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7화 (7/620)

< -- 간웅 1권 -- >

내가 저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 몸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인식하자마자 내 이성은 현대인의 사고에 맞게 겁을 집어먹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다.

‘치, 침착해야 해!’난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다독이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살아보세요. 그렇게 살고 싶어 하시니……. 제 몫까지…….”

다시 환청이 들렸다.

‘뭐야, 이거?’

귓속에서 들리는 환청에 놀라 몸을 바르르 떨었다. 내 귀에 처음으로 울린 환청이 아니다. 처음에 깨어났을 때도 들렸던 바로 그 환청이었다.

정말 어린 소년의 목소리였다. 세상을 다 산 사람 같은 느낌이 묻어났지만, 분명한 것은 목소리 자체가 어리다는 거였다.

‘누구야? 누가 내게 이야기하는 거야!’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음속으로 환청에게 물었다.하지만 멍할 만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오직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싸늘한 두 구의 시체뿐이었다.

‘분명 내 몸속에 또 다른 뭔가가 있다!’

당혹스럽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야?”

그 때 이의방과 이고가 비명 소리를 듣고 검을 빼어 들고 군막 밖으로 뛰쳐나왔다.

“무슨 일이냐!”

이고가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난 죽은 병사의 피로 칠갑을 하고 있었다.

이고가 검을 빼어 들고 내게 소리치자 나는 덜컥 겁이 나서 뒷걸음질을 쳤다. 만약 이 순간 내가 단검을 그대로 들고 있었다면 이고의 검에 베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 잔뜩 겁을 집어먹어 단검을 떨어트렸고, 그것이 다시 한 번 나를 살리는 일이 되었다. 검을 들지 않은 자는 베지 않는다는 무인의 규칙 때문인지 이고는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멈춰라!”

이고가 내 목에 검을 댔다. 그나마 이 정도면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이고가 바로 달려 나와 나를 벤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으니. 난 조심스럽게 이의방을 보았다. 그러자 이의방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거두게.”

그 말이 나오자 이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길로 이의방에게 말했다.

“내 병사 둘이 죽었는데 검을 거두라고? 혹시 이 아이를 아는가?”

“아마도 내 판단이 옳다면 저 아이가 자네와 내 목숨을 구한 것일세.”

“우리의 목숨을 구해?”

“그렇다네. 암, 그럴 것이야!”

“난 의방 자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이고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이의방을 봤고, 난 이의방의 말에 더욱 놀라 그를 봤다.

‘내게 은연중에 지시한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은 이고의 자존심을 배려하는 마음에서였겠지.’

나는 이의방이 이백여 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어떻게 무신정변을 성공시킬 수 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저 아이에게 들으면 알 것이네.”

“들어? 그래, 듣지.”

이고는 나를 노려봤다. 여전히 그의 눈빛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나를 벨 듯 부릅뜨고 있었다.

“왜 내 병사를 죽인 것이냐?”

조금은 겁을 먹은 표정을 지어야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저, 저 둘이 밀고를 하자고 했습니다. 좌승선에게 거사에 대해 밀고하면 큰 재물이 생기고, 출세할 거라고 했습니다. 사악한 자들입니다. 어떻게 모시는 분을 배신할 수 있습니까? 죽어 마땅한 자들이옵니다.”

내 말에 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날 봤다.내 눈빛은 살인을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여전히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내 부하가 나를 밀고하겠다고 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죽였다?”

“그렇습니다.”

“그럼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어린 네놈이 뭔데 겁도 없이 장졸 둘에게 홀로 덤빈 것이냐?”

난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순간 고민스러웠다. 내가 저들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서 자는 척을 했다고 하면 처음부터 의심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어떻게든 이고를 다른 방법으로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저는 그저 목숨을 걸고 은혜를 갚고자 했을 뿐입니다.”

“은혜를 갚는다? 누구에게?”

이고의 물음에 난 아무 말도 없이 이의방을 바라봤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이의방에게 맡겼다.

“아직 그 아이가 극락왕생을 못 했네.”

이의방의 말에 이고는 멍한 눈으로 나와 이의방을 번갈아 봤다.

“그, 그럼 숨이 끊어졌던 아이가 바로 너라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저, 전 그저 은혜를 갚고자…….”

“알았다. 내 벗인 의방을 믿듯 너를 믿어보지.”

이고는 짧게 말하며 내 목에 겨눈 검을 거뒀다.

“이제 시간이 없군. 가세!”

이고는 이의방을 보며 말했다. 그가 가자고 말한 곳은 상장군 정중부가 있는 군막일 것이다.

“하늘이 이 거사를 돕는 모양이군. 역시 하늘의 뜻이 우리에게 있고, 이제 하늘도 난신적자들인 문신들을 더는 볼 수 없다는 거겠지.”

“맞네, 쥐새끼 같은 문신 놈들에게 천지신명이 벌을 주는 거지.”

이고는 그렇게 말하며 앞장섰다.이의방이 나를 보며 말했다.

“너도 같이 가자.”

내게는 달갑지 않는 말이었다. 허나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내 계획 이상으로 이 정변에 깊숙하게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지만 이제 내친걸음이다. 병사 둘을 나도 모르게 죽이고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무인들이 꾸미고 있는 거사가 성공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봤을 때 거사는 성공할 테지만 말이다.

‘이 거사가 끝나고 나서 뒤로 물러서면 된다.이익이 생기는 부분에만 움직일 것이다.’

난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이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권불십년이라고 했어, 권불십년!’

하늘을 찌르는 권세가 10년을 넘는 것을 못 봤고 어여쁜 여자의 미모도 세월이 지나면 늙어 볼품없어지는 법이다. 그렇게 되면 빼앗기고 버려진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서글픔을 안겨주는 일이기도 하다.

‘같이, 또 다르게…….’

그렇게 생각하며 이의방의 뒤를 조심히 따랐다.

지금 나는 포효하는 사자의 뒤에 서있다.그 사자는 이 새벽에 피를 부를 것이고, 강처럼 흐르는 피는 역사를 적실 것이 분명했다.

이제 내가 가야 할 길은 조심히 간사하게 또 강하게 포효하는 야수들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만약 내게 힘이 생긴다면…….’

나 스스로 권력을 멀리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이 덧없는 ‘만약에’라는 가정이 피어나는 이유는 나도 무엇인가를 탐하는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힘을 가진다면.’

그리고 끝내 내가 힘을 가진다면 그때는 이 역사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 그게 무엇일까 지금 고민할 필요는 없다.

오직 앞으로 조심히 한 발 한 발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무가 보이지 않는 깊은 숲이 될 것이다. 내가 하는 행동들은 모두 이고와 이의방이 하는 것처럼 꾸며서 날 끝내 보이지 않게 할 것이다.’

난 그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내가 한 다짐이 얼마나 지켜질지 나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이의방과 이고가 꾸미고 있는 무신정변에 점점 더 발을 더 깊이 담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휴우!’

절로 한숨이 나올 판이다.하지만 이미 패는 던져진 상태이다.

무엇이 나올지는 하늘과 나만 아는 일이었다.물론 내가 아는 것은 무신정변이 성공한다는 사실이다.

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니 말이다.아마 우리 역사에서 성공한 두 번째 쿠데타가 바로 무신정변일 것이다.

그것도 무인, 즉 군인이 성공한 쿠데타 말이다. 그 처음은 연개소문이 시작해 고구려를 한 손에 움켜쥔 일이었고, 그다음이 바로 이의방과 이고, 그리고 정중부가 도모한 무신정변이다.

그것은 이 고려에, 아니, 우리 역사에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인의 시대가 펼쳐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동안 무인들, 즉 군인들의 쿠데타가 없다가 이성계를 지나 현대에 와서 두 대통령이 벌인 쿠데타가 우리 역사에서의 마지막 쿠데타일 것이다.

나는 그 무신정변의 제일 선두에서 나를 위해 거칠게 달리고 있었다. 이의방과 이고는 내가 예상한 것처럼 상장군 정중부의 막사로 발걸음을 재촉했고, 나는 그들의 뒤를 따랐다.

내가 이고의 뒤통수를 봤을 때 이의방과 마찬가지로 이고의 머리 위에도 이고라고 알리는 글자가 내 눈에 띄었다.

‘무척이나 도움이 되겠군!’

처음 보는 얼굴도 누군지 단번에 알아낼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하는 의문이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번개를 맞았기 때문이겠지.’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보다 나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내게 무슨 능력이 있는지 알아두는 게 중요해!’

우선 내 몸이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는 것을 난 이미 경험해 보아 알고 있다.

내 판단이 확실하다면 난 다른 사람들보다 1.5배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았다.아무리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병사 둘이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내게 당했다.

그건 그만큼 내가 빠르다는 증거일 것이다.

‘혹시 온라인 게임처럼 내 능력이 발전하는 것은 아닐까? 분명 번개를 맞고 번개처럼 몸이 빨라졌어.’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지금은 이해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 비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봐야 한다. 발상의 전환과 사고의 혁신이 나와 내 능력을 정확히 알 수 있게 해줄지도 모른다.

‘하여튼 번개 때문인 것은 확실해!’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내가 굶어 죽기 전에 「무인시대」라는 드라마 대본을 미친 듯이 필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지금 흥왕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무신정권이 태동하는 그 시점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의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드라마의 초반을 이끌어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그렇게 나를 늪처럼 굶어 죽어가게 만든 드라마 극본이 지금 이 순간 내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

‘이고는 어떤 인물일까?’

난 이의방의 옆에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이고를 봤다. 그의 머리 위에 이고라는 글자가 떠있기에 그렇게 아는 것이지, 그 외에 그가 이고라는 것을 알아볼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또 한 번 신비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이, 이것도 되는 거야?’

난 속으로 놀라 기겁했다.

머릿속에 이고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이 스쳐 지나가는 거였다.이건 엄청난 권능일 것이다. 그렇게 난 점점 더 내 능력을 알아갔다.

그리고 이의방과 이고는 정중부의 군막에 다다랐다.

“여기에 있어라.”

이의방이 내게 말했다. 그는 이번에도 군막을 호위하는 병사들이 딴마음을 품으면 제거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예, 견룡행수님!”

내 짧은 대답에 이고가 나를 힐끗 봤다. 그리고 이의방보다 먼저 이고가 정중부의 군막으로 들어서려고 했다. 이런 면을 보면 이고는 무척이나 성격이 급한 자인 듯했다.

나는 군막을 지키고 있는 병사를 힐끗 봤다.그 순간 저자가 딴마음을 품는다고 해도 절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의민이다!’

그는 부월을 들고 정중부의 군막을 지키고 있었다. 이때까지 이의민은 일개 병사이긴 했지만 그 실력은 군영 내에서도 알아줄 정도였다.

나는 역사와 다르게 이의민이 이의방과 이고를 밀고한다고 해도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달빛 아래 번뜩이는 부월이 소름 끼치게 묵직해 보이니 말이다.

“상장군! 이고입니다.”

“들어오시게.”

군막 안에서 상장군 정중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상장군이라는 직책 때문인지 목소리가 근엄했다.

난 힐끗 군막 안을 봤다.이고가 군막의 천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탁자 앞에 앉아있는 정중부의 모습이 보였다.

백발이 성성한 것이 영락없이 늙은 백호처럼 보였다. 뭐, 물론 지금 이 순간 범에 비유되지 않는 인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도끼를 든 이의민과 지금 이의민을 보고 있는 이의방, 그리고 군막 안으로 들어간 이고까지 모두 다 괄시를 받고 있지만 당당한 고려의 무인들이었다.

“쥐새끼 한 마리 얼씬 못 하도록 하게!”

이의방은 다짐을 받듯 이의민에게 말했다.그 순간 나는 이의방과 이의민이 어느 정도 교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고의 병사들에게 말할 때와는 사뭇 다른 어투였기 때문이다.

“염려 놓으시옵소서, 견룡행수님!”

“자네만 믿네.”

“예.”

이의민은 짧게 말하며 힐끗 나를 봤다.그가 나를 보는 순간 숨이 탁, 하고 막혔다.그만큼 그의 눈빛은 살아있었고 야수의 눈빛 그 자체였다.

‘그, 금강야차 이의민이다.’

난 마치 운명처럼 무신정변의 주역들을 순차적으로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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