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8화 (8/620)

< -- 간웅 1권 -- >

6장 금강야차 이의민을 만나다

“못 보던 병졸인데, 견룡군 소속이냐?”

그의 말을 통해 나는 내 몸의 주인이 거의 신병에 해당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까지 올 때 나를 알아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찌 견룡행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사정?”

“그렇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덩치는 남산이요, 용력은 딱 봐도 항우 같아 보이는 사내 이의민이 꼬치꼬치 묻는 것은 계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다짐한 숲 속의 여우 같은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할 인물이 바로 지금 내게 캐묻고 있는 이의민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친해져야 한다. 물론 아주 깊게 친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원칙이다.

“조용히 군막 안에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모든 의문이 풀리실 겁니다.”

“쥐새끼처럼 엿들으라는 말이냐?”

“엿듣는 것이 아니고 그저 들리는 거나 들으라는 겁니다.”

“들어서?”

“들어두면 나쁠 것이 없을 겁니다.”

“나쁠 것이 없다?”

“그렇습니다.”

내 말에 이의민이 나를 잠시 뚫어지게 봤다.

“네놈은 참 묘한 놈이구나!”

“제가요?”

“그래, 뭔가 묘한 기운이 네게서 느껴진다.”

이의민의 말을 듣고 그가 혹세무민하는 미신을 무척이나 신봉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의민은 까막눈에다 무당을 몹시 신봉하였다.

그의 고향 경주에 나무로 만든 귀신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두두을(豆豆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의민은 자기 집에다 사당을 짓고 그 귀신상을 가져다가 날마다 제사를 지내면서 복을 빌었는데, 하루는 사당에서 귀신의 곡성이 들렸다.

괴상히 여긴 이의민이 연유를 물으니 그 귀신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가 너의 집을 오랫동안 지켜 주었는데 이제 하늘이 재화(災禍)를 내리려 하니 내가 의탁할 곳이 없어져서 울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이의민은 자신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에 슬퍼하며 울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이의민을 깎아내리기 위해 후기 고려의 사관들과 충을 중시하는 성리학에 물든 사관들이 만든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의민이 까막눈이고, 또 귀신을 신봉했다는 점이다. 그건 다시 말해 마음 한구석에 순박한 면도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자는 하늘을 무서워한다. 그런 인물이 후일 의종 황제를 시해했다는 생각을 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역사는 분명 그렇게 기록하고 있었다.

“아마 죽다 살아나서 그럴 겁니다.”

“죽다가 살아나?”

그제야 이의민이 나를 다시 봤다.

“그럼 너는 행차 중에 번개를 맞고 쓰러졌던 그 아이구나!”

“예, 그 아이가 바로 접니다.”

난 이의민을 보며 씩 웃었다. 내가 이의민을 보고 웃는 것은 만고에 전해 내려오는 속담 때문이다.웃는 얼굴에…….

“몸은 괜찮은 것이냐?”

생각보다 이의민은 정이 많은 사내 같았다. 뭔가 자꾸 내게 묻는 것도 그렇지만, 내가 강인번을 들고 가다가 쓰러진 그 어린 병사라는 것을 안 다음부터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측은지심!

그의 눈빛에는 측은지심이 흐르고 있었다.

“죽다 살아났습니다. 헤헤헤!”

“그래? 역시 넌 묘한 놈이다. 하여튼 난 이의민이다.”

물론 난 그가 이의민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십니까?”

“그래, 두 행수께서 군막에서 나오시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날 것이다. 그러니 모가지 간수 잘해야 할 게야.”

이것을 통해 무신정변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하급 무관들에 의해 도모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역시 이 군막에 곰같이 아둔한 자는 아무도 없다. 모두 범같이 생긴 여우들이다.’

그리고 그 여우 중에 가장 음흉한 여우가 지금 저 군막 안에 들어앉아 있다.

정중부!

그는 늙은 여우가 분명할 것이다.

‘이제 저 늙은 여우를 설득하든 베고 가든 거사의 서막이 열리는 거다.’

무신정변의 시작!

그것이 곧 이루어질 판이었다.

연회장.

밤은 깊고 달은 이미 차서 기울고 있었다.

거의 새벽에 이르는 시간이었다. 음주가무를 즐기던 의종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문신들만이 자리에 남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모두 다 거하게 취한 것이 절대 절간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그리고 그들이 벌이고 있는 작태 역시 공자의 도를 따르는 문신들의 짓거리라고 보기에는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무희의 품에 손을 넣고 희롱하는 문신들부터 중과 대작하며 술을 권하는 문신들까지, 정말 하나같이 체통 따위는 개에게 던져준 지 이미 오래인 모양이었다.

이것은 모두 현 황제인 의종이 만든 작태이다.

황제가 바로 서지 않고 옳은 정치를 펴지 않으니 그가 총애하는 신하들 역시 저런 작태를 보이는 것이다. 정말 흥청망청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 보였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이 그들의 모습을 보며 뭔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상념에 젖어있었다. 상념에 젖어있는 사람은 바로 김부식의 아들, 좌승선 김돈중이었다.

‘무부 놈들의 눈빛이 예전과 달랐어.’

그는 낮에 봤던 무인들의 눈빛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그 때 한뢰가 술병을 들고 다가와 좌승선의 옆자리에 앉았다.

“좌승선, 어찌 얼굴에 그늘을 그렇게 드리우셨사옵니까?”

한뢰의 물음에 김돈중은 탁자에 놓인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무슨 근심이 있어 보이십니다.”

“그래 보이오?”

“그렇습니다.”

“그렇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오.”

“무엇입니까?”

“내일 황상께서 환궁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소.”

“환궁이라니요? 아직 연등제가 끝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감이 좋지 않소.”

“예감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무부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소.”

김돈중의 말에 한뢰는 김돈중이 괜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듯 피식 웃었다.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 것이 겨우 무부 때문이란 말씀이십니까? 불학무식한 것들이니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내 걱정이 기우였으면 좋겠소.”

“기우입니다, 기우! 그러니 소인의 술이나 한잔 받으십시오.”

한뢰가 술을 따라 주자 김돈중은 자신의 생각이 기우이길 간절히 바랐다.

“그렇소, 겨우 무부에 불과한 것들이오.”

“맞습니다, 그놈들은 지렁이만도 못한 것들입니다.”

한뢰의 말에 김돈중은 한뢰를 봤다.

“지렁이보다 못하다니요?”

“지렁이야 밟으면 꿈틀이라도 하잖습니까? 이렇게 모진 괄시를 받고 밟히는데 여전히 웅크리고 있으니 지렁이보다 못한 것들이지요. 하하하!”

“지렁이라…….”

한뢰의 말에 김돈중은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쩌면 지금이 꿈틀할 그 시점인지도 몰라.’

하지만 무인들은 여전히 군막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지렁이보다 못한 것들이니 좌승선은 기우를 접으시고 저랑 같이 이 술 한잔에 극락으로나 향합시다.”

“극락이라…….”

김돈중은 마지못해 한뢰의 술잔을 다시 받았다.그렇게 피를 부르는 새벽은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상장군 정중부의 군막 안.군막 안에 앉아있는 세 명의 무인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에 내려앉은 한기가 이슬이 되는 것처럼 군막 안의 공기는 차갑기만 했고, 누구 하나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분위기가 차가운 것은 이의방의 말을 듣고도 상장군 정중부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이의방과 이고는 다급한 눈빛으로 정중부를 주시하고 있었다.

“상장군, 결단을 내리시옵소서!”

군막 안의 차가운 정적을 깬 이는 이의방이었다.이의방이 재촉했지만 정중부는 그저 굳게 입을 닫고 있을 뿐이다.보다 못한 이고가 다시 한 번 정중부를 채근하듯 말했다.

“결단을 내리실 때입니다, 상장군!”

하지만 상장군 정중부는 아무런 답도 내리지 않고 오직 이의방과 이고만을 보고 있었다.순간 이의방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같이 가지 못하면 베고 갈 수밖에 없음이야!’

이의방은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것은 생각일 뿐이었다.

어떻게든 상장군인 정중부를 전면에 세워야 거사가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그것은 어린 병사의 말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했다.

‘그래! 그 아이가 말한 것처럼 모두가 다같이 갈 수는 없어도 상장군은 꼭 같이 가야 해!’

이의방의 판단은 정확했다. 비록 행동하지 않는 늙은 노장군이지만 그는 군부의 신뢰를 받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은 겨우 산원으로 행수인 존재들이었다. 정중부를 설득하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고려 상장군 정중부!

그의 이름과 직위가 이의방에게는 꼭 필요했다.

고려의 군사 직위는 정삼품 상장군에서 시작된다. 그다음이 종삼품 대장군이고 그 아래가 정사품 장군이다.

그다음부터는 장군의 개념이 아닌 장수의 개념으로 정오품 중량장의 직급이 있고, 정육품 낭장, 정칠품 별장, 그리고 정팔품 산원, 마지막으로 정구품 위와 종구품 수정이 있다.

다시 말해 이의방과 이고는 정팔품에 해당하는 산원이었다.그러고 보니 무신정변은 아프리카 같은 개발 도상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처럼 낮은 계급에서 일어난 정변이었다.

이것만 봐도 무신들은 무척이나 괄시와 천대를 받고 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흥왕사에서 거사를 성공시켜 폭군인 의종을 볼모로 잡는다고 해도 군부가 자신들에게 등을 돌린다면 끝내 역신이 되어 육신이 발기발기 찢겨 죽을 거라는 사실을 이의방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의방은 다시 한 번 정중부를 봤다.

“상장군! 문신 놈들이 연회장에서 기름진 음식에 배를 불리고 좋은 술에 취해 휘청거릴 때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사옵니까?”

“황상 폐하의 총애가 그들에게 있으니 어찌하겠는가?”

정중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황상 폐하의 총애라고 하셨습니까?”

“으음…….”

“총애요?”

그 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를 낮추게.”

“왜요? 쥐새끼 같은 문신 놈들이 술판을 벌이는 데 방해가 될까 봐 그러십니까?”

이건 어쩌면 상장군인 정중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그것을 아는 듯 정중부는 인상을 찡그렸다.

“상장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백 번 천 번을 생각해도 이것은 아니네.”

“왜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검을 뽑아 들면 반역이 되는 것이야!”

“저희가 황상을 몰아내자고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은 그렇게 되는 것이네.”

정중부는 자신에게 간곡히 말하는 이의방을 처음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제가 그렇게 되지 않게 만들겠습니다.”

“어찌 그렇게 자신하는가?”

“저희는 황상의 총기를 어지럽히는 난신적자들을 조정에서 몰아내자는 것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저희가 지렁이보다 못한 것입니까?”

“지, 지렁이…….”

“벌써 지난날을 잊으신 겁니까?”

“지, 지난날?”

“패악한 김돈중의 행패를 벌써 잊으신 겁니까?”

이의방의 말에 정중부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직은 때가 아닐세!”

이의방이 마지막까지 건드리면서 정중부의 허락을 받아내는 것에 실패하자 이고가 정중부를 노려봤다.

“아직 때가 아니라니요?”

“아직은 아니라고 했네.”

“그럼 언제입니까?”

“지금은 아니네.”

“군사들의 불만이 팽배해 있사옵니다. 어떤 곳에서는 술판이 벌어져서 계집을 끼고 노는데 저희 군사들은 끼니도 때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호기입니다. 불만이 가득한 병사들을 이끌어 쥐새끼 같은 문신 놈들의 목을 쳐낼 호기가 바로 지금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아니네. 우리는 겨우 이백에 불과해!”

“그래서 저들이 저렇게 방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장군!”

이의방은 이제 애원하듯 말했다.하지만 그 애원 속에는 강한 살기가 담겨있는 듯했다. 그리고 상장군 정중부 역시 무인이기에 이의방이 숨기고 있는 살기를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으음.”

정중부의 긴 한숨과 함께 이고와 이의방이 다시 한 번 간청하듯 말했다.

“결단을 내려야 하옵니다, 상장군!”

“아니야! 지금은 때가 아니야. 난신적자 몇 놈의 머리통을 깨부순다고 해서 고려가 바뀔 것이라고 믿는가?”

그 때 이의방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끝내 뽑아 들었다.

“무엇을 하는 게야?”

번뜩이는 칼날을 보고 정중부가 소리를 질렀지만 이의방의 검은 여전히 정중부를 겨누고 있었다.

“자네, 지금 뭘 하는가!”

같이 들어와서 정중부의 결단을 촉구하던 이고 역시 놀라 이의방을 봤다. 그 순간 이의방은 정중부에게 겨눴던 검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정중부를 보며 낮은 음성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같이하시지 않겠다면 그 검으로 소인의 목을 베십시오.”

“뭐라고?”

이의방의 말에 정중부는 더욱 놀라며 이의방과 탁자 위에 놓인 검을 다시 봤다.

“무사! 무사는 목이 베어질지언정 목을 숙이지 않는다고 했사옵니다. 그런데 저희는 목이 아니라 난신적자에게 허리까지 숙이며 모욕을 당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저는 무사로 이 자리에서 죽겠습니다.”

정중부는 이의방이 보기 드문 호걸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차마 몰랐다는 눈빛이었다. 전 문하시중 이단신의 조카라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러고 보니 이의방은 명문가의 자제였다. 그것이 이고와 다른 점이었다.

양인으로 시작한 이고와 음서로 벼슬에 오른 이의방. 이 둘이 벗이 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자네들은 승산이 있다고 보는가?”

“충분하옵니다.”

“오늘 밤 거사를 성사시킨다고 해도 황궁에는 태자께서 계시고 황도에는 수천의 군사가 있네.”

“그 역시 알고 있습니다. 하오나 그 수천의 군사들 역시 괄시와 천대로 인해 불만이 가득 들어찬 상태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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