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37화 (37/620)

< -- 간웅 2권 -- >권력의 단맛을 알고 있는 무비는 처음에는 거부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의방의 남자다운 모습과 권력 때문에 그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을 것이다.그리고 무비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황제가 죽으면 황후를 제외한 모든 비들이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가 비구니가 되어야 한다.하지만 아직 뜨거운 혈기를 지니고 권력을 가지고 싶어 하는 무비는 절대 비구니로는 살아갈 수 없는 여자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권력 지향적인 여자인 것이다.‘여자가 옆에 많이 붙으면 총기가 흐려지지.’내가 이렇게 무비를 이의방에게 붙인 또 다른 이유는 이의방의 독주를 막기 위함이기도 했다.

누구든지 강력하고 완벽한 권력을 혼자서 오래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내 출생의 비밀을 알아낼 시간을 얻는 동시에 이의방의 총기를 흐릴 생각도 하게 되었다. 물론 이의방은 권력 욕심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총기를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세력에게 끝내 권력을 내어주고 처참하게 죽게 될 것이다. 난 그 후를 대비해야 한다.

그게 이 시대에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거다.‘다음은 정중부지.’

내가 알고 있는 기억을 더듬어봤다.‘파락호 정균과도 좀 친해질 필요가 있어.’난 정중부와 함께 정균에게도 주목했다.

권력의 마수에 빠져 미쳐 날뛰는 이의방을 자신들의 권력 야욕 때문에 제거한 정중부와 정균이다. 난 내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그 둘과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의 힘은 있어야 해.’고려는 사병을 거느릴 수 있는 체제다. 다시 말해서 난 소수의 정예 병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백화가 내 밑에 오면…….’우선 백화를 내 부하로 삼을 생각을 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백화는 나에게 구명지은을 입었다. 그리고 어린 흥선도 떠올렸다.

지금은 환관들의 대부분이 도륙을 당해 힘을 잃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황제와 태후의 최측근에서 보좌를 하는 인물들이다. 그건 다시 말해서 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환관은 알고 있다는 거다.

그럼 정보를 장악하게 된다.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무비의 말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진하게//

“이 궁에는 말이다, 벽에도 귀가 있단다.”

//‘맞아! 있어. 그 귀를 내 편으로 만드는 거야.’원래 인간들은 자신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구해주는 자를 따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지금 환관들은 엄청난 위기에 빠져있다. 물론 난 모든 환관을 살리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를 살려서 요소요소에 배치를 한다면 내게 좋은 귀와 눈이 될 것이다.‘나는 앉아서 궁을 훤히 볼 것이야!’난 그렇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그 짧은 시간에 정리했다.

나는 내 부하나 다름없는 견룡군 병사 중 열 명을 이의방의 사택에 남겼다.

“지금은 혼란한 시기다.”

나는 목소리에 무게를 실어서 말했다.

“그러니 견룡행수님의 사택을 경계함에 있어서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사실 무비를 감시하라고 이곳에 병사를 남긴 것이다.‘그럼 이제 내 집이 된 곳으로 가볼까?’난 옆에 있는 병사를 봤다.

“역적 김돈중의 사택은 어디에 있느냐?”

“예, 황도 서쪽에 있습니다.”

“그럼 그곳으로 가라!”

내가 흥선과 백화를 구해오기 위해서는 나를 따르는 열 명의 견룡군 병사들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게 그들에게 임무를 줘야 한다. 그리고 나를 따르는 열 명 중 여덟 명에게 김돈중의 사택을 경계하라고 명령을 내렸다.물론 그곳은 내 집이 될 것이다.

결국 김돈중의 사택으로 뛰어가는 놈들은 이제 내 집의 문지기가 되는 거다.이제 내게 남은 것은 둘이다.

이 정도는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백화가 변복을 할 때까지는 누구도 그녀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안 돼.’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흥선이 내게 부탁한 일이 떠올랐다.

‘아차! 자신의 할아버지를 찾아달라고 했지.’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흥선의 말대로라면 흥선의 할아버지는 분명 환관일 것이다.

불알이 없는 것들이 목도 없게 되어 수도 없이 죽었다. 그러니 그 새벽에 도륙을 당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잡혀있다면 문관들이 갇혀있는 그곳일 텐데…….’난 그런 생각을 하며 한 번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린놈을 울게 할 수는 없지.’난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하여 다시 입궁을 했다.지엄하기 그지없는 황궁은 겨우 위의 직위를 가진 내가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곳으로 변해있었다.

난 바로 입궁해서 문신들과 환관들이 감금되어 있는 전각으로 걸음을 옮겼다.아직까지도 치워지지 않은 시체들이 즐비했고, 역겨운 피 냄새가 진동했다.

병사들이 일부 치우기는 했지만 그 새벽의 참상은 여기저기에 남아있었다. 원래 이런 더러운 일은 환관들의 일이다.

하지만 하급 환관들을 지휘할 환관들이 모두 죽거나 감금되었느니, 누구 하나 밖으로 나와 이것들을 치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나온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일 거다.자신들의 눈앞에서 고급 환관들이 죽었으니 겨우 목숨을 부지한 하급 환관들은 두려워서 나오지 못하는 거였다.

‘빨리 치워야겠다.’난 시체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생각을 하며 환관과 문신들이 감금되어 있는 전각 앞에 섰다.역시 순검군 병사들이 그곳의 경계를 서고 있었고, 그들을 지휘하는 위장군관 하나가 근엄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왜 이런 허드렛일 같은 것을 하고 있는가, 하는 불만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이렇듯 모든 무신들이 무신정변의 성공으로 인해 단맛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경계를 서고 있는 저 위장처럼 다른 무신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자들도 아주 많았다.

“누구냐?”

내가 전각 앞에 서자 병졸이 나를 막아섰다. 그 순간 나를 따르던 두 명의 견룡군 병사가 그들을 노려봤다.

“견룡군 위장님이시다.”

지금 이 시기에 견룡군은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용어일 것이다.

“견룡군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그리고 이분은 견룡군 행수이신 이의방 행수님의 처조카가 되시는 분이시다.”

“그렇습니까?”

순검군 병사들이 나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뭔 일인가?”

그 때, 나와 직급이 같은 군관이 빠르게 걸어왔다. 그리고 어린 나를 봤다.

“그대는 누구지?”

위장군관은 그렇게 물었지만 다 듣고도 다시 묻는 것일 게 분명했다.

“견룡군 위장 이회생이라고 합니다.”

“견룡군 위장?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인가?”

“심문을 해야 할 환관이 있어서 데리러 왔습니다.”

“심문을 할 환관이라고?”

“그렇습니다.”

난 짧게 말을 했고 위장군관은 나를 위아래로 봤다.‘뭐 이런 게 다 있지?’지금 견룡군이면 엄청난 파워를 가진 부대다. 그리고 그 수장의 처조카인 나를 저런 눈깔로 보다니. 이 위장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멍청하든지.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놈을 봤다. 그런데 멍청해 보이기는 하지만 근골이 장대한 것이 힘 꽤나 쓸 것 같았다.‘잘만 부리면 꽤 쓸 만하겠는데?’난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윗분들이 데려오라고 명하셨겠지?”

“물론입니다.”

“알았다, 들어가봐라!”

이제야 허락이 떨어졌다.나는 천천히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전각 안은 비참함의 극치였고 불안함과 두려움이 가득했다.‘분위기가 정말 묘하다.

’정말 얼음처럼 차갑고 돌처럼 굳어진 분위기는 저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미래를 예상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 충분했다.그들이 예상하고 있는 미래는 목이 잘리는 참수형일 거다.

물론 이들 중에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는 억울한 자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모두가 억울한 존재들일지도 모른다.예전과 다르게 지금 이곳에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권세와 권위, 그리고 문신이라는 자신감과 자긍심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래서 권불십년이야! 권불십년!’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인상을 찡그렸다.지난 새벽에 일어난 무신정변의 최대 수혜자는 이의방과 이고, 그리고 채원과 정중부일 거다.

그 아래에 내가 있고, 그것이 훗날 나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이 순간 분명한 것은 후일이 무척이나 걱정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은 빠져나갈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거였다.

‘이의방과 같이 죽을 수는 없는데…….’물론 이의방이 정중부의 아들 정균에 의해 암살이 되는 것은 4년 후의 일이다. 하지만 4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신선놀음에 도끼 자루가 썩는 줄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원래 좋은 세월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빠르게 흘러가는 법이다.그리고 지금의 나는 4년 후라고 해도 겨우 20대 초반에 불과하다.

그 젊은 나이에 권력의 마지막 끝물까지 쪽쪽 빨아본 이의방과 같이 죽을 수는 없었다.그러니 지금 저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웅크리고 있는 저들을 보며 나 스스로를 담금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있기는 있어야겠어.’난 그런 생각을 했다.고작 위의 직위를 가진 어린 내가 들어서는 순간, 며칠 전까지 세상의 모든 권세를 쥐고 있던 문신들이 모두 다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어떻게 저런 것들이 무신들을 압박하고 권세를 누리고 살았지?’나는 전각 안을 쭉 살폈다. 어린 흥선과 약속을 했으니 찾아보는 것이 도리다. 그리고 만약 이곳에 이숭겸이 없다면, 그는 지난 새벽에 이름 없는 병사의 칼에 죽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환관이 그 새벽에 살아남기는 쉽지 않지.’내가 인상을 찡그리자 그 모습을 본 문신들과 환관들은 두려워하며 모두 내 눈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저기 문극겸이 있네.’난 문극겸을 봤다.

‘역시 뭐가 달라도 한참은 달라!’내가 이의방에게 추천할 문극겸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그는 두려움을 떨치려는 듯 가부좌를 틀고 지그시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생을 정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어떠한 미동도 없이 무척이나 차분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문극겸은 지금, 이 사지에서 살아날 방법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그가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도 지금 내가 보는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담담하고 차분하다.

위기 때 차분하고 담담한 사람은 마음에 칼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 무섭다는 소리가 있다.원래 두려움을 잘 느끼는 비겁쟁이가 목소리만 크고 행동이 더 잔인한 법이다. 그리고 겁먹은 개가 더 크게 짖는다는 소리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문극겸은 무척이나 담대한 인물이다.‘당신이 나 대신에 이의방과 짝짜꿍을 잘해주면 되는 거야.’난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문극겸 주변에 있는 자들을 봤다.

그 주변에 몇몇 환관들의 모습이 보였다. 뭐, 수염이 없으니 찾기도 쉬웠다.

“여기에 이숭겸이라는 환관이 있나?”

내 말에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했던 전각 안이 조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숭겸이 누구냐고 서로에게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없나?”

사실 이 순간 자기가 이숭겸이라고 말하고 나온다는 것도 어쩌면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이숭겸을 죽이러 온 자라면 스스로 일어나 죽겠다는 것이 되니, 나라도 쉽게 밝히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흥선의 이름을 말해야 하나?’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숭겸을 찾지 못하면 구해주지도 못하니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이숭겸이오.”

나이가 지긋한 환관 하나가 천천히 일어나 나를 봤다.난 이숭겸의 얼굴을 보고 조금은 놀라웠다.

자신을 이숭겸이라고 밝힌 환관은 정말 환관답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보통 마흔이 넘으면 얼굴이 그 사람을 말해 준다는 말이 있다.

‘초로의 촌부 같군.’고려 중기의 환관들은 모든 권세를 누리던 인물들이다. 가난한 평민들 중에 자식이 굶어 죽으면 다음 생에는 환관집 개로 태어나라고 넋두리를 할 정도로 불알 말고는 다 있는 것들이 환관이다. 그리고 불알이 없으면서 마누라는 있는 것들이 환관이었다.

그러니 그 눈은 탐욕이 가득하고 거짓된 욕망으로 가득할 테니, 눈빛이 날카롭고 쥐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을 이숭겸이라고 밝힌 환관은 그저 욕심 없는 촌부처럼 보였다.그래도 환관은 환관일 거다.

“당신이 이숭겸이야?”

난 바로 반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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