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23화 (23/620)

< -- 간웅 2권 -- >간웅(奸雄) 2권목차1장 옥새를 찾아야 한다2장 표독한 무비3장 무비를 만나다4장 각자가 꿈꾸는 동상이몽!5장 백화를 살리다6장 옥새를 품은 연못7장 회생! 정구품 견룡위장이 되다8장 정중부의 계략9장 회생, 백화를 얻다10장 이의방의 책사 노릇을 하다11장 가장 큰 힘이 되는 명분을 위하여!12장 황제 폐위의 명분을 얻다1장 옥새를 찾아야 한다보현사, 의종이 감금된 전각.의종은 초조한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었고, 그 옆에 보현원 사건의 환란에서 살아난 어린 환관들이 겨우 의종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사실 말이 시중이지 그들은 무인들의 서슬 퍼런 칼날이 무서워 의종의 옆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무부들이 일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느냐?”

의종은 답답한 마음에 자신의 옆에 있는 어린 환관에게 물었다.환관의 중심인 왕광취와 한뢰가 무인의 칼에 죽은 후로 어린 환관들은 아는 것 하나 없이 그저 겁만 먹은 채 의종의 옆에 붙어있는 것이 전부였다.하지만 그래도 뚫린 귀가 있으니 어린 환관 하나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의종에게 해줬다.

“상장군 정중부를 비롯한 견룡행수 이의방이 군사를 이끌고 황궁으로 진군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역적들이 벌써 황궁으로 진격했단 말이냐?”

의종은 근심에 찬 얼굴로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습니다. 이곳을 지키는 석린의 부하에게 들은 이야기온데 이백의 군사로 겁도 없이 황궁으로 진격했다 하옵니다.”

“겨우 견룡군 이백을 데리고 진격했단 말이냐?”

의종은 반란군의 숫자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적다는 것에 안심하고 조금 전보다 한결 표정이 편해졌다.그도 그럴 것이다.

황궁에는 수천의 군사가 있고, 또 권세나 권력을 돌처럼 보는 용호군 대장군 강일천이 있으니 말이다.그리고 강일천 대장군의 뒤에는 그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자신의 모후, 공예태후가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되는 의종이었다.

“이제 태자와 어마마마가 하기 나름이군.”

“그러하옵니다. 황성에 있는 군사만 해도 그 수가 수천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능히 역적들을 물리치고 태자 전하가 황제 폐하를 모시러 오실 것입니다.”

“그래, 그래야 할 것이다.”

의종은 이곳에 감금당해 위태로운 상태에도 무인들을 역적이라고 말하는 어린 환관을 봤다.

“그러고 보니 너의 용기가 가상하구나!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저의 이름은…….”

철컥!그 때 갑자기 황제가 감금된 전각의 문이 벌컥 열렸다. 눈에 불똥이 튀는 모습의 석린이 급하게 전각 안으로 들어와 의종에게 형식적으로 허리를 굽혔다.

“황제 폐하!”

“무엇이냐? 네놈들은 왜 이렇게 무례한 것이냐?”

의종은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 아무 말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석린을 황제답게 꾸짖었다.하지만 나머지 어린 환관들은 잔뜩 겁에 질려 안절부절못했다.

“이곳에 난신적자가 있어 황상 폐하의 성총을 흐리는 것 같아 끌고 나가 목을 베려고 합니다.”

“뭐라? 난신적자?”

의종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하옵니다.”

그 순간 석린이 어린 환관을 노려봤다. 너무나 놀란 어린 환관은 바지에 오줌을 쌌다.

“누구냐? 누가 거사의 큰 뜻을 거스르고 역적이라고 하였느냐?”

석린은 참으로 무례하게 의종의 앞에서 소리쳤다. 그러자 전각 안은 얼음처럼 싸늘하게 식었고, 어린 환관들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물론 역적이라고 말한 어린 환관도 마찬가지로 당황해하며 그저 의종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모두 다 목이 베이고 나서야 후회할 것이냐!”

석린의 말에 어린 환관들은 놀라 눈이 커지며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환관의 거두인 왕광취와 한뢰를 주저 없이 검으로 내려친 무인들이었다. 또, 권세를 누리던 문신들 역시 죽이는 데 있어 주저함이 없던 무신들이기에 어린 환관들은 자신들의 목숨은 파리보다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다, 그럼 할 수 없지. 모두 다 끌어내서 베어버릴 수밖에.”

석린의 말에 그동안 주저하고 있던 어린 환관이 앞으로 나섰다.

“내가 했다, 이 무도한 역적 놈아!”

어린 환관은 살육을 일어나는 상황을 바라지 않아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의종은 지그시 눈을 감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나서야 할 순간이지만 의종은 차마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나선다면 어린 환관들 모두를 죽일 것 같은 분위기였기에 그저 못 본 척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놈! 겁이 없구나! 여봐라! 뭐 하고 있느냐? 황제 폐하의 성총을 흐리는 저 어린 난신적자를 어서 끌어내 목을 치지 않고!”

“오냐! 내 비록 환관의 신분이지만 너희들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 나가자! 역적이 판치고 세상이 바뀌는데 더 살아서 무엇을 할 것이냐!”

비록 나이는 어린 환관이었지만 진정한 대장부가 가져야 할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하지만 이 순간 중요한 문제는 그가 가진 용기가 곧 그의 죽음을 부른다는 점이다.

“이놈 봐라? 좋다, 가자! 내 너의 목을 벨 것이다.”

석린이 어린 환관을 야차처럼 노려보며 소리쳤다.그 때 이의민이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인가?”

이의민이 석린을 보며 물었다.

“난신적자의 싹이 보이는 환관을 끌어내 참하려 합니다.”

“난신적자의 싹?”

이의민은 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당당히 서있는 어린 환관을 힐끗 본 후, 애써 고개를 돌리고 있는 의종의 모습을 봤다.‘황제와 친해지라고 했지.’요기마저 느껴지는 회생. 이의민은 회생이 했던 말을 가만히 떠올렸다.

“그만두시게.”

“예?”

“나도 밖에서 다 들었네. 비록 어린것이 우리의 대의명분을 몰라 저렇게 실언을 했다고는 하지만 황제 폐하를 보필하는 환관이네. 난신적자를 베려고 일어난 거사일세. 지금 자네가 하는 짓은 난신적자와 다를 것이 없네.”

이의민의 말에 석린은 인상을 찡그렸다.

“하오나…….”

“그만두라고 했네!”

이의민은 인상을 찡그렸고 석린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나가보시게.”

이의민의 말에 석린은 분을 삭이며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갔고 이의민은 어린 환관을 노려봤다.

“황제 폐하를 보필하는 것이 너희들의 직무다. 허나 말조심해야 할 것이다.”

“고맙다고 하지 않을 것이오.”

이 순간에도 어린 환관은 이의민을 노려봤다.

“말을 아끼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난 무부들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을 것이오.”

순간 이의민의 인내심도 바닥을 보였다.그런데 여기서 참으로 이상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 중에 아무리 목숨을 내건 충신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목숨을 살려주려고 하는데 죽기를 각오한 듯 말하는 자는 분명 없을 것이다.하지만 어린 환관은 마치 지금 생을 내려놓은 것처럼 누구도 하지 못했던 말을 서슴지 않고 토해내고 있었다.

“죽기를 원하는 것이냐?”

“구걸하지 않겠소.”

“그럼 당당히 밖으로 걸어 나가서 죽어라!”

이의민은 어린 환관의 의지를 꺾으려 했다.

“왜,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냐?”

“두렵지 않소.”

“그래, 그럼 나서라. 너의 목을 베어줄 석린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의민의 말에 어린 환관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리고 이의민은 조심히 의종의 앞에 머리를 숙여 예를 취한 후 밖으로 나갔다.석린에게 멱살이 잡혀 끌려가는 어린 환관의 모습이 보였다. 어린 환관이지만 두려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서억!

“으악!”

어린 환관의 비명 소리가 전각 안까지 들렸다.의종은 지그시 감았던 눈을 떴고,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짐이 부덕하여 충성된 신하가 죽는 것을 막지 못하였구나! 내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저 무부들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의종은 자신의 처지도 생각하지 못하고 무인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황제 폐하!”

나머지 어린 환관들도 의종의 눈물을 보고 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그런 어린 환관들의 모습을 보며 의종은 조금 전 어린 환관의 목숨을 구하려고 했던 무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무장이 누구냐?”

“누구 말씀이시옵니까?”

“내 충신을 살리려고 했던 그 무장 말이다.”

“이의민이라고 하옵니다.”

“이의민?”

“그렇사옵니다.”

“내 이 변란이 진압되면 그를 장군의 반열에 올릴 것이다.”

궁지에 몰린 의종에게는 이렇게 작은 행동도 크게 느껴졌던 것이다.이야기를 밖에서 들은 이의민은 씩 웃었다. 그러자 석린이 다가와 이의민을 보며 같이 웃었다.

“거사가 되든 말든 장군이 되시겠소?”

“그렇게 되면 내 자네를 잊지 않을 것이네.”

이 모든 것이 석린과 이의민이 짜고 벌인 일이었다. 저 멀리 사악하게 웃는 어린 환관의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모두가 고려의 지존인 의종을 철저히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그것도 모르고 의종은 전각에 갇혀 어떻게 일이 전개될까 생각하고 있었다.

“태자가 잘해줘야 할 텐데, 태자가!”

의종이 믿는 것은 오직 태자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총애하는 무비의 얼굴이 떠올랐다.‘가여운 무비는 어찌할꼬? 무비는 어쩔꼬?’이 위급한 순간에도 의종은 무비를 걱정하고 있었다.

“뭐라! 무부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무비는 상궁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무부들이?”

“그러하옵니다. 황궁을 지키는 순검군들이 창검을 돌려 공예 태후마마의 처소로 달려갔다고 하옵니다.”

“공예 태후마마가 계신 곳으로?”

“그러하옵니다. 온 궁궐 안이 불타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피하라? 내가 어디로 피한단 말이냐?”

상궁은 다급한 마음에 무비에게 피하라고 말했지만, 무비는 이 순간 자신이 잘못 움직여 장졸들에게 발각이라도 된다면 그것이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비는 영특한 여자였다.

“하오나 그들이 곧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입니다.”

“이곳으로 오고 싶어 하는 자는 단 하나뿐이다.”

무비는 그렇게 말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이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나 스스로를 구명할 방법은 그것뿐이다.”

“예?”

“가자!”

무비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때 백화가 급히 무비의 처소로 들어섰다.

“무비 마마! 피하셔야 하옵니다.”

무비는 백화를 본 순간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그래, 네가 왔구나!”

“그러하옵니다, 마마!”

“그래, 백화야. 고맙다!”

“피하셔야 하옵니다.”

“아니다, 지금은 피할 때가 아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예?”

“갈 곳이 있다. 급하다, 급해!”

무비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처소에서 서둘러 나갔다.장기를 두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궁밭에 적의 졸이 들어오면 차나 마, 상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지금 상황도 그렇다. 황궁을 지키던 순검군들이 창을 거꾸로 돌려 황궁에 불을 지르고 공격을 하자, 그들은 장졸이 아닌 폭도로 변해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황궁의 재산을 강탈하기 바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회생의 말을 들은 이의방이 채원에게 전서구로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채원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체 없이 부하들을 시켜서 황궁 곳곳에 불을 질렀다.

“문신의 관을 쓴 놈들과 환관 놈들은 보이는 족족 베어라!”

채원은 호랑이처럼 무섭게 명령을 내렸다. 채원 역시 순검군 산원으로 있으면서 문신들과 환관들에게 온갖 수모를 받았기에, 이번 참에 문신들과 환관들을 모두 척살할 생각이었다.

“좀 늦는군!”

채원은 칼을 뽑아 들고 이의방이 들어설 황궁 입구를 바라보았다.

“이미 개경에는 당도를 했다는 보고입니다.”

“그래, 그래야지. 이의방은 치밀한 자이니 그렇게 빠르게 움직일 거야! 그건 그렇고, 공예 태후마마는 모셨느냐?”

“그곳으로 장졸들을 보냈습니다.”

“그래, 우선은 공예 태후마마를 감금해 두고 태자 전하를 모셔 이 궁궐을 장악해야 한다.”

“예, 산원 나리.”

위의 직위를 가진 군관이 짧게 대답을 했다.채원은 불타는 궁궐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래! 내가 빠르게 움직여야 이의방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