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83화 (83/620)

< -- 간웅 5권 -- >

“으음,,,,,,.”

난 절로 신음이 나왔다. ‘그래 철저히 준비를 했겠지.’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황실과 척을 질 각오까지 한 상장군 정중부이니 황제의 주변을 감시할 인물도 이미 배치를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연락을 취해야 하는데,,,,,,.’난 순간 머리가 아파왔다.

“그 환관과 어떻게 지내십니까?”

난 최준에게 그렇게 물었지만 이미 최준이 할 대답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최준과 의종을 호종하고 있는 환관은 사이가 무척이나 나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환관들의 세력을 자신의 발아래에 두려고 경쟁을 하는 라이벌이던가. 둘 중 하나일 게 분명했다.

“난신적자와 친분을 쌓고 살지는 않습니다.”

최준은 다부지게 말했다.

“사이가 나쁘시군요?”

“그자는 무비마마의 발아래에서 짖었던 개입니다. 환관으로 자존심도 없는 자고 오직 권력과 탐욕에만 눈이 먼 자입니다.”

“그런 자가 어찌 황제폐하를 호종한단 말입니까?”

“황제 폐하가 부르셨습니다.”

“황제폐하가요?”

“그렇습니다. 무비마마의 환관이니 부르시는 것도 당연할 것입니다.”

난 그 순간 의종이 얼마나 무비를 사랑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상장군 정중부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에 난 소름이 끼쳤다.‘나만 똑똑한 것이 아니었어.’바드득!난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럼 지금 당장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거네.’난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이렇게 위기나 난관에 봉착을 했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지만 지금 이 자리에 나보다 더 머리가 좋을 것 같은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최준도 완벽하게 믿을 수는 없는 거였다.

‘식견이 넓은 자가 필요한데,,,,,,.’난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때 궁궐 안에 있는 전각에 갇혀 있는 문극겸이 떠올랐다.

“그래! 그거야!”

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뭐가 말입니까? 최공!”

최준은 놀란 눈빛으로 나를 봤다.

“아, 아닙니다. 전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난 문극겸을 만나기 위해 일어서려고 할 때 최준도 일어서며 이 낭장방을 쭉 둘러봤다.

“참 이 낭장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순간 최준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예?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중앙군에 낭장만 208명이 있습니다. 그냥 그 생각이 들어서요. 그만 일어나신다고요? 예. 저도 해야 할 일이 꽤 있습니다.”

“하여튼 오늘 많은 도움을 주신 것은 잊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도움이 되었다면 참 다행입니다.”

난 그렇게 최준과 헤어지고 바로 문극겸이 있는 전각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문극겸이라면 방법이 있을 거야!’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을 인! 세 개면 되는데,,,,,,.’내가 지금 황제와 연통을 해서 전하고 싶은 것은 바로 참을 인 세 개다. 그것만 황제에게 고스란히 전달을 하면 황제는 무슨 뜻인지 알아챌 것 같았다.

‘내일쯤이면 태자에 대한 일이 황제의 귀에 들어갔지.’그리고 이틀 정도가 지나면 상장군 정중부는 은밀히 황제와 독대를 할 것이 분명했다. 그 시간을 황제는 참아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3일 정도만 더 견디면 되는 것이다.

그럼 내가 이기게 된다. 아니 황제가 이기는 것이고 황실이 이기는 것이고 이 고려가 난신 정중부를 이기게 되는 걸 거다.

‘내 뒤통수를 친 늙은 여우! 내가 정말 치를 떨게 만들어주지.’난 이미 모든 계획을 짜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계획을 완벽하게 성공을 하려면 무엇보다 황제와 공예태후가 잘 견뎌줘야 하는 거였다. 그러니 참을 인! 세 개를 의종에게 전달해야 한다.2. 답이 없을 때는 남에게 답을 구해야 한다.

난 문극겸을 만나기 위해 바로 주요 문신들이 감금되어 있는 전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전각 안으로 들어갔고 저번처럼 나를 막는 장졸들은 없었다.이것만 봐도 나는 이미 이의방의 측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거였다.

그렇게 난 전각으로 들어가 문극겸을 찾았다.‘참 갇혀 있는 문신들과 환관들이 많군.’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다시 말해 이건 고려의 업무가 마비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거다. ‘문신들이 저렇게 갇혀 있으니 아무 것도 못 할 거야!’그리고 내 생각은 지금 현실이 되고 있었다.

무력은 강하지만 무신들은 글을 아는 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 지방에서 올라오는 상소들을 처리할 수 없었고 그건 이 고려가 완전히 마비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였다.그러니 박순필 같은 자가 무신정변이 일어난 후 글을 안다는 이유로 승승장구를 한 걸 거다.

하여튼 지금 내 누에 보이는 문극겸은 마치 도라도 닦을 요양인 듯 며칠 전 그 자세 그대로 지그시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래도 먹는 것이 부실하고 태양을 보지 못해서인지 초취한 모습이 역력했다.

“문극겸!”

난 짧고 무겁게 문극겸을 불렀다. 문극겸은 이미 50살이 넘는 중년이었다. 그런데 어린 내가 그렇게 부르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문신들이 나를 째려봤다.‘좀 싸가지 없기는 하네.’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극겸공!”

내가 다시 부르자 문극겸이 지그시 눈을 떴다.

“나 좀 봅시다.”

내 말에 문극겸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뭐야? 저 표정은 지금 어리다고 날 무시하는 거야?’난 살짝 빈정이 생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보다 식견이 높은 자가 분명 필요했다.

“지금 나를 따라 나오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겁니다.”

그 순간 문극겸은 다시 웃었다.

“한낱 무부 따위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는 않다.”

난 순간 문극겸이 대쪽 같은 성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대쪽 같은 성격이니 겁도 없이 그 살벌한 새벽에 무부 놈들이라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쪽은 부러지는 법이다.

“하찮은 목숨 하나 잃는다고 후회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죽기 전에 이 고려가 엉망진창이 되는 것을 보고 죽는다면 후회하게 될 거야!”

내 말에 문극겸은 나를 다시 봤다. 원래 대쪽들은 이렇게 말로 조지는 게 최고다. 내 말에 문극겸은 눈썹을 실룩거렸다.‘먹혔다.’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고려가 엉망이 된다고?”

“나와서 이야기 하지.”

난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이럴 때는 쿨 하게 돌아서야 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서야 따라오는 법이다. 물론 이건 남자와 여자가 헤어질 때도 해당된다.

헤어지는 마당에 구구절절하게 말 많은 새끼들 중에 뒤끝 좋은 놈 보지 못했다. 그리고 뭐 사랑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보자. 이렇게 말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면 마지막 여자에게 기억에 남는 단 하나의 단어는 찌질 이다.

그러니 남자든 여자든 돌아설 때는 쿨 하게 돌아서야 한다. 하여튼 난 그렇게 나왔고 문극겸도 내 말에 궁금증이 생겼는지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문극겸은 현기증이 느껴졌는지 휘청했다.그러고 보니 지금 다른 문신들은 그래도 얼굴에 생기가 좀 돌고 있는데 문극겸의 혈색만 창백하다.

‘밥을 안 먹은 건 아니겠지?’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물론 나중에 알았지만 전각에 갇힌 문극겸은 물만 먹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하늘을 찌를 듯 한 대쪽인 거다.백이나 숙제처럼 살고 싶은 문극겸이라는 거다.

하지만 이제 나를 만났고 내게 간택이 되었으니 더 이상은 대쪽으로 살지는 못할 것이다.그렇게 난 문극겸을 데리고 전각에서 나왔다.

그리고 조용한 곳으로 갔다. 이 황궁이 불탔다고 해도 넓은 궁궐이기에 빈방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니 은밀하게 이야기 하기는 참 좋은 곳이 바로 궁궐일 거다.

“잘 감시를 해라!”

난 백화를 보고 말했다.

“예. 상공!”

“예. 주군!”

덩달아 홍련도 대답을 했다.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문극겸은 전각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게 물었다.

“문극겸 공의 식견을 구하고자 합니다.”

내 말에 문극겸은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무부들의 편에 서서 앞잡이 노릇을 할 것 같은가?”

문극겸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앞잡이?’이런 단어는 나쁜 짓을 꾸밀 때 쓰는 말이다.다시 말해 문극겸은 의종이 폐위될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 폐위에 동조하기를 바라는 줄 알고 자신을 부른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앞잡이까지는 하실 필요가 없고 식견만 빌려주시면 됩니다.”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니 참아야 하는 거다.

“식견? 무부가 밀려준다고 이해할 식견이 있나?”

이건 문신으로 무신을 조롱하는 대화다. 그리고 난 문극겸에게 좋게 말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금의 사태를 만든 것은 문신이요. 황제를 위급하게 만든 것 역시 문신이다. 그런데 아직도 독야청청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는가?”

난 문극겸을 노려보며 나직이 꾸짖었고 문극겸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무신들이 난을 일으킨 것은 불만이 폭발하여 일어난 것이다. 그것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방약 무도한 문신들이다. 거사를 한 무신들을 욕하기 전에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라!”

“으음.”

내 말에 문극겸은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지금 황제 폐하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이 고려의 사직이 그리고 황실이 위험한데 그 알량한 식견을 그리 빌려주기 싫은 것인가?”

난 이 순간 정말 화가 나서 문극겸에게 소리를 쳤다. 그와 동시에 급하게 백화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상공!”

백화는 나를 보며 물었고 난 대답 대신에 다시 문극겸을 봤다.

“한낱 아녀자도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자를 상공으로 부르며 걱정하고 행동한다. 황제폐하가 너희 문신들에게 준 은혜가 내가 저 여자에게 준 은혜보다 못하다는 것이냐? 그러고도 문극겸 네가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냐?”

내가 문극겸을 호되게 질책하자 백화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조심히 나갔다.

“은, 은혜라고 했소?”

“그렇다. 은혜다. 황상폐하가 너희들에게 준 은혜를 잊은 것이냐? 총애하고 편애하고 아끼고 또 아낀 그 은혜를 잊은 것이냐?”

“무, 무엇을 원하시오?”

문극겸은 한 없이 어린 내게 하대를 하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 대쪽은 크게 한 번 불에 달궈지고 꺾여야 휘어지는 법이다.

“황제폐하를 폐위시켜야 해. 그러니 당신의 생각을 좀 빌리려는 거야!”

내 말에 순간 문극겸의 눈빛이 사나워졌다가 피식 웃었다. 이 웃음은 무신이 그것도 무부가 그럼 그렇지 하는 그런 웃음일 거다.

“나는 불충의 길을 가지 않는다.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것이 문신의 자존심이다.”

“자존심은 무슨 얼어 죽을 자존심! 고려가 망해야 눈물을 흘릴 건가? 백이나 숙제처럼 산에 들어가 고사리나 뜯으면서 반역자들을 욕할 것인가? 반역자나 백이나 숙제는 50보 100보다. 왕조를 지켜내지 못한 모든 신하는 역신이며 반역자다.”

“언어도당이요.”

“황제폐하는 이 고려를 위해서 반드시 폐위가 되셔야 한다. 까딱 잘못했다가 상황제 폐하가 되시면 다음 황제께서 후환의 헌제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내 말에 순간 문극겸은 기겁을 해서 날 노려봤다.

“그, 그건 무슨 말이요?”

“그 정각 안에 갇혀 있어서 모르겠지만 지금 불충한 세력이 그것도 가장 강성한 무부가 지금 황제폐하를 압박하고 있다.”

“내전에 황제폐하를 가둔 것을 말하는 것이요?”

“그거라면 내가 당신을 찾아오지도 않았어.”

“그럼 무엇이요??”

“지금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진 무부가 태자마마를 미끼로 황제폐하를 압박하고 있다.

“그 강한 세력을 가진 무부라 함은?”

“늙은 여우 정중부다. 아니 역심을 품은 정중부다.”

그 순간 문극겸은 다시 현기증이 느꼈는지 휘청거렸다. 그리고 난 빠르게 달려가 문극겸을 부축해서 자리에 앉혔다.

“당신의 식견으로 고려를 구해 주세요.”

난 처음으로 문극겸에게 존대를 했다.

“황제폐하를 폐위시키는 것이 고려를 구하는 일이라,,,,,,.”

문극겸은 혼잣말을 하듯 말하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 순간 문극겸은 무척이나 고민을 할 것이다. 하지만 원래 대쪽이라는 것들이 한 번 부러지면 딱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법이다.

“내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소?”

“머리를 빌려 주십이오.”

“머리라?”

“그렇습니다. 저는 아직 어려 식견도 부족합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그래 무엇이요?”

문극겸은 날 뚫어지게 봤다.

“지금 저는 황제폐하와 은밀히 연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응양군들이 그 내전을 지키고 있어서 접근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내전의 상궁도 환관도 믿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오직 황제폐하만 알 수 있게 전달을 해야 합니다.”

“무엇을 전달하려는 겁니까?”

문극겸의 물음에 난 문극겸을 뚫어지게 봤다.

“마음 위에 올려놓은 칼 3개입니다.”

내 말에 문극겸은 나를 빤히 다시 봤다.

“참을 인자 세 개라? 그럼 살인도 면한다는 거군요. 태자를 구하실 방법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역시 문신이라 머리 하나는 팍팍 돌아간다.

“그렇습니다.”

난 이미 태자를 구할 방법은 생각해 둔 상태였다. 그러니 황제만 역심을 품은 상장군 정중부의 압박을 참아내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그런 내 뜻을 전달하는 방법을 문극겸이 내게 알려준 거였다.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는 모양이다.

“그럼 제가 식견을 빌려 드리게 전에 하나만 묻겠소.”

“하십시오.”

“그대는 지금 무엇을 위해 움직이십니까?”

“으음,,,,,,.”

난 나도 모르게 신음을 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대는 어리지만 많은 것을 알고 있소. 그리고 다른 무부들과 다르오. 그대는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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