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21화 (21/620)

< -- 간웅 1권 -- >

“그렇사옵니다, 상장군!”

그러고 보니 지금 정중부와 이의방은 죽이 잘 맞는 짝꿍 같았다. 물론 속으로는 저마다의 욕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손발을 짝짝 잘 맞추고 있는 것일 테지만.그렇게 이의방의 군대는 빠르게 황궁으로 진격했다.

황궁 채원의 방.채원은 전서구를 읽고 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옆에서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무장을 봤다.

“너는 당장 동문으로 가서 수문장을 제거하고 동문을 장악해라.”

“예?”

채원의 갑작스러운 명령에 무인은 영문을 몰라 채원을 빤히 봤다.채원! 그는 1170년(의종 24년) 의종이 보현원에 거둥하였을 때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많은 문신을 학살하고 왕까지도 시해하려 하였으나 양숙의 권유로 그만두었다.

그해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과 더불어 의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맞아 무신정권을 수립하였다. 곧이어 내시장군(內侍將軍)으로 승진하고 공신(功臣)에 책봉되었다.

1172년(명종 2년) 이고가 무뢰배, 중들과 결탁하고 왕의 잔치에 참여하여 난을 일으키려고 하자 이의방과 더불어 그를 살해하였다.그러나 그도 조정의 신하를 죽이고 정권을 잡으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이의방에게 끝내 살해당한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담이 큰 인물로 그가 가진 담만큼 탐욕도 남다른 인물이며, 끝이 없는 권력욕을 가진 인물이었다. 얼굴은 마치 범처럼 생겼고 덩치는 곰 같은 것이 용력은 이의민을 능가하였다.

하지만 용력으로 전투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용력이 뛰어난 만큼 그의 머리는 새처럼 가볍기만 했다.

이것이 역사의 기록이었다.

“이제 곧 우리의 시대가 올 것이다.”

“우리의 세상이라굽쇼?”

“그래, 무신들의 세상!”

“정말이옵니까?”

무장은 놀라 채원에게 되물었다.

“그래, 난신적자인 문신들을 모두 도륙하면 우리의 세상이 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돈중을 이 황궁 안으로 절대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왜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옵니까?”

“그곳의 수문장이 김부식의 서자이며 김돈중의 배다른 동생이 되는 태형이라는 자라는 것을 잊은 것이냐?”

“그렇습니까?”

채원의 말에 무장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고, 그것이 내심 답답한 채원이었다.

“그래, 그러니 어서 동문 수문장을 제거하고 동문을 확보해라.”

채원은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그리고 명령을 받은 채원의 부하 무장은 황궁 순검군 몇 명을 데리고 급하게 동문으로 달려갔다.

“쥐새끼 같은 김돈중이 동문이 아니면 올 곳이 없어.”

채원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데 왜 도착하고 나면 황궁에 불을 지르라는 거야?”

채원은 전서구를 다시 보며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12장 김돈중이 향한 곳한동안 군부의 신구가 혀에 검을 숨기고 치열하게 설전을 벌였다가 정중부의 만류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이를 통해 나는 군부의 신구 간의 갈등이 앞으로 이 혼란스러운 고려를 한참이나 어지럽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그 때 정중부가 나를 유심히 보다가 이의방에게 물었다.

“저 아이는 누군가?”

이의방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힐끗 나를 보고는 정중부를 다시 봤다.

“제 처의 조카입니다.”

“그래? 자네의 처조카가 견룡군에 있었다는 것은 처음 듣는군.”

‘내가 이의방의 처조카?’이 순간 나는 졸지에 이의방의 처조카가 됐다.이건 다시 말해 반드시 무신정변이 성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르시는 것이옵니다.”

“그런가?”

“예, 상장군!”

“그나저나 이 행수!”

“예, 상장군!”

“만약 거사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우리끼리 반목하는 경우는 없어야 할 것이네.”

정중부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찌 제가 상장군과 대장군들께 대항하겠습니까?”

정중부는 속으로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속내를 숨기고 있는 듯했다.물론 그 사실을 나도 알지만 이의방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할 수 있는 말이 얼마 없나 보네.’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

“그러하옵니다.”

“그래, 우리가 서로 반목하면 문신들이 다시 들고일어날 것이네. 그러니 거사에 성공하면 우리는 우리끼리 똘똘 뭉쳐야 하네. 그리고 이 조정을 우리의 뜻으로 쇄신해야 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문신들이 다시 힘을 키우는 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 말인가?”

“제가 이참에 문신의 관을 쓴 자와 불알이 없는 내시 놈의 씨를 아예 말릴 참입니다.”

이의방은 다짐하듯 말했다. 그만큼 이의방이 가지는 문신들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찔렀던 것이다.

사실 이의방의 가문도 이 고려에서는 명문가였다. 그의 숙부인 이단신이라는 자가 전 문하시중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는 명문가인 것이다.

그런데 무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의방은 천대와 멸시를 받았다.그러니 그 멸시와 천대의 보답은 문신들에 대한 참혹한 도륙으로밖에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 그래야지. 내 지금까지 그놈들이 준동하는 것을 참느라 화병에 걸리는 줄 알았어.”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이고도 한마디 거들었다.

“하하하! 그런가?”

“그럼! 그렇고말고. 나 역시 그 잘난 체 잘하는 문신 놈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또한 무비 년도 가만히 두지 않을 거네.”

이고의 말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그리고 김돈중이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무비가 죽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나와 무비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제는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김돈중은 도망을 치면서 내게 왜 그런 괜한 소리를 해서 이렇게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이의방의 진격군은 보현원에서 진격을 시작한 후로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진군하고 있었다.말을 탄 장수들도 피곤한 빛이 역력했고, 걷고 있는 장졸들은 피곤을 넘어서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의방과 정중부는 진군을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이들의 마음이 급하다는 걸 뜻할 것이다.

‘그래, 급하겠지. 김돈중이 어떻게 할지 모르니 마음이 급한 거야.’그런 생각이 들었다.‘벌써 열두 시간 이상 걸었지.’난 대충 시간을 짐작해 봤다.

이 정도로 강행군을 하면 쓰러지는 장졸들이 발생하게 된다.‘쉬어야 하는데…….’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목숨을 걸고 벌인 일이기에 쉴 틈이 없었다.

난 이고를 봤다. 자꾸 그가 신경이 쓰였다.‘그런데 무슨 원한일까?’그게 궁금했다.

하지만 어린 내가 이고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분명한 것은 무비를 부를 때 이고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는 점이다.

‘정말 파악이 안 되는 인물이다.’이고는 조금 전에 눈에 불똥을 튀기면서 무비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할 때와는 다르게 다시 차분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고도 나를 보고 있었다.그의 눈동자와 내 눈동자가 마주치자 이고가 나를 보고 살짝 웃었다.

그의 웃음은 자신과도 잘 지내보자는 그런 뜻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저 친근감의 표현은 뭐야?’갈수록 모를 짓만 하는 이고였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강행군을 했고 벌써 황도인 개경까지 반이나 와있었다.고려의 황도 개경은 고려 태조의 출생지이기도 한 곳이다.

처음엔 송악이라 불렸고 이제는 개경이라 불렸다.개경은 중앙 집권 국가인 고려의 정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조운(漕運)이나 교역을 통해서 각 지방과 외국의 물산이 집결되는 경제 중심지이자 각 방면의 내로라하는 지성(知性)들이 모여드는 지식과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13세기 후반, 원(元)의 간섭 이전까지 황제국의 위용을 자랑하던 고려의 도읍으로서 개경은 10여만 호의 인구가 거주했을 정도로 번화하고 큰 도시였다.고려는 요동에서 터를 잡고 일어선 여진족이 세운 금으로부터 수많은 압박을 받고 있었지만 스스로 황제국이라 칭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이름뿐인 황제국이었다. 고려 황제의 즉위를 금나라 황제에게 허락받아야 하니 실질적인 황제국은 분명 아니었다.

개경을 둘러싸고 있는 나성(羅城)을 중심으로 행정 구획이 편성되었다.그리고 23Km에 달하는 나성의 둘레에는 스물다섯 개의 성문이 있었으므로 개경에는 크고 작은 도로들이 사통팔달의 형태로 연결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도로들은 결코 무질서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모든 도로는 황성을 향하였으며, 그 중심에는 황성의 정문인 광화문에서 시작되는 간선로가 있었다.

개경의 자연 지형상 황제의 궁을 둘러싼 궁성과 황성은 북서쪽에 치우쳐 위치하였으며, 광화문 밖 관청 거리와 시전 거리는 개경의 가장 큰 번화가였다.관청 거리에서 시작된 개경의 간선로는 배천[白川]이라 불리는 조그마한 하천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는 남대가로 연결되었으며, 이 남대가는 나성 내부 도로의 중심축이 되었다.

반면 나성 서쪽의 선의문에서 동쪽의 숭인문을 연결하는 대로는 나성의 내부를 남북으로 갈라놓는 역할을 하였으며, 이 도로와 남대가가 만나는 지점을 십자가라 불렀다.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개경이라는 고려의 수도에 대한 정보이다.

‘이제 곧 개경이군! 내가 개경을 본단 말이지, 개경을!’난 고려의 수도, 개경을 본다는 감격에 차있었다.개경의 스물다섯 관문 중 동문.급하게 말을 몰아 김돈중이 동문으로 달려왔다.

이곳은 채원이 말한 것처럼 김부식의 서자이며 김돈중의 이복동생인 태형이 수문장으로 있는 곳이다.태형!그는 아비의 성도 쓰지 못하는 서자였다. 그리고 그가 무신이 된 것은 어미의 신분이 비천했기 때문이다.

고려는 여러 명의 아내를 둘 수 있었기에 첩이라는 개념이 아주 희박했다.또한 혼례를 치르지 않고 첩을 두는 것을 극도로 조롱하는 풍토가 있었다. 그래서 신료들 중에 첩을 두는 자가 있으면 조롱의 대상이 됐다. 그래서 서자라는 못된 구분이 없는 것이 고려였다.

하지만 예외라는 것도 항상 있는 법이고 그 예외가 된 것이 바로 김돈중의 이복동생인 태형이었다.태형은 김돈중과 같은 성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어미가 너무나 천하기 때문이었고, 신료들의 조롱을 받는 것이 싫은 김부식이 자신의 소생인 태형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돈중은 자신의 이복동생인 태형을 형제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마음이 급해지니 그가 향하는 곳은 바로 이복동생이 수문장으로 있는 동문이었다.‘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야!’지금 당장 개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김돈중은 생각했다.

“이곳은 태형 도련님께서 계신 동문으로 가는 길 아니옵니까?”

종복이 김돈중을 보며 마상에서 물었다.

“누가 도련님이라는 것이냐! 그는 그냥 태형이다. 김씨의 성도 쓰지 못하는 자일 뿐이다.”

김돈중은 여전히 태형을 자신의 동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가 달려가는 곳은 바로 동문이었다. 사람이 급하면 이렇게 연을 좇아 움직이기 마련이다.

“송구하옵니다.”

“그래, 하지만 이번 변란을 진압할 때 만약 태형이 돕는다면 내 그 아이를 가문의 족보에 넣어줄 것이다.”

그만큼 김돈중은 다급했다.

“그렇사옵니까?”

“그래, 공이 있다면 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김돈중은 자신의 구차한 마음을 이렇게라도 변명하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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