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45화 (45/620)

< -- 간웅 3권 -- >난 그렇게 말하며 옥의 문을 열어줬다. 바로 옥문이 열리자 만신창이가 되었던 여무사는 바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홍련이라 하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머지 아홉 명의 여무사들도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홍련?’난 속으로 홍련의 이름을 곱씹으며 그녀를 봤다.‘정말 백화와 쌍벽을 이룬다. 그런데 꽃 이름이네?’

“그래. 절대 내 은혜를 잊지 마라. 그런데 뒤에 있는 너의 이름은 뭐지?”

난 혹시나 해서 뒤에 있는 여무사의 이름을 물었다.

“저는 설난입니다.”

여무사가 대답을 했고 그 역시 꽃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난 다시 모두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때마다 모두 꽃과 색을 가리키는 이름이 그녀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이거 완전 화투네, 화투! 앞으로 내가 꽃으로 싸우는 사람이 되겠네.’난 그렇게 생각하며 씩 웃었다.

“가자. 이런 곳에 오래 있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모두 다 일어나!”

내 말에 모두 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해서 난 열 명의 수검대를 얻었다.

내가 백화를 구하니 수검대가 따라오는 형국이었다.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고 이제 무신 정변은 안정기에 접어드는 것 같았다.

‘이제 무신들끼리의 권력 쟁투가 이어지겠군.’상장군이 집무를 보는 방.상장군 정중부는 부하인 중랑장의 말을 듣고 이마에 핏대가 서는 것 같았다.

“뭐라 했느냐?”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태자께서 홀로 환관들과 의기투합을 하셔서 이의방을 도모하려 한다는 정보입니다.”

“뭐라? 환관들과 의기투합을 해?”

“그렇습니다. 태자궁 상궁이 이미 이의방을 부르러 갔다고 합니다.”

중랑장의 말에 정중부는 인상을 찡그리다 못해 구겼다.

“막아야 한다. 막아야 해!”

“무엇을 막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들이 성공만 한다면 장군께 더없는 기회가 되지 않습니까?”

“이 머저리 같은 놈! 이의방이 겨우 환관 따위에게 도모될 그런 위인으로 보이는 것이냐!”

정중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오나 이미 일은 진행되고 있을 겁니다.”

“이런 망할! 태자가 어리석게 이의방에게 명분을 주고 있어.”

“예?”

“이의방은 지금의 황상을 폐위시키려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막고 있어서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명분을 태자가 이의방에게 헌납을 하는구나!”

“그, 그 말씀은…….”

정중부의 말을 들은 중랑장도 그제야 인상을 찡그렸다.

“자식이 끝내 아비의 등에 비수를 박는구나!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정중부는 거병에 동참을 해도 온건파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의방과 이고, 채원이 거의 대부분 거사를 주도하였기에 입지가 무척이나 좁았다.그래서 정중부는 보현원에 감금해놓은 황상을 환궁시켜서 좁아진 입지를 천천히 만회하려는 계획을 꾸몄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는데, 어리석고 조바심에 이성을 잃은 태자가 끝내 일을 벌이고 만 것이다.

그때 장군방으로 녹사 하나가 달려왔다.

“상장군! 상장군!”

녹사는 급하게 문을 열고 숨을 헐떡이며 들어간다는 말도 없이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장 녹사!”

“태자가 환관들과 이의방을 도모한 일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으음!”

장 녹사의 말에 정중부는 깊은 신음을 했다. 물론 정중부도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고 나니 앞으로의 일이 캄캄할 뿐이었다.

‘이러다가 진정 뒷방 늙은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야!’정중부는 그렇게 생각했다.‘어찌한단 말이냐! 어찌해!’하지만 아무리 정중부가 고민을 한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저 이제는 몸을 움츠렸다가 기회를 보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태자의 허망한 거사가 수포로 돌아가고, 이의방을 도모하려고 했던 환관들의 목은 잘려 저잣거리에 효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태자는 태자궁에 유폐되었고, 태자궁으로 들어가는 모든 문은 대못이 박혀 봉쇄됐다.

다음 날 보현원에 감금되었던 의종이 이의민의 호종을 받으며 처량하게 입궁했다. 풀이 죽은 의종과 다르게 이의민은 개선장군처럼 궁에 들어섰고, 이의방과 정중부 그리고 노장군들은 허리를 숙여 의종의 입궁을 반겼다.

하지만 그 반김은 모두 다른 의미의 반김일 것이다. 나 역시 이의방의 뒤에서 의종의 입궁을 보고 있었다.

‘비 맞은 개처럼 처량하네.’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의종은 어가에서 내려 자신에게 허리를 숙이고 있는 신하들을 봤다.

그의 눈에는 모두 무신들만 보였고, 그것은 다시 말해 수많은 문신들이 무신들의 칼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뜻한다.

“상장군!”

“예, 황상 폐하!”

“문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군.”

의종은 모든 것을 알면서 상장군 정중부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많이들 등청을 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정중부는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런 것인가?”

“그러하옵니다.”

“그래. 그럼 이대로 자리를 비워둘 수가 없으니 앞으로 국정은 이곳에 있는 총신들과 해야겠군.”

의종이 무신들을 총신이라고 말하자 부복하고 있던 채원과 이고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의방은 의종의 말을 통해 정말 새 세상이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역시 의종은 두려워하고 있군.’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짐은 환궁을 하느라 무척이나 피곤하군!”

“바로 내전으로 모시겠나이다.”

“아니, 무비에게 갈 것이다.”

의종은 가장 총애하는 무비에게 가겠다고 말했다.

“무비는 황궁이 불타던 그 새벽에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의방이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했다.

“뭐라?”

“아마 무비에게 원한이 많은 병졸들이 무엄하게 죄를 범한 것 같습니다.”

“무, 무엄하게 죄를 범해?”

이 말이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종은 알고 있었다.

“주, 죽임을 당한 것이냐?”

“그것까지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시체도 못 찾았다는 것이냐?”

“생사 여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으음. 알았다.”

의종은 무비가 없다는 말에 깊은 시름에 빠졌다. 사실 의종은 영리한 황제였다.

영리한 황제이기에 폭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폭군은 힘이 있어야 되는 거고, 충분히 의종은 힘이 있는 황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다시 환궁을 해도 예전처럼 정사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비를 의지하며 후일을 도모할 계획이었다.그런데 지금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무비가 없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미래마저 사라진 것같이 느껴지는 의종이었다.

“내전으로 가자.”

“예, 황상 폐하!”

정중부는 머리를 조아리며 의종을 호종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의방의 눈빛이 따갑게 정중부를 노려봤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저 늙은 여우가 무엇을 또 도모할 것 같으냐?”

“제 생각으로는 태자의 일을 황상께 말해 줄 것입니다.”

“그래?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황상께서는 어떻게 되었든 행수 어른을 부르실 것이옵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정해진 수순을 그대로 밟으시면 됩니다.”

“강행을 하라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지금의 황상이 계속 옥좌에 계시면 거사를 주도했던 누구도 편히 자지 못합니다.”

“그래. 맞는 말이다.”

이의방은 그렇게 말하며 날카로운 눈으로 의종을 다시 봤다.공예태후의 처소.

“뭐라? 황상이 입궁을 하셨다고?”

공예태후는 반가움과 놀람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상궁을 보며 물었다.

“그러하옵니다. 하오나 상심이 크시어 용안이 어둡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렇겠지. 그럴 것이야!”

공예태후 역시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졌다.

“황상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

“내전으로 가셨다 하옵니다.”

“내전으로?”

“그러하옵니다.”

“내가 내전으로 갈 것이다.”

공예태후는 그렇게 말하고 상궁들과 함께 내전으로 향했다. 공예태후가 앞장을 섰고 그 뒤를 상궁들이 따랐다.내전을 지키고 있는 것은 이의민이었다.이의민은 공예태후를 보고 허리를 숙여 부복했다.

“신, 이의민! 공예태후마마를 뵈옵니다.”

“황상께서 안에 계시느냐?”

“그러하옵니다.”

“내가 들어갈 것이다.”

“그리하소서!”

이의민의 말에 공예태후는 살짝 놀라며 그를 봤다. 사실 내전을 지키는 장수나 병사들이 자신을 막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공예태후였다. 그런데 순순히 들어가도 된다고 하니 이상했던 것이다.

“왜 그렇게 소신을 보시는 것이옵니까?”

“아니다.”

“견룡행수께서 황족의 출입을 무엄하게 막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의민은 묻지도 않는 말을 공예태후에게 말했다. 물론 그것은 내가 몰래 지시한 사항이었다. 어떻게 되었든 공예태후를 이의방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공예태후 역시 지금의 황상이 옥좌에 계속 올라 있든 익양후가 새 황제가 되든 태후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이번 거사는 황상 폐하의 성총을 흐리는 난신적자를 처단하는 대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괜히 부화뇌동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알았다.”

공예태후는 그렇게 말하고 내전으로 들어갔다.‘이 모든 것이 이의방이 나를 의식해서 한 조치겠지.’공예태후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의 황상이 오래 보위에 있지 못할 거라는 예감을 했다.

‘이 어미가 황상의 보위는 지켜드리지 못해도 황상의 목숨은 지켜드릴 것입니다.’공예태후는 의종이 들어가 있는 내전을 봤다.

의종은 침울한 표정으로 탁자에 앉아 있었고 공예태후는 태후 이전에 한 남자의 어미로 의종을 보고 있었다.

“태후마마! 저로 인해 총신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의종이 비통한 마음으로 공예태후에게 말했다.

“총신은 다시 구하면 되는 겁니다. 황상! 이 어미는 황상이 무탈한 것이 부처님의 은덕이라 여겨집니다.”

“황궁이 불타고 총신들이 도륙되었는데 소자의 안위가 무탈하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황상만 무사하시면 이 고려가 무사한 것입니다. 황궁은 다시 지으면 되고 죽은 신하들은 이 어미가 말씀을 드렸듯 다시 모으면 되는 것입니다.”

공예태후의 말에 의종은 울분이 끓어오르는지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모든 것이 부덕한 소자가 무부 놈들을 너무 업신여겨 생긴 불찰이옵니다.”

그렇게 의종은 모후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울었고, 공예태후는 미래의 일을 예감하면서도 어미 된 여자로 아들의 등을 두드려줬다.2장. 미녀면 뭐하나?난 열 명의 전 백화수검대를 데리고 이제 내 사택이 된 김돈중의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내가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무신 정변이 성공으로 끝이 났다고 해도 무신들이 해야 할 일들은 너무 많이 쌓여 있었고, 어찌 보면 지금 내 주군의 위치에 앉아 있는 이의방 역시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설난아!”

백화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검대 무사들을 보고 애절하게 불렀다.그들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는 무비의 호위 무사들이었다. 하지만 이후 수검대의 수장인 백화는 주인에게 배신을 당해 죽을 고비를 넘겼고, 나머지 수검대 역시 옥에서 모진 고초를 겪고 나에 의해 구사일상으로 구출됐다.

그러니 그들의 삶도 무척 기구했다.

“이제 다 모인 건가?”

난 백화를 비롯한 백화수검대의 여무사들을 쭉 둘러봤다.‘백화수검대라…….’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은 열 명의 수검대를 키우고 통솔하는 것이 백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다시 말해 백화가 이들 중에서 미모와 무예가 가장 뛰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그리고 내 눈에도 백화가 가장 뛰어난 미녀처럼 보였다.

난 궁궐에서 세 명의 미녀를 봤다.그 처음이 무비다. 무비는 30대 중반으로 의종의 여자로 완숙미가 있는 미녀였다.

꽃으로 따진다면 시들어가는 장미지만 여전히 그녀의 가시는 날카롭고 매력적이었다.또한 연륜에서 풍기는 풍만한 여체는 이 고려의 지존이라는 의종을 사로잡기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절대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다. 꽃은 피었다가 지는 것이 10일을 넘지 않고 시든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무비. 그녀가 궁에 온 것은 열다섯 살 정도로 짐작이 되고 이런저런 시간을 보내고 의정의//의종의 품에 안긴 것을 아무리 늦게 잡아도 20대 초였을 것이다.

그럼 10년이 넘게 의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거다. 꽃이 그 붉음을 10을 넘기지 못하듯 사내에게, 그것도 손만 뻗으면 그 어떤 계집도 가질 수 있는 황제에게 10년간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은 미모 말고 또 무엇인가가 있다는 소리였다.

‘아마 머리와 방중술이겠지.’방중술!그건 고려의 황궁 여인들이라면 누구나 익히는 여자만의 비기다. 물론 내 앞에 있는 백화도 익혔을 것이다.

‘뭐 알고 있으면 나야 고맙고.’난 남자의 본능을 발동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오늘 밤부터 내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저 여자들에게 제비를 돌려 뽑기를 시킬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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