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4권 -- >
“오늘 새벽에 맞을 이슬은 따스할 것 같습니다.”
“그래. 하하하! 정이 가는 위인이다.”
별초를 이끄는 낭장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그리고 그 미소를 머금은 낭장의 머리에는 이 사실을 용호군 대장군 강일천과 진준걸에게 빠르게 보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가 묻어 나오던데,,,,,,.”
난 백화의 피가 묻어 나오는 등이 떠올라 안채에 앉아 있었지만 좌불안석이 되어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도 내가 다시 깨어났다고 해야 옳을 이 시대에 와서 제일 오래 시간을 함께한 여인이 바로 백화였다.또한 그녀는 나를 상공이라고 부르고 있어서 더욱 마음이 갔다.
“왜 이렇게 마음이 가는 거지.”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낮에 봤던 백화의 풍만한 가슴이 떠올랐고 그 순간 그 방자한 생각을 잊으려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사람이 아픈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난 바로 나 스스로를 질책을 하듯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생각이 나는 법이고 우연처럼 본 백화의 풍만한 가슴이 계속 내 눈 앞에 어른 거렸다. 그리고 그게 어른거리는 것만큼 백화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왜 이러는지 참,,,,,,.”
난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백화가 걱정이 되어 더는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마차 이제 내 집이 된 이곳을 산책이라도 하는 듯 거니는 척을 했다. 이건 내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도 없다는 거였다. 아마 흑심인지 연심인지 아니면 걱정인지도 구분되지 않는 내 마음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거였다. 그리고 천천히 백화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그런데 백화는 어디에 있는 거지?”
사실 난 백화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정말 이곳이 내 사택이기는 하지만 어머 어마하게 큰 집이라서 어디가 어딘지 모를 판이었다.
“집 더럽게 크네!”
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그리고 작은 문이 보였다. 아마 저곳으로 가면 여인들이 기거를 했던 곳 같은 게 나올 것 같았다. 원래 옛날에는 여자들은 집안 가장 깊숙한 곳에서 사는 법이니 말이다.내가 작은 문을 들어서는 순간 여 무사 하나가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주군을 뵈옵니다.”
난 순간 마치 흥선이 걸인들에게 밥을 나눠주다가 내게 들킨 것처럼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조금 전에도 봤잖아.”
난 내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괜한 짜증을 불렸다.
“송구하옵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경계를 서는 거야?”
“주군이 계신 안채에도 경계를 서고 있고 저 쪽에 백화님이 계셔서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내 안채에도 경계를 서고 있다고?”
“그러하옵니다. 백화님께서 지시를 했사옵니다.”
역시 백화는 그 아픔 몸에도 나를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백화는 좀 괜찮나?”
내 물음에 여 무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왜 그러는 거야? 안 좋나?”
“심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물으면 백화가 그렇게 대답하라고 그랬나?”
내 물음에 속내를 들킨 듯 여 무사는 머뭇거렸다.
“그렇군. 참 미련하다. 미련해!”
난 백화의 얼굴을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속으로 백화의 등에 비수를 꽂은 무비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만약 무비가 백화를 버리지 않았다면 백화는 내게 절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무비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원래 여자들은 배신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백화처럼 절대 한번 섬긴 마음을 버리지 않는 여인도 있는 법이다. 물론 그 마음이 변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섬긴 사람이 자신을 버렸을 때일 거다.
그러니 내가 백화를 버리지 않으면 절대 백화는 나를 황제처럼 섬길 것이다.
“저기 불빛이 보이는 방에 백화가 있나?”
“그러하옵니다.”
여 무사의 말에 난 불이 켜진 방을 봤다. 그러고 보니 창호지 밖으로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치료는 좀 받았고?”
“송구하옵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난 여무사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확인도 하지 않고 뭘 했어.”
난 다시 여 무사에게 짜증을 부렸다. 그리고 바로 천천히 백화가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하여튼 간 미련해가지고.”
난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실 난 현대에서 굶어죽기 전에 여자를 오래 사겨본 적이 없다.
돈 없고 직장 없고 나이도 많이 먹다보니 여자들은 마치 본능적으로 나를 멀리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난 참 인기도 지지리도 없는 그런 놈이었다.그런데 지금 백화 같이 절세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의 미모를 가진 청순가련형이지만 무예까지 출중한 여자가 내 말 한마디면 죽는 시늉까지 하니 자꾸 백화가 내 여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 이것이 남자의 마음일 거다. 하지만 난 여자랑 어떻게 대화를 해 보거나 연예를 한 경험이 거의 없기에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몰라 괜한 소리만 하기만 했다. 그게 지금 마음에 걸리는 나였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난 이미 백화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백화의 방 앞에 서 있었다. ‘들어가서 뭐라고 하지?’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참 여자를 많이 상대해 보지 않은 남자들의 문제일 거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서고 싶지도 않았다.자꾸 걱정되는 마음이 드는 나였고 그냥 이렇게 돌아가면 오늘 밤 괜히 밤잠을 설칠 것 같았다. 그리고 갑자기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유 자체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냥 속절없이 배신을 당한 여 무사를 어느 정도 이용을 해 볼 참이었다. 그리고 백화라는 이름이 그 처음부터 싫지 않은 것도 인정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풀려진 기 생머리가 내 마음에 훅 끌었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겠다. 또한 어찌 하다가 본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내게 흑심으로 작용했다는 것도 순순히 인정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러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마음만 먹으면 제법 많은 여자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새로운 하늘을 열면 권력을 탐하지 않으려는 나이기에 권력을 탐하는 무부들이 나를 적으로 생각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난 이 좋은 세상! 물론 무인들에게 좋은 세상이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 편히 파락호처럼 이 여자 저 여자 취하면서 살 수도 있을 것이다.그런데 자꾸 내 마음이 백화에게 향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러 좋은 징조는 아닐 것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반했을 때 약점이 생기기 시작해서 욕심으로 연결되고 탐욕으로 발전하는 법이다.
그럼 위험해지고 위험한 길을 스스로 자초하게 된다.나는 그냥 소인배로 한 평생 편히 살고 싶은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인데 내가 갑작스럽게 백화가 온 것처럼 많은 이들이 내게 그 이상을 바라고 있었다.
이것 역시 내게는 부담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드려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되었던 나 때문에 이 고려의 역사가 살짝 바뀐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그 정도의 책임은 분명 감당해야 할 것이다.
하여튼 자꾸 내 눈이 백화를 찾는다. 이게 정말 나를 이 깊은 밤에 혼란스럽게 한다. 그리고 그런 백화를 생각할 때마다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련하고 미련한 사람!’난 하늘에 뜬 찬 달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미련함으로 꽁꽁 무장을 한 백화일 거다.
그것이 자꾸 나에 대한 진심처럼 여겨져서 내 눈이 백화를 찾는다. 그리고 자꾸 옆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훗날 내게 진정한 적이 생기면 이것은 내게 뼈아픈 약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여전히 내 눈은 백화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은 창호지 문 안쪽의 백화의 그림자를 보고 있다.지금 이 순간 가장 현명한 선택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내 약점 같은 감정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돌아서는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 마음도 담지 않고 그냥 백화를 취하면 그만인 것이다.그래도 그녀는 미련하게 나를 따를 것이다.
그럼 나는 아무 손해도 보지 않고 내 눈에 백화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백화의 몸짓에 촛불이 흔들렸는지 창호지에 보이는 백화의 그림자가 한번 일렁였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난 속으로 자꾸 내게 질문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눈을 백화를 찾고 있었다.
‘못난 놈!’어쩌면 이것은 현대에서 살 때 연애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멍청이 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래서 연애한번 못해본 바보들은 갑작스럽게 여자가 다가오면 당황하는 모양이다.
‘으음,,,,,,.’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백화는 먼 거리에서 살기까지 느낄 수 있어.’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 촛불이 일렁인 것은 백화가 나를 느끼고 움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는 들었다.‘싫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당황스러워 그런 걸까? 그것도 아니면 놀라움에 그런 걸까?’난 이 짧은 순간에도 많은 생각을 했다.
정말 내가 왜 이러는지를 모르겠다. 이 고려에 와서 뭐 정확하게 왔다는 표현은 옳지 않을 것이다.
이 고려시대에 깨어나서 한 번도 주저한 적이 없는데 나는 한낱 계집인 백화 때문에 이리도 많이 생각을 하고 주저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내가 온 것을 알겠지? 백화라면.’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그냥 돌아가면 무슨 생각을 할까? 또 그런 생각을 했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는 나를 보고 내 그림자는 한심하다는 듯 길게 늘어져 있다.정말 이 상태로 돌아가면 나는 고래 등 같은 집에서 마음을 졸이며 잠도 편히 자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또 내일 아침 백화를 봤을 때 쉬이 보기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난 다시 백화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창호지를 봤다.
“나도 모르게 내 눈이 너를 찾는다.”
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고 무슨 영문인지 백화의 그림자가 다시 일렁였다.‘그래 그냥 한 번 얼굴 보로 온 거잖아.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걱정이 되어서 온 건데 뭐 어때?’난 그렇게 나를 설득했다.
“으음.”
난 그 많은 잡생각의 결론으로 헛기침을 했다. 쪼잔 하게 내 헛기침을 듣고 백화가 나오라고 헛기침을 한 것이다. 그리고 백화는 내 헛기침을 듣고 급하게 나왔다.
이렇게 빠르게 나온 것은 내가 밖에 있다는 것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백화를 봤다.
백화는 급하게 나오다보니 옷매무세가 그리 반듯하지 못했다.그러고 보니 참 나라는 남자는 못났다.
분명 심한 상처를 입은 백화를 저렇게 다시 움직이게 만든 거였다.
“상공! 어인일이십니까?”
내 갑작스러운 출현에 백화도 살짝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면 나를 위해 놀란 표정을 지어주는 것일 거다. 미련하지만 그래도 배려심이 많은 백화이니 말이다.
“그, 그게 그냥 잠이 안 와서,,,,,,.”
머리에서는 네가 걱정이 되어서 왔다는 말을 맴돌았지만 입에서는 괜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무리 내가 현대에 살 때 태생이 경상도이기는 했지만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스스로 들었다.‘못난 놈!’난 속으로 나를 질책했다. 하지만 이런 애틋한 감정은 처음이다. 원래 처음은 다 서툰 법이니 말이다.
“밤공기가 찹니다. 들어오십시오.”
백화는 내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라고 말했고 난 그 순간 정말 못 이기는 척 하는 표정을 보였다. 사실 백화의 방에 가서 백화의 상처에 금창약이라도 발라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이 절대 입 밖에 나올 리 없는 나였다.
“그럴까 그럼.”
난 마지못해 사양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예. 마침 찻물이 아직 식지 않았습니다.”
“차?”
“예. 상공.”
“차를 마시나?”
“마음을 집중하는 것에는 차만한 것이 없습니다.”
백화! 그녀는 차를 마시고 차에 의미를 담을 줄 아는 그런 여자였다. 그건 다시 말해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다는 의미일 거다. 검을 다루고 여자로써 교육까지 받은 여자가 바로 백화인 것이다.‘못 하는 게 뭘까?'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집중해?”
“예. 그러하옵니다. 상공.”
“그럼 차나 한 잔 마시고 가야겠네. 으음!”
“차를 즐기십니까?”
백화가 내게 물었다. 이럴 때는 보통 남자는 꿀리기 싫어서 아무차나 말하는 법이다. 그래도 다행히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차 이름이 있었다.‘광동 보이차!’물론 그것은 어느 음료 회사의 이름과 음료의 이름이었다.
“보이차가 괜찮더라.”
내 말에 백화가 나를 빤히 봤다. 저런 눈빛은 겨우 위장의 신분으로 어떻게 차를 마셨을까 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거였다. 물론 이건 내 짐작이다.
“다행입니다. 이 방에 보이차가 좀 있더군요. 귀하디귀한 것인데 역시 이 가문의 위세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보이차가 그렇게 귀해?”
“귀하지요. 황제가 마셨다고 하여 제법 귀하게 여겨지는 차입니다. 그리고 그 차가 만들어진 세월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입니다. 벽란도에 가면 송상들이 파는 황금보다 더 값이 나가는 보이차부터 몇 푼 안 주는 엽차까지 많습니다.”
“그런가?”
백화가 갑자기 차에 대해 전문적으로 파고들려고 하자 난 내 무식이 들통이 날까 뜨끔했다.
“춥다. 들어가자.”
난 이렇게 우선 백화의 말을 끊었다.
“예. 상공!”
상공이라는 소리를 백화에게 밤에 들으니 내 마음이 순간 야릇했다. 정말 백화의 방에는 차상에 작은 도자기로 된 사기 주전자가 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여 있는 피 묻은 천들을 보고 난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고 보니 급하게 옷을 챙겨 입은 모습의 백화였다.‘치료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네.’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백화의 상처는 등 쪽에 있었고 절대 혼자서는 금창약 같은 것은 절대 바를 수 없는 위치였다.
그저 치료는 하지 않고 피가 잔뜩 묻은 헝겊을 교체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앉아계시면 제가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보이 드물게 좋은 보이차입니다.”
백화는 내게 따뜻한 아랫목을 권하며 차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차를 마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같았다. 아니 내 목구멍에 찻물이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상처를 치료하고 있던 중이였나?”
난 나도 모르게 투박하게 백화에게 물었다. 왜 이러는지 참!
“아, 아닙니다. 상공. 그저,,,,,,.”
백화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내가 미안하지 않게 치료를 하는 중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백화는 그냥 여 호위 무사로 썩기는 아까운 여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비가 백화를 호위무사라만은 키운 것이 아닐 수도 있어.’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비 자신이 늙은 꽃이 되었을 때 쓸 마지막 무기 정도라고 할까?'어쩌면 무비는 의종에게 진상하기 위한 무비의 히든카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비는 의종의 총애를 받고 있었지만 황후라 불리지 못했다. 말 그대로 비인 것이다.
고려의 황제는 여러 황후를 뒀다. 의종의 아버지인 인종만 봐도 그렇다.
폐비 이씨 두 명과 함께 공예태후와 선평황후 김씨가 있다. 물론 두 폐비 이 씨는 모두 이자겸의 딸들일 거다.
이자겸은 인종을 보위에 올리고 끝내 인종에게 죽임을 당한 케이스일 거다. 1122년 예종이 위독해지자 당시 14세의 어린 왕자였던 인종은 자칫하면 나이 많은 삼촌들에게 왕좌를 빼앗길 위기에 놓여 있었다.
앞서 헌종과 숙종 대에 삼촌 숙종이 왕위를 찬탈한 일도 있었던 고려황실이었기에, 예종의 총애를 받았던 한안인 등 신료들은 나라의 안정을 위해 어린 인종보다는 예종의 동생 중 한 명이 왕위를 계승할 것을 바랐던 것이다. 위태로운 처지의 인종을 도와 예종이 동생들보다 어린 아들 인종을 선택하게 한 이자겸은 예종이 죽은 후 인종이 즉위하자 정권을 독차지하였다.
이자겸은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셋째, 넷째 딸을 나란히 인종과 결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