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58화 (58/620)

< -- 간웅 3권 -- >그런데 지금 거사의 핵심이라고 하는 이의방의 측근인 내가 자신들을 하대하지 않고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놀라워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린 제가 듣기에는 민망합니다.”

뭐 사실 말을 높여주는 일에 재물이 들어가는 것은 절대 아니니. 그리고 저들이 내게 목숨을 구명받고자 하듯 나 역시 저들에게 원하는 것이 아주 많다.내가 이번 일만 하고 뒤로 물러날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어디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되는 것도 아니고, 나 스스로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지금, 이 궁궐에 귀가 되고 눈이 되는 환관들과 친분을 쌓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시오.”

최준은 살짝 말을 낮췄다. 하지만 어린 내게 여전히 경어를 사용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저를 보자고 하신 것이옵니까?”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예, 최 공!”

난 최준에게 극존칭을 사용했다. 원래 없는 것들이 어떻게 불리는가에 목을 매는 경우가 많다.

내가 최준을 그렇게 불러주니 다른 환관들은 나를 보며 놀라고 있었다.그렇게 나는 최준과 일부 환관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저들이 내놓을 것은 재물일 거다. 그리고 난 그 재물을 아주 유용하게 쓸 테고 말이다. 정말 딱 필요한 순간에 나를 잘 찾아온 것이다.

‘사람을 구해주면 뭔가 따라오는 법이지.’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나는 자리에 착석한 후 탁자 위 비단보에 쌓여 있는 두 개의 목함을 봤다.

‘하나는 그 망할 놈의 곰 새끼, 채원의 것일 거고, 하나는 내 것인가?’

“위급한 그 순간에 저희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준은 그 지긋한 나이에 허리를 숙여 내게 인사를 했다.

“아닙니다. 괜한 고초를 당하시고 계셔서 조금 도와드린 겁니다.”

“예. 하여튼 우리들은 회생 공 덕분에 구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최준은 그렇게 말하며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목함을 내 쪽으로 밀었다.

“두 개군요.”

“예. 하나는 그 채원 놈에게 주시면 됩니다.”

“예. 제 입장도 생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를 구해주셔서 고마울 뿐입니다. 비록 지금 왕광취와 일부 환관들이 난신적자의 길을 걷다가 그렇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환관들은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최준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그렇죠. 저도 압니다.”

“그러니 앞으로 저희를 잘 보살펴 주십시오.”

최준은 내게 줄을 놓으려고 했다.

“예, 알겠습니다. 제가 이의방 행수께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최준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저희는 지금 회생 공에게 청을 드리는 겁니다.”

“저에게요?”

난 잠시 놀랐다. 저들이 내게 이렇게 뇌물을 주는 것은 모두 이의방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이 원하는 것이 나라니, 조금 의외였다.

“그렇습니다. 원래 멀리 있는 황상보다 가까이에 있는 비빈들이 더 힘을 쓰는 법입니다.”

최준은 궁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군요. 예, 맞네요.”

“그러니 저희를 잘 이끌어 주십시오.”

최준은 내게 환관의 수장이라도 되어달라는 투로 말했다.

“이끌어달라니요? 그냥 서로 돕고 사는 거지요.”

“아닙니다. 비록 저희가 사람대접 받지 못하는 환관이기는 해도 은혜를 모르는 배덕한 것들은 아닙니다.”

순간 난 속으로 인상을 찡그려야 했다.채원에게 줄 것을 조금 뜯어내고 나도 좀 챙기려고 했는데 환관들을 떠안게 생긴 꼴이 되었으니. 물론 환관들을 부리게 되면 이 궁에서 무척이나 편해질 것이다.

벽에 귀가 되는 것이 바로 환관과 상궁이니 이 궁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가장 빠르게 알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저들이 하는 일의 뒷배를 봐 줘야 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고민은 오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말씀은 제가 지시하는 일은 모두 따르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회생 공 주변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습니다.”

난 잠시 최준을 봤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왜 그런 선택을 하신 것입니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황상보다 비빈의 힘이 이 궁에서는 더 크다고.”

“그게 전부인가요?”

“왕준 대감의 일을 들었습니다.”

그제야 난 환관들이 왜 나를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환관들이 이 황궁에서 얼마나 정보가 빠른지도 새삼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그 일은 철저하게 비밀이 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환관들과 상궁들에게도 신신당부했습니다.”

최준의 말에 일부 상궁들까지 환관의 통제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궁들까지요?”

“다 불쌍한 처지라 의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최준이 좋게 말해서 그렇지 환관과 상궁이 일부 사통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이 없어도 여자를 즐겁게 해 주는 방법은 여럿 있으니 말이다.

이 고려에는 두 종류의 환관이 존재한다.남자구실을 할 수 있는 대전 환관. 그리고 남자구실을 못하는 내전 내시.그러니 외로운 상궁들이나 나인들과 사통하는 대전 환관들이 종종 있어왔고, 그것이 발각되어 은밀하게 비참히 죽임을 당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렇군요. 좋습니다. 그 대신…….”

난 최준을 노려봤다.

“예, 말씀하십시오.”

“적당히 하셔야 합니다, 적당히! 저는 저를 제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너무 크게 하시면 제가 저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돌봐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내 말에 최준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저희는 그저 회생 공의 명만 따를 것입니다.”

이 순간 난 궁에 작은 조직 하나를 만든 거나 다름없었다. 그 조직은 상당히 오래 내 힘이 될 것 같았다.

“그럼 혹시 공예태후전의 상궁을 좀 아십니까?”

“공예태후전의 상궁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대전 상궁 중에 또 누가 공예태후전의 귀가 되는지도…….”

내 말에 최준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렇군요. 역시 상부상조는 좋은 겁니다.”

난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제 난 이 궁궐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알게 될 것이다. 정보를 장악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럼 저희 비천한 환관들은 오직 회생 공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최준은 다시 한 번 내게 고개를 숙였다. 물론 이들은 내가 이렇게 힘을 쓰고 있을 때만 고개를 숙일 것이다.

“그리고 전 배신하는 거 참 싫어합니다.”

내 말에 최준도 나를 잠시 봤다.

“저희들이 원래 없는 것들이라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삽니다.”

이건 내전 내시를 말하는 거였다.그러고 보니 최준이라는 환관은 환관 이숭겸과 다르게 수염이 없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난 최준이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이지요.”

“압니다.”

“저희는 그게 없어 그런지 한번 정을 주신 분은 쉽게 배신하지 않는 계집의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를 먼저 내치지 않으시면 저희도 회생 공을 배신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최준은 지긋한 나이에도 나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내 가슴에 무척이나 와 닿았다.

“예, 알겠습니다.”

난 그렇게 짧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환관을 몇 얻게 되었군.’이것은 분명 좋은 출발일 것이다.

내가 예상하고 의도한 대로 상장군과 대장군들이 대전에 모였다. 물론 옥좌에는 의종이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주인을 잃은 옥좌는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것이 고려의 현실이고 황실의 비참함일 것이다.

지금 저들이 모인 것은 모두 황제를 폐위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 주동은 이소응이 하고 있다.

‘내가 의도한 대로 이루어지고 있다.’이소응은 내전으로 죽은 왕준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황제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것이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물론 내가 모두 조장한 것이지만 이소응은 자신이 황제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황제는 이소응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데 말이다.

‘어리석은 자!’난 대전 말석에서 상장군 정중부와 대장군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을 봤다. 예전 이 대전에는 문신과 무신들이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온건파와 강경파가 나뉘어 있었다. 물론 이의방은 강경파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만은 가만히 있을 것이다.

그 대신 이고가 들고일어설 것이고 이소응이 난리를 칠 것이다.‘채원은 또 어디에 있는 거야?’난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 그가 어디에 있는지 중요하지는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황제를 폐위시키는 일이다.하여튼 이고와 대장군이 들고일어서고 이광정이 또 난리를 치고 이소응이 마지막을 장식하면 황제는 끝내 폐위될 것이다.

또 웃긴 장면 중 하나는 저기 내 옆으로 몇 명의 문신들이 겁을 먹고 눈치를 보며 서 있는 모습이었다.‘누가 데리고 왔지?’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장군 정중부를 봤다.

그가 아니면 이렇게 문신들을 움직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정중부인가? 설마 정중부도?’난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만약 정중부가 황제를 폐위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이의방을 위한 후일은 다시 물거품이 되는 거였다.‘늙은 여우!’난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난 정중부의 옆줄 말석에 있는 조영인과 민영모를 봤다.머리에 떠 있는 이름이 있으니 누가 누군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조영인!그는 어려서부터 비범해 재상의 기량이 있었고, 박학해 글을 잘하였다. 의종 때 과거에 급제, 전주서기가 되어 정사에 명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바로 다음 황제인 명종 때부터다.

명종이 즉위하자 태자의 보도를 맡았다.아마 이 자리에서 의종을 폐위시킨 공으로 받은 자리일 것이다. 그리고 명종 4년에 좌사원외랑으로 하정사가 되어 금나라에 다녀왔다.

그다음부터 승승장구했다. 어쩌면 무신 정권과 같이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이 자리에 서 있는 조영인과 민영모는 그렇게 어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 자리에 와 있는 거다. 물론 그것은 의종에 관한 일일 것이다.

‘뜻이 같다?’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었다. 상장군 정중부가 작아진 자신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 마지막으로 들고 나온 카드가 바로 황제의 폐위에 의한 정국의 수습이라니, 급하기도 급한 모양이다.

‘어디 한번 그렇게 해 봐라. 입지는 더욱 좁아질 거니까.’난 저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뭐 사실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없다.겨우 위장 정도가 대전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것 역시 지금 이의방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고 또 이고와 채원이 나의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일 거다. 또한 이소응이 나의 대전 등청을 막지 않아서이고.그러니 나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그냥 지켜만 보면 되는 거다.

이미 의종은 완벽히 폐위의 길을 걷고 있으니 다음 준비를 하는 게 더 좋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그러기 전에 이들이 어떤 노선을 걷는지 살짝 알아야 한다.

그것만 파악되면 난 조용히 빠져나갈 참이었다.

“태자가 이의방 행수를 도모하려고 했던 일만 봐도, 황실은 목숨을 걸고 구국으로 일어선 우리의 거사를 반역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 앞뒤 파악할 줄 모르는 이소응이었다. 그가 쓰일 데는 딱 이런 정도일 것이다.

포문을 여는 것.누구도 함부로 꺼내지 못하는 말을 무식하기에 쉽게 꺼내버리는 저 똥배짱! 그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그렇게 포문을 열고 있었다.‘후일 역사의 기록을 보면 죽어서도 고개를 못 들 거다.

’난 이소응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이소응이 포문을 열었음에도 대전에 모여 있는 무신들은 서로 눈치만 봤다.

아직 의종의 폐위를 놓고 물고 뜯을 정도로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모양새였다.난 슬쩍 이광정을 봤다.

“맞습니다. 난신적자와 교합을 해서 이 조정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그에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굶주림에 죽어가는 자들이 저잣거리에만 가도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폭군은 주지육림에 빠져 고려의 사직을 돌보지 않고, 황실은 그런 폭군을 질책하지 않으니, 이 시대가 걸왕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광정은 불학무식해도 외우는 것은 정말 잘하는 것 같다. 내가 말해 준 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앵무새처럼 잘도 조잘거렸다.

그의 말에 조영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그리고 난 그의 그런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목이 하나이니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거지만, 그래도 무신들의 말은 듣기 싫은 게 문신인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 그의 차례가 되지 않았는지 그는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왜 말이 없는가? 이 행수! 자네는 직접 화를 당할 뻔한 사람이 아닌가?”

이소응이 가만히 있는 이의방을 끌어들였다.

“소장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저는 그저 대의를 따를 뿐입니다.”

대의!참으로 여러 군데에 각각 다른 목적으로 쓰이는 것이 대의다.

“참! 그러니 그대를 표적으로 삼는 거야!”

“송구하옵니다.”

“그렇게 충성을 하면 무엇하나? 황제가 몰라주고 태자가 그대를 해하려고 하는데. 만약 그 일이 성공했다면 태자는 그 여세를 몰아서 우리 모두를 참살하려고 했을 것이야!”

이소응이 강경하게 나오자 상장군 정중부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자신이 언제 발언해야 할지 타이밍을 잡아야 하는데 지금 이소응이 너무 강경하게 나오니 나설 수가 없는 노릇처럼 보였다.

“맞습니다. 대장군들의 말씀이 모두 옳습니다.”

이제 이고의 차례다.

“만약 시생들이 그때 태자에게 당해 구국에 의해 일어선 거사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면 우리는 목이 잘려 저잣거리에 걸린 신세가 되었을 것이고 난신적자의 조롱을 받으며 구족이 멸해지고 가문의 문은 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고는 마치 현실에 닥친 일처럼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목청껏 소리쳤다.

“또한 우리의 후손들은 이마에 반역 도당의 후손이라는 불도장이 찍혀 후일 조롱을 받으며 개돼지처럼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으음…….”

이고가 무척이나 현실적인 말을 하니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고가 강경하게 말하고 있어도 결론은 이야기하지 않았다.‘벽에도 귀가 있다고 했어. 공예태후가 듣고 있을 것이다.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이제는 거사를 뒤집을 수 없다.

분명 무신 정변은 성공했다. 하지만 이 순간 중요한 것은 고려는 여전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거다.그리고 권위가 떨어진 황실이라고 해도 황실은 건재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씨가 다음 대에 다시 황제가 된다.

그게 중요하다.그러니 황제를 폐위하자고 제일 먼저 입을 여는 자는 다음 대 황제의 1등 공신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를 역사는 반역자라고 규정할 거라는 점이다.

그리고 1등 공신이 된다고 해도 후일 황제는 계속 그를 의심하고 감시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런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의방이 1등 공신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요?”

이광정이 이고를 보며 물었다.

“그렇다는 거요. 우리의 처지를 잘 알자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제 결론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장군!”

이광정은 상장군을 봤다. 물론 이것도 내가 시킨 일이다. 어떻게든 폐위를 결정하는 이 자리에서 상장군 정중부가 주축이 되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후일 정국을 장악하는 것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는 이번 일은 잘해야 하는 거다.

“결론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결론!”

이광정은 목에 힘을 줘서 말했고, 그 모습을 보고 이의방은 아무도 모르게 씩 웃었다. 이럴 때 보면 송악산 호랑이가 아니라 살모사처럼 보이는 이의방이었다.

“결론이 없는 회의를 해서 뭐합니까?”

“그렇지. 우리의 거사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상장군 정중부는 주변에 있는 무신들을 봤다. 그도 이 순간 긴장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예, 하명하십시오.”

이고가 상장군 정중부를 재촉했다.

“시생들은 상장군의 뜻에 따를 것이옵니다.”

“그렇습니다. 상장군이 품은 뜻을 그대로 따를 것이옵니다. 그게 어떠한 일이라도 말입니다.”

이광정까지 상장군 정중부를 부추겼다. 물론 이것은 내가 눈치를 줘서 일고 있는 부추김이었다.

‘그런데 저 문신들은 왜 말이 없지?’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힐끗 상장군 정중부를 봤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어쩌면 그도 나처럼 누군가를 제물로 삼아 황제를 폐위시키려고 했던 모양이다.

물론 저 조영인을 필두로 한 문신들일 테지.지금 이광정은 상장군의 인물처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소응은 대장군이다. 그러니 누구도 이의방의 의도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못 하고 있을 것이다.이곳의 일들은 모두 상장군 정중부를 필두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잠시 위세를 떨치는 꼴이 되겠군.’내가 의도한 일이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 내가 따로 준비한 것이 있었다. 그러니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황실과 척을 져서 좋을 건 절대 없다.

’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상장군 정중부를 봤다.

“그렇소. 우리의 대의를 위해 그리고 또 고려 사직과 황실의 안녕을 위해 폭군은 폐위되어야 할 것이오.”

모두가 생각하고 있던 말이었지만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니 대전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들었다.

“하오나! 어찌 신하 된 자가 군주를 폐위한단 말입니까?”

역시 딱 좋은 타이밍에 이의방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물론 이것 역시 내가 지시해둔 바였다.

“그대는 당하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이소응이 이의방을 보며 큰 소리를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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