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8화 (18/620)

< -- 간웅 1권 -- >서걱!

“으악!”

“죽어라! 이 망할 놈들아!”

그동안의 울분이 얼마나 깊었는지 그들의 검은 수없이 번뜩이기만 했다. 베이고, 또 잘리고 끝없이 울부짖음이 이어졌다.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살겁이 끝이 없다.’난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듯 찬찬히 무신들을 봤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지금 검을 휘두르고 있는 자들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치 사람을 잡아먹는 야차 같았다.

그 때 보현원 밖에 있던 이의민이 연회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나도 여기에 있다!”

이의민은 의도적으로 자신이 온 것을 알리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자신도 이 거사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것을 통해 이의방에게 뭔가 얻으려는 건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얻으려는 것은 권세가 분명할 것이다.

이 순간 얼마나 더 잔인하게 문신들의 목을 베느냐에 따라 달라질 세상에서의 직위가 결정된다는 것을 어리석은 이의민도 아는 듯했다.‘무서운 세상이다!’나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며 부월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이의민을 봤다.

쉬웅!거친 부월이 바람을 가르더니 멍하니 있는 문신의 머리통을 힘껏 내려찍었다.

“으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문신의 머리통이 수박 갈라지듯 쫙 쪼개졌다. 쪼개진 머리통에서 뿜어지는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는 순간 이의민은 금강야차처럼 눈에 광기를 뿜어내며 번뜩였다.

그렇게 보현원은 아수라장이 되었다.그리고 연회장에서 문신들과 환관들을 어느 정도 도륙한 정변의 핵심인 이의방과 이고, 이의민은 의종이 들어간 전각을 노려봤다.

물론 나의 시선은 지금 이 거사의 아수라장을 주도하고 있는 이의방에게 향해있었다.‘이제 황제를 겁박할 게 분명하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대들은 나를 따르라!”

이의방은 마치 자신이 이 거사의 수장인 것처럼 말하며 의종이 들어간 전각으로 걸었다.그리고 고개를 돌려 이의민의 뒤에 숨어있는 나를 봤다.

“회생아!”

이의방이 천둥과 같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예, 행수 어른!”

“혼이 나가서 무엇을 하는 것이냐!”

“예?”

“멍하니 있지 말고 너도 너의 몫을 해라!”

“예, 행수 어른!”

난 사실 멍한 척을 하고 있었다. 그저 한발 뒤로 물러나 있으려 했는데 그것을 이의방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이고를 봤다. 뭔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고는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있었다.‘살 떨리게 무섭네.’아무리 내가 미래의 기억이 있다고 해도 눈앞에서 목이 베이고 비명 소리가 낭자한 이 순간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가세!”

이의방은 이고를 보며 말했다.이고는 아무 말도 없이 이의방의 뒤를 따랐다.

거사의 명령을 내린 정중부는 이 아수라장 속에 없었다. 그저 연회장에 앉아 마치 검무를 추는 무인을 보는 것처럼 의종이 마시던 술을 따라 마시고 있었다.

정중부 역시 한발 뒤로 물러서있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의 눈빛은 날카로운 늙은 범처럼 매섭기만 했다.

젊은 날의 호랑이는 힘으로 자신을 표현하지만 저렇게 늙으면 가만히 앉아 눈빛만으로도 스스로가 아직 죽지 않음을 알릴 수 있는 것 같다.그리고 그 순간 나는 상장군 정중부가 뭔가 일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저들이면 족하지.”

정중부는 그렇게 나직이 중얼거렸고 난 힐끗 정중부를 봤다. 정말 늙은 백여우가 따로 없었다.‘정말 대단한 자다.’이의방이 전각 안의 문을 벌컥 열고 초조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의종을 노려봤다.

“황상 폐하! 난신적자들을 모두 척살했나이다.”

순간 의종은 놀란 눈으로 이의방을 봤다.

“뭐, 뭐라 했는가?”

“난신적자들을 모두 베었다고 하였나이다.”

“저, 정말 그들을 그대가 무참히 다 죽인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이제 황궁에 있는 난신적자들을 모두 참하여 황상 폐하의 대고려를 소인들이 다시 세우겠나이다.”

이의방은 거침없이 말했고 의종은 놀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는 눈빛이었다.

“소장이 반드시 독버섯 같은 난신적자를 모두 참하겠나이다.”

“화, 황궁에 있는…….”

의종은 이의방의 말에 기겁했다.

“그러하옵니다. 그러니 소신들에게 명을 내려주십시오.”

이의방이 이렇게 전각으로 몸을 피한 의종에게 온 것은 그의 칙명을 받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 칙명은 강제적인 것이었다.

순간 나는 의종이 이의방의 말을 끝내 거부한다면 이의방이 의종을 벨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베게 된다면 역도가 될 것인데…….’걱정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의방 역시 역도로 몰려 끝내 거사는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의종을 겁박하기 위해 온 것일 테고 말이다.

“짐에게 무슨 명을 내리라는 것이오?”

말투부터 바뀐 의종이었다.아무리 고려의 지존인 황제라고 해도 무신들이 들고 있는 검이 번뜩이면 무서운 게 당연할 것이다.

“황궁에 숨어있는 난신적자를 척살하라는 명을 내려 주십시오.”

“지, 지금 짐에게 짐의 총신들을 모두 다 죽이라는 명을 내리라는 말인가?”

의종의 말에 이의방의 눈빛이 순간 사납게 변했다.그 때 이의민이 의종을 노려봤다. 이의민은 의종을 위협하겠다는 듯 여전히 피가 뚝뚝 떨어지는 부월을 고쳐 잡았다.‘위협하고 있음이야!’난 뒤에서 이의방, 이고, 이의민을 지켜봤다.

“총신이라고 하셨나이까?”

이의방이 우레 같은 소리를 질렀다.

“겨, 견룡행수…….”

“그들은 황상 폐하의 총기를 어지럽히는 난신적자이옵니다!”

이의방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의종은 기겁했다.

“어서 명을 내려 주십시오. 칙명으로 소장과 소장을 따르는 충신들이 난신적자의 목을 베게 명을 내려 주십시오, 황제 폐하!”

정말 거침없는 위협이었다.의종은 잠시 이의방을 봤다. 그러고는 길게 한숨을 쉬고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 순간 의종은 자신이 왜 사라진 김돈중의 말을 듣지 않았을까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후회한다고 해도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역사는 무신들의 세상으로 흐르는 것인가?’난 이 정변의 중심에 서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얻으면서도 나를 드러내지 않을까 고민했다.

“칙령을 내려 주십시오, 황제 폐하!”

이의방이 다시 한 번 압력을 넣었다.‘몰아붙이는 것이 광풍 같다.

’나는 이의방을 광풍에 비유했다.그에 비해 그 광풍을 온전히 맞고 있는 의종이 너무나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어 측은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의종에게 왜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일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가 의종을 가엾게 여길 여유 따위는 없는데 말이다.

“그, 그대가 알아서 해라!”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시오.”

이의방의 말에 의종은 자신의 입술을 꼭 깨물었다. 살면서 이보다 심한 치욕은 없었다.

“그, 그대의 말처럼 황궁에 있는 난신적자를 짐, 짐을 대신해서 모두 다 처단하라!”

“견룡행수 이의방! 황상 폐하의 명을 따르겠나이다.”

이의방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바로 전각을 빠져나왔다.그 순간 멀리 있는 정중부와 이의방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황제의 칙령을 받아냈다는 것을 알리는 듯했다.이의방은 결연한 표정으로 전각 계단을 내려왔다.

“내 오늘, 무신들을 천대하고 괄시한 문신 놈들과 환관 놈들의 씨를 황궁에서 말릴 것이야!”

이의방은 굳게 다짐했다.

“가자! 나를 따르는 견룡은 지금 황궁으로 갈 것이다.”

이의방은 그렇게 말하면 성큼 앞으로 걸어 나왔다.그리고 이의민에게 뭔가를 지시하는 듯 작게 속삭였다.‘젠장!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 황궁까지 가야 하는 건가?’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급하게 이의방의 지시를 받은 이의민이 나를 봤다.

“가자!”

역시다. 그런데 무척이나 말이 짧다.

“어디를 가자는 겁니까?”

“어디긴 황궁이지. 견룡행수께서 너를 데리고 갈 거라고 하셨다.”

“저를요?”

“그래, 너를.”

역시 이의방은 자신의 부족한 식견과 능력을 나로 채우려 하는 것 같았다.‘젠장! 발을 너무 깊이 담갔어.’난 속으로 스스로를 원망했다.

여기까지는 이의방 일파의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이의방은 부하 장수인 석린을 이용해서 이곳에 의종을 감금할 것이다.

그리고 쉬지 않고 말을 달려 황궁으로 진격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적은 병력으로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속전속결이 최고이니.이렇게 정신없이 몰아쳐야 원로 노장군들을 누르고 자신이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제 새벽에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줬나?’그런 생각을 하며 내 앞에 선 이의민을 봤다.내 얼굴빛은 흙빛으로 변해있을 것이다.

‘안 간다고 하면 안 되겠지?’이제 어쩔 수 없다. 내가 갑자기 무인들에게 주목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정변이 성공할 때까지는 같이 가보자.’이제 정변이 실패하면 나도 참수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무신정변을 성공시켜야 한다.

목이 잘려 저잣거리의 구경감이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바로 황도로 갈 것이다. 말은 탈 줄 알겠지?”

이의방이 내게 물었다.

“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뭐라? 그건 또 무슨 말이냐?”

“타보면 알겠지요.”

“하여튼 넌 참 요상한 놈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난 이의방과 같이 황도로 향할 준비를 했다.11장 개경 황도로 진격하다

“회생에게 군마를 가져다줘라!”

이의방이 직접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자 장졸 하나가 내게 말을 가지고 왔다. 겨우 행수인 이의방은 지금 모든 권력을 쥔 절대자 같았다.하지만 아직 승리의 환호를 지르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황궁을 지키는 병사만 수천이니 말이다.

“그런데 정중부 상장군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정중부 상장군?”

“그렇습니다, 그분을 모시고 가야 합니다.”

내 말에 이의방은 나를 다시 봤다.저런 눈빛은 이유를 묻는 눈빛이다.

“상장군의 권위가 없다면 군부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군부를 장악해야 합니다.”

“그래, 너의 말이 옳다.”

“그렇습니다, 황궁을 장악하고 군부를 통제하면서…….”

난 말을 하다가 멈췄다. 그다음 말은 지금 내가 입에서 꺼내기 무척이나 거북했기 때문이다.물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의종을 폐위시키고 새로운 황제를 옹립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말까지 하면 정말 난 다시는 발을 빼지 못할 것이다.

“왜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냐?”

“지금 보이지 않는 김돈중을 잡아야 합니다.”

내 말에 이의방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이의민을 봤다.

“김돈중, 그자를 보지 못했나?”

“예, 보지 못했습니다.”

“시체를 찾아라. 그자는 문신의 거두다. 그자가 이곳에서 숨이 붙은 채 빠져나간다면 문제가 커진다.”

“예, 행수 어른.”

이의민이 짧게 대답했다.

“김돈중은 이곳에 없을 겁니다.”

“뭐라?”

“이곳에 있었다면 벌써 죽었을 겁니다. 지체하실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상장군을 모시고 황궁으로 진격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점점 더 이의방이라는 늪에 빠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사라지기 전 김돈중이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무비를 죽이지 않게 하라고 했지.’지금 이 순간 그 이야기가 왜 생각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 김돈중의 눈빛은 거짓이 아니었다는 점이다.‘그럼 뭔가 있는 거겠지. 황궁에 가보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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