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34화 (34/620)

< -- 간웅 2권 -- >김돈중은 며칠 전 새벽에 만난 이회생의 말을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돈중은 급하게 말 머리를 돌렸다.물론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서경이었다. 하지만 길을 알지 못하는 감악산으로 가는 것보다, 빠르게 말을 달려 대로로 가는 게 더 안전하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이랴! 내 반드시 무뢰배 같은 무부들을 조정에서 몰아낼 것이야!”

김돈중은 그렇게 다짐하며 개경 사람들로부터 괄시와 천대를 받던 서경으로 말을 달렸다.‘도천밀교!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뿌리를 뽑으려 했지만 도천밀교가 여전히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김돈중의 아버지는 김부식이다. 그리고 김부식은 고려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 역시 권력을 좇는 존재였다.

그는 묘청과 대립하여 묘청의 난을 진압한 인물이기도 하다.김돈중이 마음속으로 말한 도천밀교는 묘청이 난을 일으키기 전부터 묘청을 따르던 비밀 결사 조직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김돈중은 부친의 적인 도천밀교를 이용해서 고려를 뒤엎은 무신들을 상대하려는 것이었다.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천밀교의 원수 같은 김부식의 자식인 자신을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이해시키고 받아들이게 만드느냐는 점이다.

‘그들이 따르던 자의 꿈을 이루게 해주면 되겠지.’그들이 따르던 자의 꿈!

따르던 자는 묘청일 것이고 그의 꿈은 서경천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꿈이었다. 진정 도천밀교가 원하는 것은 칭제건원과 금군 정벌로 인한 진정한 황제국 고려인 것이다.

‘내 선친의 유업을 따르지 못하고 반대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말인가!’김돈중은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김돈중은 예전 김부식의 임종 때를 떠올렸다.그 당시 생의 마감을 눈앞에 둔 김부식은 힘없는 손으로 장자인 김돈중에게 자신의 옆으로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무슨 이유에선가 김부식은 자신의 임종을 지켜보는 것을 오직 장자인 김돈중에게만 허락했었다.그때 김돈중은 부친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부친의 마지막 명이라 어쩔 수 없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 가까이 와라!”

김부식은 죽어가는 목소리로 조용히 김돈중을 불렀다.

“예, 아버님!”

김부식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유언이 되는 순간이었기에, 김돈중은 아버지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바짝 다가가서 앉았다.

“너는 항상 서경을 주, 주시해야 할 것이다.”

“예?”

“서경은 역도의 땅이다.”

이렇게 죽는 순간까지도 김부식은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한 치의 후회도 없는 것 같았다.

“그, 그리고 서경과 그 인근에 숨어있는 도천밀교를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이건 김돈중이 처음 듣는 말이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천밀교다, 도천밀교! 묘청을 따르는 자들이 여전히 이 고려에 숨어있다.”

김부식은 마지막 생의 힘을 다해 자신의 아들에게 도천밀교에 대해 말해 줬다.그 순간 김돈중은 부친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그게 가능하옵니까?”

“그래, 가능하다. 그, 그들의 원래 신분은 승려다. 그래서 조정은 그들을 끝내 말살하지 못했다. 그들은 절간에 몸을 숨기고 여전히 이 고려를 뒤집기 위해 웅크리고 있다. 그, 그러니 너는 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천밀교를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김부식은 그렇게 말하고 파르르 경련했다.

“아, 아버님!”

“작은 절마다, 또 작은 암자마다 도천밀교가 있다. 그러니 주의 깊게 찾아내서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 그리고 그들의 몸 깊은 곳에 그들만이 아는 자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무슨 자인입니까?”

“거기까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고려를 망하게 할 도천밀교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그러니 너는…….”

그렇게 김부식은 자신이 하지 못했던 마지막 일을 유언으로 남기고 죽었다. 지금 쫓기고 있는 김돈중이 그것을 떠올린 것이다.

“도천밀교!”

김돈중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어쩌면 지금 김돈중은 위험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김부식의 유언처럼 도천밀교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들의 목표는 우선 자신들을 겁박한 김부식의 혈족을 제거하는 일일 것이다.그런 자들에게 김돈중은 지금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김돈중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지금 당장 서경 유수에게 달려간다 해도 무신들이 성공한 모반을 반역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도울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니 모든 기반을 다 잃은 김돈중에게 지금 이 순간 오직 희망이 되는 것은 묘청이 남기고 죽은 비밀결사 조직, 도천밀교뿐이었다.‘그래! 고려를 바로잡아야 한다! 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들과 손을 잡아야 해!’김돈중은 다시 굳게 다짐했다.

이 순간 이회생에 의해 고려의 역사는 원래 가야 할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도천밀교!칭제건원과 금군 정벌이 목표인 세력!그들은 새롭게 꿈틀거리는 무신정권에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 지금 나를 도울 수 있는 것은 도천밀교뿐이다.’김돈중은 그렇게 확신하며 급히 말을 달렸다.

정중부가 자신의 수하인 중랑장 한섬과 함께 급하게 장군방으로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있던 노장군들이 상장군 정중부를 보고 몸을 일으켰다.하지만 그들의 표정을 보니 그다지 반갑게 정중부를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급한 상황에 어디를 다녀오는 것입니까?”

거만하기 짝이 없는 이소응은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정중부에게 물었다.

“내 태자 전하를 만나고 왔네.”

정중부의 말에 노장군들은 티 나게 인상을 찡그렸다.

“태자 전하께서 무어라 하십니까?”

“태자 전하께서는 이번 일에 대해 심히 걱정이 많다고 하셨네.”

이것은 정중부의 거짓말이다. 많은 것을 혼자서 스스로 해야 하는 정중부이기에 지난 새벽 자신의 실책을 이런 식으로 덮으려는 것이다.

같은 시간, 이의방과 채원은 견룡군 부하로부터 정중부가 장군방으로 들어섰다는 보고를 받고 급하게 그곳으로 달려갔다.그리고 나 역시 계획한 일들을 모두 끝낸 후에 이의방으로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왜 이리 늦게 온 것이야!”

이의방이 처음으로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토사곽란이 나서…….”

“지금 네가 한가롭게 똥이나 쌀 때가 아니다.”

“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입니까?”

내 물음에 이의방은 인상을 찡그렸다.그 때, 김돈중의 저택으로 갔던 이고가 온몸에 피를 묻히고 궁궐 안으로 들어서다가 이의방을 보고 달려왔다.

“내 다녀왔네.”

이고는 이의방을 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래, 나중에 이야기하세.”

이의방은 이고의 노고를 치하하지도 않고 바로 다시 나를 봤다.

“내 김돈중 식솔들의 싹을 뿌리째 뽑아놓고 왔네.”

“알았다니까.”

이의방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한 채였다.

“지금 정중부가 장군방으로 들어갔다.”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뭐가 그래서요야!”

이의방이 다시 한 번 버럭 소리를 질렀다.이 순간 정중부가 왜 장군방으로 급하게 들어갔는지 나는 유추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첫 번째 이유가 이 거사가 성공을 했으니 뒷수습을 위해서일 것이다. 거사와 혁명이 성공했더라도 그 기간이 짧은 경우들을 가만히 보면 모두 사후 처리가 미흡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의방이 공예태후의 지엄함을 빌려 용호군을 장악한 순간, 이번 거사가 삼일천하로 끝날 확률은 크지 않았다.그리고 그 사실을 정중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늙은이가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는 거야!’난 그런 생각을 하며 이의방을 봤다. 물론 여기까지는 이의방도 능히 짐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급히 나를 찾았을 것이다.

이래서 이의방과 무신들은 황제를 압박하고 정사를 좌지우지했지만 역성혁명은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나갈 길이 막힌 정중부는 뒤로 돌아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보현원에 감금된 황상 폐하를 궁으로 모시고 올 생각인 것입니다.”

“뭐라?”

순간 이의방과 이고, 채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 일은 절대 없게 해야 할 것이야!”

이의방은 입술을 깨물며 내게 말했다.

“아닙니다. 황제 폐하께서 오셔야 일이 마무리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폐위의 수순을 밟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차가운 말에 순간 세 사람은 숨이 턱, 하고 막히는지 놀란 눈으로 나만 봤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아, 아무리 그래도…….”

“우선 당장은 아니지만 보현원보다 이 궁에 두고 감시를 하는 것이 조금은 이로울 것입니다.”

“으음.”

내 말에 이의방은 깊은 신음을 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정중부는 황제 폐하를 이용해서 이번 거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쉽지 않을 것입니다.”

“뭐가 쉽지 않다는 것이냐?”

“다른 노장군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들은 이제 상장군이 하자는 대로 쉽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우린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냐?”

이의방은 이 순간 우리라고 표현했다. 혹시 자신에게 이고와 채원이 불만을 품지 않을까 해서 단어를 사용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 것이다.

“세 분은 노장군들에게 힘을 실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힘을?”

“그렇습니다. 정중부가 온건파라면 행수님과 산원들께서는 강경파가 되시는 겁니다. 온건파보다 강경파가 힘을 얻게 되는 법입니다.”

“알았다, 너도 나를 따라라!”

“예?”

순간 난 당황했다.이의방이 따르라는 곳은 분명 장군방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모든 장군들에게 노출이 된다. 어쩌면 이미 가장 많이 노출된 놈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지금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다른 일?”

“그렇습니다.”

“무엇이냐?”

“무비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지 않습니까?”

“무비를?”

“그렇습니다. 무비가 옥새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분명 옥새의 행방을 알고 있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절대 이 황궁에서 옥새를 찾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 무비가 옥새를 숨겼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러니 무비를 다른 곳으로 피신시켜야 합니다.”

내 말에 이의방이 나를 잠시 봤다.

“무비를 숨기는 곳으로 김돈중의 집이 어떠한가?”

이고가 이의방에게 말했다.

“김돈중의 집?”

“그렇다네.”

“아니야! 그곳은 다른 장군들이 들이닥칠 수도 있어. 그러지 말고 우선은 내 집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어.”

이의방은 그렇게 말하고 나를 봤다.

“회생아!”

“예, 행수님!”

“이 순간부터 너를 견룡군위로 명한다.”

순간 난 당황스러웠다.

“예?”

“너는 견룡군위로, 견룡군 이십여 명을 이끌고 무비를 내 집으로 피신시켜라!”

“예,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출세에 나는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우선 이의방이 나에게 자신의 부하들 앞에서 위의 직위를 명한 것은 내가 좀 더 편히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내가 편하게 움직여야 자신이 꾸미는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릴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내 능력을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말이다.‘위라, 나쁘지 않네.’난 피식 그냥 웃고 말았다.

6개월 후 병을 핑계로 물러설 자리니, 위면 어떻고 중랑장이면 어떠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돈중의 집이 비었다고 했지?”

“그렇다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