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웅 1권 -- >
7장 이의방의 편에 서다
“혈기만 왕성하다고 모든 일이 되는 것은 아니네.”
상장군 정중부는 여전히 오늘 밤의 거사를 반대하고 있었다.
“하오시면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하옵니까? 채원이 궁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흥왕사에는 저희 병력만 있습니다. 문신들은 사병들도 없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습니다.”
이의방의 말에 정중부는 더는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정중부는 여전히 오늘의 거사를 반대하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그가 거사를 반대하는 이유가 다른 것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군막 밖에서 엿듣고 있던 내 머리를 때렸다.
‘저 늙은이는 마지못해서 끌려가기 싫은 거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늙은이는 거사 다음을 생각하고 있어.’
거사 다음이라는 것은 권력일 것이다.
이렇게 이의방과 이고에 의해 끌려가듯 거사에 동참하면 자신은 거사 후에 뒷방 늙은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저 늙은이가 정말 바라는 것은 뒷방 늙은이에 대한 존경보다 살아 숨 쉬는 권력이야!’
인간은 모두 간사한 법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그럼 언제이옵니까?”
“지금 이 순간 시생들의 확고한 의지를 끝내 꺾으신다면 훗날 무인들의 내일은 없습니다.”
이의방의 말에 정중부는 다시 한 번 인상을 찡그렸다.
“어차피 뽑아 들기로 한 칼이옵니다. 아니 그렇사옵니까?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누군가 밀고라도 한다면 칼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역적이 되는 것이옵니다. 시생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개죽음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옵니다.”
이고가 피를 토하며 다짐을 받아내듯 정중부에게 말했다.정중부는 그런 이고를 빤히 봤다.
아마 자신이 거절한다면 이의방은 그냥 돌아갈 것이지만 이고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하지만 정중부, 그는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었다.
끝내 정중부가 거사를 반대한다면 이의방이 정중부를 척살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알았네, 내일 어가 행렬이 보현원으로 간다면 그곳에서 거사를 행하는 것으로 하세.”
“예?”
이고와 이의방은 눈살을 찌푸렸다.난 밖에서 정중부의 말을 듣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무신정변은 보현원이야!’
보현원!
경기도 장단에서 남쪽으로 25리 떨어진 곳에 있는 원이 바로 무신정변이 일어난 보현원이다. 훗날 정중부, 이의방, 이고가 보현원에서 난을 일으킨 것을 ‘보현원 사건’이라고 말했다.
고려 의종이 여기에 못을 만든 후 놀이하는 곳으로 삼아 자주 거둥하였다.
의종 24년(1170년) 8월에도 임금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연복정과 흥왕사를 거쳐 이곳에 행차하였는데, 호위하던 상장군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이 문신들을 살해하여 무신정변의 발단이 되었다.
보현원에서 거사를 하자는 정중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고와 이의방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황상께서 다시 환궁하신다면 거사가 행해져서는 안 될 것이야. 아니, 한다고 해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네.”
“하오나 이미 칼은 뽑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뽑은 칼은 도로 넣으면 그만일세.”
정중부는 이고를 노려봤다.그 순간 이의방은 이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저희들은 상장군의 뜻을 따를 것이옵니다.”
“그럼 경거망동하지 말고 물러들 가게.”
정중부의 말에 이의방과 이고는 어쩔 수 없이 군막의 휘장을 걷어 올리고 밖으로 나왔다.
난 그들의 표정을 보고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귀가 있으니 이미 알고 있었고, 다른 이에겐 없는 역사의 기억이 있으니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군막 밖으로 나오다가 화가 풀리지 않은 이고가 홱 하니 고개를 돌려 정중부가 있는 군막을 보며 오른손으로 검을 잡았다. 그러자 이의민의 눈동자가 차갑게 변했다.
그 순간을 이의방이 알아채고 이의민에게 눈치를 줬다. 이의민은 이의방의 눈치를 보고 사나운 눈동자를 풀었다.
이것만 봐도 이의민은 이의방에게 어느 정도 빚이 있는 것 같았다.
“늙어서 너무 기운이 빠졌어.”
이고는 군막 안에 있는 정중부더러 들으라는 듯 말했다.
“신중한 것이라고 말하면 안 되겠나?”
이의방의 말에 이고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봤다.
“벤다며? 왜 베지 않았나?”
이고의 물음에 이의방은 이고가 아닌 나를 빤히 봤다.
“다시 죽기 싫어서.”
“뭐야?”
“이곳에서 황상을 겁박할 수는 있어. 그리고 난신적자를 척살할 수도 있어. 그리고 황궁으로 말을 달릴 수도 있네. 하지만…….”
“하지만 뭔가?”
“그다음은 어찌할 건가? 수많은 병사들이 겨우 행수인 나와 자네를 따를 것인가?”
이의방의 말에 나는 이 순간 이의방이 이 거사의 얼굴마담 역을 해줄 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 따르면 다들 목을 베어서 따르게 만들면 되는 거야!”
“그럼 상장군을 벤다고 치세. 그다음 두 분 대장군은 어찌할 건가? 그들도 벨 것인가?”
“젠장! 다 늙은이가 문제군.”
이고의 말에 이의방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는 그 급한 성정이 탈일세! 장군들을 반드시 거사에 동참시켜야 해. 우리에겐 상장군의 명성과 힘이 반드시 필요하네.”
역시 내 예상대로 이의방은 얼굴마담을 찾고 있었다.
“알았네, 알았어.”
“그러니 하루만 더 참아보세. 반드시 폭군인 의종은 더 질펀하게 분탕질을 치기 위해 보현원으로 갈 것이야.”
이의방의 말에 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다가 변덕스러운 황상이 환궁하게 되면 어찌할 건가?”
“절대 그럴 일은 없네.”
“그래, 두고 보세.”
그렇게 일촉즉발의 무신정변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해가 뜨고 그 해가 다시 지는 순간 보현원 사건이 터질 것이고, 그곳에서 수많은 문신들이 괄시하던 무신들에게 목이 베일 것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이의방이 나를 빤히 봤다.
“너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회생이옵니다.”
“회생?”
“그렇습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예, 견룡행수님!”
나는 이의방의 뒤에 섰다.이의방은 이고와 이의민을 뚫어지게 보며 그들의 성정을 다독거렸다.
“내일까지 절대 경거망동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야.”
이의방이 다짐을 받듯 말하자 이고는 퉁명스럽게 대꾸했고, 이의민은 낮게 허리를 숙여 답을 대신했다.
“군사들의 동태는 어떠한가?”
이의방이 이의민에게 물었다.
“아무런 동요도 없습니다. 저희는 모두 두 분 행수님을 따를 것이옵니다.”
이의민의 말에 이의방은 믿음직스러워하는 눈으로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너무 경직된 것도 의심을 살 수 있으니 몇몇은 쉬게 하고, 또 몇몇은 난장을 좀 떨라고 하게.”
“난장까지야…….”
“우린 저들에게 불학무식한 무부이지 않나?”
이의방의 말을 듣고 난 또 한 번 그의 치밀함에 놀랐다.‘생각 이상으로 치밀해. 그런데 왜 날 보자고 한 거지?’나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사람이 점점 더 무서워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럼 이만 나는 내 군막으로 돌아가겠네.”
“젠장! 나는 술이나 한잔해야겠군.”
이고 역시 퉁명스럽게 말하고 등을 돌렸다.나는 그저 조심히 이의방을 따라야 했다.
‘다시 위기가 찾아오는 건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난 이의방과 함께 그의 군막으로 향했다.
이의방의 허름한 군막.
이의방은 황제의 친위대라 그런지 유일하게 흥왕사 안에 작은 군막을 설치해 둔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견룡군 행수인 이의방을 제외하고 상장군 정중부를 비롯해서 이고까지, 방만 천 칸이 넘는다는 흥왕사에 허리를 펼 방 한 칸이 없었다.
그들은 정말로 가혹한 괄시를 받고 있었다.이의방은 자신의 군막에 들어서자마자 의자에 앉으며 나를 봤다.
“회생이라고 했지?”
“그러하옵니다. 견룡행수님!”
“내가 보기에 너는 무척이나 영악한 아이다.”
“과찬이십니다.”
난 허리를 숙여 아니라는 표현을 했다.
“칭찬으로 들리느냐?”
“예?”
“욕이다.”
순간 이의방의 한마디에 군막 안은 싸늘해졌다.
‘무슨 의도에서 한 말이지?’
난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그리고 이 순간 바로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감지했다.
“저는 견룡행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네놈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영악하고 처세가 밝구나. 난신적자처럼.”
“예?”
“그리고 능력도 있고.”
“제게 무슨 능력이 있다는 말씀이시옵니까?”
“몰라서 묻는 것이냐?”
“예, 저는 몰라서 여쭙는 겁니다.”
“이고의 병사는 부대 내에서도 알아주는 용력의 소유자들이다. 내 부하들과 거의 쌍벽을 이루지.”
이건 다시 말해 이의방의 부대가 강하다는 자랑이기도 했다.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그런데 너는 이고의 병졸 둘을 빠르게 죽였다.”
이제야 난 이의방이 나를 의심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건 제가 견룡행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영악하기 때문이옵니다.”
“이제야 실토하는 것이냐?”
“실토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저는 행수님께서 병사들을 감시하라고 지시하신 줄로 압니다.”
“맞다, 그러니 네가 영악한 놈이라는 거다.”
“그런데 그 병사들이 밀고를 하려고 했습니다. 소리를 지르면 그들이 도주할 것 같아서 미리부터 꾀를 낸 것입니다.”
“미리부터 꾀를 내었다?”
“그렇습니다.”
“그래, 용력이 좋은 장졸 둘을 어린 네가 죽일 수 있었던 꾀는 무엇이냐?”
이의방은 나를 가늠하고 있는 듯했다. 이 순간 내 능력을 한껏 보여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의방의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해서도 안 된다. 정말 다시 살아난 다음부터 시작도 처세요, 끝도 처세였다.
“저는 행수님이 들어가시는 순간 바로 바닥에 앉아 조는 척을 했습니다.”
“졸아?”
“거의 코까지 골았으니 죽은 자들은 제가 피곤하여 그런 줄 알았을 것입니다.”
“폭우를 뚫고 온 어린 병졸이 피곤하여 잠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래?”
“예,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밀고를 하자고 부추겼고, 저는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럽게 단검을 뽑아서 가까이 있는 자의 발등을 찍었습니다.”
“그럼 발등이 찍힌 놈은 앞으로 고꾸라졌겠구나.”
이의방은 마치 바둑의 복기를 하는 듯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목숨을 걸고 지체 없이 그의 목줄을 단검으로 베었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내 말에 이의방은 다시 한 번 나를 뚫어지게 봤다.
“그리고?”
“다른 병졸 하나는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진정 이의방이 묻고 싶은 것은 이 대목일 거다.물론 난 이미 답을 생각해 놨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입니다.”
“어린놈의 혀가 난신적자처럼 찰지구나.”
“그 역시 욕이십니까?”
내 되물음에 다시 한 번 이의방이 나를 봤다. 이런 담판에서 아무리 약자라고 해도 절대 비굴해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더더욱 거만해서도 안 된다. 무조건 중간으로 가야 의심을 사지 않고 괄시받지 않는 법이다.
“하하하! 네놈은 묘한 놈이 분명하다.”
이의방이 웃었다. 그리고 난 오늘만 두 번 묘한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이제 모든 의심이 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앉아라.”
“예?”
“앉으라는 소리도 모르냐?”
역시 무인답게 이의방은 호탕했다.
“압니다.”
“그래, 앉아라.”
나는 조심스럽게 이의방을 마주 보고 앉았다.
“참 신기한 것이 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어.”
“어린 제가 뭘 알겠습니까?”
“이놈!”
이의방이 나직이 나를 질책했다.
“제가 뭘 잘못했사옵니까?”
“너는 아무리 봐도 어린 정중부다.”
사실 난 그런 소리를 듣고 싶었다.
“제, 제가요?”
“그래, 머리는 여우 같고 혀는 뱀 같으니 딱 어린 정중부다.”
이 순간 이의방과 정중부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가문으로 따진다면 이의방의 가문이 위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겨우 견룡군 산원에 머무르고 있는 이의방이었다. 음서로 해서 군문에 들어선다면 최소한 낭장은 해야 옳을 것인데 이의방은 산원이니, 그 뒤에 상장군 정중부가 있을 것 같았다.
“잘못했습니다.”
난 바로 꼬리를 내렸다. 사실 이렇게 꼬리를 바짝 내린 것은 이의방이 어떻게 나올지 알기 위함이었다.
“바로 꼬리를 내리는 것까지 똑같구나.”
“그러하옵니까?”
“네놈은 아무리 봐도 이제 겨우 열일곱 쯤 되어 보이는데 하는 짓은 마흔 먹은 중늙은이란 말이야.”
순간 난 숨이 턱, 하고 막혔다.내가 현대에서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골방에서 굶어 죽을 때가 딱 마흔다섯 살이었다.
‘말투에서 묻어나오는 건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회생입니다.”
“성은?”
“천한 것이라 성은 없습니다.”
“이번 거사만 성공하면 너도 성이 생길 것이다.”
순간 나는 놀라 이의방을 봤다.나를 무신정변에 동참시킬 모양이다. 이것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