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5권 -- >1. 허를 찔리다.난 그렇게 비밀통로를 이용해서 다시 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바로 달려간 곳은 공예태후의 처소가 아닌 환관들의 처소였다.
‘더 정확하게 어떤 일이 궁에서 일어났는지 그 상황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아무 것도 정리를 하지 않고 바로 움직이면 실수를 하게 되고 지금 이 극박한 순간에는 실수 자체가 아주 큰 타격이 된다.
‘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해.’난 그런 생각을 했다.이 순간 가장 정확한 정보를 알아야 하고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또 지금의 이 방법은 환관들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계략이었다.
“백화!”
“예. 상공.”
“나는 환관들의 처소 옆에 있는 낭장방에 가 있겠다.”
“예. 상공!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최준을 은밀히 낭장방에 데리고 와라.”
내 명령이 떨어졌다. 그 순간 백화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예. 상공!”
그리고 다시 백화는 홍련을 봤다.
“상공을 모심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내 명령을 받은 백화는 홍련에게 내 안위에 대해 신신당부를 다시 했다. 이건 여전히 이 궁궐이 암계가 난무하고 위험하다는 백화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예. 주군! 목숨을 걸고 보위하겠습니다.”
이 순간 홍련은 나를 주군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백화 역시 주군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나와 백화를 동일시 한다는 것을 의미할 거다.
이렇게 나와 백화는 서로 말 한마디 정확한 약속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인이 되고 연인이 되고 부부처럼 되어가고 있었다.이렇게 남들이 밀어줘서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속으로는 싫지 않았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상공.”
다시 한 번 백화가 내게 짧게 목례를 했다.
“백화야!”
“예. 상공.”
“그게,,,,,,.”
이 순간 늙은 정중부의 계략도 파악해낸 내가 또 백화의 앞에서 말을 흐렸다. 왜 이렇게 이런 면에서는 멍청한지 모르겠다. 그냥 조심해라. 이말 한 마디를 하고 싶었는데 말이 안 나왔다.
“조심할 것이옵니다. 상공을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 절대 소녀는 아프지 않을 겁니다.”
역시 백화는 나보다 더 시원했다.
“그래. 조심해라!”
난 그렇게 말하고 낭장방으로 갔다.2군6위에 총 238명의 낭장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의결기구인 낭장방이 있다.
지금 나는 그곳에 가는 거였다. 물론 지금은 그 낭장방이 비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낭장들이 군에서 그리 높지 않는 직위였지만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지위였다.
그것은 그들에게 합의기구인 낭장방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장군의 반열에 올라 있는 자들도 함부로 낭장방에 드나들지 못했다. 뭐 사실 부대를 이끄는 것은 중급 무장에 속하는 낭장들이니 장군의 반열에 올라 있는 종 4품 장군부터 종 3품 상장군까지 은근히 낭장의 눈치를 보는 거였다.
‘우선 궁에서 일어난 일을 환관들이 알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만약 알고 있다면 정중부가 정말 황제폐하를 압박하기 위해서 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걸 거다.
’난 그렇게 낭장방으로 향하며 그렇게 생각을 했다.
“아직 인 것이냐?”
공예태후의 처소는 새벽을 달리고 있는 시각에도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지금 회생을 초조히 기다리고 있다는 거였다.
“아직 이옵니다.”
조심히 해월이 공예태후에게 말했다.
“같이 와야 할 것이 아니더냐!”
공예태후는 괜히 해월에게 역정을 냈다.
“회생공이 생각을 정리한다고 했습니다.”
“회생이 생각을 정리해?”
“그러하옵니다. 방법을 만들어 온다고 했사옵니다.”
해월의 말에 공예태후는 잠시 안심을 하는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굶고 있는 자신의 손자인 태자가 생각이 났는지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
“가여운 것! 가여운 것!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것인데,,,,,,.”
이 순간 공예태후는 할미의 마음으로 태자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것은 상장군 정중부가 노리는 거였다.
“그러하옵니다. 가여우신 태자님이십니다. 지금 물 한 모금 드시지 못하고 계실 것인데,,,,,,.”
해월도 태자가 걱정이 되는 것인지 그게 아니면 태자를 걱정하는 공예태후 때문인지 눈가가 촉촉해졌다.저렇게 여자는 마음만 먹으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존재였다.
사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고 계집의 옷도 벗겨본 놈이 잘 벗긴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굶는 것도 많이 굶어본 놈이 잘 굶는 법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한 번도 식사를 타인의 의지나 강압에 의해 굶어보지 않은 자는 누군가 그것을 통제하면 무척이나 힘이 든다는 거였다.
아마 지금쯤 태자는 머리가 빙빙 돌고 눈앞에 노랗게 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더욱 공예태후는 폐서인이 곧 될 태자를 저렇게 걱정을 하는 거였다.
“회생이 방법을 찾아온다고 했단 말이지?”
이미 공예태후는 해월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다시 물었다.
“예. 방법을 찾아온다 했습니다.”
“그래. 지금 믿을 것은 회생뿐이다.”
공예태후는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다시 간적 정중부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이빨을 갈았다.
“내 난적 정중부의 뼈까지 발라 늑대에게 먹일 것이다.”
여자의 저주!그것도 늙은 여자의 저주 같은 다짐은 이렇게 무서웠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안 오는 것이야!”
공예태후는 그렇게 다시 회생을 기다리며 좌불안석이 되어 처소 안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응양군 대정이 은밀히 지켜보고 있었다가 뒤로 조심히 물러났다.정중부는 이렇게 황실을 배척하고 있었지만 그 감시는 소홀함이 없었다. 그리고 또 정중부의 계략이 큰 영향을 끼칠 공예태후는 철저히 감시를 해야 했다.
흥왕사에 위치해 있는 암자.그믐달이 막 지려는 정적이 감도는 새벽. 살포시 흥왕사에 자리 잡고 있는 암자 건물 청기와 마다 소리 없이 전해지는 부처의 말씀처럼 이슬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리고 암자 안에는 두 눈동자를 부라리며 스님 하나와 박순필을 노려보고 있는 성난 부처의 모습이 보였다.부처라고 해야 옳을 것인가?아니면 깎아놓은 불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인가?부처고 그 나무토막을 본다면 불상일 것이고 그 나무토막을 부처로 본다면 세존일 것이다.
“박순필이라 하옵니다.”
박순필은 가만히 자신을 보고만 있는 스님의 표정을 살피며 조용히 자신을 밝혔다.그리고 무릎을 꿇은 상태로 허리를 숙여 앞에 앉아 있는 스님에게 군례 비슷하게 예의를 갖췄다.
스님!이 스님은 공예태후의 아들로 황자의 신분으로 불가에 귀의한 자였다. 이렇게 고려는 불교국가답게 황족이나 귀족들이 불가에 귀의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고려 불교가 갈수록 썩어가는 걸지도 몰랐다. 한 번도 힘든 일이나 그 힘든 것에 고뇌해 보지 않은 자들이 그렇게 해탈을 얻으려 하니 정작 해탈을 얻는 스님을 몇 되지 않았고 국가에서 주는 특혜만 날름 날름 잘만 받아 처먹고 각종 이권에 개입을 하여 의종의 폭정에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그래서 인지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자들이 늘어났고 그러니 도참사상이나 풍수에 바탕을 둔 각종 예언서 같은 것들이 어리석은 백성을 혹세무민하고 있었다.
“그동안 강령하셨사옵니까?”
우선 박순필은 스님에게 안부를 물었다.
“강령이라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군요.”
“아니옵니다. 스님이전에 고려의 지존이신 황제 폐하의 아웃님이 되시지 않습니까?”
“그러신가요?”
스님은 물끄러미 박순필을 봤다.
“그런데 이 중을 어인일로 찾으신 것이요.”
스님은 마치 도를 깨우친 사람처럼 부드럽게 박순필에게 물었다. 그 순간 박순필은 이 황자였던 스님이 아무런 근심도 없고 번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할 것이다.이 흥왕사에서도 그의 행동에 뭐라 하는 스님이 없으니 그저 하고 싶은데로 하고 살면 되는 것이다.
아마 태어나 한 번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타인에 의해서 하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
“예. 상장군께서 급히 보내시어 왔습니다.”
“상장군이요?이 중을 왜요?”
다시 스님이 자신은 관심이 없다는 투로 말을 했다. 하지만 박순필은 그 순간 스님의 눈동자를 통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눈빛은 너무나 많은 궁금증을 담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예. 상장군께서 스님의 뜻을 여쭈고 오라 하셨습니다.”
“나에게 무엇을 여쭈라는 것이지요.”
“상장군께서 스님을 만나 뵙고자 하십니다.”
“군문의 수장인 상장군이 이 절간에 몸을 담고 있는 하찮은 중을 뭐하라고 만나려 하시던가요?”
스님의 말에 박순필은 지금 이 스님이 무슨 의도에서 저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을까 하고 빠르게 머리를 돌렸다. 눈동자에서는 한없는 궁금함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말은 무척이나 여유로운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이것은 마음속에 능구렁이 백마리는 넣어두고 있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드는 박순필이었고 이 스님과의 대화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대화를 하는 동안 그 사람이 무슨 의도로 말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관철시키는데 가장 중요하다.
‘분명 이 흥왕사에 드나드는 귀족 여편네들이 한 둘이 아니니 무신들의 거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야!’박순필은 속으로 지금 스님이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면 초월일 것인데 그 초월을 했다고 하면 정말 부처가 된 것이고 그렇게 박순필이 생각하기에는 이 앞에 앉아 있는 스님의 지금까지의 행적이 너무나 지저분했다.
“상장군께서 스님의 심중을 여쭤보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상장군이 내 심중을?”
처음으로 찰나의 순간이지만 스님의 눈빛이 떨렸다. 그리고 그것을 박순필은 놓치지 않았다. 저렇게 떨리는 눈빛은 이미 황궁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듣고 있었다는 반증이고 깊이깊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드는 박순필이었다.
“그러하옵니다. 어찌 생각을 하십니까?”
박순필은 중요한 단어 몇 개를 빼버리고 스님에게 물었다. 지금 박순필의 앞에 차분히 앉아 있지만 마음은 나락으로 떨어져 있는 이 스님은 바로 인종의 아들인 충희였다.
스님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도 순수 혈통의 황자라는 거였다. 그리고 상장군 정중부의 의중에 충희가 있었다.상장군 정중부가 충희를 선택한 것은 그가 스님이지만 파락호에 가까운 짓을 벌리고 다니는 데에 있었다.
그런 충희의 행동을 봐서 충분히 상장군 자신이 충희를 보위에 올리고 나면 국정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훗날 끝내 상장군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뭘 어찌 생각을 해?”
“며칠 전 황궁에 거사가 났습니다.”
박순필의 말에 충희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아 그것을 말하는 것인가? 무부들이 황궁에 불을 지르고 문신과 환관을 도륙하고 심지어는 황실을 겁박하고 태자를 유폐하고 황제폐하를 내전에 감금한 그 패악 무도한 짓을 내게 지금 말하는 것인가? 어찌 신하된 자가 임금을 핍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내가 듣기로는 그 모든 악행의 끝에 네가 모시는 그 상장군이라는 야차가 있다지.”
충희의 말에 박순필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조용히 그리고 부드럽게 말을 하고 있지만 상당한 불만을 담은 어투였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이미 박순필은 예상하고 있었다.
신하는 군왕의 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중이 주인을 핍박하고 감금을 했으니 주인의 일족들이 좋아라 할 수는 없는 노릇 일 거다.
“그건 뼈를 깎는 각오로 충심으로 행한 상장군의 고충이었습니다.”
“상장군의 고충! 무엇이 충심이지? 무부들을 선동해서 정변을 일으킨 것이 충심인가? 궁에 불을 지르고 문신들을 도륙한 것이 충심인가? 가여운 환관들을 벌레처럼 죽인 것이 충심인가? 그도 아니면 군왕인 형님 폐하를 내전에 감금하여 폐위를 신하된 자들이 대전에서 논의하는 것이 충심인가?”
순간 충희는 박순필을 보며 소리를 쳤다. 그의 외침은 마치 부처가 사악한 중생을 훈화하는 것같이 무거웠다.
“상장군께서 어찌할 겨를도 없이 정변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닥쳐라! 그 속세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은 없다.”
다시 한 번 충의가 박순필을 노려보다가 언제 그랬는지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황제를 겁박하여 뭔가를 얻으려는 것이 뼈를 깎는 충심이라 하하하! 내가 속세를 그리 오래 버리지 않았지만 속세가 그렇게 미처 돌아가는지는 몰랐네.”
다시 한 번 충희가 눈을 부라렸다.
“상장군께서는 미쳐 날 뛰는 야차 같은 무부들로부터 황상폐하와 태자마마 그리고 황실을 지켜야 했사옵니다.”
“신하된 자로 지키는 것이 군주를 폐위하는 일에 앞장을 서는 것인가?”
“그렇지 않았다면 황상폐하는 날뛰는 무부들에게 황망한 일을 당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깊이 생각해 주십시오.”
“깊이 생각을 해라. 웃기는 일이로세. 황상을 보위하기 위해 내전에 감금하고 태자를 태자궁에 가두는 것이 황상을 보위하는 것인가? 또한 중신들을 모아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황상폐하를 폐위해야 한다는 소리 친 것이 황상을 보위하기 위한 것인가?”
“그러하옵니다.”
박순필은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했다.
“그러해? 기가 차는 노릇이로세. 으음!”
처음으로 충희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이 순간 박순필은 충희가 이렇게 역정을 내는 것은 아직 속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속세를 버리지 못했으니 이야기가 쉽게 풀리겠군.’박순필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제 상장군 정중부가 해놓은 일을 모두 어쩔 수 없이 한 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차 같은 이의방과 이고 그리고 채원이 태자마마를 노리고 계셨습니다.”
“거기에 늙고 욕심 많은 상장군이 있지.”
여전히 충희는 상장군 정중부에 대한 노기를 풀지 않았다.
“그러하옵니다. 그렇게 상장군은 보이려 하셨습니다.”
“그렇게 보이려 했다.”
“그러하옵니다. 또한 황상폐하의 목숨을 노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말씀 하신 것처럼 황궁이 불타고 문신들이 죽어나갔습니다. 무부들은 피를 보고 이성을 잃고 마치 야차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상장군께서는 막을 여력이 없으셨습니다.”
“막을 여력이 없다? 막지 않은 것이겠지.”
“아니옵니다. 상장군께서는 후일을 도모하시고자 하신 조치였습니다.”
박순필의 말에 충희가 피식 웃었다.
“믿어주소서!”
“믿을 것이 없는데 어찌 믿으라고만 하나?”
“그럼 이 순간 상장군은 어찌 해야 하겠사옵니까? 어쩔 수 없이 상장군께서는 역신의 오명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그 길을 택하신 것이옵니다.”
“그래. 오명이라고 했나? 황제를 폐위해 놓고 역신이 아니라 역신의 오명이라고?”
“황제 폐하는 아직 폐위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충희에게 박순필이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뭐라? 폐위되지 않아?”
“그러하옵니다. 황상폐하께서 폐위가 되시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옵니다.”
“그, 그 말은,,,,,,.”
“이미 상장군께서 황제 폐하의 밀명을 받고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박순필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럼없이 박순필은 의종의 밀명을 받고 움직인다고 말했다.
“황제폐하의 밀명이라고?”
“그렇사옵니다. 지금 황제폐하께서는 무너지고 있는 사직과 황실을 바로집기 위하여 고전분투하고 계시옵니다.
아무리 어리석은 무인이라고 해도 스스로 황제를 폐위하는 일은 사초에 지워지지 않을 역신의 불도장을 스스로 찍는 일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또한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들도 영원히 역신의 후손이라고 하여 백성들과 신하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을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지금 이 순간 준동을 하여 궁을 장악한 무부들의 기세가 강하다고 하나 그것도 한 때이옵니다. 역사는 분명 무부들의 악행을 그대로 기록할 것이옵니다. 그런데 왜 상장군께서 그런 무부들과 함께 준동을 하겠사옵니까? 그리고 왜 스스로 황제폐하를 폐위시키는 일에 압장을 서겠습니까? 가만히 앉아 뒤에서 조종을 해도 되는 일을 스스로 나설 일이 무엇에 있사옵니까? 깊이 생각해 주시옵소서.”
박순필의 말에 총희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 모든 것은 황제폐하의 밀명을 받은 상장군의 충심어린 행동이옵니다. 그를 후세는 역신이라고 기록을 해도 고려 황실은 상장군의 고충과 충의를 기억해 주셔야 하옵니다.
분명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상장군은 지금 황상폐하의 밀명을 받고 황실을 온건히 바로 세우기 위해 무부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고전분투하고 계시옵니다. 분명 황상폐하의 밀명이옵니다.
”
단호하면서도 정중하게 박순필은 자신의 거짓말을 이어갔다.
“형, 형님께서,,,,,,.”
“그렇사옵니다. 이 모든 일은 황상폐하의 밀명을 받은 상장군이 도모하고 있는 일이옵니다.”
순간 자신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상장군 정중부는 충신으로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모든 일들이 황제의 밀명을 받아 움직이는 것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검보다 무서운 세 치의 혀의 힘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순필은 확실히 달변가였다. 그의 달변이 있기에 상장군 정중부는 그를 이 흥왕사로 보낸 거였다.
“또한 어심이 황자께 있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