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63화 (63/620)

< -- 간웅 4권 -- >이고의 말에 채원은 씩 웃었다.

“그렇지 당분간이지. 당분간! 자네는 누이의 원수를 갚고 나는 자네와 같이 이 조정을 쥐고 흔들어 보고.”

채원은 나직이 그렇게 말하고 이고를 보며 웃었다.

“참 덩치는 곰인데 하는 짓은 뱀이군!”

“뱀이 천년을 살면 이무기가 되고 다시 이무기가 만년을 살면 용이 되는 법이네.”

이고는 채원의 말에 기겁을 했다.

“자네 뭔 소리인가?”

놀란 이고를 보고 채원은 씩 웃었다.

“그런 게 있다네. 그런데 정말 회생은 어디에 간 겐가?”

채원은 다시 한 번 회생을 찾았다. 그리고 지금 이의방이 저런 위치에 있는 것 모두가 회생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내게 회생이 오면 나라고 의방처럼 되지 못할 것은 없지.’채원은 이렇게 다른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이것은 위험하고 위태로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고가 지금 누가 자신의 진정한 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상장군 정중부!그를 조정에서 축출하지 않고는 자신들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것을 이고는 배운 것 없지만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채원을 힐끗 보며 채원이 점점 더 불안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 같은 아이이니 어딘가에서 우리를 위해 움직이고 있겠지.”

“그런가? 하하하! 하여튼 정말 대단한 아이야!”

채원은 회생을 칭찬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회생은 이미 공예태후의 처소에 부름을 받고 가 있었다.2. 무인본분위국헌신!공예태후의 처소. 공예태후는 물끄러미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난 것이 30분 정도 지났다. 뭔가 말하려는 듯 못하고 뭔가 내게 물으려는 하다가도 묻지 못했다.

미련!그녀는 지금 질긴 미련을 여전히 품고 있는 걸 거다. 그리고 다시 내게 뭔가 물으려다가 다시 입을 닫았다. 이 순간 이 전각 안은 차가운 침묵에 싸여 들어갔다.

그녀의 침묵은 스스로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이제 그녀에게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인 것인데 그녀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분명 그녀는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그래도 공예태후는 쉬이 입을 열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심정이 이 순간 절망에 가까울 정도로 착잡하기 때문일 거다.

어쩌면 공예태후 그녀에게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 힘이 들것이 분명했다. 지금 나를 내려 보고 있는 그녀는 한 번도 힘든 삶이라는 것은 살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는 평온하고 안락하며 넉넉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공예태후의 성(姓) 임씨(任氏). 시호 공예(恭睿).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정안후(定安侯)에 봉하여진 원후(元厚)의 딸이며, 문하시중 이위(李瑋)의 외손녀이다.

어린 그녀는 연덕궁주의 삶을 살았고 또한 인종의 비로 의종의 총애를 받으며 뭐 하나 모자란 것 없이 부러운 것도 없이 산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 그 평온한 삶에 시련과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물론 그녀는 이번 무신정변에도 큰 화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이 저지경이 되었는데 스스로에게 화가 오지 않았다고 해서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그리고 또 황실의 제일 어른으로 또 얼마나 이 순간, 순간마다 힘들고 고통스럽겠는가.

그녀는 지금 그런 처참한 심정으로 나를 내려 보고 있는 것이다.아마 그녀는 단 한 번도 이런 상상을 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낱 위장과 아니 그보다 훨씬 높은 무신과도 이렇게 독대를 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그 새벽의 환란이 그녀의 삶을 모두 바꿔놓았다.

어쩌면 그녀는 불안할 것이다. 아니 모든 황실의 근친들이 불안에 떨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녀만 보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무척이나 고단하게 힘이 들 것이다.

나는 그렇게 지금 아무 말도 없는 공예태후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미련을 끊게 해 드려야 해!’난 머리를 조아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비록 내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지만 내 솜털 하나까지 그리고 세포 하나, 하나까지 모두 공예태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으으음.”

그녀는 조용히 신음을 했다. 그 신음은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신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도 알 것이다.

자신의 아들은 폐위가 되어 평민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그리고 자신의 손자 역시 그 아비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는 것을.가장 높은 곳에 있다가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을 하는 사람들은 극도의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잃었으니 허망할 것이다.

그 허망함은 생존자체를 포기 할 수도 있다.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자살.하지만 공예태후도 알 것이다.

자신의 아들에게 자살을 선택할 시간적 여유도 무신들이 장악한 이 고려 조정에서는 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그녀는 가끔 눈썹을 실룩거리다가 다시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또 다시 뭔가 말을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닫았다. 아마 그녀는 지금 자신이 선택이 옳은 것인가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자신의 아들의 운명과 손자의 목숨!그리고 이 고려 황실의 안위를 다 맡기기에는 위장이라는 내 직위와 아직 수염도 나지 않는 내 얼굴이 미덥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나를 부른 것은 나 말고는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를 통해 이의방의 준동을 막고 황실의 검으로 살게 만들려고 하는 걸 거다. 또한 내 계략에 의한 것이지만 황실을 압박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장군 정중부를 막기 위함일 거다.

이렇게 난 어쩌면 너무나 깊게 이 황실과 조정 그리고 역사에 개입한 거였다.이건 내가 계획하고 생각했던 삶이 아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분명한 것은 내가 행동한 삶이라는 거다.

지금 이 순간이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게 유리하고 이롭게 내게 득이 되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황실과 친분을 다져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난 이렇게 나를 위로했다. 어디든 한 자락씩 동아줄을 메어두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 나는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발상 자체는 위험하다.

이러다 내가 어느 순간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박쥐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나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그럼 된 것이다.

나는 지금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된 것이다.

“네, 네 이름이 회생이라고 했느냐?”

공예태후의 첫 물음은 내 이름이었다. 한참이나 적막한 정적이 감싸더니 그렇게 공예태후나 나는 내 이름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다.

“그러하옵니다. 부르심을 받자옵고 바로 달려왔어야 했으나 황제 폐하의 부름이 계셔서 늦었나이다.”

난 왜 이렇게 늦게 온 것에 대한 이야기를 묻지도 않았지만 대답을 해 줬다. 이건 내가 그녀에게 약간의 믿음을 주기 위함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충실한 신하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공예태후에게 누구도 지금 의종을 찾지 않지만 나는 그의 부름에 무신들의 눈총에도 찾아가는 것을 서슴지 않은 신하로 보이려 했다.난 이렇게 공예태후가 떨리고 먹먹하고 참담한 순간에도 그 순간 하나마저도 나를 위해, 그리고 내게 이롭게 만들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도 너는 어리지만 충신의 소양을 갖춘 모양이구나.”

“황공하나이다. 태후마마!”

난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렸다.

“그래. 아무도 찾지 않는 내전에 황제께서 부르신다고 달려가는 것을 보니,,,,,,.”

이건 스스로 말하고도 너무나 비참한 현실일 것이다.이제 그녀의 말문이 트였으니 이제 그녀의 미련을 내가 거침없이 잘라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녀와 나의 담판에서 내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게 되는 걸 거다. 이렇게 대화와 담판에서는 첫 기세가 중요하다.

아니 모둔 일에는 처음이 제일 중요하다. 처음 누가 기세를 잡고 승기를 잡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좌우되듯 지금 이 순간 공예태후 그녀와의 담판에서도 처음 첫 기세를 잡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기세를 잡는 것에는 충격 요법이 최고지.’난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의 반작용으로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쩌면 지금 나는 위험한 도전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야 차후의 대화가 내게 유리하게 흘러가게 되니 말이다.

“이제는 폐주지요. 태후마마!”

나는 그렇게 말하고 공예태후를 무엄하게 올려봤다. 나 역시 이 순간 무척이나 담담히 말했지만 내가 한 지금의 말은 그녀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혀 아들에 대한 걱정에 요 근래 크게 한 번 웃지도 않고 잠을 이루지 못한 어미의 마음을 갈가리 찢을 것이다.

“폐주라 했느냐?”

공예태후는 나를 보며 무거운 표정으로 조금은 힘없이 되물었다. 이 순간 자신이 생각하고 바란 나와 지금 보고 있는 나와의 다름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순간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나와 공예태후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거다.현실직시!그녀와 내게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하옵니다. 이 순간 현실을 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사옵니까? 까딱 잘못 하시다가는 이 고려의 황실과 조정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난 조심히 공예태후를 봤다. 그녀는 내 말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것이 이 고려 황실의 현실일 것이다.위장의 무례한 이 말에도 쉬이 한 마디 반론조차 하지 못하는 이것이 이 고려의 현실이고 위태로운 황실의 현실일 것이다.

“그렇지. 그렇구나!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거구나.”

공예태후는 힘없는 목소리로 자포자기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한 가닥의 미련과 또 한 가닥의 희망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하옵니다. 이제 그렇게 되었습니다.”

“대전에서 황상도 없이 황상의 폐위에 대해 중신들의 중론을 모았다고 들었다.”

“그러하옵니다.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사옵니다.”

“정, 정해진 수순이라고 했느냐?”

“그러하옵니다. 갑작스러운 환란이 정해진 수순이라는 것이냐?”

공예태후는 약간 노기를 눈동자에 품었다.

“그러하옵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무인들을 괄시하고 천대하는 나라는 끝내 그것만으로 위기를 꺾었습니다. 비록 무인들이 정변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해도 외세의 침입과 오랑캐의 준동에 의해 어려움을 당한 예를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니 시간의 빠름과 늦음이 있을 뿐 정해진 수순이었습니다.”

“허나 신하된 자가 저렇게 군주를 핍박한 적은 나는 듣지 못했다.”

이 말을 통해 공예태후는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그녀라면 내가 가차 없이 무섭게 그리고 차갑게 놓지 못하는 미련을 잘라줘야 한다.

“고려 황실의 정신이면서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구려에서도 그런 일은 있었사옵니다. 고구려 27대 태왕이신 영류태왕께서는 연개소문에게 시해를 당하시고 정권을 빼앗기셨습니다.”

내 말에 공예태후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변을 준비한 연개소문은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 가을, 고구려의 수도, 장안성 남쪽에서 대대적인 군대 사열식을 개최한다는 구실로 술과 음식이 성대히 차려서 귀족들을 초대하였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식이 거행되던 중 연개소문의 신호를 받은 부하들은 순식간에 100여 명의 귀족을 처단했습니다. 이는 무신들이 보현원에서 거사를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 말에 다시 한 번 공예태후는 인상을 찡그렸다.

“너도 정변을 거사라고 하는 구나. 내가 너를 잘못 본 것이냐?”

이것이 공예태후의 마음일 거다.

“성공한 정변은 거사가 쓰고 혁명이라 읽습니다. 그에 반해 실패한 정변은 준동이라 쓰고 반역이라 읽게 되는 것이옵니다. 분명 무신들은 거사에 성공을 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현실 이옵니다.”

“으음,,,,,,.”

“그리고 그 길로 궁으로 달려가 고구려 제27대 왕인 영류왕을 시해하고는 시신을 몇 토막으로 잘라 시궁창에 던져버렸다. 하지만 현 무신들은 그 정도까지 무도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고려 황실에게는 다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황, 황제를 시해하고 그 시신을 몇 토막이나 잘라,,,,,,.”

“그러하옵니다. 그것도 모자라 시궁창에 버리기 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정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은 영류왕의 조카를 새로운 왕으로 삼아 보장왕이라 하고, 자신은 인사권과 군사권을 총괄하는 막리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채 백 년도 되지 않아 고구려는 당에 멸망을 했습니다.”

내 말에 공예태후는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놀라 동공이 커지며 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니 이제 시간이 없사옵니다. 더는 지체 하셔서는 안 되옵니다.”

“더는 지, 지체할 수가 없다?”

“그러하옵니다. 지금도 늦은 감이 있사옵니다. 더 시간이 지체될수록 황제폐하와 태자마마에게 더욱 망극한 일만 생기게 될 것이옵니다.”

내 말에 그리고 내 말뜻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공예태후는 아는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스르륵 눈을 떠서 나를 봤다. 어쩌면 나와 이런 자리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황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증거일 거다.

“지금의 황제로는 아니 되는 것이냐? 이미 기세가 꺾인 황제이다. 지금의 황제로 너희들의 뜻을 펼칠 수는 없겠느냐?”

이미 공예태후는 나를 부르는 것으로 차기 황제 옹립에 대해 담판을 하기 위해서 부른 걸 거다. 하지만 여전히 어미의 길고 긴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내가 영류왕의 이야기까지 해 주었는데 여전히 그녀는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태자마마께서 그리하시지만 않으셨어도 그렇게 되었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모든 것을 태자마마께서 망쳐놓으셨습니다.”

내 말에 공예태후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알싸한 고통이 밀려와도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공예태후 역시 이미 모든 것은 정해진 수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련을 버리시고 황실을 돌보셔야 할 때옵니다. 더 시간을 지체하시다가는 진정 망극한 일을 직접 보셔야 할 것이옵니다. 태후마마!”

내가 이 순간 공예태후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질긴 어미의 길고 긴 미련을 끊어 주는 걸 거다. 그래야 한다.

“망, 망극한 일?”

“그러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그렇게 하고 빠르게 움직여 상장군 정중부보다 더 선수를 쳐서 신 황제를 옹립하는 일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예태후를 잔뜩 겁을 줘서 이의방의 편에 서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황실의 권위가 살고 이의방이 그 기세를 몰아 조정을 장악하고 내가 살 수 있는 것이다.

“미련을 버리라?”

“그러하옵니다. 지금 평인의 어미처럼 생각하시고 미련을 가지시면 조정과 황실이 흔들리옵니다.”

“허나 나도 어쩔 수 없는 어미인 것을 어찌 하느냐?”

“끊으셔야 하옵니다. 그래야 하옵니다. 시간이 촉박하옵니다. 진정 망극한 일을 눈으로 보시려 하시옵니까? 상장군 정중부는,,,,,,.”

“그자의 이야기는 하지 말라!”

이 순간 내가 아무리 무례하고 망극한 이야기를 했을 때도 보이지 않던 살기와 분노를 정중부 이름 한 마디에 살기와 분노를 보였다.

“송구하옵니다. 그리고 공예태후께서는 누구보다 먼저 신 황제 옹립에 나서야 하실 것이옵니다. 그래야만 간적 정중부의 행포를 막을 수 있사옵니다.”

“그래. 상장군 정중부는 난신적자로 간적이다. 이 조정과 황실을 능멸하는 간적!”

공예태후는 자신의 미련을 끊어내기 위해 정중부에게 분노를 발산했다. 이렇게 누군가를 완벽하게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이 때로는 살아가는 힘이 될 때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내 그자를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고 그 가문을 멸문의 길로 걷게 할 것이다.”

바드득!공예태후는 분노에 치를 떨며 이빨까지 갈았다. 정말 급박한 순간에는 손바닥으로도 해가 가려진다는 것을 난 공예태후로 알게 되었다.

‘내 계략이 그대로 먹혔군.’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이제 공예태후와 상장군 정중부가 손을 잡는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았다.

그건 다시 말해 이의방의 적인 상장군 정중부가 황실의 비호나 도움을 절대 받을 수 없다는 말이 되는 거다.지금 비록 힘을 잃은 황실이라고는 하지만 황실은 그래도 황실인 것이다. 그리고 신 황제 옹립에 황실의 입김과 역할이 난 누구보다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강해지지 못하면 적을 약화시키는 것이 좋다. 내가 강한 군대를 가지지 못하면 적에게 더 강한 적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이것은 병법 중에서도 가장 고단위의 병법일 것이다.

“그러하옵니다. 분명 상장군 정중부는 처단되어야 할 것이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조정을 주도하는 것은 정중부이옵니다.”

“그, 그래 나도 알고 있다.”

“이제 곧 상장군 정중부 아니 그 난적의 주도하에 신 황제 옹립을 위한 대전회의가 열릴 것이옵니다. 그때 어떠한 외압이 있더라도 대전에서 회의를 주관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어떠한 외압이라도?”

“그러하옵니다. 폐주의 목숨으로 위협을 해도 눈도 깜짝 하시지 말아야 하옵니다. 태자가 살려달라고 울부짖어도 입술을 지그시 깨무셔야 하옵니다. 어미의 정을 끊으셔야 합니다. 손자의 정 역시 끊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셔야만 이 고려가 살고 황실이 사는 것이옵니다.”

난 계속 공예태후의 가슴을 차갑게 후벼 파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했다. 이것이 현실일 거다. 그리고 그래야 하는 것이다. 정말 까딱 잘못을 하면 불손한 것들에 의해 역천의 싹이 피어오를 수가 있다.그것은 나에게도 이의방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물론 그것이 정중부에게 좋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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