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3권 -- >채원은 내게 그렇게 말했지만, 어떤 수를 쓰더라도 환관들에게 엄청 뜯어내라는 소리로 나에겐 들렸다.
“예, 채원 나리!”
난 짧게 대답하고 허리를 숙였다.채원은 다시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병력을 물려서 이의방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난 멀어지는 채원을 보며 피식 웃었다.‘사람은 다 자기 그릇만큼 사는 것이다.
’하여튼 내가 채원을 대신해서 털어준다고 했으니 채원이 만족할 만큼 털어줘야 할 것이다.난 천천히 전각 뒤에서 돌아 나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거나 엎드려 있는 환관들을 봤다.
“눈치로 먹고사시는 양반이 왜 그리 눈치가 없습니까?”
환관들은 내 말 뜻을 몰라 멀뚱멀뚱 내 얼굴만 봤다. 물론 양반의 말뜻을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보통 양반이라고 하면 조선 시대의 계급 신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양반은 고려 경종 때부터 있었다.국왕이 조회(朝會)할 때 남향한 국왕을 중심으로 문반(文班)은 동쪽에, 무반(武班)은 서쪽에 섰는데, 이 두 반열을 양반이라고 하였다.
달리 부르는 것이 무신과 문신인 것이다.
문반과 무반이 처음으로 구별된 것은 976년(경종 1년)에 실시된 전시과(田柴科)에서였다. 이때의 구분은 토지를 지급하기 위하여 정해진 구분으로 다분히 편의적인 것이었다.
결국 월급 주려고 만든 거다. 물론 연봉일 수도 있다.
관제상의 문무 양반 체제로 발전하는 것은 995년(성종 14년), 고려가 당나라의 문무산계(文武散階) 제도를 받아들이면서이다.이때의 문반은 정치, 무반은 군사를 담당하고 있었을 뿐 문무반(文武班)에 대한 차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고려 중기에 접어들었을 때 고려에는 외침이 없었고, 빠르게 무반인 문신들을 차별하고 괄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당의 제도를 그대로 채용한 것이기 때문에 실정에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반 위주로 되어 있었다.이러한 불균형은 1390년(공양왕 2년)에 무과(武科)가 설치되고, 92년(태조 1년) 문무산계가 제정, 실시되면서 다소 보완이 되었으며, 1436년(세종 18년) 무산계에도 정종(正從) 구품이 제정되면서 문무산계가 갖추어져, 경국대전에서 성문화되었다.
이때부터 문무반이라는 양반 개념이 제도적으로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이 개념은 관료 체제가 정비됨에 따라 문무반직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가문까지도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음직(蔭職)과 과거(科擧)를 통한 관직의 세전(世傳) 및 폐쇄적인 혼인 관계를 통하여 심화되었다.이리하여 문무반을 뜻하던 양반의 개념은 지배 신분층을 뜻하는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뭐 물론 환관은 문반과 무반, 문신과 무신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양반이라고 하니 저들이 나를 저렇게 보는 것이다. 하지만 보는 눈빛 속에 원망과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 원망과 살기는 나를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허리에 차고 있는 검과 내 뒤에 있는 백화 때문에 쉬이 공격하지 못하는 것을 봤을 때 저 환관들은 스스로 힘없고 겁 많은 환관인 것은 확실했다.
“무, 무슨 소, 소리를 하시는 거요?”
“송학산 불곰이 배가 고픈 모양입니다.”
내 말에 그제야 몇몇 환관들이 내 말에 담겨 있는 뜻을 알아차린 듯했다.
“달라고 하면 그냥 줄 것을! 사람을 이리 피 떡으로 만드는 것이오?”
그 순간 환관이 인상을 찡그렸다.
“난 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 보였다.그리고 전각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을 때 채원이 말없이 가버렸다는 것을 아는 듯했다.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차후에도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눈치로 먹고사는 환관이라 이제야 내 의도를 파악한 것 같았다. 사실 난 환관들과도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 이유는 황궁에는 벽에도 귀가 있다는 말 때문이다. 벽에도 있는 귀! 내 귀도 벽에 몇 개 붙여 둔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친해질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채원이 만들어주는군.’난 채원의 얼굴을 떠올렸다.사실 내가 환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환관만큼 이 황궁에 대해, 그리고 황실에 대해 소상히 아는 자들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들과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었다.‘두고두고 잘 활용할 수 있을 거야!’그리고 원래 성격상 삐뚤어져 있는 것들이 한번 마음을 주면 끝까지 따르고 복종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환관은 내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그리고 또 논공이 끝나면 쓸 곳이 많을 거야!’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축재도 해본 놈이 잘하는 거다. 그리고 서류 조작도 해본 놈이 빈틈이 없는 법이다.
물론 내가 아주 많이 해먹겠다는 것은 아니다. 적당히 조금 내 가솔들을 돌볼 정도와 아주 작은 사병 정도 거느릴 수 있을 만큼의 자금이 필요한 거였다.
그것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셈이 밝은 환관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져줄 놈도 필요했다.그러니 내게 환관은 꼭 필요한 존재다.
사악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사는 게 다 그렇게 사악하고 기회주의적인 것을.챙길 수 있을 때 욕먹지 않을 만큼 챙기지 못하는 것도 병신이다.
“은혜라고 할 것까지 뭐 있겠습니까? 저도 제 입장이 있으니 성의껏 준비해 주십시오.”
내 말에 환관들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환관이 무슨 낙이 있겠는가?그저 재물을 모으는 재미나 땅을 모으는 재미, 그게 아니라면 학문을 닦는 특이한 재미, 뭐 이런 것들이겠지.그것을 아는 채원이 괜한 트집을 잡아 자신의 이속을 채우려는 거였다.
그런 면에서 채원은 한심한 인물이다.‘그냥 내탕고를 털면 되지.’난 문뜩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내탕고에는 두경승이 있고 두경승이 있는 상태에서 내탕고는 염라대왕의 창고나 다름이 없었다.
“참, 저는 회생이라 합니다. 앞으로 자주 볼 거니 잘 부탁드립니다.”
무신이 득세하는 세상이 열렸다. 아무리 하급 병졸이라도 지금 환관에게 머리를 숙이는 자는 없다.
그런데 내가 저 힘없는 환관들에게 머리를 숙여 나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저 중에 머리가 조금 돌아가는 환관이 있다면 자신의 안녕을 위해 내 아래로 모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 머리라도 없다면 채원의 도리깨가 아닌 다른 병졸의 철퇴에 맞아 죽어도 원망 따위는 없어야 할 거다.그렇게 난 환관과 첫 수인사를 텄다.
원래 뭐든 처음이 어렵다.도둑질도 처음이 어렵고 살인도 처음이 어렵다.
물론 계집 옷 벗기는 것도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한 번 벗기고 나면 그다음에는 스르륵 눈빛만 줘도 알아서 벗는다.
그래, 다 처음이 어려운 거다.
“들어와서 왜 그렇게 똥 마려운 강아지 꼴인가?”
이고는 채원을 보며 물었다.채원은 지금 회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눈치가 있는 회생이라는 것을 아니 이곳으로 강탈한 재물을 가지고 올 일은 없을 것이다.그런데 얼마나 가지고 올 것인지가 궁금했다.
이렇게 채원은 덩치만 컸지 통이 작은 인물이었다.물론 사람은 모두 다 단점이 있다.
채원이 탐욕스럽다면 이고는 성격이 불같았다. 그리고 또 복수의 화신처럼 행동했다.상장군 정중부는 너무 신중한 게 흠이었고, 이의방은 당장은 단점이 없어 보이지만 권력에 집착하는 것이 단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대장군들이야 단점이 한두 가지라 말을 할 필요도 없다.
“그나저나 회생은 어디를 간 거야? 자네는 아는가?”
이고의 물음에 채원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찌 알겠나?”
“그렇지. 또 꿀 발라놓은 집으로 간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그럴 수도 있지.”
채원은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지금 오직 그의 머릿속에는 회생이 환관들로부터 얼마나 모아 올 거냐는 생각뿐이었다.
‘회생이 은근히 쓸 곳이 많아. 하하하!’채원 역시 회생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5장. 무덕과의 은밀한 거래?상장군의 장군방.상장군 정중부는 공예태후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후 깊은 근심에 잠겨 있었고, 중랑장 한섬이 정중부를 찬찬히 보고 있었다.
사실 모든 대장군들이 상장군 정중부에게 등을 돌린 것은 아니었다.지금 이 장군방에는 양숙과 을우가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상장군 정중부를 보고 있었다.
사실 그들 역시 이의방과 척을 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겨우 산원인 이의방과 이고 그리고 채원에게 머리를 숙일 수는 없어 상장군의 뒤로 붙은 거였다.이게 참 그렇다.
남자는 목은 베일지라도 자존심은 베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양숙과 을우 대장군은 차마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 거였다.
그에 반해 이광정은 그것을 잘도 버리고 권세를 쥐려고 했다.특히 을우 대장군은 이의방을 무척이나 못마땅하게 여겼다.
을우!그는 을지문덕의 후손이었다. 그것은 다시 말해 고구려 군장의 정신을 이어받은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건 중급 장수인 중랑장들에게는 무척이나 큰 영향력이 되었다. 하여튼 어떤 이유에서든 상장군 정중부의 진영에도 이제 세력이 생기고 있었다.
“분명 황상께서 불문에 부치기로 약속했으니 이번 태자의 이의방 도모 사건은 어떻게든 무마시켜서 정리를 해야 할 것이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정중부가 눈을 뜨면서 양숙과 을우에게 말했다.
“소인배 이소응이 가만히 있겠소? 어린놈에게 충성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났을 텐데 말이오.”
을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것만 봐도 을우와 이소응 대장군은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을우 대장군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소인배가 무슨 짓을 하든 뭐가 염려가 되겠소. 우리는 지금부터 이의방과 이고 그리고 채원의 동태를 주도면밀하게 살펴야 할 것입니다.”
4일 동안 헛다리만 짚고 공황에 빠져 있던 상장군 정중부. 그의 정신이 드디어 돌아온 것 같았다. 그래, 늙은 여우는 겨울에 털을 내놓고 쉽게 죽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이미 이의방의 진영에는 대장군들과 상장군까지 감시를 하고 있었다. 또 그들의 부관 격인 중랑장을 포섭해둔 상태였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이의방과 회생의 귀에 메아리를 치듯 들어올 게 분명했다.
“상장군께서는 괜한 걱정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의방이 저러고 다니지만 겨우 산원입니다. 제 놈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조정을 장악한단 말입니까?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겁니다.”
이의방에게는 식견이 없으니 저렇게 오래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양숙은 말했다.
“식견이 없어도 피를 묻힌 손이니 우리에게 피가 뿌려질 수도 있소.”
“아무리 그래도 겨우 용호군 1만으로 상장군과 저의 군에 대항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양숙의 말에 상장군 정중부는 이 두 늙은이들이 있으나 마나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오. 지금 황궁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이의방의 수족과 같은 견룡과 순검군이니 이의방이 마음만 먹으면 또 한 번 피를 뿌리는 것은 문제가 될 게 없소.”
“그럼 대장군이나 되어 겨우 산원 따위의 눈치를 보자는 말씀이십니까?”
양숙은 상장군에게 못마땅한 투로 말을 했다.이 순간 상장군 정중부는 답답하기만 했다.
‘믿을 자가 없다. 군문에서 30년 일해 왔으면서 어찌 저렇게 판세를 못 읽는 건지 원…….’상장군 정중부는 그렇게 속으로 한탄을 했다.
그리고 장고에 악수가 나온다고, 오랜 심사숙고 끝에 정중부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이제 어쩔 수 없이 내가 황상 폐하를 폐위시키고 새로운 정국을 주도할 것이야!’역사는 정중부를 온건파로, 이의방을 강경파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둘 다 제각각의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중부가 이런 패악적인 결심을 하게 된 것은 공예태후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한 것도 한몫했다.물론 이 모든 것은 각본을 잘 짠 회생이 꾸민 일이다.
정말 급박한 순간에는 손바닥에도 해가 가려지는 법인가 보다.벌써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 밤은 내일의 피를 부르는 밤일 것이다. 그리고 그 피는 나로 인해 계획되고 꾸며지는 피다. 내가 왜 이렇게 움직이는지 나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미친 듯이 외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분주히 움직였다.달은 뜨고 이 궁궐에 정적이 쌓이는데 나는 여전히 사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분주히 움직여야 했다.
내가 움직일수록 이의방의 권력은 공고해질 것이고 황제의 옥좌는 흔들릴 것이다. 나는 지금 황제를 폐위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황제를 폐위시키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어.’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 어떤 경우에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함정을 파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모질게 생각하고 독하게 마음먹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역사적인 근거를 이용해서 의종을 폐위시켜야 한다. 물론 의종은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폐위될 것이다.
사실 정중부와 이의방에 의해 의종은 폐위당했다. 그런데 내가 불쑥 이 역사의 현장에 끼어든 것이다.그리고 운명인지 아니면 시대적 착오인지 이의방의 편에 서게 됐다.
첫 번째 잘난 척으로 이의방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정중부와 함께하는 연합 정권이 아니라 이의방이 독보적인 권력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물론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이의방은 거대한 권력을 잡게 될 것이다.하지만 지금 이의방은 내가 자신의 권력을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지금 내가 왜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가?모든 것은 나의 안빈낙도 때문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권력에 대한 욕망이 타오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아니야! 권불십년이다.
’난 고개를 저어 내 생각을 부정했다. 나는 권력을 스스로 탐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은 양날의 검과 같다. 그리고 위험한 것이다.그것을 알면서도 난 이 순간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난 내전에 칩거하고 있는 의종을 떠올렸다.‘부자의 정만큼 무서운 것은 없겠지.’이번에 꾸미는 일은 이의방도 모른다. 아니, 몰라야 한다.
자신의 편을 속이지 않으면 누구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그러니 이번 일은 내 스스로 해야 한다.
이미 모든 극본은 머릿속에서 짜놓은 상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배우들이 내 뜻대로 움직여 주는지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하다.
‘우선 무덕에게 미끼를 던져야겠지.’난 무덕을 떠올랐다. 무덕은 이상할 만큼 태자의 안위를 염려하고 있다.
계집이 자신보다 남자의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길 때는 딱 하나다.연정!아마 무덕은 태자에게 연정을 품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궁궐 안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황제와 태자에게 연정을 품고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무덕처럼 저렇게 목숨을 내어놓고 자신을 돌보지 않으며 움직이는 여자는 없다.‘남의 사랑까지 이용하는 게 좀 그렇기는 하지만 내가 살고 볼 일이다.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거의 다 되어간다. 지금 이 순간 이의방이 권력을 잡아야 내가 편해진다.
나와 이의방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그러니 어떻게든 이의방이 권력을 잡게 해야 한다.
겨우 산원이면서 견룡인 이의방에게 권력을 쥐여 주기 위해서는 이렇게 내가 분주히 계략을 짜고 움직여야 한다.‘이의방이 권력을 잡으면 내가 1등 공신이겠지만…….’공으로 따진다면 내가 1등 공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런 것도 바라지 않는다.
공신, 그건 어느 순간 역신이 될 수 있다는 걸 아니까.난 이 소용돌이치는 상황을 어떻게든 안정시키고 안빈낙도하는 삶을 살고 싶다.어쩌면 그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내 목표는 바로 그거다.
내가 태자궁에 들어서자 견룡군 병졸들이 내게 군례를 했다.
“오셨습니까?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이제 난 견룡군에서 꽤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아니,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마 이건 내가 움직이기 편하게 이의방이 조치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태자마마는?”
“쥐 죽은 듯 조용하게 전각 안에 있습니다.”
“그럼 태자궁의 상궁은?”
“한참 전에 들어와서 태자궁 전각으로 들어갔습니다.”
난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병졸 둘을 봤다.
“너희들, 내가 시키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지?”
내가 뚫어지게 그들을 바라보며 묻자 병졸들은 뭔가 또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른침을 삼켰다.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좋아! 아무 의심도 하지 말고 이 모든 것이 견룡행수 어른이 가시는 길에 디딤돌이 된다는 것만 알고 시키는 대로 해.”
“예, 위장 나리!”
난 병졸들에게 은밀하게 귓속말로 지시를 내렸다.그때 무덕이 전각에서 나왔다.‘부르려고 했는데 딱 때를 맞추네.’난 그런 생각을 하며 백화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