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33화 (33/620)

< -- 간웅 2권 -- >기록상으로는 880년대에 신라 헌강왕이 포석정에서 놀았다는 것이 처음 나타나나, 7세기 이전부터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그리고 927년 11월, 신라 경애왕이 이곳에서 화려한 연회를 벌이던 중 뜻하지 않은 후백제군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하여튼 좋은 꼴을 보지 못한 곳이 바로 포석정인 셈이다.‘옥새를 품은 연꽃이라.

나쁘지 않지.’난 그렇게 생각하며 씩 웃고 지엄한 옥새를 포석정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못에 힘껏 던졌다.풍덩!그러고 나서 급히 돌아섰다.

‘그럼 이제 무비를 만나볼까?’무비를 만나서 좀 편하게 이야기해 봐야겠다.누가 뭐라고 해도 난 무비의 구명지은이니 받을 것이 있으면 받고, 도울 것이 있으면 돕고, 그렇게 상부상조해야지.‘이의방의 애첩이 될 여자니 친하게 지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난 그렇게 생각하며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고려의 모든 국사를 보던 곳이 이제는 무비를 가둔 곳으로 변한 지금, 고려의 황권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한 손에는 의종을 쥐고 흔들고, 다른 손으로는 권력을 쥐고 흔들던 무비 역시 이제는 이곳에 갇혀 자신이 괄시하던 무신들의 처분을 기다려야만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상궁 하나 지키지 않는 무비가 감금된 대전 입구에서 난 정중하게 무비에게 청했다. 이건 내가 무비와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나온 행동이다.

“나를 조롱하는 것이 누구냐!”

대전 안에서 앙칼진 무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겠습니다.”

난 그렇게 말하고 조심히 대전 문을 열고 들어섰다.그 순간 나를 본 무비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평온한 눈빛으로 변했다.

“그래, 날 이곳에 가두고 또 무슨 치욕을 주려고 이의방이 사람을 보낸 것이냐?”

무비는 까칠하게 굴었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서도 자신은 황제의 애첩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은 모양이었다.

“누가 보내서 온 게 아닙니다.”

“뭐라?”

무비는 나를 빤히 봤다.

“그렇습니다, 제 발로 스스로 왔습니다. 그 새벽에 제가 한 말을 기억하시죠?”

“으음.”

작은 신음을 하는 것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나를 보러 온 이유가 무엇이냐?”

무비는 질문을 던지며 나를 유심히 살피는 것 같았다. 그것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말이다.

“진정 몰라서 이러시는 겁니까?”

“뭐라?”

“그 새벽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난 이미 옥새를 다른 곳에 던져놓고 무비에게 옥새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이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을 장졸 둘이 알고 있다. 그래서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또 무비를 압박해서 내 출생의 비밀을 요행히 알게 되면 좋은 일이다.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무비는 여전히 시치미를 뗐다.

“모르십니까?”

“뭘 말하는 것이냐?”

“좋습니다. 그럼 제 입으로 다시 여쭙죠. 옥새는 어디 있습니까?”

내 말에 무비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옥새라니? 내가 왜 옥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셨습니까?”

난 야릇하게 웃었다.역시 무비도 이 순간 옥새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유일한 무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옥새가 이미 내 수중 안에 들어왔다는 점이다.‘옥새를 품은 연꽃이 곧 활짝 피겠지.’무비가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나에겐 옥새가 없다. 어리고 천한 것이 어디서 감히 내 앞에서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보는 것이냐!”

지금 이 순간 무비는 자신의 위기를 지금까지 누려 왔던 지엄함으로 넘겨보려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

“앞으로 그렇게 함부로 입을 놀리시다가는 그 어떤 무인의 칼에 베일지도 모릅니다.”

“이노옴!”

“세상이 뒤집어졌습니다. 그러니 이제 무인들을 괄시하면 큰일 날 것입니다.”

내가 당당하게 말하자 무비는 표독함을 버리고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뭐, 보기보다 적도 많으시더군요.”

“뭐라?”

“공예태후께서 꼭 무비 마마를 사사하라고 제게 은밀히 언질을 주셨습니다.”

이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아주 효과가 좋은 거짓말이기도 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고부 사이는 좋지 않은 법이니.

“앞으로 한 발 한 발 조심히 가셔야 할 것입니다.”

“그 말을 왜 내게 해주는 것이냐?”

무비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다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난 야릇한 대답을 그녀에게 던져주었다.

“다 이유가 있다?”

“그렇습니다. 곧 견룡행수님의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훗날 저를 잊지 마십시오. 그래도 제가 무비 마마에게는 구명지은이지 않습니까.”

내 말에 무비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훗날 너를 잊지 말아달라고?”

“그렇습니다. 지금도 무비 마마는 지엄한 분의 여자이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되실 것입니다.”

내 말의 뜻을 무비 정도 되는 영악한 여자라면 알 것이다.

“네 이놈! 내 앞에서 무슨 망발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이냐!”

“태양의 죄가 크면 다음 날 다른 태양이 뜨는 법입니다.”

“뭐라?”

“이 황궁으로 견룡군이 들어설 때부터 정해진 수순입니다. 그러니 훗날 저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그, 그 말을 하려고 온 것이냐?”

“물론 그건 아닙니다. 옥새를 꼭 잘 숨겨 두시라고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이건 내 거짓말이다. 이미 내가 옥새를 다른 곳에 숨겨놨으니 말이다.

“으음.”

무비는 대답 대신 신음을 흘렸다.

“오늘 해가 중천에 떴을 때 군사들이 갈 것입니다. 은밀히 그들을 따라가시면 생명을 보존하는 데 지장이 없을 겁니다.”

“뭐라?”

“이 모든 것이 견룡행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지금 궁궐에는 나라를 망친 무비부터 죽이자고 의견이 모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잠시 몸을 피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당돌한 내 말을 듣고 무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나만 보고 있었다.

“그러니 잠시 몸을 피해 계십시오.”

“잠시 몸을 피해있어라?”

“그렇습니다. 그 대신 숨겨놓은 것은 절대 건드리지 마시고요. 새벽에도 말씀드렸지만 그게 무비 마마를 살리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내 말에 무비는 다시 뚫어지게 나를 봤다.

“나한테 왜 이러는 것이냐?”

이건 진정 무비가 궁금해하는 부분일 것이다.

“저도 한자리 차지해 보려고 합니다. 이유가 되겠습니까?”

이건 우선 거짓말이다. 내가 무비를 돕는 이유를 밝힐 필요는 없다. 나는 단지 지금 내가 하는 말에 무비가 어떻게 반응해 오는지만 보면 되는 것이다.

“한자리를 차지한다?”

“그렇습니다. 이번 거사에 공은 없는데 머리는 있어 대부분 제가 판단한 대로 움직인 겁니다.”

“그게 전부이냐?”

“그렇습니다. 뭐가 더 있겠습니까?”

“정말이더냐?”

“뭐, 더 말씀해 주실 것이 있다면 좋기는 합니다.”

난 살짝 본색을 드러냈다. 내 입으로 묻게 되면 한 수 접게 되는 것이기에 이렇게 뜸을 들인 거였다.

“내가 네가 더 말해 줄 것이 있다고?”

“없사옵니까?”

난 직설적으로 묻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그녀가 답을 해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없다. 그건 그렇고, 너는 벼락을 맞고 죽었다고 들었다.”

이 황궁에서 황제의 어가에서 일어난 일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중요한 인물이라는 증거가 분명했다.

“그건 어찌 아십니까?”

정곡을 찌르는 내 물음에 무비는 놀라며 잠시 인상을 찡그렸다.

“그냥 들었다.”

“그냥 들을 만큼 제가 중요한 인물이었습니까?”

“뭐라고?”

무비와 내 머리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나는 무비의 물음을 통해 이미 내가 들어앉은 이 몸이 예사 인물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러니 이제는 모질게 밀어붙여야 한다.

“벼락을 맞은 것을 확인할 만큼 중요한 인물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무비는 피식 웃었다.

“천벌이 아니라면 벼락을 맞는 자가 어디 있겠느냐?”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들은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도망친 백화라는 계집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럼 어찌 이야기만 듣고 저인 줄 아셨습니까?”

다시 예리한 질문이 이어졌다.

“무엇을 알고 싶은 것이냐?”

순간 무비가 나를 보며 야릇하게 웃었다. 자신의 위기를 요염한 눈빛으로 만회해 보겠다는 심산 같았다.

‘30대 후반일 것인데 몸은 20대 초반 같다. 그리고 미색도 경국지색이다.’무비를 보며 나도 모르게 흑심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의 본능에 의한 것이고, 나는 이 순간 누구보다도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런 싸구려 창부의 웃음은 다른 이들에게나 흘리십시오.”

그러자 무비가 나를 노려봤다. 어린 내 한마디에 모멸감이 드는 모양이었다.이 대전에 들어섰을 때 잘 지내보자던 내 다짐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순간이었다.

“뭐라? 뭐라 했느냐?”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너는 지금 나랑 척을 지겠다는 것이냐?”

“제가 원하는 것을 주시면 저도 드릴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지? 내가 너에게 줄 게 없는데. 이 몸이라도 괜찮으면 가져가든가.”

다시 한 번 의도적인 유혹이 이어졌다. 그녀는 말만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농익은 그 몸을 달라고 하거나 덤벼들면 조롱하듯 박장대소를 할 게 분명했다.‘준다 준다 말하는 년 중에 진짜 주는 년 없다.’이 위급한 순간에 계집을 탐할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다.

“말씀을 해주시지 않겠다는 거군요.”

“해줄 말이 없다.”

“있으실 때 부르십시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제가 구명해 드렸다는 겁니다. 은혜는 은혜이지 않습니까?”

“알겠다, 그것은 잊지 않으마.”

“좋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제게 말씀해 주실 날이 있을 것이옵니다.”

“그래, 두고 보자.”

무비는 나를 보며 야릇하게 웃었다. 이것은 유혹이 아니라 조롱이다. 하지만 그 조롱을 이 순간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이 몸뚱이의 신분이 예사롭지는 않다는 생각을 다시 굳히게 되었다.‘있다, 뭔가 있어.’의문을 풀려고 왔지만 의문이 쌓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묻는다고 해도 내가 얻을 것은 없었다.

그리고 더 묻는다면 구차해 보일 것 같았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난 바로 무비에게 부복했다. 지금까지 무비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 무비는 나를 두려움, 그 이상의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고 느껴졌다.

‘저런 눈빛을 보면 정말 나를 아는 것 같은데…….’하지만 지금은 여기까지 하는 것이 좋다. 원래 빨리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다.

무비를 살려놓으면 언젠가는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될 테니.그렇게 무비와의 독대가 끝이 났다.7장 회생! 정구품 견룡위장이 되다감악산 입구.김돈중은 천신만고 끝에 종복과 함께 추적하던 병사들을 따돌리고 감악산에 도착했다.

감악산을 보고 있자니 회생이 한 말이 떠올랐다.‘절대 감악산으로는 가지 말고 종복을 조심하라 했어.’이렇게 말은 그 사람이 닥친 순간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법이다.

‘내가 만약 저놈이라면 어떻게 할까?’김돈중은 그렇게 가정하고 종복을 보았다.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종복은 한없이 충성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다.

그게 더 마음에 걸리는 김돈중이었다.‘너무 과한 것은 숨기는 게 있다는 걸 뜻해!’김돈중은 감악산과 종복을 보며 오만 가지 가정을 다 해봤다.

“이 길이 서경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옵니다.”

종복이 김돈중에게 말했다.

“그러냐?”

“그렇습니다. 산세가 험하기는 해도 가장 빠른 길이옵니다.”

“그래, 나는 네가 있어 참으로 안심이 되는구나!”

“감사합니다, 대감마님!”

“그나저나 내 식솔들도 문제지만 너의 식솔들도 참으로 문제구나.”

김돈중은 힐끗 종복을 보며 말했다.

“천한 저의 식솔은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훗날 너의 공을 잊지 않으마.”

“감사하옵니다, 대감마님!”

종복은 그렇게 말하고 마상에서 허리를 굽혔다.그 순간 김돈중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급하게 뽑아 종복의 목을 향해 내려쳤다.

“이얍!”

서어억!

“으악!”

히이이잉!김돈중이 휘두르는 칼에 놀라 종복이 타고 있던 말이 갑자기 요동치는 순간, 머리가 없는 종복의 몸이 마상에서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역시 사람의 말이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법이다. 이회생의 말 한마디가 새롭게 역사를 바꿔놨다.

“너에게는 미안하지만 종사가 더 중한 법이다. 내 훗날 무부들을 모두 몰아내고 너의 가솔들을 편히 돌볼 것이니 구천을 떠도는 혼령은 되지 마라.”

김돈중은 종복의 시체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그리고 다시 감악산을 봤다.‘저곳으로 가지 말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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