 화려함이 극에 달하는 곳이 또 벽란도이었다.지금 이 순간 나와 백화는 벽란도 포구를 걷고 있었다.
검은 하늘에는 달이 차올라 벽란도 포구에 아래 물 위에 다시 하나 자리 잡았고 내가 보는 백화의 눈동자에도 두 개의 별이 떠 있었다.포구에 닿을 내린 수백 척의 상선들에서 뿜어지는 등불은 마치 이곳이 은하수처럼 화려하게 보였다.
이래서 고려의 남녀들은 벽란도에 와서 정을 나눠며 서로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을 했을 것이다.
“아름답구나!”
난 백화를 보며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역시 벽란도의 밤 풍경은 아름답사옵니다.”
“아니 네가 아름답다.”
난 정말 용기를 내서 말했다. 그 순간 백화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송구합니다. 상공!”
“내게 네가 있어 나는 참으로 좋다.”
난 그렇게 말하며 백화의 손을 잡았다. 내가 이렇게 이곳까지 온 것은 미안함이었다. 그녀를 사지로 보내야 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에서 이런 행동을 한 것이다.
“감사하옵니다. 상공!”
백화가 그렇게 말하고 물끄러미 나를 봤다.
“내게 할 말이 있느냐?”
“이제 그만 하셔도 됩니다. 상공. 소녀는 상공을 마음을 다 이해하옵니다.”
역시 백화였다. 무거운 내 마음을 이미 백화는 알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