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4권 -- >흥선은 내 꿀밤에 머리를 감싸고 인상을 찡그렸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른 줄 알기는 해?”
“뭐가요? 형님!”
“야 임마!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고 했어. 그런데 이제 앞으로 저 걸인들이 밥 때만 되면 내 집 앞에서 진을 칠 건데 어떻게 할 거야?”
내 질책에 흥선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저런 표정은 내 말에 수긍을 하지 못하겠다는 걸 거다. 이것만 봐도 어린놈이 고집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창고에 썩어나는 쌀을 그냥 썩혀요? 그리고 쥐새끼도 배 터지게 먹는 쌀을 고려의 백성들이 못 먹을 이유는 없잖아요.”
이 순간 흥선이 처음으로 내게 정면으로 반항을 했다.
아무리 어린 것이 철이 없다지만 지금 자신을 돌봐주고 있는 내게 데드는 것이 영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아예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 밖에서 밥을 먹고 있는 거지들에게 매일 이렇게 밥을 해 줄 수는 없다는 거였다. 그렇게 되면 흥선이 베푼 자비는 불만이 되어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래! 고려의 백성들이 못 먹을 이유는 없지.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게 네 쌀이냐는 거야?”
난 흥선을 논리적으로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 것들은 계속반항을 하게 된다.
“형님 쌀도 아니잖아요.”
난 흥선의 말에 인상을 찡그려야 했다.
“그래. 내 쌀은 아니지. 그렇다고 네 쌀도 아니지. 그리고 언제까지 먹일 수 있을 것 같아?”
“저기 저 창고에 들어 있는 쌀섬이 창고 하나당 500석이거든요. 그런 창고가 이 집에 4개 있으니 2000석이고요. 그러니까. 하루에 한 가마니가 들어가니 2000일은 먹일 수 있어요. 그럼 7년은 먹일 수 있는 거잖아요.”
흥선은 이미 내가 이런 말을 할 거라고 예상을 했는지 조막만한 머리로 계산을 해 놓은 것 같았다.
“늘어나는 걸인들은 어떻게 하고?”
“늘어난다고요?”
흥선은 내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이건 계산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찡그리는 표정이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그래. 원래 다리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법이다. 네놈이 아마 이 도성 안에 있는 걸인은 일주일만 지나면 다 모으는 거지 왕이 될 거다.”
“그, 그러네.”
순간 흥선도 당황했다. 그 역시 가식적으로 느껴졌다.‘꼭 뭔가 꾸미는 것 같단 말이야!’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하루에 한 가마니가 아니라 두 가마니가 되고 네 가마니가 된지. 그럼 금방 저 창고 안에 있는 쌀들은 다 바닥이 나니는 거야! 그리고 끝내 저들에게 밥을 못 주는 일이 발생을 할 거다.”
이게 현실과 이상의 차이인 것이다.
“그, 그럼 다른 창고에 있는 재물들을 팔아서,,,,,,.”
흥선의 말에 난 흥선을 째려봤다.
“쌀도 내 것이 아니지만 다른 창고에 있는 것은 내탕고에 들어갈 물품들이라고 네 할아버지가 한 말 못 들었어?”
내 말에 흥선은 인상을 찡그렸다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
“슬쩍 하면 되죠?”
순간 난 어이가 없었다.
“슬쩍?”
“예. 누가 알아요.”
참 자기 할아버지랑 이렇게 다른 발상을 하는 놈이 바로 흥선인 거다. 그리고 나는 이숭겸을 봤다. 그런데 이숭겸은 마치 못 들었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아주 죽이 잘 맞네.’
“그래. 좋아! 슬쩍해서 재물을 좀 챙긴다고 치자. 그럼 그 슬쩍한 재물을 다 저 거지들 먹이려고 써야 한단 말이야?”
“그, 그건 아니지만,,,,,,.”
"지금 네가 밥을 줘서 저들은 고맙다고 돈도 안 드는 칭송을 입으로 하는 것이야? 하지만 후일 수백 아니 더 많은 수의 걸인이 내 집에 모였을 때 밥을 주지 못하면 너를 칭송하던 걸인들은 너를 욕하고 원망하게 될 것이다."
"아, 아무리 그래도,,,,,."흥선은 내 다그침에 풀이 죽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하려고 했다.
“백성들은 무지하다. 또한 어리석다.”
“백성이 그렇다고요?”
흥선은 놀라 나를 봤다.
“그래 백성은 그렇다. 그리고 어린 아이와 같다. 한 없이 달리기만 하고 한없이 보채기만 하고 스스로 무엇 하나 해결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것이 백성이란 말이다. 이 어리석은 놈아!”
내 질책에 흥선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너는 지금 저 불쌍한 걸인들을 그냥 측은하게 여겨서 걸인들이지만 백성인 자들을 후일 폭도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폭도!”
난 다부지게 말했고 내 말에 흥선은 기겁을 했다.
“폭, 폭도라고요?”
“그래. 한 없이 이유 없이 얻기만 하던 자가 이유 없이 그 얻어짐이 멈추면 불만이 생기고 바로 폭도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 그렇지만,,,,,,.”
"저들이 만약 내 집을 약탈하는 폭도가 된다면 너는 어찌 할 것이냐?"
"나, 나는,,,,,,."
"집에서 밥을 주어 기르는 짐승도 함부로 죽이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인지상정이다. 너는 저들을 죽일 수 있겠느냐?"
"그, 그게,,,,,,."
"그럼 저들에게 죽을 수는 있겠느냐?"난 무섭게 흥선을 다그쳤다. 그 순간 이 숭겸이 나를 보고 조금 놀라는 눈빛을 보였다.
“너는 여린 마음에 하지 못해도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저들의 목을 벨 수도 있고 또 저들을 겁박할 수도 있다. 너는 지금 나를 수백을 죽이는 살인자로 만들려는 것이냐?”
내 차가운 말에 순간 흥선은 공황에 빠진 듯 했다.
“무엇 하나 스스로의 대가 없이 얻게 만드는 것은 자비나 도움이 아니라 가진 자가 잔인하게 행하는 사치다. 너는 그것만 오늘 알아야 할 것이다.”
“잔, 잔인한 자가 행하는 사치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그럼 무엇이 사치라고 생각을 하느냐? 몸에 비단천을 감고 보석을 주렁주렁 다는 것이 사치라 생각을 하느냐? 책임지지 못할 것은 측은지심에 하는 것도 사치다.”
“결, 결국 제, 제가 잘못을 한 거군요.”
흥선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래 넌 잘못을 했다. 그리고 저들에게 죄를 지었다. 너는 너의 알량한 자비심 때문에 저들이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할 의지까지 빼앗은 것이다. 몸에 지닌 것을 빼앗는 자는 작은 도둑이다. 하지만 인간처럼 살아갈 의지를 빼앗는 것은 큰 도둑이다. 너는 큰 도둑이 될 것이냐?”
내 질책이 이어지자 이 숭겸은 마치 나를 우러러 보는 듯 했다. ‘왜 저런 눈빛으로 나를 보는 거지?’난 이 숭겸이 나를 보는 눈빛을 느끼고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고 보니 너무 애 앞에서 잘난 척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순간 흥선은 뭔가를 깨달은 눈빛을 내게 보였다.
“잘못했습니다.”
“그래. 너는 잘못했다. 그것을 진심으로 알았으면 된 것이다.”
그렇게 일은 마무리 되는 듯 했다.끼이익!그때 내 사택의 문이 조심히 열리는 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그 순간 난 신경질적으로 문 쪽을 봤다.
“저기 나리,,,,,,.”
걸인 몇이 내 눈치를 보며 머리를 빼 꼼이 디밀었다.
“뭡니까? 밥이 모자란 겁니까?”
난 걸인에게 물었다. 여전히 내 목소리에는 노기가 차 있었다.
“그게 아니옵고 그러니까 이거,,,,,,.”
걸인은 내 눈치를 보며 뒤를 봤다. 그 순간 걸인들이 어디서 준비를 해 왔는지 모르게 땔감을 내 앞에 내려놨다.
“이게 뭡니까?”
“그냥 밥을 얻어먹기 그래서,,,,,,.”
걸인의 말에 난 걸인들이 내려놓은 땔감을 봤다. 낫이나 톱 그리고 도끼 같은 것이 팔아먹으려고 해도 없는 걸인이다 보니 손으로 직접 부러트려서 해온 잡 가지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분명 나와 흥선을 위해 해 온 거였다.
“이거 우리 줄려고 해 온 겁니까?”
“드, 드릴 것이 이것 밖에 없어서.”
걸인의 말에 난 살짝 걸인의 손을 봤다. 맨손으로 땔감을 하다 보니 손에 상처가 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순간 난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진짜 태생이 걸인은 아니다.
’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들은 모두 양민일 것이다. 하지만 조정이 흔들리고 난신적자들이 난무하니 자신이 살 터전을 빼앗기고 어쩔 수 없이 걸인이 된 가여운 양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리 댁에 땔감이 산처럼 쌓여 있겠지만 그래도 저희들 마음이니 받아주십시오.”
“연장 하나 없이 손으로 꺾으셨습니까?”
난 그렇게 말하며 걸인의 손을 덥석 잡았고 그 순간 걸인은 화들짝 놀라 자신의 손을 뺐다.
“더럽습니다. 괜히 때라도 묻으시면,,,,,,.”
“괜찮습니다.”
난 그렇게 말하며 걸인이 숨긴 손을 봤다. 정말 내 생각처럼 여기저기 나뭇가지나 가시 때문에 잔뜩 상처가 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정말 베푼 은혜를 정말 은혜로 아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가실 곳은 있습니까?”
내 물음에 걸인들은 영문을 몰라 나를 빤히 봤고 흥선 역시 나를 보며 저 형이 무슨 일을 꾸미나 싶어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가실 때 있으시냐고 묻는 겁니다. 가실 곳이 없으면 당분간 내 집에서 지내셔도 됩니다.”
난 이렇게 말하면 걸인들이 기뻐 내게 납작 엎드릴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저들을 모두 다 내 집에서 일을 시키면 더는 소문도 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감동을 먹은 것은 먹은 거고 현실은 현실인 것이다. 이럴 때보면 난 정말 소인배다.
“저희는 노비가 아닙니다. 비록 지금 비루하여 굶고 살며 비럭질을 해 먹고 살지만 저희는 노비가 아닙니다.”
순간 내게 걸인이 의외의 말을 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는 노비로는 살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노비도 아니고요.”
그 순간 난 저들이 정말 양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비로 살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이 집에서 편히 몇 년을 살면 노비처럼 살게 되고 몇 십 년을 살면 자식들은 노비가 될 겁니다.”
걸인은 한 마디의 말에 뼈를 담아서 내게 말했다.그리고 걸인이 말한 것은 세도를 누리던 문신들이 양민들을 노비로 만드는 전형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자비를 베풀어 먹을 것은 내어주고 쌀을 빌려주고 그러고 나서 추수한 것을 빼앗고 땅을 빼앗고 종국에는 양민들의 삶의 터전인 땅을 빼앗아서 노비로 삼는 거였다. 그러니 걸인이 이렇게 나를 경계하는 걸 거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다들 그리 말씀 하셨습니다.”
이 걸인은 그런 문신들과 대신들의 만행을 많이 보거나 들은 것 같이 내게 말했다.
“여기서 일을 하고 품삯을 받고 또 싫으면 떠나면 그만입니다.”
“품삯이요?”
걸인은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아직 가솔로 거둬지는 자들에게 월급 같은 것을 주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난 걸인의 눈빛을 보고 품삯 이야기는 괜히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주지 않아도 되는 돈을 내 말 한마디에 이제 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요. 뭐 많지는 않겠지만 하루를 일하면 하루를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정도는 될 것입니다.”
내 말에 놀라 걸인은 다시 나를 보는 눈동자가 커졌다.‘내가 너무 또 크게 불렀나?’뭐 사실 내가 따지고 보면 이 고려의 역사만 조금 알지 경제나 양민들이라 하층민들이 어떻게 사는 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이런 실수를 계속 하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난 이런 것만 봐도 소인배가 분명할 거다.
“그 말씀인,,,,,,.”
여전히 걸인은 놀라고 있었다.
“그래요. 여기서 먹고 자고 품삯도 받는 겁니다.”
이 순간 말을 바꾸면 내 모양새가 이상해진다. 이왕 실수를 했으니 그 실수를 실수처럼 보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원래 천성이 소인배이지만 그래도 소인배처럼 보일 수는 없느니 말이다.
“정말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옵니까?”
걸인은 내게 확인을 하듯 물었다. 내말에 걸인은 이미 반쯤은 마음이 넘어온 것 같았다.
저 걸인들을 지금 이 상태로 내 보내면 내 창고의 쌀들은 빠르게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품삯을 줘서라도 이곳에 잡아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 넓은 사택에서 일할 하인이 내게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아무리 봐도 10명이나 되는 전 백화수검대인 화투열혈 단은 집안일에는 잔뱅이처럼 보이니 말이다. 그리고 10명으로 이 궁궐 같은 사택을 정리하고 관리하기도 역부족 같았다.
‘뭐 따지고 보면 손해도 아니다. 그리고 보니 하인도 저들보다 더 많아야 하고.’난 그런 생각을 했다. 최소한 이 궁궐 같은 사택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100명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있는 수는 거의 50이니 배는 더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떠세요? 올 겨울은 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걸인이 나를 순간 빤히 보다가 뒤를 봤다. 이미 다른 걸인들은 이곳에 살고 싶다는 눈빛을 한 없이 보냈다.
“형님! 저 사람들 그래도 되요?”
어린놈이 촐랑 되는 것이 자기도 내가 한 말이 기쁜 모양이다. 그리고 이숭겸 어른도 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너는 가만히 있고.”
난 흥선을 째려봤다. 난 살짝 인상을 찡그렸고 그 찡그림에 흥선은 내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을 했는지 꼬맹이 특유의 딴청을 부렸다. 그리고 난 힐끗 백화를 봤다.
요즘 백화의 시선이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납득이 가지 않지만 말이다.물론 백화도 한없는 존경심이 담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고 백화가 나를 저렇게 보니 난 속으로 으슥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저들을 이 집에 데려다놓고 더는 소문이 퍼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물론 저들이 은혜를 알고 땔감을 해온 것 때문에 살짝 감성적으로 변한 것은 인정하지만 궁극의 목표는 내 쌀섬을 지키는 거였다.
그런데 나머지 모두는 내가 정말 도덕군자나 되는 것처럼 보는 거였다. 이래서 사람들이 체면에 죽고 사는 모양이다. 그리고 사람만큼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존재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타인의 눈치를 보는 걸 거다.타인의 이목!그것이 이 시대의 최소한의 규율이며 제재인 것이다.
“정 싫으시면 어쩔 수는 없습니다.”
난 머뭇거리는 걸인을 봤다.
“애들도 있는 것 같은데 겨울은 나셔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분명 내일부터는 저 어린 것의 자비는 더는 없을 것입니다.”
난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적선을 하듯 내어주는 밥은 없을 것이라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모든 이들과의 담판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야 일이 수월하게 풀리는 법이다.그것이 황제든 태후든 걸인이든 마찬가지였다.
“그, 그게,,,,,,.”
“자신이 노비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게 하세요. 여기서 당분간 같이 지내세요.”
난 이번 일로 이 큰 집을 청소하고 밥을 하고 정리를 할 하인들을 얻겠다는 마음으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어쩌면 이것은 서로가 좋은 일일 거다.
나는 내 창고의 쌀을 지켜서 좋고 저들은 당분간 굶지 않고 쉴 곳이 있어서 좋은 거다. 그리고 저 걸인의 말처럼 몇 년이 그렇게 지나면 저들은 내 노비나 다름없는 가솔들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난 애써 걸인에게 웃어 줬다. 하지만 내 속내는 저들을 평생 내 밑에 두고 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원래 한번 잡힌 물고기는 놓아주지 않는 법이다.
가끔 낚시를 한다며 손맛만 보는 이들이 있다. 그건 물고기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재미로 물고기에게 상처를 내는 일은 할 일 없는 한량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인간을 비롯한 짐승들 중에 재미로 다른 것들을 해하는 사냥을 하는 동물은 인간밖에는 없을 것이다.
“올 겨울만 나고 내년 봄에 주시는 품삯을 받아 떠나도 되겠습니까?”
걸인이 나를 보며 말했다. 걸인은 내게 내년 봄에 떠나겠다고 다짐을 하듯 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걸인의 눈빛에는 자신도 안락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을 담고 있었다. 물론 그 눈빛 한 구석에는 노비는 절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듯 했다.
“그러셔도 됩니다. 구속하거나 잡을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난 그렇게 말을 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원래 모두 다 한 번이 무서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