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67화 (67/620)

< -- 간웅 4권 -- >

“하하하! 나는 술판을 벌리고 너는 동태를 살피고 그나저나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시킨 회생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고는 그렇게 생각을 하며 회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여튼 박순필이든 이 소응 대장군이든 무슨 일을 하는지 또 어떤 일을 꾸미는지 단 하나도 놓치지 말고 보고를 해야 할 것이다.”

“예. 산원나리.”

“이제 회생이 다 끝나 간다고 했어. 다!”

이고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상장군의 방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이 소응 대장군은 자기 나름대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쩌면 그날의 사건으로 이 소응 대장군은 스스로 성장을 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 혼자 뭔가를 꾸미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 이 소응 대장군이었으니 이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자체가 성장일 것이다.

“지켜보니 이 판세가 돌아가는 꼴을 보니 내가 세상을 가지지 말라는 법도 없음이야!”

이 소응은 지금 환궁을 하여 어디론가 분주히 움직였다.

“왕준이 왜 폐주를 만나고 돌아가 갑작스럽게 자결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만 봐도 하늘이 황제를 버린 것이다.”

따지고 본다면 내전에서 왕준이 자결을 한 것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를 그렇게 자살로 몰고 간 것은 이의방의 뒤에 모든 일을 도모하고 있는 회생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의방은 지난 은혜를 잊지 않고 왕준이 스스로 자결을 한 것처럼 일을 꾸며줬다.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왕준의 가문을 멸문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하나뿐인 아들도 목이 잘렸으니 대는 끊어졌지만 그래도 반계들이 있으니 가문을 이어갈 수는 있었다.그리고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르게 해야 한다고 회생은 신신당부를 했고 이의방은 그 자리에 있던 장졸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그래서 이렇게 이 소응은 왕준이 스스로 자결을 한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 소응은 무능한 자라 할 것이다.

“하오나 이상하지 않사옵니까?”

옆에 있던 사내가 이 소응을 보며 말했다.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냐?”

“왜 갑작스럽게 자결을 했는지 그것이 시생은 이상하옵니다.”

“그게 지금 중요하지는 않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보다 더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거다.”

이 소응은 자신이 가진 부푼 꿈 때문에 아주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을 하찮게 생각을 하는 우를 범했다. 이것이 바로 이 소응의 한계라면 한계였다.

“그러하옵니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선수를 치는 분이 조정을 움켜쥐실 것이옵니다.”

“맞다. 그래. 겨우 행수주제 밖에 안 되는 이의방도 저렇게 기세를 부리는데 나라고 못 할 것도 없지. 암! 나는 대장군이다. 그러니 내가 기민하게 움직이기만 한다면 상장군을 꺾고 이 판세를 내 쪽으로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

“예. 지금 움직이셔야 합니다.”

젊은 사내 하나가 이 소응의 옆에서 차분히 말했다.

“옳다. 망건아! 너의 말이 맞다. 이의방에게 회생이 있다면 나에게 너 망건이 있다.”

“감사하옵니다. 대감마님!”

망건!그는 이 소응의 노비 출신으로 대정이 된 인물이었다. 물론 그를 대정으로 만든 것은 이 소응이었다.

지금 그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망건인 거다. 원래 망건은 공주에 딸린 천민부락 명학소 출신으로 무신정변이 일어나기 7년 전에 이 소응의 눈에 들어 발탁이 된 인물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된 계기는 이 소응이 김돈중에 의해 충남 공주로 귀양을 갔기 때문이었다.1167년 김돈중이 좌승선(左承宣) 때 의종이 봉은사에서 연등행사를 마치고 환궁할 때 그의 말이 놀라 한 군사의 화살 통에 부딪쳐 화살이 의종의 수레에 떨어졌는데, 이 사건으로 죄 없는 군인들이 귀양 가게 되자 무신들은 김돈중에게 더욱 원한을 품게 되었다.

그때 이 소응도 같이 귀양을 가게 된 거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망건을 만난 거였다. 망건은 출세지향적인 인물로 귀양을 온 이 소응을 보고 자신의 천출의 신분을 벗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라 여기고 그를 모셨다.

원래 망건은 천출 출신이었으나 어깨 너머로 글을 배울 만큼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러니 볼품없이 귀양을 온 이 소응의을 자신의 동아줄로 잡은 걸 거다. 미천한 신분이 신분 상승을 하려면 주인이 영특한 자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 망건이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꼭 그 주인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각인시켜줘야 하고 그렇게 믿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망건이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바로 이 소응일 거다.그리고 이 소응은 귀양이 풀리고 바로 망건을 자신의 군영으로 불러드렸다.

물론 망건을 불러들인 이유는 이의방의 옆에 회생이 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따라 영리한 망건을 불러들인 거였다.그리고 바로 망건은 거침없이 회생처럼 이 소응이 가야 하는 행보를 이 소응에게 말해줬다.

물론 망건이 이 소응에게 처음 가야 한다고 알려준 행보는 상장군 정중부의 앞에 납작 엎드리는 거였다. 그리고 판세를 좀 더 관망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거였다.하지만 이미 간이 커질 때로 커진 이 소응이 거부를 했다.

물론 그 간을 키운 것은 회생이었다. 어쩌면 이 순간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다 회생의 계략에 놀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이 소응이 가장 회생이 치는 장단에 가장 신명나게 춤을 추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망건은 위험천만한 일을 이 소응에게 알려준 것이다.원래 위험이 크면 얻는 것이 큰 법이고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걸 거다.

지금 이 순간 이 소응은 너무나 큰 위험을 생각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령후! 그래! 대령후인 것이야!”

대령후 경은 인종의 둘째 아들이었다.이렇게 이 소응은 자신의 그릇도 모르고 꿈만 크게 잡은 나이에 맞지 않는 천둥벌거숭이인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옆에 망건이 있기 때문일 거다.

“그렇습니다. 황족 중 대령 후를 다음 보위에 올리시면 조정은 대감마님의 손아귀에 들어오는 것이옵니다. 신 황제를 옹립한 벽상공신이 되시는 것이옵니다. 그렇게만 되신다면 누가 감히 대감마님께 대항을 하겠사옵니까?”

“그래. 맞다. 맞아! 가자!”

이 소응은 그렇게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질주를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고의 명을 받은 박도가 보낸 정탐꾼들이 아주 먼 거리에서 이 소응을 지켜보고 있었다."내 미래가 대령후의 결심에 달려 있다."이 소응은 성큼 앞으로 나가면 그렇게 중얼거렸고 뒤를 따르는 망건은 그런 이 소응을 보며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어쩌면 저 눈빛 때문에 망건이 이 소응의 부름에 달려 왔는지도 모를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 이 순간은 회생이 살던 미래의 판도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대권을 위해 도전하는 많은 인물들 중에 이 소응도 그 야망에 불을 지핀 거였다.

지금 이 순가 가장 대권이라고 할 수 있는 대망에 가장 가까이 있어 보이는 인물은 당연히 상장군 정중부였다. 그리고 그 다음이 마치 야당처럼 보이는 이의방이었다. 또 마치 개그맨도 아닌 그 허 모씨처럼 이 소응도 자신의 대망을 위해 달리는 거였다.그런 와중에서 오직 회생만이 조용히 숨은 잠룡처럼 이 의방을 지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급박한 순간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고 또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순간일 거다. 그리고 꿈을 꾼 자는 누구나 다 강해진다. 그런 면에서 이 소응은 상장군 정중부의 발 앞에 엎드린 다른 대장군보다 더 강하고 성장한 인물이었다.

“가자! 대령후를 내 손으로 신 황제에 옹립을 하면 나는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자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대감마님!”

“그래. 너는 내 책사로 내 훗날 잊지 않을 것이다.”

“예. 감사하옵니다. 대감마님!”

이렇게 어리석은 자는 일이 진행되기도 전에 논공을 따지는 법이다.망건은 황공한 표정을 이 소응에게 지어보였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듯 한 눈빛을 보였다.

물론 이 소응이 그것을 볼 만큼의 안목은 없었다.상장군 정중부는 은밀히 중랑장 한 섬에게 특별한 임무를 주고 나서 응양군 낭장으로 있는 박순필을 불렀다.

“밖에 누구 없느냐?”

상장군 정중부의 부름에 건장한 대정 하나가 급히 장군방으로 들어와 허리를 숙였다.

“예. 상장군 불러계시옵니까?”

“그래. 가서 낭장 박순필을 불러오라.”

“예. 상장군!”

다시 한 번 대정은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고 밖으로 나갔다.

“박순필이면 돌아앉은 부처도 돌려 앉힐 수 있을 것이야!”

그렇게 상장군 정중부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의방이 너무 조용하군. 조용해.”

이미 상장군 정중부는 노장군들에게 이의방과 이고 채원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게 웅크리고 있을 위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상장군이었다.

“더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상장군 정중부는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봐라!”

다시 상장군 정중부가 밖에 대기하고 있는 자를 불렀고 그때 다시 신속하게 대정 하나가 다시 들어왔다.

“예. 상장군!”

상장군 정중부는 고개를 들어 대정을 힐끗 봤다. 눈매가 매서운 것이 제법 일을 잘 할 것 같았다.

“너는 지금부터 이의방의 주변 동태를 살펴라.”

“예?”

대정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상장군 정중부를 봤다. 이래서 보는 것과 사람은 다른 것이다.

“가서 이의방을 감시하라는 말이다.”

“예. 상장군!”

그제야 대정은 알겠다는 듯 대답을 했다.

“이의방이 무슨 일을 하는지 또 누구를 만나는지 소상히 감시를 해야 할 것이다.”

“예. 상장군! 명을 받자옵니다.”

“절대 은밀히 움직여야 한다. 이의방이 감시를 받는지 몰라야 할 것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고와 채원도 감시를 해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대정은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상장군 정중부도 정중부 나름의 행보를 걷고 있었다. 이제 점점 더 새로운 하늘이 열리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 하늘을 상장군 정중부는 정중부대로 회생은 회생대로 자신이 마음에 품고 있는 자가 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낭장 박순필이옵니다.”

백에서 박순필이 온 것을 알리는 병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고 상장군 정중부는 장군방 입구를 봤다.

“들어오라고 해!”

박순필은 무신들 중에서 몇 되지 않는 글을 읽을 줄 알고 아주 조금이지만 학문이라는 것을 수박 겉핥기로 배운 인물이었다.미천한 가문출신이었으나 풍채가 뛰어나고 행동과 말에 논리가 있어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한마디로 꽃미남 스타일 인 거다. 의종 때 중금군(中禁軍)에 보직되었고, 명종 초에 좌중금지유(左中禁指諭)가 된 인물이었다.

그가 출세가도를 달린 이유는 오직 하나 글을 알고 학문을 조금 알았다는 거였다. 사실 정변이 끝나고 행정업무를 봐야했지만 그때 무신들이 정권을 잡아 문신들을 제거하여 여러 행정문서가 처리되지 못하고 쌓이게 되었을 때, 이를 처리함으로써 대장군(大將軍)에 올랐다.

그러나 1178년(명종 8) 청주인(淸州人)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100여명이 죽었는데도 청주사심관(淸州事審官)으로서 이를 막지 못한 책임으로 파면 당하였다가 복직되어 병부상서가 되었다.1185년에 그의 사저(私邸)를 동궁(東宮) 근처에 크게 지었는데, 왕도 두려워 그것을 말리지 못하였다.

뒤에 추밀원사(樞密院使)를 거쳐 1190년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가 되었고, 그 이듬해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죽었다. 한마디로 무신정권에서 가장 잘 먹고 잘 산 인물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지금 상장군 정중부가 부른 거였다. 어떤 면에서 보면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정중부가 박순필을 부른 걸 거다.

상장군 자신도 자신의 중랑장 한 섬 말고는 자신을 도와 일을 처리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던 거였다. 그래서 부른 것이 바로 박순필이었다. 중랑장 한 섬이 들소 같은 위인이라면 박순필은 여우 같은 위인이었다. 또한 언변이 좋아 사람을 잘 설득하는 재주도 있었다.

원래 사람들은 잘 생긴 사람의 말을 잘 믿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정중부는 누구보다 박순필이 필요했다.

“낭장 박순필! 상장군의 부름을 받고 왔나이다.”

우렁차게 박순필은 말을 하며 허리를 숙여 상장군 정중부에게 예를 갖췄다.낭장!중앙군조직에서 중랑장 바로 아래 직위인 다섯 번째 계급이다.

정6품관으로서 이군육위에 222인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응양군에는 10명 그리고 각 영(領)에 5인씩 배속되어 200인으로 조직된 부대에서 지휘관 구실을 하였다.도부외(都府外) 3인, 의장부(儀仗府) 1인, 충용위(忠勇衛) 12인 등 16인이 더 있으므로, 총 238인의 낭장이 있었다.

이들의 합의기관으로는 낭장방(郎將房)이 있었다.

“왔는가?”

상장군 정중부는 낭장 박순필을 반겨 맞이해 줬다.

“예. 상장군! 찾으셨사옵니까?”

“내가 자네를 조용히 부른 것은 앞으로 자네를 중히 쓰려기 위해서네.”

상장군 정중부의 말에 박순필은 놀라 눈동자가 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표정이 담담해져서 상장군을 봤다. 이것만 봐도 낭장 박순필은 담이 큰 위인이었다. 그리고 속에는 정중부만큼이나 여우처럼 영악했다.

이미 낭장 박순필은 상장군 정중부가 자신을 부를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글을 안다는 것 그리고 조금이지만 학문을 했다는 것 때문에 자신을 부를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자신의 언변 자신을 부르는 이유라고 생각을 했었다.

“시생을 그리 생각해주시니 감사하옵니다. 상장군!”

“그래. 내가 자네에게 아주 큰 소임을 맡길 생각이네.”

“하명하십시오. 시생 무슨 일이든 상장군을 위해서라면 할 것이옵니다.”

“자네의 언변이 좀 필요하네.”

“저의 언변이요?”

“그렇다네. 자네가 가서 설득해 줄 사람이 있네.”

상장군 정중부는 낭장 박순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상장군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들 사람이 누구이옵니까?”

낭장 박순필은 궁금해 상장군 정중부를 봤다.

“흥왕사로 가 주게. 그곳에 가서 부처를 환속 시키게.”

“예?”

낭장 박순필은 상장군 정중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순간 멍해졌다. 정말 지금 이 순간 상장군 정중부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부처라니요? 또 환속이라니요?”

“다음 보위는 이어야 하지 않겠나?”

상장군 정중부의 말에 순간 낭장 박순필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 그 말씀은,,,,,,.”

“가서 그를 설득해 주게. 그렇게 된다면 자네는 후일 대장군의 반열에 오르고 시간이 지나면 병부상서도 어렵지 않을 것이야!”

사람을 유혹하는데 있어서 자리를 준다는 말보다 더 사람을 혹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낭장 박순필은 상자군 정중부의 말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대장군이라고 하셨습니까?”

“왜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가?”

“병부상서라고 하셨습니까?”

“이 사람 보기보다 담이 작군. 왜 자네라고 병부상서를 하지 말라는 법도라도 있는가?”

상장군 정중부는 당장 내일이라도 낭장 박순필을 대장군의 반열에 올릴 것처럼 말했다.

“그런 법도는 없지만 그래도 시생은 겨우 나장이옵니다.”

“세상이 변했고 그 세상을 변하게 만든 사람인데 과거의 신분이 낭장이면 어떠하고 위장이면 어떠한가? 자네가 나를 위해서 흥왕사에 가 주겠는가?”

상장군 정중부의 말에 낭장 박순필은 믿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왜 말이 없누? 가주시겠는가?”

“가겠습니다. 상장군! 제가 가서 그분을 뫼시고 오겠나이다.”

“그래 해야 할 것이네. 그 대신 철저하게 은밀히 움직여야 할 것이네.”

상장군 정중부는 나직이 말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상장군을 위해 반드시 일을 성사시키겠습니다.”

“그래 주게. 그럼 나도 자네를 후일 대장군의 반열에 꼭 올려주겠네.”

“감사하옵니다. 상장군!”

낭장 박순필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지금 당장 은밀히 흥왕사로 가 주게.”

“예. 상장군!”

낭장 박순필은 그렇게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 순간 낭장 박순필은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마치 자신이 대장군이 되어 있는 것처럼 늠름하게 보였다. 이래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만 자리가 사람을 망친다는 말도 있는 걸 거다.

“시생 바로 흥왕사로 갈 것이옵니다. 부처를 환속시키는 것이 뭐에 그리 어렵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태생부터 부처가 되지 못하시는 분이 시잖습니까?”

“그렇지. 부처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지. 가서 내 말을 꼭 전해주게.”

“어떤 말씀이옵니까?”

“부처가 되기 어려우면 황제라도 되시라고. 이 정중부가 반드시 황제로 옹립해 드린다고 말하시게.”

“예. 반드시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설득을 시켜서 환속해 같이 오겠나이다.”

“그래. 난 자네만 믿네.”

다시 한 번 상장군 정중부는 낭장 박순필에게 기대를 거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다시 낭장 박순필은 허리를 숙여 예의를 표하고 밖으로 나갔다.그 순간 상장군 정중부의 부드럽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내 주변에 이리 인물이 없었구나. 그래도 다행인 것이 저 박순필이 있어서 다행이다.”

상장군 정중부는 자신의 주변에 인물이 없다는 것을 한탄하면서도 그래도 낭장 박순필이 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그만큼 박순필은 언변이 좋고 사람을 잘 현혹시키는 인물이었다.

“내 반드시 신 황제를 내 손으로 옹립하여 벽상공신에 오를 것이다. 또 내 초상을 공신전에 걸 것이다.”

상장군 정중부는 다짐을 하듯 말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공예태후와의 척을 졌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이 순간 상장군 정중부는 정중부대로 공예태후를 증오하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손바닥 하나로 해를 가린 회생의 기지 때문 일 것이다.

“그 내전의 늙은 암여우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할망구로 만들어 줄 테다.”

상장군 정중부는 이 순간 공예태후를 늙은 암 여우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이것만 봐도 상장군 정중부는 자신이 공예태후를 찾아간 날이 치욕의 날로 기억하고 있는 거였다.

“이 급박한 순간 누가 먼저 신 황제를 옹립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야.”

상장군 정중부는 그렇게 생각을 하며 이의방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역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최대의 적수는 이의방이라고 생각을 했다.

“겨우 산원 주제에 나와! 대결을 하겠다는 말이지. 나와!”

상장군 정중부는 어금니를 꼭 깨물었다.

“내 계책만 성공을 한다면 황실 따위의 허락은 필요치 않아. 암 필요가 없지. 필요가 없음이야! 하하하!”

정중부는 그렇게 말하며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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