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30화 (30/620)

< -- 간웅 2권 -- >

“이 좋은 날에 괜찮다. 말해 봐라.”

이소응은 거사를 성공하여 기쁜 것 같았다. 거사를 성공하여 목이 잘리지 않았으니 기쁜 것은 당연할 거다. 만약 실패했다면 빠져나갈 구멍도 만들지 못하고 영락없이 목이 잘려 성문에 걸렸을 테니.

“그게 말입니다.”

“그게 뭐?”

“똥 싸러갑니다.”

“뭐?”

순간 이소응은 똥 씹은 표정을 했다. 그리고 난 이소응을 빤히 보며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구역질이 나서 똥 싸러 갑니다.”

“구역질이…….”

이소응에게는 마치 자신의 몸에서 구역질이 나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그, 급해서 이만…….”

난 바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대전을 향해 뛰면서 씩 웃었다.‘조금만 지나면 코를 찌를 똥 냄새가 날 거야!’

대장군 이소응처럼 이 거사를 성공시킨 무인들에게선 썩은 악취가 날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런 썩은 것들의 틈에서 어떻게든 썩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권력? 개나 물어가라고 해!’난 그런 생각을 했다. 원래 권력은 양날의 검이다.

그 끝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남을 해할 수도 있고, 스스로를 상하게 할 수도 있다.그리고 누가 그 칼자루를 잡았느냐에 따라 세상은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끝내 변하지 않는 것은 언젠간 그 칼자루를 꼭 쥔 손에도 힘이 빠진다는 사실이다.

그럼 칼은 떨어질 것이다. 떨어진 그 칼을 누군가가 주워서 제일 먼저 칼을 떨어트린 자의 손목을 벨 것이고, 그다음에는 웃으며 목을 칠 것이다.

그러니 권력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을 상하게 하는 가장 무서운 칼인 셈이다.황궁 안에 마련되어 있는 장군들의 집무실 안.이소응과 기탁성을 비롯한 노장군들은 마치 자신들이 이번 무신정변을 주도한 것처럼 상석에 앉아있고, 그 옆 구석 자리에 실질적으로 검에 피를 묻힌 이의방과 이고, 그리고 채원이 마치 한직으로 밀린 관리처럼 앉아있다.

“이제 그대들의 노력으로 황궁을 장악했네.”

이소응의 말에 기탁성이 그를 봤다.

“물론 견룡행수의 공이 크기는 하지만 그래도 응양군과 용호군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한 이소응 대장군의 공 역시 작지 않습니다.”

“하하하! 부끄럽네. 그냥 나는 내 할 일을 한 것뿐이네.”

“맞습니다, 대장군들의 노고가 정말 크시옵니다.”

이의방 역시 이소응과 기탁성, 그리고 양숙의 공을 치하했다.

“고맙네, 이 행수! 그런데 도망을 친 김돈중을 아직 잡지 못했다고?”

이소응은 처음으로 장군방에서 인상을 찡그렸다.

“예, 김돈중만 잡으면 이번 거사에 화룡점정을 찍을 것 같사옵니다.”

“그렇지, 김돈중을 잡아 죽여야 일이 마무리되지.”

“그렇습니다.”

“그럼 김돈중의 구족을 멸하기 위해 병사들은 보냈나?”

“이고가 갔습니다.”

“으음, 이고 산원은 문신들을 극도로 싫어하니 오늘로 김돈중의 씨들이 끝장나겠군.”

“그럴 것입니다.”

그랬다. 이고가 지금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김돈중의 혈족을 모두 멸족시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사실 이번 일은 무슨 영문인지 이고가 자청했다.

“그런데 김돈중이 그냥 도망치지만은 않았을 것이야.”

역시 늙으면 그냥 죽는 법이 없다고, 그래도 그 늙은 머리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듯했다.

“개경까지 왔다가 도망쳤다고 합니다.”

채원이 자신의 부하에게 들은 이야기를 이소응 대장군에게 해줬다.

“왔는데 놓쳤다는 말인가?”

이소응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개경 안에 들여놓지 않는 일도 어려웠습니다.”

채원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소응에게 반기를 드는 것처럼 말했다.

“개경에 관문이 총 스물다섯 개이옵니다. 그 모든 관문을 순검군으로 장악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채원의 말에 이소응은 한동안 채원을 보다가 옆에 있는 이의방을 보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렇지, 맞는 말이야! 그래, 스물다섯 개의 관문을 막아낸 채원 산원의 공도 아주 크지.”

이소응의 말에 채원은 고개를 돌려 인상을 찡그렸다.따지고 보면 이의방 다음으로 많은 일을 해낸 것은 자신이라고 채원은 생각했다.

지금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노장군들은 말이 좋아 응양군과 용호군을 막은 것이지, 실제로는 각 군의 장군들을 만나 의기투합하여 거사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은 것이기도 했다.‘체! 뭘 했다고 저렇게 거들먹거리는 건지…….’채원은 그렇게 속으로 노장군들을 욕했고, 이의방은 그런 채원에게 눈치를 줬다.

“으음! 그래, 이번 거사는 모두 다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었네. 자네들도 이만 물러가서 쉬게.”

이소응은 그렇게 말하며 어색한 이 자리를 정리하려고 했다.

“예, 대장군!”

이의방이 부복하고 등을 돌려 나왔고, 채원도 마지못해 인상을 찡그리며 나왔다.

“젠장! 이러다가 죽 쒀서 저 늙은 개 대가리에게 바치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

채원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퉁명스럽게 이의방에게 말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니 걱정 말게.”

“없기는 뭐가 없어! 이소응 저 늙은이 꼴을 못 봤나?”

“봤지.”

“참, 아무것도 한 것 없으면서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한 일이 없으니 거들먹거리기라도 해야지.”

이의방은 이소응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자네, 상장군을 못 봤나?”

채원의 말에 이의방은 태자가 있는 태자궁을 봤다.

“저곳에 계시겠지. 정말 죽 쒀서 개 준 것은 상장군이시지. 하하하!”

이의방은 자신 있게 웃었다.정중부는 태자궁에서 나오며 동이 트는 서산을 봤다.

‘그 기회의 밤에 나는 무엇을 한 것이냐…….’정중부는 판단을 잘못한 자신을 질책했다. 자신이 태자를 앞에 세우고 문신들을 척살한다면 후일 모든 정국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모든 무신들이 제각각 할 일을 하는 동안 정중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 정변이 끝나고 난 후에 자신이 가질 권력은 하급 무관인 이의방과 이고, 채원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어떻게든 이 불리한 상황을 자신의 머리로 바꿔 놓아야만 한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그 때, 정중부의 수하인 중랑장 한섬이 급하게 달려와 정중부에게 부복하며 말했다.

“상장군! 큰일 났습니다.”

“큰일?”

“그렇습니다. 노장군들과 이의방, 이고, 채원이 상장군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장군방에 모여 후일에 대해 논의를 했다고 합니다.”

이건 분명 한섬이 잘못 가지고 온 정보일 것이다. 하지만 상황 판단을 잘못했다고 자책하고 있는 정중부에게는 더욱 위기로 다가올 정보였다.

“그곳에 누가 있더냐?”

“대장군 이소응과 기탁성, 그리고 양숙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망할 놈들!”

정중부는 인상을 찡그렸다.‘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거사를 더욱 크게 만들지 않는 것뿐이야!’이렇게 이의방에게 선수를 빼앗긴 정중부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실책을 만회하려고 했다.

‘우선 더 이상의 살육부터 막아야겠지.’정중부는 장군방이 있는 곳을 뚫어지게 봤다.‘하찮은 것들이 힘을 얻었으니 기강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야.’다시 한 번 더 확인 차 한섬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의방과 이고, 채원도 그곳에 있더냐?”

“그곳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나왔다?”

“그렇습니다. 거사는 이미 끝이 났고 쉬기 위해 나간 것 같습니다.”

“절대 쉴 놈들이 아닌데…….”

정중부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의방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치밀한 성격의 이의방은 이 순간에도 다른 일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옥새는 누가 찾았다고 하더냐?”

“옥새는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옥새를 아직 찾지 못해?”

“그렇습니다.”

“으음, 그럼 아직 내게도 기회가 있겠군.”

이 순간 정중부는 무신정변의 후일 판도는 숨겨진 옥새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중부가 옥새를 가질 확률은 그가 회춘할 확률보다 낮아 보였다.

“가자! 대장군들의 마음을 내 쪽으로 이끌어 놔야겠다.”

“예, 상장군!”

“너는 너의 병사들을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라.”

“그런데 그게…….”

“그게 뭐?”

상장군 정중부가 부하인 중랑장 한섬을 봤다.

“이미 채원에게 병력의 대부분을 빼앗겼습니다.”

“병력의 대부분을 빼앗겨? 그건 또 무슨 엉뚱한 말이냐?”

“공예태후의 명으로 저의 군사 대부분을 견룡군에 배속을 시켰고, 또 일부는 채원의 순검군에 배속시켰습니다.”

이건 회생이 꾸민 계략이다. 이런 일을 염두에 두었기에 회생은 이의방에게 공예태후를 손아귀에 넣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대부분의 병력이 견룡군에 배속되었는데 왜 너는 채원 산원에게 병력을 빼앗겼다고 하는 것이냐?”

“그게 참 이상한데…….”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냐?”

“견룡군 대부분을 지금 채원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섬의 말에 정중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이의방이 자신의 병력을 채원에게 순순히 내어줬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뭐!”

정중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의방이 용호군을 장악했습니다.”

순간 정중부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도 황상이 없는 상태에서 공예태후의 명으로 이루어진 거겠지…….”

“그렇습니다.”

한섬은 마치 자신의 죄라도 되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으음! 그래서 이의방이 황상 폐하를 보현원에 감금시킨 것이었어.’자신이 겨우 행수인 이의방에게 놀아났다는 생각에 치가 떨렸다. 하지만 이 순간 이 국면을 해쳐나갈 방법은 오직 하나라고 정중부는 생각했다.

‘결국 황상 폐하를 환궁시켜야 하는 것인가…….’정중부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섬을 봤다.

“가자! 장군방으로 갈 것이다.”

“예, 상장군!”

이미 이의방이 용호군을 장악했다면 자신이 아무리 상장군의 직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병력의 면에서는 밀린다는 것을 정중부는 잘 알고 있었다.그러니 이 국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현원에 감금된 의종을 어떻게든 다시 황궁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라 모든 노장군들의 의견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리석은 것들이니 잘만 구슬리면 내게로 올 것이야!’상장군 정중부는 노장군들을 그렇게 마음속으로 폄하했다.

이제 무신정변은 또 다른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고, 이회생은 옥새를 찾기 위해 급히 대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5장 백화를 살리다무비가 감금되어 있는 대전.마땅히 황제가 있어야 할 대전에 무비는 홀로 감금되어 있었고, 그녀를 따르는 백화수검대도 무장을 해제당한 채 옥에 갇혀있었다.

그녀들은 옥에 감금되는 순간 모진 고초를 당할 것이 분명했지만, 지금 단칼에 목이 베이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았다.

“멈춰라!”

내가 대전으로 뛰어들어 가려는 순간 대전 앞을 지키고 있던 견룡군 장졸 둘이 나를 막았다.난 힐끗 그들을 봤다.눈빛이 매섭고 차가운 것이 역시 이의방의 부하들이라고 할 만했다. 아마 이의방의 명령 없이는 상장군 정중부라고 해도 이곳을 쉽게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고생들 많으십니다.”

난 장졸 둘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더 이상 못 들어간다.”

내가 웃으며 말을 했지만 저들은 어린 나에게까지 경계를 풀지 않았다. 이건 훈련이 잘되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저 모르세요?”

이럴 때는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미 이의방은 나를 편히 부리기 위해 나를 자신의 처조카라고 알려놓은 상태였다.

“네가 누군데?”

“저 견룡행수님의 조카이지 않습니까?”

내 말에 장졸 하나가 나를 빤히 봤다. 그리고 나에 대해 기억이 났는지 조금 전보다 편한 눈으로 나를 대했다.아마 그가 기억하는 것은 내가 강인번을 들고 어가 행렬 제일 앞에 서서 가다가 벼락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잠시 동안 품에 안고 있다가 침울한 표정으로 나를 조심히 자신의 말에 태운 이의방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그때 이의방은 어린 병사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것이 아니라, 무신의 권위가 이렇게까지 떨어졌다는 것에 한탄한 것일 테지만.하지만 이의방이 나를 자신의 처조카라고 말하는 순간, 그의 행동은 오직 처조카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처럼 기억될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구나, 그런데 이곳에는 무슨 일이냐?”

“행수께서 보내셨습니다.”

“행수께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통보받은 것이 없는데.”

“워낙 사태가 급해서 통보하지 못했나 봅니다.”

“그렇기도 하겠지만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행수님의 명령이 있으셨다. 그러니 돌아가서 기다려라. 내가 사람을 보내 알아보고 다시 연락을 할 테니.”

정말 군인 정신이 투철한 두 장졸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나를 쉽게 대하지도 못했다. 아마 그것은 내가 스스로 이의방의 처조카라고 밝혔기 때문일 거다.

혈연은 이 고려 시대에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살던 현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장졸들이 이럴진대 군관이나 하급 장수들은 오죽할까.’난 견룡군 행수가 왜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행동하는지 알 거 같았다.

그리고 조금은 이들을 강하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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