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15화 (15/620)

< -- 간웅 1권 -- >내 옆으로 온 김돈중은 나를 한참이나 봤다.‘강인번이 무거워 죽겠는데 왜 자꾸 보고 지랄이지?’강인번이 무거우니 자꾸 짜증이 났다. 난 그런 짜증 속에서 옆에 붙어 말없이 이동하고 있는 김돈중을 힐끗 봤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그 때 김돈중이 이 위급하고 불안한 상황을 한탄하는지 혼잣말을 하듯, 그게 아니면 나에게 들으라는 듯 두보의 고시를 조용히 읊조렸다.‘나보고 들으라는 건가? 국파산하재는 나라가 망하니 산과 강만 남아있다는 뜻…….’나는 김돈중이 읊조린 「춘망」이라는 두보의 한시를 마음속으로 해석했다.

어쩌면 이 순간 김돈중에게는 나라가 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성춘초목심(城春草木深)이구나!”

김돈중은 계속 춘망의 시구를 읊조렸다.물론 나는 속으로 그 시구를 해석해 나가고 있었다.‘성 안에 풀과 나무만 늦은 봄을 알리누나.’

“감시화천루(感時花?淚)이고.”

‘시절을 생각해 보니 꽃도 눈물을 흘리고.’

“한별조경심(恨別鳥驚心)하구나!”

‘이별의 한은 새마저 놀라게 하는구나.’

“봉화연삼월(烽火連三月) 되니.”

‘봉홧불은 전쟁을 의미하겠지. 그리고 김돈중에게 전쟁이라는 것은 무신들의 봉기를 의미할 거고. 그러고 보니 참 답답하겠다.’난 마음속으로 한시를 해석하다가 시름에 찬 김돈중을 다시 봤다.

마치 내게 이 시를 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라는 것 같았다.‘그런데 왜 나한테 이런 한시를 읽어주는 걸까? 이 순간 황당한 한시 낭송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나는 의문이 생겼다.

그 때 김돈중이 조용히 나를 봤다.

“네가 진정 영특하다면 이 시구의 뒤를 알 것이다.”

“예?”

“가서저만금(家書抵萬金)에 백두소경단(白頭搔更短)으로 혼욕부승잠(渾欲不勝簪)이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겨우 열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병사가 두보의 시까지 이해하고 있다면 그건 정말 놀랍고 신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는 시도 모른다고 했다.

“내 생각이 가슴 아프게 맞아 들어간다면 오늘 밤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예?”

난 다시 김돈중에게 반문했지만 김돈중의 예리한 관찰력에 놀라고 있었다.‘뭐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건가? 그런데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해주는 거지?’이것 역시 의문이었다.

좌승선인 김돈중에게 나는 벌레보다 못한 병사일 것이다. 상장군 정중부도 무시당하는 이 고려조 중기에, 겨우 어린 병사에게 이런 말을 하는 문신의 중심인 김돈중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환란을 피하거든, 또 궁으로 가거든 너를 위해 무비를 죽게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김돈중의 말에 난 순간 당황스러웠다.무비는 의종이 총애를 하는 비이다.그런데 일개 병사인 내가 어떻게 무비를 죽지 않게 돌볼 수 있다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소인은 좌승선 대감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진정 모르겠습니다.”

“네가 그것을 안다면 크나큰 일이 벌어지겠지.”

그 말을 듣고 나는 김돈중을 다시 봤다.‘이건 또 무슨 잡소리야?’정말 이해되지 않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관대작이며 문신들의 거두로 알려져있는 김돈중이 나를,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 이 몸뚱이의 주인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점이다.‘나를 알아! 뭔가 알고 있어.’절로 인상이 찡그려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입으로 시원하게 말해 주지 않는 걸 보면, 내가 뭔가를 알게 되면 정말 엄청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이다. 아무리 간악한 무비라고 해도 너에 대해 알려줄 자는 무비뿐이다.”

정말 점점 더 모를 소리만 하는 김돈중이었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내 거기에 대한 답을 해줄 수가 없구나. 나 역시 죄인이니 말이다.”

“죄인이라니요?”

“그런 게 있다. 그러니 내 말을 명심해라.”

김돈중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할꼬?”

이렇게 황당한 소리를 하는 김돈중이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슨 이유에선가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깔려있는 듯했다.‘나를 걱정하는 건가? 측은하네.’난 다시 근심에 가득 찬 김돈중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가시는 길에 감악산은 들르지 마시고, 항상 옆에 두고 믿으시던 종자를 믿지 마십시오.”

난 나도 모르게 김돈중에 대한 일을 말해 주고 말았다.김돈중은 보현원에서 몸을 피해 감악산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하지만 종자의 밀고에 무신들에게 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순간 나는 천기를 누설한 것이다.모든 역사와 미래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변하기 마련인데, 나도 모르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흘리고 말았다.

물론 이것은 내가 그를 측은히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일을 대비한 조치이기도 했다.만약 그가 사라져 서경이나 다른 곳의 병력을 이끌고 황궁으로 진격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고려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역사와 다르게 미래가 흘러 무신정변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면 다시 황궁을 점령한 김돈중에 의해 나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한마디로, 작은 보험 하나 정도를 들어둔 것이다.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그저 이 풍진 세상에서 사람을 믿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것이냐? 이 풍진 세상이라! 또 애늙은이처럼 말하는구나.”

“송구하옵니다.”

김돈중은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정말 너는 참 요상한 기운을 가진 놈이다.”

김돈중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아마 어가 행렬이 잠시 쉴 때 김돈중은 의종을 버리고 어가 행렬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가 만약 그 순간 조금만 더 긴밀하게 몸을 움직인다면 나로 인해 무신정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이것으로 내 의도대로 김돈중에게 한 발 올려놓게 되었다.

정말 가슴을 졸이며 한없는 줄타기를 하고 있는 나였다.하지만 역사라는 운명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병사들을 이끌고 오기에는 개경과의 거리가 너무 멀겠지.’바로 이 부분 때문에 김돈중은 좌절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무신정변은 성공하는 것이고 1세기나 이어질 무신정권이 성립되는 것이다.이제 정말 혼돈의 시간이 열린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가 행렬은 세 시간을 넘게 보현원으로 가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자!”

어가 안에서 휘장을 올리고 경치를 구경하던 의종이 어가를 멈추라는 어명을 내렸다.

“무슨 일이시옵니까? 황상 폐하!”

한뢰가 영문을 몰라 의종에게 물었다.

“풍경이 좋구나! 이것이 짐의 강산이구나!”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의종은 경치나 구경하려는 듯 어가를 세웠다.그와 동시에 김돈중은 슬그머니 몸을 피했다.

“그러하옵니다. 황상 폐하의 강산은 이리도 평온하옵니다.”

“그래, 짐의 강산은 이리도 평온하다. 하하하!”

그렇게 어가는 잠시 멈췄다.‘참 세월 좋다. 저러니 엄청난 일을 만든 황제가 될 수 있었겠지만.’의종을 보니 정말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황제가 곧 법이니 어쩔 수 없다.‘그나저나 얼마나 더 가야 보현원이지?’궁금증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정중부와 이의방, 그리고 이고를 봤다. 지금 한없이 태평스러운 의종과 다르게 그들은 긴밀하게 상황을 파악하며 눈빛으로 서로 교감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문신들을 처단할 것처럼 보였다.‘지금 일어나도 뭐라고 할 수가 없겠네.’그런 생각을 하며 그들을 내 시야에서 놓치지 않고 있었다.

10장 거사의 불길이 치솟다무비의 처소가 있는 황궁.무비는 탁자 위에 용향차를 올려놓고 차의 향기를 즐기고 있었다.용향차가 담긴 찻잔에서는 향기와 함께 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무비의 앞에는 환관 김우치가 차분하지만 탐욕스러운 눈동자로 무비를 보고 있었다.

환관 김우치는 한뢰와 한패이면서도 무비의 사람이었다.이 고려에는 두 종류의 환관이 공존했다.

사내의 구실을 할 수 있는 자로 보통 대전에서 황제를 보필하여 대전의 사소한 일을 처리하는 자들과 어릴 적에 화를 당해 사내구실을 하지 못하는 내시들이 공존했다.한뢰가 대전 환관이라면 사내구실을 하지 못하는 김우치는 내시라고 불리는 내전 환관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긴밀히 공조하여 한뢰가 황제의 어심을 어지럽히고 있었고, 김우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무비의 발아래 엎드려 있었다.

또한 그들은 힘을 합쳐 현 상선이면서 공예태후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환관 이숭겸과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는 내전 환관 최준과 대적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강인번을 들고 어가를 호종하고 있다고?”

“그러하옵니다, 무비 마마!”

김우치의 말에 무비는 차가운 미소를 하얀 얼굴에 담았다.

“그렇게 천대받고, 그렇게 괄시당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그래, 나의 분노를 사고 이 세상에서 편히 살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년도 하늘에서 원통하고 비통해서 가슴을 치고 있겠지. 누구의 씨이지만 그리 모질게 살게 할 것이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표독한 무비의 말에 김우치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다 혹시 황상께서 아시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찌 황상이 아실 수 있단 말이냐? 그 아이에 대해 아는 자는 오직 나와 너, 그리고 좌승선 김돈중뿐이다.”

“하오나 사람이라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환관 김우치가 말을 하다가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닫았다.그는 지금 말실수를 한 것이다. 그의 말은 사람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이 세상에서 누구도 믿을 수 없지.”

무비는 표독스럽게 용향차를 마시며 환관 김우치를 봤다.

“그런 면에서 너도 믿을 수가 없지.”

“무, 무비 마, 마마! 저는…….”

“너는 믿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그, 그게 아니옵고…….”

김우치는 이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비의 눈빛이 너무나 사납고 표독스러웠다.

“그게 아니면 무엇이냐?”

무비는 환관 김우치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그건 맞사옵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이 아니지 않사옵니까?”

“뭐라고? 그대가 사람이 아니다?”

환관 김우치의 말에 무비는 조금 전 사나웠던 눈빛을 풀었다.

“그러하옵니다, 저는 사람이 아니옵니다. 저는 개도 안 물어갈 내시 환관이지 않습니까? 저는 무비 마마 앞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충성을 다하는 충견이옵니다.”

“충견? 개다? 그대는 개다? 호호호!”

“그러하옵니다.”

“그렇지, 너는 개다. 그것도 불알 없는 개. 호호호! 그래, 너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개인 것이다. 그러니 어디 한번 짖어봐라.”

자신의 입으로 개도 안 물어갈 환관이라고 말한 김우치이지만 속에서는 모멸감이 끓어올랐다.사실 따지고 보면 무비 역시 비천한 무희 출신이니 자신보다 근본이 나을 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개라면서, 왜? 짖는 것은 못 하겠느냐?”

“아, 아니옵니다.”

김우치는 바로 바닥에 엎드렸다. 이왕 비굴하게 행동할 거면 완벽하게 비굴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여기서는 치욕을 당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수많은 재물이 자신의 창고에 쌓일 것이고, 너 나 할 것 없이 청탁을 하기 위해 자신의 집 문턱을 넘을 거라는 것을 환관 김우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환관 김우치는 무비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 의종에게 가장 총애를 받는 무비를 모시는 환관이 바로 그이다.

그리고 무비를 움직이는 것은 환관 김우치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지금 이 순간 환관 김우치는 개가 되어도 나쁠 것이 없었다.

“멍멍! 멍멍!”

환관 김우치는 개처럼 짖었다. 그리고 마치 꼬리가 있는 것처럼 엉덩이를 흔들었다.

“보소서! 이 충견이 무비 마마를 위해서 꼬리까지 흔들지 않습니까?”

“그렇구나, 호호호! 내가 농이 심했다. 일어나라.”

무비의 눈빛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어찌 보면 이 고려사에 둘도 없는 요부가 바로 무비일 것이다.무비의 말에 환관 김우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아이가 그리 사는 것은 모두 다 나를 그렇게 괄시한 그 아이의 어미 년 때문이야.”

“그러하옵니다.”

“겨우 상궁 주제에 나를 그리 괄시해!”

무비는 계속 모를 소리만 했다.

“그러하옵니다. 그러니 그렇게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이지요. 하늘이 무비 마마를 대신해서 이 상궁에게 천벌을 내린 것이 분명합니다.”

환관 김우치의 말에 무비는 다시 사나운 눈으로 변해 김우치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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