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3권 -- >
“명분이 없는 자에게는 힘이 명분입니다. 힘으로 누르고 명분을 찾아도 늦지 않습니다.”
“으음. 지금까지와는 다른 말을 하는구나.”
“상장군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희들은 명분에 목을 매야 했지만 상장군은 주저 없이 움직여야 했습니다. 생각이 많고 신중한 상장군의 성격이 결국 상장군께 패착을 불러온 겁니다.”
“그래도 이번 일은 우리의 패착 같구나!”
이의방은 그렇게 말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어깨동무를 하고 가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지금 행수께서 상장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뿐입니다. 이번 거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셔서 하급 군관들의 지지를 받는 것과 공예태후를 등에 업고 용호군을 통솔하고 계신 것 두 가지뿐입니다. 1만의 용호군이 행수 어른의 힘입니다.”
“그렇지. 용호군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위세를 가질 수 없었겠지.”
“그러니 손바닥으로도 해를 가려야 할 겁니다. 지금 공예태후께서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계십니다. 그건 다시 말해 생각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까딱 상장군에게 마음이 간다면, 두 행수께서는 닭 쫓던 개꼴은 물론 객사의 운이 되실 겁니다.”
“으음. 놈! 참, 먹는 거 앞에 두고 살벌하게 말한다.”
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그때 문을 벌컥 열고 별장 이광정이 당당히 들어와 이의방을 보며 씩 웃었다.
“내 그대가 시킨 대로 하였네. 아니지. 이제는 제 주군이시니, 명을 완벽히 수행하고 왔습니다.”
드디어 주연배우 이광정이 들어왔다.주연 이광정! 극본 이회생, 감독 이회생! 늙은 아줌마 뒤통수치기가 드디어 개봉해서 대박을 낸 것이다.
물론 제작은 이의방이 했고, 연기력 좋고 색깔이 분명한 특급 조연들이 열연을 펼쳤다.‘성공한 모양이군! 저러는 걸 보니.’역시 처세가 좋은 이광정이다.
바로 저렇게 아랫사람에게 존대를 한다는 것은 아주 비굴한 성격이거나 처세가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런 능글맞은 자이니 앞으로 내가 감독을 할 영화에 많이도 출연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후안무치한 악인으로 주연이 되어 열연을 했다면, 후일에는 각종 색깔 있는 연기로 특급 조연으로 활동할 것이다.물론 그 모든 수익은 이의방이 챙기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의 또 다른 무기인지도 모른다.하여튼 이광정은 앞으로 많이 쓰일 것 같다.
‘아마 시키면 뭐든 할 거야!’원래 악역을 하는 자들은 항상 필요하다. 난 이 순간 앞으로 완벽하게 악역을 할 인물을 찾은 것이다.
“왜 이러십니까? 별장 나리!”
“아닙니다. 직위야 제가 지금 높지만 논공이 가려지면 어디 저 따위가 올려다볼 수나 있겠습니까?”
난 이광정을 보며 정말 뛰어난 처세를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상황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아랫사람이었던 자에게 바로 허리를 숙일 수 있는 자는 몇 되지 않으니.이광정. 그에게 정사를 보는 식견은 없을지라도 그는 자기 몸 하나 편히 할 처세는 타고난 인물이었다.
‘그렇지! 이제 논공이 남았지.’난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하하하! 그나저나 태후마마의 뇌리에 상장군의 이름과 함께 죽일 놈이라고 각인이 되었을 겁니다.”
이광정은 이의방을 보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눈치를 챈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까?”
“어디 그럴 겨를이 있었겠습니까? 내가 불학무식한 짓을 서슴지 않았고 나를 막아선 이의민의 부월이 하늘을 휘돌아 감기는데, 아무리 공예태후께서 지체가 높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아녀자이니 그런 낌새를 채지는 못했을 겁니다.”
“잘되었습니다.”
“그럼요. 제가 오늘 이의민의 부월에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예.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셨군요.”
“물론입니다. 하여튼 대단한 책략입니다. 제가 딱 봐도 이제 공예태후께서는 주군과 손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셨을 겁니다.”
이광정은 다시 이의방에게 주군이라고 했다. 이고는 그런 이광정이 못마땅한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되면 상장군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입니다.”
내 말에 모든 사람들은 나를 주목했다.물론 내가 노린 두 번째는 상장군의 입지를 좁히는 거였다. 어쩌면 지금 이의방의 최대 라이벌은 상장군 정중부일 것이다. 적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일 거다.
“그럼 이제 상장군이 어떻게 나설 것 같으냐?”
“그것보다 이제 행수 어른께서 어찌하실지가 중요합니다.”
“그거 참, 왜 이렇게 복잡한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고는 다시 눈살을 찌푸리며 술을 마셨다. 저렇게 머리 아픈 것을 싫어하니 참, 차후에 많은 문제를 만들 것이다.
원래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무능한 지휘관은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니 즉흥적으로 행동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죽어나는 것은 부하다.
“목이 잘리는 것보다 머리가 터지도록 아픈 게 더 좋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기는 하지. 고놈 참 살벌하게 말한다.”
“절말 살얼음이 와작 깨져서 물에 빠져 죽을 만큼 저희는 위급합니다.”
“그런 것이냐?”
“그렇습니다.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내일이 달라지고, 후일이 평온해집니다.”
난 항상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은근히 이의방과 이고를 협박했다. 나에게 저들을 감화시키고 감동시킬 말주변은 없다.
뭐 따지고 보면 난 학자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협박과 위협을 잘 섞어서 이야기하면 내 말은 무척이나 비중이 있게 저들의 귀에 들릴 것이다. 나는 그것을 노리고 있는 거였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이의방과 같이 가야 한다. 그리고 이의방이 탄탄해지는 순간 발을 빼도 늦지 않다. 그렇게만 된다면 10년의 세월은 편히 살 것이다.
“그럼 우리가 이제 어찌하여야 하는 것이냐?”
“명분을 얻었으니 황상을 폐위시키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황상의 목숨과 태자의 목숨을 행수 어른께서 보존해 주신다고 공예태후마마께 굳건히 맹세를 하시는 겁니다.”
“맹세를 해라?”
“그렇습니다. 황상을 죽이면 대역죄인이 됩니다. 당장 권력을 쥘 수는 있지만 차후 그게 장기 집권을 막는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태자의 목숨도 보존해 주라는 것이냐?”
“태자야 언제 죽여도 되는 인물이니 당장 살려둔다고 해도 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냥 두는 것입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공예태후께서 절대 행수 어른을 버리지 못하게 하시는 겁니다.”
“내가 그렇게 하면 상장군은 어떻게 나올 것 같으냐?”
이 순간 의방은 질문을 하고 나는 대답을 하는 형식이 되었다.
“행수 어르신의 입지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상장군의 입지는 내려갈 것입니다. 그러니 웅크려서 음모를 꾸미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대비하시면 됩니다. 또한 대장군들을 자기의 편으로 끌어모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
“행수 어른!”
“왜 그러느냐? 회생아!”
“대장군들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존재들이 절대 아닙니다.”
내 말에 이의방도 고개를 끄덕였다.
“병풍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으니 도움이 되겠지.”
“그렇습니다. 권세를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위인들이니 권세를 주십시오.”
내 말에 이의방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들에게 권세를 줘라?”
“그렇습니다. 권력의 맛을 약간이나마 본 대장군들은 행수 어른을 떠받치는 단단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옳다. 알았다. 그나저나 결국 공예태후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은 상태에서 황상을 폐위시켜야 한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절대 황상과는 같이 갈 수 없습니다.”
“풀이 잔뜩 죽어 있는 황상인데 그렇게 신경을 쓸 게 뭐가 있누?”
“황상이 정말 풀이 죽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말에 이의방은 인상을 찡그렸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아주 오래 전의 일도 아닙니다. 황상께서는 문벌 귀족들을 억누르기 위해 무신들을 총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마자 바로 무신들을 버렸습니다.
어떻게든 다시 기회를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황도에 2군이 있듯 지방에 6위가 있습니다.
권력에 욕심이 나는 자는 상장군 하나뿐인 게 아닙니다.”
“그렇지. 6위가 있었지.”
“그렇습니다. 이 황도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지방에 있는 6위도 장악해야 합니다. 6위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하급 현리를 2군에 있는 장수로 보내야 합니다.”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는데 무신을 보내자는 것이냐?”
이의방은 처음으로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내게 되물었다.
“그것이 행수 어른을 단단히 받치게 될 것입니다.”
“으음. 좋구나!”
이의방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나눠 먹을 줄 아는 자는 오래 남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의방은 오래갈 것 같았다.그리고 내가 그의 뒤를 단단히 단도리해 준다면, 예정된 10년의 권세를 훌쩍 넘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아주 좋은 일입니다. 뭐든 사이좋게 나눠 가져야 뒤탈이 없는 겁니다.”
“그렇지. 나를 도운 그들의 공을 잊으면 안 되는 것이지. 그럼 이제 나는 공예태후와 담판을 지으면 되는 거군.”
이의방은 당장이라도 공예태후와 담판을 벌이기 위해 일어날 것 같았다. 하지만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가만히 계셔야 합니다.”
“뭐라? 가만히 있어라?”
“그렇습니다. 황상을 폐위시키는 일은 다른 자들의 몫입니다. 그저 행수께서는 반대하고 또 반대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황상을 폐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해놓고는 나에겐 가만히 있어라?”
“그렇습니다. 가만히 계셔야 합니다. 그럼 다 알아서 폐위의 수순을 밟을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데 어떻게 폐위의 수순을 밟는다는 것이냐?”
“값나가는 병풍은 두었다가 어디에 쓰시려 합니까?”
난 그렇게 말했고, 이 의방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역시 너는 내 장자방이다.”
“감사합니다.”
이 순간 나와 이의방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광정이 나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그래! 그렇게 나를 주목하라고 네 앞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난 이번 황제 폐위 작전 영화의 주연도 이광정으로 낙점을 했다.‘네가 깽깽거리는 만큼 러닝 개런티가 나갈 것이니 알아서 잘해라.
’난 그렇게 말하며 나를 보고 있는 이광정에 눈인사를 했다.눈치가 있는 인물이니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 거다.
그걸 모르면 앞으로 좋은 세상이 올 때 그저 다시 별장이나 하고 살아야 할 거다.장군방.상장군 정중부는 자신의 부관 격인 중랑장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지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같이 세월을 보낸 중랑장뿐이다.그만큼 상장군 정중부는 입지가 좁아져 있었다.
그 새벽에 움직이지 않은 것이 이렇게 크게 작용을 할지는 몰랐다.소인배라고 생각했던 이소응도 자신보다 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눈치만 보던 기탁성도 이제 자신과 이의방을 두고 저울질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얀 것들!’상장군 정중부는 자신이 등용했던 노장군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빨을 갈았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그들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지금은 분명 혼란의 시기다. 그래서 누구의 뒤에 줄을 서느냐가 중요했다.
“한섬아! 이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상장군 정중부는 기고만장한 이의방을 두고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산 세월이 있어서 그런지 내색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상장군!”
“이의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말이야.”
“그것을 알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이옵니까?”
“당연히 달라지지. 같은 방향으로 간다면 나는 또 병풍일 뿐이다. 그래도 내가 상장군이다.”
“그렇습니다.”
“그래. 그러니 이의방과 의견 충돌이 그다지 크지 않는 방향에서 내 길을 모색해야 하는 거야.”
“그것보다 이의방을 치는 것은 어떻습니까?”
역시 젊은 중랑장이라 저돌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중랑장의 말을 따르기에는 정중부가 산 세월이 너무 많았고, 또 그만큼 생각이 너무 깊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신중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척이나 우유부단하게도 보인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장군 정중부는 우유부단할 거다.
“이의방을 친다? 무엇으로 친단 말이냐?”
“호가호위하는 이의방이니 그 호랑이만 정리하면 만사형통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랑장은 마치 정중부의 책사처럼 말했다. 하지만 책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호랑이를 정리한다?”
“그렇습니다.”
“이의방의 호랑이라면 공예태후를 말하는 건데…….”
상장군 정중부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습니다. 무슨 연유로 공예태후가 이의방을 선택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결국 거사의 주축은 이의방입니다. 공예태후 역시 이의방이 달갑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맞다. 그럴 것이다.”
그제야 정지했던 정중부의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
“그래, 맞다. 이의방은 거사에서 강경파다. 그리고 난 그날 새벽에 실수를 해서 온건파로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공예태후는 이의방보다 내가 더 입맛에 맞을 수도 있을 것이야. 맞아!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처음으로 상장군 정중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정중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공예태후를 만나야겠다. 그래도 혈기왕성하여 변덕이 심한 것들보다야 지긋한 성격의 노장들이 더 마음이 편하실 거다. 공예태후만 등에 업는다면 후일은 내가 의도한 대로 움직이게 될 것이고, 이 의방을 쉬이 도모할 수 있다.”
상장군 정중부는 이의방을 도모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공예태후의 지원이 사라진 이의방을 말하는 걸 거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용호군의 지원을 잃은 이의방은 그저 행수에 불과합니다. 겨우 천도 안 되는 견룡군이면 제 군사들이 바로 제압을 할 수 있습니다.”
중랑장은 한술 더 떠서 앞서 나갔다.
“으음. 그래. 당장 가자!”
상장군 정중부는 공예태후를 만나기 위해 태후의 처소로 급히 걸어갔다.하지만 정중부는 앞일을 예상하고 미리 만반의 준비를 이회생이 다 해놨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상장군 정중부의 제일 큰 약점일 것이다.회생이 없다는 것.그리고 또 명분이 없다는 것.하지만 힘으로 누르는 배포도 없다는 것이 바로 15만 고려의 대군을 호령하는 상장군 정중부의 초고의 약점일 거다.
정말 이회생이 생각한 것처럼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공예태후는 시름이 가득한 얼굴로 지그시 눈을 감고 한 손에는 염주를 돌리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들이 아비를 잡는구나! 이를 어찌할꼬?’이미 공예태후는 의종이 보위를 이어가지 못할 거라고 예견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시시각각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아팠다.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찌 어미가 아들이 절망하는 것을 보고 슬퍼하지 않겠는가.하지만 공예태후는 지금 그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황실 여자로, 그것도 최고 어른이 가야할 길인지도 모른다.‘그럼 태자는 무부들의 눈 밖에 난 것이야! 어찌하면 그 어리석은 손자를 살릴꼬?’공예태후는 손자까지 걱정을 해야 했다.
누구 말처럼 지금은 살얼음판을 걷는 순간이다. 그런데 공예태후 스스로 지켜야 할 혈족들이 너무 많았다.그래서 거사가 일어난 이후에도 한시도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시는 겁니까?”
가만히 서서 공예태후를 지켜보고 있던 해월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럴수록 상심을 거두셔야 합니다.”
“상심을 거둬라? 참 그게 어렵구나!”
“앞날이 새털처럼 많습니다. 지금 황실과 조정이 무부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지만, 머지않아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되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때 공예태후의 처소로 오는 복도에서 당당한 발소리가 들렸고 그와 동시에 문밖을 지키던 상궁이 공예태후를 불렀다.
“태후마마 상장군 정중부 들었습니다.”
순간 공예태후의 눈동자가 차갑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