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9화 (19/620)

< -- 간웅 1권 --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이의방은 빠르게 지시를 해서 상장군과 노장군들을 찾아 황궁으로 진격하는 제일 선두에 세웠다.역시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 누구보다 빠르고 과감하게 움직이는 이의방이었다.

그는 광풍이 분명했다.난 그런 이의방을 보다가 옆에 가만히 있는 이고를 힐끗 봤다.

이고는 뭔가 말을 하고 싶어 했지만 필요할 때 딱딱 지시하는 이의방 때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이고도 대장 노릇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난 그렇게 생각했다.

거사를 일으킨 이의방과 이고, 그리고 견룡들은 빠르게 개경에 있는 황궁으로 진격을 시작했고 정중부와 노장군들은 마지못해 그들을 따르는 모양새가 됐다.이로써 의종 24년 보현원에서 일어난 무신들의 거사로 문신들이 참살되고, 고려를 좌지우지하던 문벌 귀족 세력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그 후 100년의 시간 동안 우리 역사상에 유례가 없는 일명 무신시대가 열리고, 그것은 일본의 막부시대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갔다.처음 이의방을 비롯해서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으로 이어지는 혼란과 탐욕의 시기가 지나고 최씨 정권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 최씨 정권은 수십 년에 걸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드디어 광풍 같은 무인의 시대가 열렸다!’그리고 내가 그 중심에 서있게 되었다.

태후전.공예태후가 상궁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황제께서 보현원으로 납시었다고?”

“그렇사옵니다. 처음 무비의 수호장인 백화가 돌아와 그리 알렸다고 합니다.”

상궁의 말에 태후는 인상을 찡그렸다.

“백화, 그 아이가 돌아왔다고?”

“그렇사옵니다.”

“쯔쯔쯔! 그 아이가 왜 그 패악한 년 옆에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공예태후는 백화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물론 그것은 공예태후만 아는 것이기에 태후를 모시고 있는 상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그녀가 진정 모르고 있는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아니다, 너는 몰라도 된다. 해월아!”

“예, 태후마마!”

“그나저나 환관 김우치가 무비의 옆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다고?”

“그렇사옵니다.”

“요망한 놈과 요망한 것이 배가 맞았구나.”

공예태후는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그것들이 이 황실을 또 어떻게 분탕질을 칠 것인지 나는 걱정이 된다.”

“상선 이숭겸을 부르시어 은밀히 명을 내리시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해월이라는 상궁의 말에 공예태후는 상선 이숭겸을 떠올렸다.

“무비가 이 궁에서 축출되지 않는 이상 개 몇 마리를 때려잡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송구하옵니다. 제가 어리석어 괜한 소리를 했사옵니다.”

“아니다, 되었다.”

“태후마마! 상선 이숭겸 들었사옵니다.”

공예태후의 처소 밖을 지키는 나인의 말에 공예태후는 문 쪽을 봤고,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자신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

“들이라!”

그 명과 함께 스르륵 문이 열렸다.상선 이숭겸과 그의 옆에 서있는 어린 환관 하나가 조심히 태후의 방으로 들어섰다.

“상선 이숭겸! 태후마마를 뵈옵니다.”

상선 이숭겸이 고개를 숙여 예를 보였고, 그 옆에 있는 어린 내시도 그를 따라 예를 표했다.

“오셨소, 상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공예태후의 시선이 향한 것은 어린 환관이었다.

“너는 먹지도 않는 것이냐? 왜 그리도 크지 않는 것이냐?”

공예태후는 어린 내시를 아는 듯 말했다.그러자 어린 내시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먹기는 하오나 크지는 않아 그 이유를 모르겠사옵니다, 태후마마!”

조금은 당돌한 어투였지만 공예태후는 어린 내시가 당돌하다고 책하지 않았다.

“하나뿐인 손자를 잘 좀 먹이시게.”

공예태후는 상선 이숭겸을 보며 말했다.

“그리하겠나이다.”

“차를 한잔 하시겠소?”

공예태후는 그렇게 말하고 해월이라는 상궁을 봤다. 너는 이제 되었으니 나가보라는 그런 눈빛이었고, 해월 역시 알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조심히 태후의 처소를 빠져나왔다.

“감사하옵니다, 태후마마!”

“너도 앉아라!”

공예태후는 어린 내시에게도 스스럼없이 앉으라고 말했다.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숭겸은 조심히 탁자 옆에 놓인 의자를 빼어 어린 내시가 앉을 수 있게 준비해 줬다.

“예, 태후마마!”

어린 내시는 조심히 자리에 앉았다. 겨우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내시는 화려한 문양이 각인되어 있는 의자에 앉는 것도 무척이나 힘겨워 보였다.그런 어린 내시를 보는 공예태후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그녀는 어느새 회상에 빠져들고 있었다.진하게//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공예태후에게 말하는 사람은 젊은 의종이다.의종은 무척이나 단호한 눈빛으로 모후를 봤고, 공예태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황상…….”

“승하하신 아바마마에게 누가 되는 일이옵니다.”

“하지만 황상의…….”

“아니 들은 것으로 하겠사옵니다.”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듯 태후는 자신의 아들인 의종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7년이 지났사옵니다. 이제는 밝히시면 아니 되옵니다.”

역시 젊은 의종은 단호했다.

“그래도…….”

“크지도 않는 아이.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그 아이에게 옳을 것입니다.”

젊은 의종의 말에 공예태후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들은 것으로 하겠사옵니다. 또한, 그것이 밝혀지면 어마마마께서도 힘든 나날이 될 것이옵니다.”

“아, 알겠소, 황상.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그리하겠소.”

“밝히셨어야지요, 바로 밝히셨어야지요.”

젊은 의종도 답답한 표정으로 공예태후를 보며 한탄하듯 말했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소.”

“예, 압니다. 하지만 밝히셨어야 합니다. 그러면 소자가 이렇게 불효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 알았소. 모든 것이 이 어리석은 어미의 잘못이오.”

“아니옵니다. 소자는 단지 어마마마와 강일천 대장군을 불충한 눈빛으로 보는 자들 때문에 걱정이 되옵니다.”

순간 공예태후는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젊은 의종을 봤다.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소.”

“물론입니다, 소자는 어마마마를 믿사옵니다. 그리고 강일천 대장군을 믿습니다.”

“고, 고맙소, 황상!”

“하오나 다른 무리는 그리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숨기셔야 하옵니다.”

“알았소, 황상.”

//공예태후는 다시 회상에서 빠져나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차를 마시는 어린 내시를 조용히 응시했다.

“요즘 무엇을 하며 지내느냐?”

공예태후는 소일거리라도 하냐고 어린 내시에게 묻고 있었다.

“그저 서고에서 책을 읽사옵니다.”

“서고에서?”

“그렇사옵니다, 할 것이 없어 그러고 있사옵니다.”

“알았다. 그래, 책이라도 읽어야지.”

공예태후는 어린 내시를 잠시 보다가 상선 이숭겸을 봤다.

“상선은 좋겠소. 손자가 책을 즐기니 말이요.”

그 순간 어린 내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가 다시 담담한 표정으로 못다 마신 차를 마저 마셨고 잠시 후 조심히 의자에서 내려왔다.

“태후마마! 나가봐도 되겠사옵니까?”

“갑갑하냐?”

“아니옵니다, 그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러옵니다.”

“그래, 알았다. 나가봐라!”

공예태후는 부드럽게 말하고 상선 이숭겸을 봤다.

“나가보시게.”

“예, 태후마마!”

“그리고 자주자주 들르시게.”

“예, 태후마마!”

이숭겸과 어린 내시는 머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 조심히 뒤로 물러났다.그 순간까지도 공예태후는 어린 내시를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래, 이제 와서…….’이백여 명의 견룡군 군사들이 이의방의 통솔에 따라 황도로 진격하고 있었다. 소수의 병력이지만 그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미 견룡군 병사들은 황제가 자신들의 손아귀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들은 스스로 고려를 다시 세우는 거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대의명분이 있었던 것이다.‘명분이 있으니 두려움 따위는 없는 것 같다.

’난 마상에서 이백의 견룡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정말 그들은 두려움이 없는 눈빛이었다.

사실 견룡은 황제의 친위대이기에 그 무위는 모두 다 일당백에 가까운 실력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대의가 있는 듯 보였다.물론 그 대의는 이의방이 심어준 것이었다.

개경으로 출발하기 전에 이의방이 견룡군 군사들을 모아놓고 그 여유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생각한 대의를 목청껏 외쳤기 때문이다.‘이의방의 대의명분이 얼마나 갈지 궁금하군!’하도 인상을 써대서 내 미간엔 어느새 세로줄이 그어져 있을 듯하다.

사실(史實)은 내가 책이나 드라마에서 본 것과는 달랐다[email protected]그//(첨가.)리고 역사적으로도 내가 본 이의방과 기록상의 이의방은 달랐다.

분명한 것은 그가 권력을 가지고 나서 빠르게 썩어갔다는 점이다.역사는 쓰는 자의 기록이다.

그 시대의 기록자들이 황제를 폐위시킨 이의방에 대해 좋게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이의방은 초심을 잃을 게 확실해 보인다.

나는 행군을 하는 군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정중부! 저 늙은이가 앞장을 서니 폼이 좀 나는군!’이래서 상장군은 어딜 가나 필요한 법이다.

제일 선두에 정중부를 얼굴마담으로 세웠고, 그 옆에는 이의방과 이고가 정중부를 호종하듯 따르고 있었다.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일단은 정중부를 앞에 세워라.

이것이 이상하게 이의방의 책사처럼 되어버린 내가 낸 의견이었다.이의방은 두말없이 내 의견을 받아줬다. 그리고 황제인 의종을 지키는 데 석린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을 냈다.

“석린은 훌륭한 장수이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장수는 아니잖습니까?”

이의방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지.”

“그러니 이의민 장수를 보현원에 남겨두고 가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이의민이 나를 노려봤다.

“이의민은 내 수족과 같은 장수이다.”

이의방은 내게 그건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수족과 같은 장수이고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남겨두셔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긴다?”

“그렇습니다. 지금 행수 어른의 수중에 들어와있는 황제 폐하는 천군만마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가로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석린을 의심하는 것이냐?”

“그런 의미가 아니옵니다. 단단히 해두자는 겁니다.”

“단단히 황제를 지킨다?”

“그렇습니다.”

“자네는 어떤가?”

이의방이 이의민을 봤다.

“소장이 이곳에 남겠사옵니다.”

그제야 이의방도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예, 행수 어른!”

사실 난 이의방에게 이런 의견을 내기 전에 미리 이의민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할 거라는 언질을 해둔 상태였다.그때만 생각하면 난 역시 무척이나 사악한 존재라고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진하게//

“뭐라? 이 보현원에 남아 황상을 지켜라?”

내 말을 듣고 이의민은 나를 빤히 봤다.어젯밤, 사전에 이것저것 이의민에게 깔아놓지 않았다면 내가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의 손에 있는 부월이 내 머리통을 부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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