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38화 (38/620)

< -- 간웅 2권 -- >

“그렇다.”

내가 반말을 하자 그 역시 내게 반말을 했다.‘그냥 나이를 먹은 것은 아닌 모양이네.’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오시오.”

내가 반말과 존댓말을 번갈아 쓰자 이숭겸은 무슨 일인지 몰라 나를 빤히 봤다.

“나를 따라오시오.”

난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전각을 나왔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숭겸도 나를 따라 나왔다.‘이숭겸을 대전에 박아놓을 귀로 쓰면 되겠네.’난 그런 생각을 했다.이숭겸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이 전각을 지키고 있는 위장군관은 나를 보고 있었다.

“이자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상부의 지시인가?”

“그렇습니다, 대전 내관이라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이자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상부의 지시인가?”

“그렇습니다, 대전 내관이라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뭐, 알았다.”

상부의 지시라는 말에 이곳을 지키는 위장군관은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이숭겸을 내게 내어줬다. 그리고 난 다시 이숭겸을 힐끗 본 후에 작은 목소리로 그의 귀에 속삭였다.

“흥선이가 많이 보고 싶어 합니다.”

순간 이숭겸은 파르르 떨었다.

“무, 무슨 말씀이시오?”

이숭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투로 내게 되물었다.‘뭐야, 저 표정은? 그리고 왜 저렇게 놀라?’나는 이숭겸이 놀라는 모습에 집중했다.

“정말 모르는 겁니까?”

“무엇을 말이오?”

“정말 모르는 거죠?”

내가 다시 묻자 이숭겸은 나를 봤다.

“어,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이 숨겨놓은 곳에 있지.”

이숭겸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지금 데리러 가려는데 같이 갈 겁니까?”

“으음…….”

내 말에 이숭겸은 신음 소리를 냈다.

“가, 같이 가겠습니다.”

그렇게 난 두 명의 병사와 이숭겸과 함께 대전 전각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이의방과 이고, 그리고 채원은 장군방에 있었다.

상장군 정중부의 주도하에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황상을 환궁시키려는 정중부의 생각이 관철되자 이의방은 깊은 신음에 빠져있었다.성질 급한 이고와 채원은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듯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거 늙은이들이 뭐 하자는 거지?”

이고는 상장군 정중부를 비롯한 장군들을 늙은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겨우 보현원에 감금해 놓은 황상을 왜 다시 데리고 오려는 것인지 모르겠어.”

채원 역시 이고의 말을 거들었다.

“그리고 상장군이 한 게 뭐가 있다고 저렇게 회의를 주관하는 거야? 대장군들이 나서는 것도 눈꼴 시려서 못 보겠는데, 젠장!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딴 놈이 챙긴다더니, 참…….”

이고는 그렇게 말하다가 채원을 힐끗 봤다.

“왜 날 보는가?”

“재주는 곰이 부리니까.”

“뭐라고?”

채원은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는 이고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의방?”

이고가 이의방을 보며 물었다.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나라고 알겠는가?”

“분명 상장군은 황상을 등에 업고 우리를 밀어내려는 수작이야!”

채원의 말에 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되면 다시 한 번 칼을 뽑는 것은 문제도 아니지.”

이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앉게.”

이 순간 의방은 깊은 신음만 할 뿐 무척이나 차분했다.

“지금 자네는 그렇게 가만히 있을 여유가 있나?”

채원도 가만히 있는 이의방을 보며 답답하다는 눈빛이었다.

“밖에 누구 없느냐?”

채원의 물음에도 이의방은 답을 하지 않고 밖에 있는 병사를 불렀다.

“예, 행수님!”

병졸 하나가 방으로 들어와 이의방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너는 당장 가서 회생 위장을 데리고 와라.”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회생 위장이 어디에 있는지…….”

“아마 집을 구경하러 갔을 것이다.”

회생이 무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는 것을 이의방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자기에게 생긴 집부터 보러 갔을 것이다.

“김돈중의 사택에 가면 있을 것이다. 급한 일이라고 전해라.”

“예, 행수 나리!”

“그리고 이유를 묻거든 황상께서 환궁을 하신다고 전해라. 그러면 바로 달려올 것이다.”

“알겠습니다.”

병사는 짧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그 때 이고가 이의방을 보며 물었다.

“그 아이가 그렇게 마음에 드는 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위장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김돈중의 집까지 상장군과 대장군의 허락 없이 내어주는 것은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네.”

이고의 말에 채원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지.”

“그 이유가 뭔가?”

“황상이 환궁을 하면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만 회생은 알고 있을 것이네.”

“뭐라고?”

이의방의 말에 이고와 채원은 놀라서 그를 보며 물었다.

“그 아이가 어찌 안단 말인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지금까지 우리의 모든 행동은 그 아이의 머리에서 나왔어. 그러니 이번에도 그 아이의 머리를 빌릴 수밖에 없네. 그리고 상장군과 대장군이 어찌 나올지 궁금하기도 해서 회생에게 사택을 준 것이네.”

“늙은것들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서?”

채원은 모르겠다는 눈으로 이의방을 봤다.

“가만히 있다면 우리를 두려워한다는 뜻이고, 들고일어나면 우리가 걱정스러운 것이지.”

이의방은 그렇게 말하고는 씩 웃었다.

“자네는 모를 소리만 하네. 그리고 참 욕심도 없네. 당연히 늙은것들이야 들고일어나지. 김돈중의 사택이네. 그곳에 얼마나 많은 재물이 쌓여 있는지는 알고 준 것인가?”

이고의 말에 이의방은 그를 보며 말했다.

“재물이야 힘을 가지면 따라오는 법이네. 우리에게는 당장 회생, 그 아이의 머리가 필요해.”

“그만큼 그 아이가 대단한 아이인가?”

“내 사위를 삼고 싶을 만큼 내게 필요한 아이지.”

이의방이 대놓고 그렇게 말하자 이고와 채원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정도인가?”

“그렇다네. 그 아이의 머리만 있으면 늙은 여우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이의방은 정중부를 늙은 여우라 표현했다.이의방은 이만큼 회생에게 푹 빠져있었다. 그리고 식견이 부족하고 정세를 보는 눈이 없는 자신은 어떻게든 회생을 품에 안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고 있었다.

이의방은 이고와 채원을 힐끗 봤다.‘지금 당장은 뜻이 같지만 후일은 모르는 거지.’역시 이의방은 이고나 채원과는 조금은 다른 인물이었다.

9장 회생, 백화를 얻다이제 이곳, 대전에는 아무도 없다.원래 주인인 의종이 보현원에 감금되어 있으니 누군가가 있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경계를 서라.”

나를 따라온 두 명의 병사에게 명령을 내리고 이숭겸을 봤다.

“들어가시죠. 그리고 만약에 허튼짓을 하시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내 말에 이숭겸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난 아무도 없는 대전 전각으로 걸음을 옮겼다.주위를 살피며 백화와 흥선이 숨어있는 비밀 은신처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말없이 걷고 있는 이숭겸의 얼굴을 살폈다.

내가 대전 전각 밑에 있는 비밀 은신처로 접근을 하자 그의 얼굴은 차츰 굳어지고 있었다.나는 비밀 은신처의 문이 있는 곳에 섰다.

똑! 똑! 똑!난 조심스럽게 세 번 두드렸다. 그래도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역시 영리한 놈이라니까.’난 그렇게 생각하고 이숭겸을 봤다.

“저 안에 흥선이가 있다는 거 다 압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문을 열라고 하십시오.”

내 말에 이숭겸은 나를 봤다. 지금 그는 이 짧은 순간에도 내가 정말 알고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신을 떠보기 위해서 하는 말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제가 떠보는 것처럼 보입니까? 이름도 알지 않습니까?”

“예, 그렇지요.”

이숭겸은 짧게 대답하고 작게 말했다.

“흐, 흥선아!”

손자를 부르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왜 손자를 부르는데 저렇게 떨지? 역시야, 역시!’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숭겸의 목소리를 확인한 흥선이 아주 조금 비밀 은신처의 문을 열었다.그리고 나와 이숭겸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 주변을 살폈다.

“형!”

흥선은 이숭겸을 데리고 온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안전하니까 내려와.”

“정말 안전해?”

흥선은 내게 의도적으로 넉살 좋게 반말로 물었다.

“그래, 안전해. 그런데 백화는 좀 어때?”

“백화?”

“그래, 내가 간호하라고 말한 여자 무사.”

난 그렇게 말하고 백화가 걱정되어 머리를 올려 비밀 은신처 안을 봤다. 그 순간 차가운 느낌이 내 목에 전달됐다.

“소리를 지르면 이 검이 너의 목을 벨 것이야!”

지금 내 목에 검을 겨눈 자는 다름 아닌 내가 구한 백화였다. 난 바로 인상을 찡그려야 했다. 이래서 검은 머리털 난 짐승은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베면 배은망덕한 자가 될 텐데.”

이럴 때는 당황하면 안 된다. 최대한 침착해야 하는 법이다.

“배은망덕한지는 두고 봐야 아는 것이지.”

백화는 그렇게 말하며 조심히 비밀 은신처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내 얼굴을 본 순간 나를 보는 백화의 눈빛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왜 저런 눈빛을?’난 이 순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장 내 목에 검을 겨누고 벨 것 같더니,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떨리는 눈빛이라니.‘뭐지?’다시 힐끗 백화를 봤다.아무리 봐도 나를 아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를 아나?’난 그런 생각마저 들게 했다.

“당신은…….”

역시 백화는 나를 아는 모양이었다.

“나를 아나?”

“아니오, 모르오.”

백화는 모른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분명 나를 알고 있는 듯했다.

“흥선에게 들어서 알 터인데, 이만 검을 거두지?”

난 짜증을 부리듯 말했다.그 때, 흥선도 이숭겸의 부축을 받아 비밀 은신처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이숭겸은 자신의 손자인 흥선을 마치 금지옥엽처럼 조심히 내리고 있었다.

‘어쩌면……. 아니, 분명해.’어쩌면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분명 이숭겸의 진짜 혈육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답은 하나!‘확실해, 이제 확실해졌어.’난 흥선이 황족일 거라는 생각을 굳혔다.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백화가 여전히 내 목에 단검을 겨누고 있다는 거였다.

“검을 내려놓으라니까.”

“소리를 내면 벤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백화가 나를 위협했다.

“무비에게 검을 맞고 나에게 화풀이할 셈인가? 구명지은을 입었는데 내게 이러면 안 되지.”

내가 당당히 말하자 백화의 손에 들린 단검이 살짝 떨렸다.

“떨지 마, 괜히 내 목에 상처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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