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53화 (53/620)

< -- 간웅 3권 -- >

“역시 빠르다.”

난 그저 백화의 무위를 보고 놀랄 뿐이었다. 아마 그녀는 저만한 무위를 가지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했을 것이다.그리고 난 바로 다음에 일어날 일을 짐작했다.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 백화는 수정의 목을 공격하며 위태롭게 피하는 수정의 뒷목을 잡았고, 곧 그의 목에 검을 겨눴다.

“누구든 가까이 오면 이놈의 목을 벤다.”

순간 병사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난 이 순간 더 놀라운 장면을 봤다.

“뭘 하는 것이냐? 수정 하나의 목 때문에 지시를 어길 것이냐? 길이 열렸다. 이년이 나를 베든 말든 어서 태자를 쫓아라.”

정말 놀라운 일이다. 아무리 무인이 강직한 면이 많다고는 하지만 겨우 종구품이 저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계속 보고 있다가는 정말 피를 부르겠군.”

난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만하면 됐다.”

그제야 내가 나서자 백화는 정말 이 남자 밉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수정의 목에 겨누었던 검을 바로 걷어냈다.

“넌 누구냐?”

수정이 나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보면 모르나? 견룡군 위장 회생이지!”

난 수정의 직위를 가진 남자를 봤다. 머리 위에 흑치석이라는 이름이 떴다.‘흑씨가 있나?’문뜩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흑치씨일 거다. 흑치씨를 생각하면 배신자의 이름으로 낙인이 찍혀 죽은 비운의 장수 흑치상지가 있다.‘뭐 둘 중 하나겠지.’

“이제 도망갈 만큼 도망갔을 거니까 그만둬.”

“뭐라고 하시는 거요?”

“그만두라고. 나 몰라? 나 이회생이야!”

흑치석도 나를 아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먼저 백화가 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 내 뒤에 섰다. 물론 나를 보는 눈은 여전히 사납다.

“무엇을 그만두라는 겁니까?”

“같은 편끼리 싸울 필요는 없지 않나?”

“뭐라고요?”

내가 견룡군 위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쉽게 반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픈 줄은 아는데, 그만 일어나지.”

내 말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장졸 둘이 낑낑거리며 일어났다. 원래 한 놈은 목을 가격당해서 크게 상하지는 않았지만 백화의 무릎에 찍힌 놈은 이빨이 나가 제법 많이 상한 것 같았다.

“예, 위장 나리!”

“괜찮으냐?”

물론 내가 물어보는 것은 안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괘, 괜찮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보기가 영 좋지 않았다. 나는 백화를 째려봤다.

“내가 사람 상하게 하지 말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백화의 머리에 꽂혀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값 좀 나가겠네.’

“왜 그러십니까? 위장!”

내가 빤히 보자 백화는 영문을 몰라 내게 물었다.

“머리에 꽂은 거 내놔.”

“예?”

“깽값은 줘야지.”

물론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도 여기에는 없을 겁니다.

“이 비녀 말입니까?”

“그래.”

내가 달라고 하자 백화는 영문도 모른 채 비녀 형태의 장신구를 머리에서 뺀 뒤 내게 줬다. 그 순간 백화의 머리카락이 스르륵 풀려 아래로 내려왔다.‘와! 청순가련형 생머리다.’남자의 로망!생머리가 내 눈 앞에 펼쳐진 거다.난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이빨이 나간 병사를 봤다.

“이거 팔아서 약값이라도 해.”

“예?”

내가 장신구를 주자 병사는 놀라는 것 같았다.

“팔아서 약값이라고 하라고.”

“아닙니다, 위장 나리!”

“받아. 팔 아프다.”

난 그렇게 말하며 병사에게 장신구를 툭 던졌다. 그리고 흑치석을 봤다.

“이제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겠나? 수정!”

“예. 대략은 알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넌 은밀히 움직여서 황상이 있는 내전을 감시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난 잠시 흑치석을 봤다.

“그런데 네 이름이 뭐지?”

제법 의기가 있는 자라 이름을 물어줬다. 물론 난 그의 이름이 흑치석이라는 것을 안다.

“제 이름은 남건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남건?”

“그렇습니다.”

흑치석은 자신의 이름을 남건이라고 말했다.왜 흑치석이 자신의 이름을 남건이라고 했을까?분명 나는 내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봉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으니 앞으로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남건이 아니라 이 수정의 직위를 가진 하급 군관은 흑치석이다.

‘살기 위해서 숨긴 건가? 아니면 모르는 건가?’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배신자의 낙인이 찍힌 흑치상지를 떠올렸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거다.

흑치상지!흑치상지는 백제에서 태어났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렇다.

무왕이 다스리던 서기 630년일 거다.상지의 가문은 대대로 달솔이라는 벼슬을 했는데, 중국의 병부상서, 그러니까 지금의 국방부 차관 같은 꽤 높은 자리였다.

실제로는 왕족 가문이었는데 흑치 지역에 봉해졌으므로 이 성을 썼다.상지는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었고, 동작이 빠르고 힘이 세고 꾀가 넘쳐났다.

약관에 달솔이 되었는데,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들어선 지 9년째 되는 649년이었다. 어려서부터 고상한 생각을 가졌고, 기질과 정기가 재빠르고 뛰어난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난놈이라는 거다.그리고 의자왕은 무왕의 큰아들이었다.

왕자 때의 그는 용맹하고 담력이 있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 그는 백제에 태어난 증자라는 평을 받았다.이렇듯 자질이 훌륭한 사람이었음에도 의자왕의 말년은 술과 여자에 깊이 빠졌다가, 끝내 나라를 잃은 마지막 왕이라는 불행한 이력을 남기고야 말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게 기록한 것은 신라이면서 당이다. 그러니 자기들 편하게 기록을 한 것이다.하여튼 의자왕은 새롭게 조명되어 재평가가 필요한 인물이다.

흑치상지는 이런 왕의 밑에서 달솔을 지냈다.이 무렵 백제의 왕족 가운데 복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도 일찍이 많은 군사를 거느렸는데, 660년, 사비성이 함락되자 승려 도침과 함께 주류성에 자리를 잡고 끝까지 당나라에 저항했다.그는 일본에 가 있던 왕자 부여풍을 모시고 와서 백제 부흥 운동을 꾀하였다.

복신은 스스로 상잠장군이라 일컬었다.점점 힘이 강해지자 복신은 도침을 죽이고 군사의 명령권을 한 손에 쥐었다.

왕에 오른 부여풍은 그저 복신의 말만 따를 뿐이었다.그때 흑치상지는 어디에 있었을까?그 또한 달솔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었으므로, 나라가 망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소정방이 사비성을 함락시켰을 때, 상지는 부하들을 데리고 임존성으로 갔다. 열흘이 못 되어 그에게 찾아든 사람이 3만 명이나 되었다.

당시 백제인의 상지에 대한 신임이 상당히 두터웠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상지는 주류성에서 복신이 활약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하여 복신과 연합하고 마침내 200여 성을 다시 찾았다. 백제가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부흥 운동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하였다.복신이 너무 설쳐대자 부여풍이 앙심을 품고 그를 죽여버리고 말았다.

상지는 고민했다. 663년, 상지의 나이 서른네 살이었다.

이때 당나라 고종은 상지가 백제에서 가장 뛰어난 장군인 줄 알고 사신을 보내 설득했다.항복하면 후하게 대접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상지는 깊이 고민하면서 친구인 지수신과 의논했다.결국 두 사람은 당나라 장수 유인궤에게 가서 항복하였다.

상지와 지수신은 부여풍이 지키는 나머지 성을 빼앗았다. 그렇게 부흥 운동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상지는 당나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백제 출신이라는 것은 항상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후에 모함을 받아 옥에 투옥되었고, 그곳에서 죽게 된다.백제를 버린 비정한 장수가 다시 당으로부터 끝내 버려진 것이다.

비정과 비운 사이에 흑치상지, 바로 그가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이 땅에서 사라져버렸던 흑치씨가 4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내 앞에 말이다.난 그게 놀라웠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흑치상지에게 주목하는 것은 스스로 남건이라고 말한, 수정의 직위를 가진 그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배신은 유전이라는 말이 있는데…….’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는 흑치씨다. 어찌 되었든 흑치상지는 백제의 측면에서 보면 배신자인 것이다.

‘필요한 인물이기는 한데…….’가장 기본적인 나의 세력을 생각하면서 남건을 그 세력의 한 축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그가 흑치씨라는 거다.

“뭐 하여튼 좋아! 너의 의기는 높이 사마.”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움직여라! 상황이 급박해질 것이다.”

“예, 위장!”

앞으로 나는 그를 남건이라고 부를 것이다. 어떻게 되었든 그가 남건으로 불리기를 원하니 그렇게 해 줄 것이다.그렇게 이름을 숨기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가자, 백화야!”

“예.”

백화의 짧은 대답을 듣고 그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게 아니면 자신의 장신구를 빼앗아 병사에게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삐쳐 있는 것은 확실했다.

“왜 그렇게 퉁명스러운 것이냐?”

여자가 삐치면 남자는 절로 마음이 가는 법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왜, 그 장신구 때문이냐?”

내 질문에 백화가 눈썹을 씰룩거렸다. 한마디로 딩동댕이다.

“그게 얼마짜리인지나 아시고 내리신 겁니까?”

“모르지, 나야!”

“그러실 테지요.”

장신구의 가격을 내가 모를 거라고 백화도 예측하고 있었다.

“얼마더냐?”

“쌀섬으로 다섯 섬은 줘야 할 겁니다.”

“뭐? 고작 그 장신구의 가격이 머리에 지고 가라고 해도 못 지고 갈 다섯 섬이나 된단 말이냐?”

난 조금 놀랐다.이 고려 시대에 쌀 다섯 섬이면 일반 백성들에게는 큰 재물이다.

“하여튼 그리됩니다.”

“알았다. 내 나중에 제법 챙겨주마.”

난 그렇게 말하고 마무리하려고 했다.

“저를 그런 궁지로 다시 몰지나 마십시오.”

난 이 말에 정말 백화가 독하게 삐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가겠구나!”

내 말에 백화는 말이 없다. 여자가 입을 꾹 다물면 남자는 그만인 거다.

이제 본격적으로 팔랑귀 이소응을 속이는 계략에 들어가야 하는 거다.‘원래 팔랑귀는 부하를 가장 믿지.’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의종이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해졌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의종도 아비라는 거다.

그러니 자식의 위급을 그냥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부를 것인가?그게 이 순간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그건 감시를 해 보면 차차 알게 되겠지. 아니면 부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의종은 완전히 의지를 잃은 황제일 거다.그리고 그것은 황제가 아니다.

그냥 곤륜포를 입혀놓은 허수아비에 불과하지.‘분명 의종의 성정상 누군가를 부를 것이다.’최소한 이의방과 상장군 정중부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누굴까? 만약 그것을 내가 예측할 수 있다면 일은 더 쉽게 풀릴 것이다.

하지만 그건 누구 말처럼 며느리도 모르는 문제다.‘기다려보는 수밖에. 그나저나 5일 지났는데 왜 김돈중은 잡히거나 죽임을 당했다는 연락이 오지 않는 거야!’나는 벌써 5일이 지났다고 생각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것은 현대인의 기억을 가진 나의 시간의 흐름일 거다.

내게 5일은 무척이나 빠르게 느껴지지만 이 고려 시대의 인물들에게는 그리 빠르지 않은 시간일지도 모른다.‘하여튼 김돈중도 잡아들여야 해.’황제를 폐위시키고 김돈중을 잡아들이는 일!이게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

6장. 황제를 폐위시킬 계략!무덕은 회생이 짜준 각본대로 태자를 의종이 칩거하고 있는 내전으로 이끌었다.

“궁을 빠져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불안한 눈빛으로 태자가 무덕에게 물었다.

“궁을 빠져나가는 것도 어렵사오나 빠져나간다고 해도 후일을 준비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 순간 사랑에 눈먼 무덕은 뱀의 혀가 되어 회생이 짜준 각본대로 움직였다.

“내게 후일이 있는 것이냐?”

“있사옵니다. 지금 황상 폐하께 가셔야 합니다. 궁을 빠져나가면 순간의 목숨은 스스로 구명할 수 있으나 후일은 아무런 보장도 없습니다, 태자마마!”

“하나 이렇게 간다고 해서 방법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이 고려의 지존이신 황상이오십니다. 그러니 분명 태자마마를 구명해 주실 것이옵니다.”

“으음.”

태자는 신음 소리를 냈다.하지만 지금 태자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알았다. 가자!”

태자는 그렇게 말하고 황제가 있는 내전으로 달려갔다.의종이 칩거하고 있는 내전.의종은 침울하게 자신의 앞에 엎드려 있는 태자를 보며 깊은 신음에 빠져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태자를 보며 바닥까지 떨어진 황실의 권위를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사, 살려달라?”

의종은 떨리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듯 태자에게 물었다.

“아바마마! 이 소자를 살려주소서!”

태자는 겨우 고개를 들어 의종을 봤다.아들의 눈물!그것은 아비의 마음을 찢는 칼일 것이다.

“어찌, 어찌 그리 무모한 짓을 했단 말이냐?”

“어쩔 수 없었나이다. 아바마마께서 보현원에 감금을 당하시고, 이 황궁은 무부들이 장악해서 조정을 어지럽히는 상황에서 이 소자는 무엇이든 해야 했나이다.”

“무엇이든 한 것이 겨우 환관들을 이용해서 이의방을 도모하려고 했던 일이냐? 이의방을 도모한다고 해서 지금 이 상황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냐?”

“이의방이 주도한 역모였습니다. 수괴인 이의방만 제거하면 웅크리고 있는 문신들이 다시 황실을 보존하기 위해 일어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태자의 말에 의종은 잠시 그를 봤다.

“그게 전부였더냐?”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게 네가 이의방을 도모한 이유의 전부냐고 물었다.”

이 순간 태자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자신의 자리에 위기를 느끼고 움직였다고 스스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하옵니다, 아바마마!”

“어리석었다. 어리석었어.”

아무리 내전에 칩거하고 있는 의종이라고 해도 상황을 판단하고 관망하는 눈은 있었다. 드세게 들고일어선 무신들이라고 해도 황실을 뒤집고 새로운 왕조를 세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과 함께 새로운 조정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의종은 판단하고 있었다. 만약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신을 다시 황궁으로 불러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태자가 모든 것을 위태롭게 만들어버린 것이다.‘받아들이고 후일을 도모했어야 하는 일인데…….’의종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고 옥좌를 보존하며 후일을 도모하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 때문에 다 틀어진 것이다. 이제 곧 자신의 폐위까지 거론될 것이 분명했다.

태자가 저지른 일로 인해 고려 황실이 무신들의 성공한 거사를 역모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무신들에게 알린 꼴이다.그렇게 되면 후일이 두려운 무신들은 어떻게든 움직일 것이고, 그 첫 수순이 자신의 폐위라는 것은 세 살 먹은 아이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의종은 보현원에서 자신을 압박했던 이의방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아바마마!”

태자는 의종의 눈치를 보며 그를 불렀다.

“더 할 말이 있는 것이냐?”

“무도한 이의방이 아바마마의 폐위까지 거론하였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의방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물론 이의방은 의종을 폐위시키겠다고 태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거두라고 지시한 태자에 대한 분노가 가득 담긴 상황에서 터져 나온 말이기도 했다.사실 그 말은 삼켰어야 했다. 하지만 이의방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것이 화근이기는 했지만, 일이 이렇게 풀리는 계기를 만든 것이기도 했다.물론 모든 것은 회생이 미리 앞일을 내다보고 꾸몄기에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짐을 폐위시키겠다? 무부들이!”

의종의 차분한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러하옵니다.”

“아무리 불학무식한 무부라고 해도 태자 앞에서 어찌 그렇게 불충하고 위험한 말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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