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96화 (96/620)

< -- 간웅 5권 -- >난 그렇게 마음속으로 투덜거렸다.그리고 내가 나무그림자 뒤에 서자 백화가 나를 봤다.

“괜찮습니까? 상공!”

백화가 나를 걱정하자 아프지 않는 것도 다 아파왔다. 이게 남자가 자기 여자에게 하는 엄살일 거다. 하지만 엄살을 부리기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참을 만 해,,,,,,.”

난 그렇게 말을 했지만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자 백화가 놀라 내 몸을 어루만졌다.

“저놈을 제가 요절을 내겠습니다.”

백화도 내게 엄살 놀이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백화가 달려오지 않은 것은 이미 내가 하는 일을 파악했기 때문일 거다.

“아니다. 일을 한 순간의 감정으로 대의를 그르칠 수는 없지.”

난 그렇게 말했고 백화는 내 몸을 조심히 주물렀다. 이것은 우리만이 아는 스킨십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는 연정이 싹이 트기 시작을 했다.

아마 내가 찰나의 순간 백화의 손을 살짝 잡았다 놓은 것이 백화가 용기를 내는 이유 일 것이다. ‘백화도 내가 좋은 거야!’난 속으로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쾌재를 불렀다.

“거기 말고 거기! 응 거기!”

난 나도 모르게 애인에게 엄살을 부리듯 했다.

“이곳이옵니까?”

백화는 내 등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나는 백화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짜릿했다. ‘이제 한 섬 놈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난 그렇게 생각을 하며 홍련을 봤다.

“홍련아!”

내가 뜬금없이 홍련을 부르자 홍련은 짧게 대답을 했다. 이 순간 왜 부르냐 하는 눈빛은 숨기지 못하고 말이다.

“주모가 놀랐으니 먼저 사택에 데리고 들어가라.”

역시 이럴 때는 알아서 피해주는 눈치가 없는 홍련이었다. 그러니 이틀 전 밤에 백화와 내가 야릇한 감정이 생겼을 때 궁에서 상궁이 왔다고 초를 쳤을 것이다.

“예. 주군!”

홍련은 짧게 대답을 하고 주모를 봤다. 그리고 주모는 백화를 보고 살짝 눈웃음을 하는 것 같았다. 역시 남편이 있는 여자는 눈치가 빠른 법이다.백화도 주모의 눈웃음에 멋쩍게 웃었다.

“주인마님! 이제 저는 그만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고생했네.”

“오시는 길에 벽란도가 참 야경이 좋습니다.”

주모는 내게 훈수를 뒀다.

“으음,,,,,,.”

난 그냥 헛기침을 했다.

“그럼 쇤네는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주모는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이제 백화와 나 둘만 남은 것이다.

‘좀 늦게 오면 좋은데,,,,,,.’난 이 순간 중랑장 한 섬이 좀 늦게 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마음이 급했는지 중랑장 한 섬은 이미 태장궁 문을 나서고 있었다.‘저 새끼는 젠장!’난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저 새끼는 젠장!’난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이곳보다는 좀 더 은밀한 곳이 좋겠다는 생각이 중랑장 한 섬을 힐끗 보고 목례를 하고 따라오라는 듯 천천히 걸었다. 이 순간 백화는 나무 그늘 뒤에 살짝 숨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숨어 나를 보호할 것이다.

이제는 내가 앞장을 서고 중랑장 한 섬이 내 뒤를 천천히 누구도 따라가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게 따르고 또 그 뒤를 백화가 중랑장 한 섬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미행을 하는 형국이 됐다. 한마디로 여차하면 백화가 달려들어 뒤에서 그의 등을 노리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중랑장이라고 해도 후방에서 빠르게 공격을 하면 막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역시 백화군!’내게 백화가 있다는 것은 내 최고의 복일 것이다.

물론 이렇게 뒤에서 노리는 것은 비겁한 일일 거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비겁하고 하지 않고를 가릴 여유는 없었다.난 그렇게 중랑장 한 섬을 으슥한 침방 뒤로 이끌었다.

이곳에 드나드는 것은 나인들이 전부다. 그리고 황궁이 어수선해서 드나드는 나인의 수고 그리 많지 않았다.또한 지금은 저녁이고 모든 침방 처소의 나인들이 자신이 기거하는 처소로 돌아간 후였다.

그리고 난 걷던 걸음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중랑장 한 섬도 멈췄고 그 뒤를 미행하는 백화도 멈췄다. 그리고 백화는 빠르게 침방 전각 모퉁이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난 천천히 돌아섰다. 이제 내가 훨씬 유리한 상태다.

이건 내가 정중부를 잡기위해 짜놓은 연환계의 일부인 조리호산의 계략을 중랑장 한 섬에게도 쓴 것이다.중랑장 한 섬이라는 호랑이는 태자궁 호위병들이 있는 곳이 자신이 호령하는 산인 것이다.

물론 이곳에 내려왔다고 해도 호랑이가 순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산에서 호령을 할 때와 탁 트인 들판에서 포효를 할 때와는 분명 다른 걸 거다.

“먼 걸음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사실 뭐 그리 먼 걸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침착히 그리고 끝까지 나를 따라온 중랑장은 사지에서 생지로 참으로 먼 걸음을 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까 토사구팽에 대해 말해 봐라.”

중랑장 한 섬은 자신이 더 목이 마르다는 것을 들어내기라도 하듯 내게 물었다. 원래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고 급한 놈이 납작 엎드려서 사정을 하는 법이다.

“중랑장께서도 그것을 생각하시기에 오신 것 아니십니까?”

“으음,,,,,,.”

중랑장 한 섬은 내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그 역시 그 정도는 생각할 줄 아는 머리가 있었다.

그건 다시 말해 제법 영리하다는 거다. ‘생각보다 머리가 있네.’난 중랑장 한 섬을 보며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상장군 정중부가 토사구팽의 패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분명 멍청하지는 않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태자를 그렇게 겁박하고 죽게 만든다면 절대 지워지지 않는 불도장을 그 이름에 남기는 것이지요.”

“불, 불도장,,,,,,.”

“역신의 불도장! 패악의 불도장을 찍고 사시렵니까?”

난 중랑장 한 섬을 노려보며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당장 오늘 죽을 수도 있는데 어찌 한단 말이냐?”

중랑장 한 섬은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가 소리를 치는 것은 내게라기보다는 자신일 것이다. 그리고 믿었던 상장군 정중부에 대한 배신감 일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어쩌면 그는 상장군 정중부가 요구하는 것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자신이 모시는 상관이니 말이다. 그리고 또한 장군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것이 역신이 되고 패악의 불도장이 찍힌다고 해도 그는 장군이 되고 싶었다. 군문에 들어선지 20년은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아직 중랑장이었다. 그러니 자신은 무엇이든 해야 했다.

아마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당장 죽을 수도 없지만 역신의 불도장을 찍고 죽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으음,,,,,,.”

이 순간 중랑장 한 섬은 방법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가 왜 자신에게 왔는지 알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지금 너는 내게 이의방의 편에 서라는 것이냐?”

“서시지 못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지금 설 이유도 없지. 최소한 배신자로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최소한 사냥개로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말에 중랑장 한 섬은 피식 웃었다.

“그것을 누가 장담을 하느냐? 너라고 별수 있을 것 같으냐?”

순간 나는 중랑장 한 섬의 말에 뒤통수를 크게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나 역시 이렇게 움직이다가 언제 사냥개의 신세가 될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지요. 세상사야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요.”

“너랑 나랑 다를 것이 없다.”

역시 아예 머리가 없는 자가 아니었다. 단지 주인을 잘못 만난 것이 그의 죄라면 죄일 것이다.

“하지만 저는 그래도 그냥 죽습니다. 중랑장처럼 이마에 그리고 자자손손에게 역신의 불도장을 찍고 죽지는 않습니다.”

중랑장 한 섬이 내게 반격을 했으니 나도 되돌려줬다. ‘어리석지 않아! 컨트롤을 하지 못할 뿐이지.’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방법이 없다. 썩은 동아줄인지 알면서도 잡아야 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지금 20년간을 모신 주군을 배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인을 잘못 본 나를 원망하고 주인이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응양군으로 군문을 들어선지 그 오랜 세월동안 모신 상장군을 지금 이 순간 배신할 수는 없다.”

중랑장 한 섬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다른 줄을 잡으시면 되시지 않습니까?”

“다른 줄?”

“그렇습니다.”

“이의방을 말하는 것이냐? 겨우 산원 따위를 모실 수는 없다. 그리고 또 지금 누가 있어서 상장군의 권세를 꺾고 나를 구명해 준다는 것이냐? 이미 이 길을 택할 때부터 각오를 했다. 아니 선택의 여지도 없었으니 강요당할 때부터 각오했다고 해야 옳겠지.”

중랑장 한 섬은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스스로 구명하지 않는데 누가 구명해주겠습니까?”

“스스로 구명을 하라?”

“그렇습니다. 우리라고 못 할 것이 뭐에 있습니까?”

“우, 우리,,,,,,.”

중랑장 한 섬은 놀라 기겁을 했다.

“그렇습니다. 우리입니다.”

“무, 무엇을 생각하는 것이냐?”

“중랑장께서는 장군의 반열에 오르시고 저는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고,,,,,,.”

순간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중랑장의 입장에서는 내 입에서 튀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중랑장은 내 말을 믿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아마 그것은 그 자신의 현실이 너무나 참담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든 옆에 두고 쓰려는 자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하지는 않는다. 그 역시 중랑장 한 섬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장군 정중부께 충성을 다하신 것이 몇 년이십니까? 20년이라고 하셨지요? 또한 그의 수족이 되어 더러운 일을 해 드린 것이 또 몇 번입니까? 그런데 역신의 불도장을 찍게 하여 죽이는 것은 상전의 도리가 아니지요. 주인이라고 모셨다고 하셨습니까? 계집은 자신을 어여삐 여겨주는 사내를 위해 꽃단장을 하고 옷을 벗지요. 그리고 장수는 자신을 알아주는 주인을 위해 목을 내놓는 법입니다. 겨우 사냥개로 취급을 하는데 그냥 어쩔 수 없다고 가마솥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난 마지막 회심의 일침을 가했다.

“으음,,,,,,.”

“장군의 반열은커녕 역신이라는 오명을 쓰고 죽게 될 것이옵니다. 또한 상장군 정중부는 태자와 황제를 폐위시킬 마음이 절대 없습니다.”

지금까지 마음이 흔들리고 있던 중랑장 한 섬이 나를 노려봤다.

“뭐, 뭐라고 했느냐?”

“두고 보십시오. 절대 황제폐하는 폐위가 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이 뭘 의미 하시는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무슨 해괴한 말인 것이냐?”

“두고 보십시오. 황제가 폐위가 되고 태자가 폐서인이 된다는 지금도 역신의 불도장과 패악의 불도장이 중랑장의 이마에 찍힐 것인데 상황제폐하의 아드님이신 분을 이렇게 겁박하시면 다음 수순은 정해져 있지 않사옵니까?”

나는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반쯤 넘어와 있던 상장군 중랑장의 눈빛은 파르르 떨리고 동공이 확장되어 놀라고 또 놀라고 놀랍기만 한 표정이었다.

“정, 정말이더냐?”

“두고 보시면 아시지 않겠습니까? 내일쯤 상장군 그자가 내전으로 황제를 만나러 간다면 상장군은 황제와 단판을 지으려 가는 것입니다.”

“황제와 담판?”

“그렇습니다. 지금 상장군 정중부는 황제폐하를 태자를 이용해 겁박하여 자신이 마음먹고 있는 자에게 황제께서 양위를 하시는 형식을 취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황실의 반발도 공예태후의 진노도 모두 무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그렇지.”

“그럼 무엇이 남겠습니까?”

내 물음에 상장군 정중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그것은,,,,,,,.”

“바로 황실을 겁박하고 태자를 황망한 지경에 이르게 한 중랑장의 사지를 찢고 육시를 해서 그 목을 저잣거리에 걸고 몸은 구석구석 잘라 지방으로 보내 역심을 품지 못하게 하는 경계로 삼으려 할 것입니다.”

“그, 그렇겠지.”

중랑장 한 섬의 목소리라 떨리다 못해 울리기 시작을 했다.

“또한 9족이 멸해질 것이고 집안의 여자들은 사노비가 농노비로 팔려 천기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놈저놈 마음만 먹으면 옷고름은 그냥 풀 수 있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바드득!순간 내 말에 중랑장 한 섬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벽란도에 정박한 송나라 상단 배를 타고 송나라로 끌려 더 심한 고초를 겪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위협을 하고 겁을 줄 때는 독하게 해야 한다.

“벽락도에서 송나라의 노예로 팔릴 것이라고?”

“돌고 돌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자신을 한탄하면서 이렇게 스스로 가마솥에 들어가실 것입니까?”

내 앙칼진 물음에 중랑장 한 섬이 나를 봤다.

“내, 내가 어찌하여야 하나?”

이제 중랑장 한 섬은 내게 하대를 하지 않았다.

“그럼 동아줄을 갈아 잡으시겠습니까?”

난 뚫어지게 중랑장 한 섬을 봤다.

“그, 그 동아줄은,,,,,,.”

중랑장 한 섬은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견룡군 행수 이의방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의방 행수의 금동아 줄입니다.”

“이의방이 내 동아줄이라?”

“왜 직급이 아래라 내키지 않으십니까?”

“그, 그것은 아니다 만은,,,,,,.”

“이번 일이 다 끝이 나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되는 것 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으음,,,,,,.”

“그리고 지금 이의방 행수는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자신이 잘 나갔을 때 옆에 아부하는 것들은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지만 궁핍할 때 자신의 옆에 있는 자는 뼛속까지 담아두는 법입니다.”

“나를 받아줄까?”

중랑장 한 섬은 나를 보며 애처롭게 물었다.

“그만큼의 공이나 이의방 행수께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어야겠지요.”

“공이나 정보?”

“그렇습니다.”

“으음,,,,,,.”

지금 당장 공을 새우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중랑장 한 섬은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 정보를 찾기 위해 인상을 찡그렸다.

“흥왕사!”

순간 중랑장 한 섬은 뜬금없이 흥왕사라고 내게 말했다.

“그게 어떻게 되었다는 겁니까?”

난 궁금해 다시 물었다.

“그곳에 제 5황자가 계시지. 충희 황자가 스님이 되어 계시지.”

중랑장 한 섬의 말을 듣고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건 생각하지도 못한 성과인 것이다.

“충희 황자요?”

“그래. 박순필 공이 상장군을 대신해서 간 것 같더군. 아마 그럴 것이야. 환관 김우치와 나를 나가게 하고 은밀히 말하는 것을 봐서 그게 확실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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