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27화 (27/620)

< -- 간웅 2권 -- >난 공예태후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 쓰러지는 고려를 다시 세우고자 행한 거사란 말이지?”

“그러하옵니다. 난신적자들이 황상 폐하의 눈을 흐리고, 또 환관들이 수도 없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신들이 일어선 것입니다.”

“말은 좋구나! 황상은 어디에 있느냐?”

공예태후는 자신의 아들을 걱정하는 눈빛으로 이의방에게 물었다.

“황상께서는 안전한 곳에 계시옵니다.”

“안전한 곳?”

“그러하옵니다.”

이의방의 말에 공예태후는 이의방을 노려봤다.

“너의 말처럼 황상은 반드시 안전해야 할 것이다. 황상께 무슨 변고가 생긴다면 너희들의 거사는 분명 반역이 될 터이니.”

이 말은 위협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거사를 인정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물론이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내게로 온 것이냐?”

공예태후는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이의방에게 물었다.이 순간 이 담판의 주도권은 이의방이 아닌 공예태후에게 있는 듯 보였다.‘저렇게 밀리면 안 되는데…….’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걱정하며 속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소신은 공예 태후마마의 안위를 걱정하여 왔나이다.”

공예태후는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으나 이의방은 말을 돌리고 있었다. 이건 담판에서 밀린다는 증거일 것이다.

“나의 안위를 걱정하여 왔다?”

“그러하옵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이번 무신들의 거병이 황상과 조정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 행한 거사라고 했는가?”

질문을 하는 쪽은 공예태후고, 대답을 하는 쪽은 이의방이었다.

“그러하옵니다.”

“그렇다면 이번 변란은 여기서 끝을 내라.”

난 공예태후의 말을 듣고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 것 같았다.지금 공예태후가 진정 원하는 것은 자신과 왕족, 그리고 황상과 그 형제들의 안위일 것이다. 그런 공예태후가 지금 즉시 변란을 끝내라고 말하고 있다.

“하오나 아직 난신적자를 다 참하지 못했습니다.”

“다 참하지 못했다?”

“그러하옵니다.”

“그럼 모반을 꿈꾸는 것인가?”

다시 공예태후가 다그치듯 말했고, 순간 이의방은 깜짝 놀라 공예태후를 봤다.

“그것은 절대 아니옵니다.”

“아니다? 그럼 어찌 증명할 것인가?”

이 자리에서 이의방이 공예태후에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뽑았다. 그 순간 차분하고 담담했던 공예태후가 놀란 눈으로 나와 이의방을 번갈아 봤다.

“만약 모반이라면 이 검으로 견룡행수와 저의 목을 치십시오.”

난 조심스럽게 공예태후가 앉아있는 의자로 가서 그녀에게 검을 내밀었다. 공예태후가 가지고 있던 담판의 주도권이 내게로 넘어오는 순간이었다.이렇게 내가 다부지게 행동을 하는 이유는 공예태후가 더는 말하지 못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뭐라? 검으로 목을 치라?”

“그러하옵니다.”

“무엇하는 짓이냐?”

이의방 역시 놀라며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충성된 신하를 의심하시니 죽음으로써 마음을 보이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배수진이다. 물론 공예태후는 절대 내 목을 치지 못할 것이다. 아니, 내 목을 치거나 이의방을 죽이고자 한다면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 늙은 공예태후는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이로써 난 주도권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다.

“회생! 무례하다.”

이의방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상태로 나를 질책했다.‘참나, 도와주는 것도 모르고…….’그가 내 깊은 속을 헤아리지 못해 약간 서글프다는 생각도 들었다.

“의심이 된다면 목을 치라?”

공예태후가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러하옵니다. 소신들은 충직한 마음으로 이번 거사를 한 것이옵니다.”

“충직한 마음으로?”

“그러하옵니다, 태후마마! 백성들은 황상 폐하를 폭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황상 폐하의 성총을 흐리게 한 것은 문신들과 환관들이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일어선 것이옵니다.”

난 의종을 폭군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죄는 모두 문신들과 환관들에게 돌렸다. 물론 공예태후 정도라면 내가 의종을 욕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잠시 공예태후가 나를 빤히 보다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저는 견룡행수의 처조카가 되는 이회생이라고 하옵니다.”

“으음.”

공예태후는 잠시 나를 노려보다가 내가 내민 검을 잡고 그 검으로 나의 목을 겨눴다.순간 난 나도 모르게 오금이 저렸다.분명히 공예태후가 나를 죽이지 못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에 느껴지는 차가운 검의 기운이 나를 이렇게 떨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너와 견룡행수의 말이 사실이란 말이지?”

“그러하옵니다.”

“그래.”

공예태후는 들고 있던 검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게 거짓이라면 이 자리에서 나를 베어라!”

순간 공예태후의 말에 이의방은 깜짝 놀라며 태후 앞에 엎드렸다.

“태후마마, 어이 그런 망극하신…….”

“나는 내 아들이 죽는 꼴은 보지 못하겠다. 그러니 그대들이 모반을 하는 것이라면 나를 베고 내 아들들을 베어라.”

“그,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의방은 내게 넘어온 주도권을 다시 공예태후에게 주려는 것 같았다.하지만 이미 벙어리가 말문이 트인 것처럼 내가 말을 했으니 난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순간 내 말에 공예태후는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뭐라?”

“그래도 되냐고 여쭙는 것이옵니다.”

“이, 이놈이…….”

공예태후는 말을 더듬었다.그 순간, 나는 바로 무릎을 꿇었다.

“어찌 소신들이 황상 폐하께 역심을 품겠사옵니까? 저희들은 황상 폐하와 태후마마의 충성스러운 신하이옵니다.”

“내가 너의 말을 어찌 믿겠는가? 지금 황궁이 불타고 문신들이 죽고 있다. 나는 너희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믿지 못하신다면 자결을 명하시옵소서.”

이건 마지막 배수진이다. 그리고 난 뚫어질 듯이 공예태후를 바라보았다.

“으음.”

공예태후 역시 침묵 속에서 유심한 눈길로 나를 보고 있었다.내가 아주 무섭게 보일 것이다.그런데 그녀의 눈빛에는 내가 모를 또 다른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 판단에는 여인의 호기심과 궁금증 같은 거였다.

“내 어찌 그대들의 충정을 모르겠는가?”

공예태후는 이제 나와 이의방에게 백기를 들었다.

“태후마마!”

“견룡행수라고 했나?”

공예태후는 이의방을 봤다.

“그러하옵니다.”

“견룡행수!”

“예, 태후마마!”

“그대가 나와 황상, 그리고 내 아들들을 지켜주겠는가?”

이건 거래를 시작하겠다는 말이다.

“신 이의방, 목숨을 걸고 황상 폐하와 황실을 지켜낼 것이옵니다.”

“그래! 좋다. 나는 견룡행수를 믿을 것이다.”

“예, 마마!”

“그럼 왜 이곳에 온 것이냐?”

“태후마마의 명을 받아 난신적자를 모두 참하고자 하는 소신들의 마음을 알려드리고, 혹시나 걱정을 하실 것 같아서 왔습니다.”

이럴 때는 돌려 말해야 한다.

“그러한가?”

“그러하옵니다.”

내 말에 공예태후는 이의방을 봤다.

“그대 조카의 말이 맞는가?”

“그렇사옵니다.”

“그대는 참 언변이 좋은 조카를 두었군.”

“황공하옵니다.”

“알았다, 그대들의 뜻대로 해라. 나는 견룡행수 그대를 믿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제 공예태후가 원하는 것을 말할 차례다.

“예, 말씀하십시오.”

“지금 황상이 부덕하다는 생각이 들면…….”

“예?”

“지금 황상을 백성들이 폭군이라고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어리석은 백성이 그 내막을 몰라서 하는 소리이옵니다. 심려치 마시옵소서. 소신이 반드시 황상 폐하를 보필하겠나이다.”

이의방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 나는 견룡행수를 믿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대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황상의 동생인 익양후로 정할 것이다.”

드디어 공예태후가 원하는 것을 말했다.이건 분명 거래일 것이다.

익양후!그는 후일 폐위된 의종을 대신해서 황제가 되는 인물이다.1148년(의종 2년)에 익양후로 봉해졌다.

1170년 정중부 등이 반란을 일으키고 추대함으로써 왕위에 올랐다.즉위 후 곧 수문전에 나아가 정중부를 참지정사로, 이고를 대장군 위위경으로, 이의방을 대장군 전중감으로 임명하는 등 자격과 서열을 무시하여 기용하였다.

또 문관직과 무관직에 관계없이 정중부 일파가 바라는 대로 관직을 임명하였다. 그리하여 왕은 허수아비가 되었고, 실권은 자연히 무신들에게 돌아갔다.

공예태후의 말에 이의방이 나를 봤다.나는 눈빛으로 알았다고 대답하라고 알려줬다.

이의방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예태후를 바라보았다.

“태후마마의 명을 따르겠나이다.”

“그럼 이 혼란스러운 황궁을 어서 안정시켜라!”

“예, 태후마마!”

이의방은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그 순간 공예태후가 다시 나를 뚫어지게 한 번 보는 것 같았다.‘왜 자꾸 나를 보는 거지?’나는 태후의 시선을 강렬하게 느끼며 여전히 의문에 갇혀있었다.

“소신, 물러가겠습니다.”

이의방과 나는 그 자리를 나왔다.그 때 복도에 채원이 들어섰고, 공예태후의 처소에서 나오던 이의방과 마주쳤다.

“그대가 여기에 무슨 일인가?”

이의방의 말에 채원은 인상을 찡그렸다.

“화, 황궁이 어수선해서 태후마마를 지켜 드리려고 왔지.”

“그런가? 사태는 어떻게 되고 있나?”

“거의 우리 쪽으로 기울고 있네.”

“그래.”

이의방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채원은 이의방의 눈치를 보며 찰나의 순간이지만 인상을 찡그렸다.나는 채원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한발이지만 앞서 와서 다행이다.’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채원의 뒤에 서있는 무장을 봤다.

채원을 이곳으로 이끈 자는 아무리 봐도 머리 위에 박철우라는 이름이 둥둥 떠 있는 저자 같았다.

“그럼 금군들은 일망타진된 건가?”

이의방이 채원에게 물었다.

“그건 아직이네…….”

“그럼 어서 금군을 처리하세.”

“그런데 자네는 태후마마를 뵙고 나온 것인가?”

“그렇다네, 우리에게도 드디어 명분이 생겼네.”

이의방은 내 생각대로 움직여서 선수를 쳤다는 생각에 좋아라 했다.하지만 채원은 자신이 한발 늦었다는 생각에 속으로 끙끙거려야 했다.

“알았네.”

“그럼 어서 반항하고 있는 금군을 마무리하세.”

“그건 그렇고, 노장군들은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건가?”

채원은 자신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노장군들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트집을 잡았다.

“어디 그분들이 함부로 움직이는 분들인가?”

“정중부 상장군과 같이 왔다고 하지 않았나?”

“그분은 태자께 가셨겠지.”

이의방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미 이의방은 내 의견에 따라 의종과 무비, 황태후를 손아귀에 넣었다. 그러니 무서울 게 없을 것이다.

“태자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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