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64화 (64/620)

< -- 간웅 4권 -- >

“그럼 결, 결국 내 손으로 황제를 죽이고 태자를 죽이라는 것이냐?”

“지켜드릴 것이옵니다. 제가 황제께 태자를 지켜드린다고 약속을 했나이다.”

“네가?”

공예태후는 놀라 나를 봤다. ‘의종을 만난 것이 이렇게 작용할 줄은 몰랐군.’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하옵니다. 그리고 이의방 행수가 황상을 지켜줄 거라고 제게 다짐을 했나이다. 그러니 태후마마께서는 버리셔야 하옵니다. 그래야 아드님과 손자가 사옵니다.”

난 이제 황제를 황제라고 부르지 않고 태자를 태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황상이 그렇게 네가 부탁을 하기 위해 부른 것이냐?”

공예태후는 잠시 놀라는 것 같았다. 자신의 아들 의종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고 또 나를 지목했다는 것에 놀라고 있는 거였다.

“그러하옵니다. 황제로는 무능했지만 아비로는 굳건하고 싶다 하셨습니다.”

난 더 함도 뺌도 없이 공예태후에게 말했다.

“그렇구나! 이미 황상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구나.”

“그러하옵니다. 그러니 태후마마도 미련을 버리십시오. 또한 저를 이곳에 부르신 것 역시 미련을 버리시고 신 황제를 옹립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옵니다.”

“그렇다.”

공예태후는 가지고 있던 길고 긴 미련을 끊어낸 것처럼 차갑고 짧게 답했다. 또한 그녀의 눈동자에는 한기까지 서려 있는 것 같았다.이제 드디어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할 때인 거다.

“신 황제는 내 아들로 할 것이다.”

공예태후는 내게 명령을 하듯 말했다. 이제 미련 많은 어미는 없는 거였다. 이제 스스로 흔들리는 고려 황실을 지키려는 태후만이 있었다.

“누구를 생각하시오니까?”

“누구라 생각하느냐?”

내게 공예태후가 묻는 것은 내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의방의 의중을 묻는 걸 거다. 이 순간 신 황제의 옹립까지 고려 조정은 무신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이것이 권력과 힘을 잃은 지존들의 비참한 현실일 거다. 만약 이의방의 심중에 아니 더 정확하게 내 심중에 있는 황자와 공예태후가 생각하는 아들이 다른 인물이라면 공예태후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모멸감과 좌절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내 생각과 공예태후의 생각이 나는 다르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소신은 불학무식하고 식견이 좁아 감히 무엄하게 지존이 되실 분을 입에 올리지 못하겠나이다.”

난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렸다. 물론 내 의중에는 익양후가 있었다.

그것은 역사의 흐름이다. 지금 당장 내가 아주 많은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역사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기에는 내가 가진 것이 너무 없고 또 내가 이룬 것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작은 것 하나를 바꾸는 것도 후일 어떠한 큰 여파가 되어 돌아올지 모르는데 미래의 역사를 비틀어 다른 황제를 세우면 그 미래가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것이다.그건 내게 아주 불리한 일이다.

어떻게든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은 역사를 알고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 지금은 역사가 흘러간 것처럼 흘러가야 한다.그래야 내게 미래가 있고 안락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때도 아니고 마음도 없다. 지금은 내가 아는 되로 흘러가는 것이 최고다;난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니 익양후가 신 황제에 옹립이 되어야 한다.

명종! 그가 익양후다.

“이의방 행수가 거사를 하면서 바로 익양후의 사택에 병사들을 보냈다고 들었다.”

역시 앉아서도 멀리 보는 공예태후였다. 이것은 그녀의 눈과 귀가 되는 자들이 아직도 여전히 많다는 거다.

그녀의 눈과 귀에 환관들이 있을 것이다. 겁을 먹는 문신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정의 중심이 되는 3정승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그 노신들이 무신정변에 화를 입지 않았다는 거다. 그것은 그들의 인품이 뛰어나다는 의미일 거다.

“혹시 모를 자들의 부하뇌동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의방 행수의 지시로 그렇게 했사옵니다. 이의방 행수와 제가 목숨을 걸고 거사를 한 것은 난식적자에게 흔들리는 조정을 바로잡기 위함이옵니다.”

“너의 말을 나가 믿으라고 하는 것이냐?”

“믿으셔야 하옵니다. 황실이 위급에 빠져서는 아니 되기에 그렇게 했나이다. 이의방 행수는 상장군 정중부처럼 난신적자가 아니옵니다.”

“그래. 이의방 행수는 난신적자 정중부와는 다르구나.”

물론 이것은 내게 의도한 일이다. 이렇게 누군가를 칭송하게 만들기는 어려워도 누군가를 끌어내리기는 참으로 쉬운 거였다. 그리고 공예태후의 말을 통해 그녀는 정중부는 절대 같은 길을 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하옵니다. 상장군을 유심히 보셔야 하옵니다. 그가 어떤 분을 옹립하려는 지 잘 보셔야 할 것이옵니다. 만약이라도 자질이 부족하신 분을 마음에 둔다면 그것은,,,,,,.”

난 마지막 결론을 공예태후에게 넘겼다. 이제 공예태후는 내가 다 하지 않을 말 때문에 아주 많은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변의 기술이고 언변의 함정이며 언변의 칼날이다. 나는 지금 날카로운 언변으로 정중부의 심장을 찌르고 있는 거였다.

물론 상장군 정중부 그가 나에게 잘못한 것은 없다. 단지 가는 길이 다르고 힘을 합친 자들이 다르기에 내게 모함을 받고 천추의 간적이 되어가는 걸 거다.

“스스로 황실을 기망하고 조정을 농단하려는 음모에서 나오는 것이겠지.”

“그럴 수도 있사옵니다.”

“그래. 그 자는 그러고도 남을 자다. 그래. 내 말이 맞다. 정중부는 패악 무도한 늙은 놈이다.”

“그렇사옵니다.”

내 손자의 전각에 거침없이 못질을 한 놈이다. 이제 정중부에게는 황실의 권위 따위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 자가 바로 난적이고 역적이다.”

“그럴 수도 있사옵니다.”

“그래. 그렇다. 내게 아들이 다섯이 있다. 그 다섯 중에 하나는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 하나는 바로 현 황제 의종을 말하는 걸 거다.

“그리고 익양후가 있고 대령후 경이 있으며 불가에 귀의한 충희가 있다. 그리고 어린 황자가 있다.”

공예태후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뭐지? 저 표정은?’난 순간 공예태후의 찡그린 인상에 집중을 했다. 현 황제의 폐위되는 일 말고도 다른 걱정이 있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러하옵니다.”

“만약 그중 그 난신이 대령후를 옹립하려 한다면 조정을 홀로 농단할 심산이고 충희를 옹립하려 한다면 역천을 꿈꾸는 것일 거다.”

이 순간 정말 공예태후는 정중부를 미워하고 증오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아니 내가 그렇게 공예태후를 만들었다.

“그러니 나는 익양후를 신 황제로 옹립할 것이다. 그래야 고려의 흔들리는 조정이 바로 서고 황실이 바로 선다.”

이건 다짐처럼 보이지만 이의방과 내게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리고 나는 공예태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이의방에게 익양후를 만나라고 말해 준 상태였다. 물론 또 공예태후의 귀에 들어가도록 익향후의 사택에 병사들을 배치했다.

그런 일이 있었기에 공예태후는 나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녀는 후일 명종이 되는 익양후의 우유부단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명종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신들의 발호가 하늘을 찌를 때이니 어찌 스스로 황실을 바로 세울 수 있겠는가.

“태후마마의 높으신 뜻을 이의방 행수께 말씀 올리겠나이다.”

내 마에 공예태후는 잠시 다시 나를 봤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숨을 틀어막는 침묵이 흘렀다.

“만약 이 의방도 난신적자의 길을 걷는다면 어찌 하겠느냐?”

난 공예태후의 하문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이, 이건 황제 옹립만을 위해 나를 부른 것이 아니었어. 무모할 만큼 파격적인 선택이다.’난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을 했다. 정말 숨이 턱하고 막히는 순간이며 살이 파르르 떨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겨우 위장인 나에게 지금 황실이 운명을 거는 조치인 것이다.

“왜 말을 못하는 것이냐? 너는 겨우 이의방에게 머리를 빌려주는 책사 나부랭이에 불과한 것이냐? 내가 잘못 본 것이냐? 이 늙은 비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냐? 왜 말이 없느냐? 말을 해 보아라. 네가 아니라면 나는 다른 수를 찾을 것이다.”

공예태후는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이것은 그녀의 강력한 의지가 내게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다른 차선책도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차선책이 있으시다.’난 그런 생각을 했다. 뭘까?이 순간 난 또 하나의 고민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 고민은 그리 오래 할 것이 아니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을 해 보면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용호군이다. 용호군 대장군을 움직일 생각인 것이다.

’난 순간 속으로 기겁을 했다. 만약 이 차선책이 실행이 되고 실패가 된다면 고려의 황실은 완전히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왕조의 탄생을 의미하게 된다. 그리고 그 차선책을 분쇄시키는 자가 황제가 되는 것이다. 이의방이 황제가 될 수도 있고 정중부가 될 수도 있다.

그럼 완벽히 역사는 바뀌는 거다. 그럼 나는 그냥 영악한 자에 불과해진다.

이런 것은 내게 좋지 않게 되는 것이다.나는 그렇게 공예태후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야 했다. 그리고 해월을 봤다.

어쩌면 이 생각은 해월의 머리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차선책 역시 해월의 머리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공예태후의 입장에서는 누가 조정의 권력을 잡아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 이상을 넘보지 않고 황실을 호위한다면 정말 누구든 상관이 없을 것이다.

“저는 그런 그릇이 되지 못하옵니다.”

“그런 그릇이 되지 못한다? 이 태후가 잘못 본 것이냐?”

“저는 겨우 위장에 불과 하옵고 근본이 어디인지도 모르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의방 행수를 틀리지 않은 길로 안내하는 것이옵니다.”

내 말에 다시 공예태후는 나를 뚫어지게 봤다.

“바른 길도 아니고 틀리지 않은 길로 안내를 한다? 세치의 혀로 태후를 농락하는 것이냐?”

공예태후는 나를 노려봤다.

“갑자기 한 순간에 권력을 얻은 자가 바른 길로 황실을 보존하며 가기는 어렵사옵니다. 하오나 그를 틀리지 않은 길로 안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보옵니다.”

“틀리지 않는 길로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하옵니다. 지금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옵니다.”

“그래도 만약 이의방이 다른 길로 가려 한다면?”

공예태후는 내게 집요하게 물었다. 정말 그녀의 의중에 내가 있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태후의 마음에 내가 있음이야!’이 순간 나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물론 지금의 선택이 후일 그녀를 배신하는 일이 있더라도 지금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인 거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 순간이 선택의 순간이라면 나는 피하지 않을 것이다.

’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참으로 무례하게 공예태후를 뚫어지게 봤다.‘내 스스로 마음을 정했다면 그녀의 마음에 내가 완벽하게 들어갈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

’난 이 순간에도 나를 위해 이용하려고 했다.

“무인본분 위국헌신!”

난 담담히 그렇게 말하고 공예태후를 향해 크게 절했다. 그 순간 내가 한 말은 공예태후의 심중을 파고드는 햇살과 같을 것이다.

내가 무인본분 위국헌신이라고 조용히 말했을 때 그녀의 동공이 확장되고 숨이 막히는 듯 호흡을 멈추는 것을 봤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은 마구 요동을 치고 있다는 것을 붉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는 알았다.이보다 더 그녀가 원하는 답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에 나를 담는 말도 또 없을 것이다.

무인본분 위국헌신!정말 옳은 말이다. 무인이 가야 할 진정한 길이 바로 이것인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내게 무척이나 위험한 대답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순간 그렇게 대답을 해야 했다.지금 이 순간만은 내 마음이 그리고 내 의지가 그렇게 말하라고 했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 이렇게 스스로 흘러가려 했다.

“무인본분위국헌신,,,,,,.”

공예해후는 내가 한 말을 조용히 뇌까렸다.이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지금 내가 한 말은 안중근 장군이 스스로의 삶의 지침으로 삼은 군인본분위국헌신을 살짝 바꾼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이보다 더 공예태후의 마음에 나를 담아두게 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무인본분위국헌신,,,,,,.”

공예태후는 다시 한 번 내가 한 그 말을 뇌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나라위해 몸 바침은 무인의 본분이다. 나는 그대의 말을 믿고 그대를 믿노라!”

“황공하옵니다.”

난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렸다. 이 순간 나는 이제 양날의 칼을 맨손으로 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보다 더 위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걸 거다.무신들과 황실 사이에서 정말 숨죽이는 곡예를 해야 하는 거였다.

그 줄타기에서 내게 얻어지는 것은 나의 안락일 것이다.'역사는 스스로 흐르게 두는 것이다. 나는 그냥 나 스스로 흐르는 것처럼.'그렇게 공예태후의 마음에 나를 담고 나는 공예태후의 궁에서 나왔다.

공예태후의 처소에서 이 회생과 공예태후가 은밀히 담판을 벌리고 있을 때 백화는 차분히 밖에서 검을 차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공예태후의 상궁들이 힐끗 힐끗 백화의 눈치를 보며 곁눈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상궁 중에서 지긋하게 나이의 상궁 하나가 유심히 백화를 관찰하는 듯 했다.

지긋한 나이의 상궁!그것은 다시 말해 이 구중궁궐에 황제의 성총 한번 받지 못하고 시들었다는 것을 의미 할 것이다. 꽃은 화려했으나 벌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그저 슬피 울며 시든 거였다.

물론 지금 백화를 보는 상궁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여인들이 밤마다 외로움에 지쳐서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몸부림을 치는 밤마다 어떤 상군은 환관과 사통을 하고 또 어떤 상궁은 글을 잃었으며 또 어떤 상궁은 잡기를 익히는데 썼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들에게는 밤이 무섭고 외롭고 힘든 걸 거다.

백화는 많은 이들이 자신을 힐끗 거리며 보는 것이 영 달갑지 않았으나 이곳이 지엄한 공예태후의 처소라 뭐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나이가 든 상궁이 자신을 뚫어지게 보자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조심히 다가갔다.

“왜 그렇게 나를 보시는 거요?”

“여인이 검을 차고 있으니 보는 거지요.”

“나를 모르시오?”

백화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상궁은 없었다. 무비의 호위 무장!아마 이 궁궐에 있는 모든 상궁들과 나인들은 그녀를 알았다.

“왜 내가 그대를 모르겠소?”

“그런데 왜 오늘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리도 빤히 보시는 계요?”

백화의 물음에 지긋한 나이의 상궁이 다시 한 번 뚫어지게 백화를 다시 봤다.

“왜 그러냐고 묻는데 다시 뚫어지게 보는 이유는 무엇이요?”

정말 마음 같아서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백화였다.

“아니지. 아니지. 이리 될 수는 없지.”

나이가 지긋한 상궁은 백화의 물음에 대한 답도 없이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혼잣말을 했다.

“왜 이러는 겁니까?”

백화는 끝내 나이가 지긋한 상궁을 노려봤다.

“이유가 궁금하면 잠깐 따로 나 좀 보시겠소?”

지금까지 공예태후의 궁에 있는 상궁들 중에 자신에게 저렇게 존대를 하는 상궁이 없었다는 것이 백화는 그 순간 떠올랐다. ‘회생님 때문인가?’백화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을 했다.

“따로 잠깐?”

“그렇소. 이런 곳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요.”

나이 지긋한 상궁의 말에 다른 상궁들도 백화도 영문을 몰라 그 상궁을 봤다.

“상관을 호종하는 중이라 멀리 가지 못하오.”

“그리 멀리 가지는 않을 것이요. 남 말하기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나이가 지긋한 상궁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젊은 상궁들을 보며 나직이 말했다. 그리고 백화도 그녀들을 봤다. 그 순간 나이가 지긋한 상궁은 겁도 없이 백화의 손을 덥석 잡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백화를 끌었다.

“왜 이러시는 거요?”

“내 말을 안 듣고 가면 오늘밤 궁금해서 잠도 오지 않을 거잖소.”

원래 여자는 호기심의 동물이다. 물론 백화도 여자니 호기심이 있었고 늙은 상궁이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니 더욱 더 호기심이 발동을 했다.그렇게 백화는 마지못해 몇 걸음 따라 갔다.

“이제 저들에게 들리지 않으니 할 말이 뭔지 해 보시오.”

백화는 여전히 늙은 상궁을 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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