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22화 (22/620)

< -- 간웅 1권 -- >같은 시간.동문으로 향하는 김돈중과 거의 비슷하게 채원의 부하인, 위(尉)의 직위에 있던 군관 하나가 급하게 동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그의 임무는 김돈중의 이복동생인 태형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형은 태형을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세상은 태형을 김부식의 아들로, 또 김돈중의 동생으로 인정하고 있었다.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지금 이 순간 가문에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스스로 무인이 된 태형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었다.다다다닥! 다닥! 다다닥!양방향에서 급한 마음을 표현하듯 그렇게 기마가 질주했다. 그리고 먼저 도착한 것은 김돈중이었다.

“어서 문을 열어라!”

김돈중의 종복이 우렁차게 개경 동문을 향해 소리쳤다.

“누군데 이 밤에 성문을 열라는 것인가!”

“어서 성문을 열어라! 급하다.”

종복이 소리치는 순간 김돈중은 뒤에서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성루에서 누구냐고 묻는 자는 태형이 아니라 다른 군관이었기 때문이다. 김돈중에게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이렇게 지체하고 있으니 김돈중의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어서 문을 열지 못할까!”

“밤이 되면 성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

“수문장 태형 도련님은…….”

김돈중의 종복은 소리를 치다가 입을 닫았다.그리고 김돈중은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앞으로 나섰다.

“문을 열어라! 나는 좌승선 김돈중이다. 급한 일이 있으니 어서 문을 열어라!”

“좌, 좌승선이라고 하셨소?”

“그렇다, 어서 문을 열어라!”

좌승선이라는 말에 성루에 위의 군관이 놀라 말을 타고 있는 김돈중과 종복을 봤다.

“하오나 밤이 되면 성문을 열지 않는 것이 국법이옵니다.”

“급한 일이라고 했다. 어서 문을 열지 못할까!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이냐!”

김돈중은 다급한 마음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오나…….”

“수문장 태형은 어디에 있느냐? 그를 불러라!”

성루의 군관이 주저하자 김돈중은 태형을 부르라고 소리쳤다.그 때 마침 태형이 성루를 순찰하다가 성문 앞에 서있는 김돈중을 봤다.물론 마음이 급한 김돈중 역시 태형을 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좌승선 대감!”

태형은 김돈중을 좌승선 대감이라고 불렀다. 아무리 나이 차이가 있다고 해도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태형은 홍길동인 셈이다.

“급한 일이네! 어서 문을 열게.”

김돈중은 태형의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급한 일이라니요?”

태형은 놀란 눈으로 김돈중을 보며 물었다.

“그대에게 말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니 어서 문을 열게.”

그대?김돈중은 태형을 그대라고 불렀다.그러자 태형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예, 알겠사옵니다.”

그래도 다행인지 태형은 국법을 어기더라도 문을 열겠다고 김돈중에게 말했다.

“그래, 어서 여시게. 어서!”

“예, 대감!”

그 때 운명처럼 채원이 보낸 위의 직위를 가진 군관이 급하게 성루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다닥! 다다닥!

“이곳의 수문장이 누군가?”

채원의 부하는 급하게 성루에 올라 소리쳤다.김돈중과 이야기하던 태형은 자신을 찾는 것을 알고 고개를 돌렸다.

“어디 소속의 군관인데 수문장을 찾는 것이냐?”

그 순간 김돈중은 태형과 마주 보고 있는 군관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서, 설마…….”

“왜 그러십니까? 대감!”

“벌써 무부들이 손을 쓰고 있는 것이야.”

그제야 김돈중은 이의방을 비롯한 무인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거사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절망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너를 죽일 지옥 야차군 소속이다.”

군관이 급하게 검을 뽑아 태형에게 휘둘렀다.갑작스럽게 휘두른 검이라 태형은 그 검을 피할 겨를도 없었다.쉬웅!서어억!

“으아악!”

태형은 군관이 휘두른 검을 맞고 비명을 질렀다.그리고 바로 군관의 뒤를 따라왔던 장졸들 역시 급히 검을 뽑아 태형의 뒤에 있던 장졸들을 위협했다.

“움직이는 자는 역적으로 여길 것이다.”

이 순간 모두 역적이라는 말에 기겁했다.그리고 태형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벤 군관을 노려봤다.

“무, 무슨, 무슨 일이냐?”

“네놈이 난신적자 김돈중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김돈중이 보현원에서 황상 폐하를 감금하고 난을 일으켰다.”

“뭐, 뭐라?”

태형은 고개를 돌려 성문 아래에 있는 김돈중을 봤다.

“뭐, 뭐라고 했느냐? 좌승선이 반란을 했다고?”

태형은 고통에 겨운 표정으로 김돈중에게 들으라는 듯 크게 소리를 쳤다.

“그렇다, 그래서 그의 혈족인 너에게 우선 죄를 묻는 것이다.”

지금 태형은 가슴을 벤 검보다 마음을 베는 말에 더욱 아픈 듯했다.단 한 번도 김돈중과 그의 혈족들은 자신을 김씨라 부르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다른 이가 자신을 김부식의 아들이며 김돈중의 동생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나, 나는 김씨 성도 쓰지 못하는 태형이다.”

이것이 태형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우린 이미 너와 김돈중이 내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반란군이 황궁으로 진격할 때 네가 동문을 열어 내응하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하는 거짓말이다.그러자 태형은 보현원에서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일을 일으킨 장본인은 자신과 같은 무신이라는 것을 직감했다.그런데 무신인 자신이 지금 무신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더욱 서글픈 태형이었다.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구나! 하하하!”

“뭐라?”

군관은 태형의 뜬금없는 말에 그를 노려봤다.

“진정 네놈들이 반란을 한 것이구나!”

태형은 어금니를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힘껏 검을 뽑으려 했다.하지만 이미 태형의 몸에는 깊은 상처가 나있었다. 검을 뽑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그리고 태형이 검을 뽑으려는 순간 채원의 부하 군관이 다시 한 번 바람을 가르듯 빠르게 검을 휘둘러 태형의 가슴을 베어 치명상을 입혔다.서억!

“으악!”

비명과 함께 태형은 성벽에 쓰러졌다.그리고 마치 전란에 찢긴 깃발처럼 성벽 끝에 걸려 몸을 겨우 의지한 채 성문 아래로 난 검은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는 김돈중을 초점 잃은 눈으로 봤다.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태형은 단 한 번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한 김돈중에게 어서 몸을 피하라고 겨우겨우 손을 흔들었다.

“혀… 혀어어니이님. 어… 어서, 어서…….”

태형은 죽는 순간 처음으로 김돈중을 형이라 불렀다.수욱!그 때 채원의 부하 군관이 마지막 일격으로 태형의 등에 검을 박아 넣었다.

“우엑!”

태형은 검은 피를 뿜으며 절명했다.그리고 그 순간 김돈중은 말 머리를 돌려 급하게 달렸다.다다닥! 다다닥!

“저기를 보십시오, 나리!”

채원의 부하와 같이 왔던 장졸 하나가 급하게 동문 공터를 벗어나고 있는 김돈중과 그의 종복을 봤다.

“저, 저것은?”

“쥐새끼 김돈중 같습니다.”

“어서 활을 다오!”

채원의 부하는 급하게 활을 달라고 재촉했고, 바로 옆에 있던 수비병들이 얼떨결에 군관에게 활을 내밀었다.군관은 도망치고 있는 김돈중을 향해 활을 겨누고 급하게 시위를 당겼다.

“저놈을 잡으면 별장은 따놓은 당상이야!”

군관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잡고 있던 시위를 놨다.티이익!쉬우우웅!시위를 놓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어둠을 뚫고 김돈중을 향해 날았다.하지만 아직 하늘이 김돈중을 돕고 있는지 그의 가슴이 아닌 어깨에 화살이 박혔다.퍼억!

“으악!”

“대감마님!”

휘청!활에 맞은 김돈중은 하마터면 마상에서 떨어질 뻔했다.하지만 아직도 운이 다하지 않았는지 김돈중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겨우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그리고 빠르게 사지나 다름없는 동문 공터를 빠져나갔다.

“젠장! 동문을 열어라! 쫓을 것이다.”

채원의 부하 군관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서 동문을 열어라! 어서!”

“동문을 열랍신다, 동문을!”

“성문을 열어라!”

고요하기만 했던 동문이 소란해졌고, 동문이 열리는 순간 30여 기의 기마들이 일제히 앞으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놓쳐서는 안 된다. 김돈중을 잡아라!”

“예, 위장 나리!”

그렇게 김돈중의 추격대로 변한 채원의 장졸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김돈중을 찾아 나섰다.어깨에 화살을 맞은 김돈중은 빠르게 말을 달리고 있었다.그리고 그의 종복도 김돈중을 따르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

말을 타며 김돈중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개경으로 달려온 김돈중은 태자에게 무신들이 반란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 바로 병력을 이끌고 보현원으로 진격할 생각이었다.

비록 그들이 황제를 감금하고 있지만 황제에게 함부로 하지는 못할 거라는 판단에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여 무신의 난을 진압할 계획이었다.하지만 그것은 김돈중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무신정변의 주역인 이의방과 정중부가 황궁에 있는 채원과 이미 내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김돈중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당장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 이 고려에 필요한 것은 검을 든 장졸이었다.그런데 가장 많은 수의 병력이 있는 황궁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때 번뜩 김돈중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놈들이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가야 해!’김돈중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냈다.

‘서경이다, 서경!’김돈중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서경은 지금의 평양이다. 그리고 서경 천도를 주장하던 묘청의 난을 자신의 부친이 진압하면서 수많은 서경 사람들이 묘청과 내통하고 지원을 하고 있다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서경에서는 김부식과 그의 일파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그런데 지금 김돈중은 그곳으로 가려고 마음먹었다.

서경파가 자신과 감정이 좋지 않다는 건 무신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외려 서경으로 갈 계획을 세운 것이다.‘지방군이라고 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어.’

“괜찮으십니까, 대감?”

옆에서 같이 말을 달리던 종복이 골똘히 생각에 잠긴 김돈중에게 물었다.

“괘, 괜찮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서경으로 갈 것이다.”

김돈중의 말에 종복은 인상을 찡그렸다.

“서경이라굽쇼?”

종복 역시 서경은 김부식 혈족들에게 여전히 감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예, 대감마님! 그런데 왕성에 있는 마님과 도련님들이 무사할지가 걱정이옵니다.”

종복의 말에 김돈중 역시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말은 그만하게. 나라가 지금 풍전등화에 놓여있는데 어찌 신하가 가솔을 걱정할 수 있겠는가.”

이것만 봐도 김돈중은 그리 난신적자는 아닐 것이다.

“예, 대감마님!”

“그런데 서경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 어디냐?”

“서경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은 감악산을 넘어가는 길이옵니다.”

종복의 말에 김돈중은 지난밤 회생의 말이 떠올랐다.‘감악산으로는 절대 가지 말라고 했는데. 그리고…….’김돈중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옆에서 말을 달리고 있는 종복을 봤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도 믿지 말고…….’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돈중은 인상을 찡그렸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김돈중은 차마 자신의 종복을 벨 수가 없었다.

이래서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김돈중은 감악산을 향해 말을 달렸다.(간웅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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