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간웅-6화 (6/620)

< -- 간웅 1권 -- >

그리고 난 이의방과 함께 군막으로 향했다.그가 간 곳은 이고의 군막이었다.

이고 역시 의종과 문신들의 썩은 연회에 토악질이 났는지 자신의 군막으로 돌아와 있었다.이의방이 이고의 군막 앞에 다다르자 군막을 지키던 병사가 이의방을 향해 목례를 했다.

그러고 보니 무신들은 흥왕사 외관에 군막을 설치하고 주둔했다. 이것 역시 천대의 일종이다.

고려 태조 때부터 무를 숭상하던 국조는 어디로 갔는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현실이었다.

“이고 있나?”

이의방이 행수라는 직책을 이름 뒤에 붙이지 않고 이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봐서 둘은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인 듯했다.역사에서도 의기투합해서 무신정변을 도모한 것처럼 이의방과 채원, 그리고 이고는 막역하게 지낸 사이가 분명하다.

산원이라는 직급은 하급 무관에 속한다. 무신들이 피를 토할 정도로 서러움이 정점을 이루던 시기이니 같은 서러움을 받은 이들끼리 그렇게 뭉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군막 안에 계시옵니다, 행수님!”

병사의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치 잡아먹을 듯 병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라!”

“예, 견룡행수님.”

병사 둘은 짧게 대답했다.그러자 이의방이 나를 보며 말했다.

“넌 여기서 기다려라.”

“예, 행수님!”

나 역시 짧게 대답했다. 대답과 함께 찰나의 그 순간, 이의방은 내게 뭔가를 지시하는 것 같은 눈빛을 살짝 보이며 이고의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난 이의방이 얼마나 치밀한 인물인지 순간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병사들 역시 믿지 않는 거야? 그런데 나는 믿는다?’

아마 자신이 나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목숨을 구해줬기에 어떻게든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역시 하고 있을지도. 또, 내가 했던 몇 마디의 말이 이의방의 마음에 깊게 자리 잡은 것이 분명했다.

맹호는 이빨이 뽑혀도 그 천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말이 마음에 착, 하고 가 닿은 것이 분명한 듯했다.

‘어떻게든 거사를 성공시켜야 해! 아무것도 없는 나를 위해서라도.’

이건 역사의 흐름이다.

그리고 만약 거사가 발각되어 수포로 돌아간다면 이의방은 대역죄로 죽게 될 것이다. 고관대작에게 이의방이 가지고 있는 산원이라는 직위는 볼품없는 직위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내게 황제의 친위군인 견룡군의 행수라는 직위는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는 직위였다. 그러니 이의방이 거사를 성공시켜 내가 비빌 언덕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거사가 실패해 이의방이 죽게 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나는 보잘것없는 병사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것도 이 거친 고려에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이다. 보잘것없는 어린 병사, 그게 현재 나라는 존재이다.

비빌 언덕 하나 없는 내가 홀로 이곳에 버려진다면 나는 아마 또다시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포기할지도 모른다. 멍하게 있다간 더 험한 꼴을 당할지도.

‘괜한 곳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

원래 어느 시대든 또 어떤 곳이든 돈 없고 백 없는 것들이 험한 꼴을 당하기 마련이다.그건 내가 살았던 현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쳇말로 돈 없는 집 아들이 군대 가면 전방 간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는 꼭 전방으로 가야 하는데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럴 것이다.

이 고려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아니, 내 몸의 주인이 지금 견룡의 직위에 있다고 해도 언제 북쪽으로 끌려가 야수 같은 오랑캐들을 마주 보고 설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니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이용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말이다.

거사는 반드시 나를 위해서라도 성공해야 한다.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군막 앞에 털썩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힐끗 병사 둘을 봤다.

‘허점을 보여 방심하게 만든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 조는 시늉을 했다.

물론 정말 졸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강하다고 판단할 수 없을 때는 적을 방심하게 만드는 것이 이롭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난 살짝살짝 실눈을 뜨고 병사 둘을 관찰했다. 병사 둘은 이의방이 들어간 군막에서 하는 이야기를 엿듣는 것 같았다.

‘뭔가를 엿들으려고 하는 자는 음흉한 놈이다.’

음흉한 놈은 항상 배신하기 마련이다.

이유 없이 웃어주는 계집은 사내의 품에 있는 지갑을 원하고, 생각 없이 비굴한 웃음을 보이는 자는 가슴에 비수를 품기 마련이다.또한 궁금해할 필요가 없는 것을 궁금해하는 자는 명을 재촉하는 법이다.

5장 첫 살인을 하다

군막으로 들어서는 이의방을 이고가 힐끗 보다가 자신의 잔에 술을 마저 따랐다.

“그 아이의 극락왕생은 잘 빌어줬나?”

이고의 물음에 이의방은 아무런 대답 없이 자리에 앉았다.

“웬 술인가?”

“왜, 나는 이 썩은 절간에서 술 한잔하면 안 되나? 쥐새끼 같은 간신배도 마시고, 너구리 같은 돌중도 마시고, 미치광이 황제도 마시는데 나도 마셔야지.”

이고는 이의방에게 품고 있던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그러자 이의방은 인상을 찡그렸다.

“못 하는 소리가 없군. 그만 마시게.”

“그만 마셔? 다 취해서 패악을 일삼는데 나는 왜 마시면 안 된다는 말인가?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데 왜 나만 취하지 말라는 건가? 내가 이리 살고 있는 것은 벗인 그대가 내게 기다리라고 했기 때문이네.”

이고는 지금까지 꾹꾹 눌러놓았던 울분을 이의방에게 푸는 것 같았다.이의방 역시 이고의 마음을 이해하는 눈빛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거사를 도모하자고 강경하게 말한 것이 바로 이고였다.물론 그가 원하는 거사는 노장군들을 설득해서 대대적으로 무신들이 일어나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의방은 노장군들이 자신들과 행동을 같이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움직이지 않으면 거사도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 역시.하지만 그 생각을 바꿔놓은 것이 죽었다가 살아난 어린 병사였다. 그래서 지금 이고를 찾아온 것이다.

“술에 취하면 오늘 밤 검을 들 수 없지 않나.”

이의방의 말에 이고는 멈칫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겐가?”

“낮에도 말하지 않았나? 내가 죽었다고. 죽었으니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고.”

“결정한 것인가?”

“그래, 지금까지 내가 잊고 살았네.”

이의방은 뜬금없이 잊고 살았다고 말했다.

“무엇을 잊고 살았다는 것인가?”

“무사라는 사실을 말이네. 무인으로서, 무사로서, 또 무장으로서의 삶을 잊고 살았네.”

“무사는…….”

이고는 뚫어지게 이의방을 봤다.

“무사는 당장 목이 베일 수 있지만 치욕을 당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잊고 있었네.”

그 순간 이고 역시 강하게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죽을지언정!”

“그렇다네, 나는 무사네! 또한 이 고려의 무장이네. 이 고려가 난신적자들의 짓거리에 휘청거리는 것을 더는 보지 않을 것이네.”

이의방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럼 우리 둘이서 하자는 것인가?”

이고의 물음에 이의방이 인상을 찌푸렸다.

“결국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우리 둘이 되겠지. 하지만…….”

“하지만 뭔가?”

“상장군의 허락을 득해야 할 것이네.”

“그들이 허락할까?”

“만약 그들의 허락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을 베고 가야겠지. 목숨이 걸린 일에 인정을 둘 수는 없지 않나! 지금 이 고려의 백성들은 웅크리고 있는 영웅보다 움직이는 필부를 더 원하고 있네.”

“웅크리고 있는 영웅보다 움직이는 필부라……. 그래서 상장군을…….”

이고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의방의 거사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 역시 느꼈다. 지금까지 이의방은 온건파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 자신보다 더 강경하게 나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기만 한 이고였다. 어린 병사의 죽음이 이의방의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이다.

“건곤일척의 마음으로 뽑은 검이니 만약 휘두르지 못한다면 내 발등이라도 찍을 것이네!”

“저, 정말 상장군과 노장군들을 베고서라도 거사를 감행하겠다는 건가?”

“물론일세,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난 이미 죽었다고. 그러니 무서울 게 없어.”

순간 이의방의 눈빛이 번뜩였다.드디어 무신정변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왜 그런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 말해 줄 수 있겠나?”

이고는 빤히 이의방을 봤다.

“자네에게 이미 말하지 않았나?”

“내게 말했다고?”

“그러네. 폭우가 치던 낮에 분명 자네에게 내가 변한 이유를 말했네.”

“그럼 그 말이…….”

이고는 낮에 이의방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죽은 것은 자신이라는 말. 그리고 어린 병사의 죽음. 그 죽음이 지금 무신정변의 불을 댕긴 것이다.

“좋아! 나도 자네와 같이하겠네.”

이고 역시 이의방을 도와 무신정변의 주역이 되겠다고 다짐했다.사실 이고는 이의방과 달리 마음속에서 다른 것을 품고 있었다.

‘거사를 성공시키고 내 반드시 그년에게 복수할 것이야!’

이고는 자신들이 말하는 대의명분이 바로 선 거사에 개인적인 복수까지 포함시키고 있었다.

이고의 군막 밖.

이고와 이의방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병사 둘은 깜짝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자, 자네도 들었나?”

병사 하나가 다른 병사에게 물었고, 잔뜩 겁을 먹은 병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힐끗 실눈을 뜨고 그 장면을 주시했다. 내가 코까지 골며 자는 척했기에 그들의 안중에 나는 없는 것 같았다.

“이, 일이 잘못되면 우린 다 죽은 목숨이야!”

사실 병사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흥왕사에서 의종을 호위하고 있는 병사의 수는 이백이 채 되지 않는다. 이의방과 이고는 이백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거사를 도모하고 있었다. 그러니 하급 병사들은 겁부터 집어먹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리 못 배우고 무식한 병사라도 숫자 놀음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당장 성공한다고 해도…….”

“오래가지는 못하지.”

지금까지 말이 없던 병사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할 건가?”

“이대로 있으면 개죽음을 당하겠지. 견룡행수가 변란을 만들었어. 우린 어쩔 수 없이 움직인다고 해도 실패한다면 우리 목도 잘려 저잣거리의 장대에 걸리는 거지.”

병사의 설명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병사의 표정이 굳었다. 목이 잘린다. 이것만 해도 살 떨리는 일이 분명하다.

“개, 개죽음?”

“그래, 황도를 지키는 병사만도 수천일세. 그러니 이고 행수와 이의방 행수는 우리를 개죽음으로 몰고 있는 거야! 안 봐도 죽을 게 뻔한데, 그 불속에 어찌 잠자코 들어가냔 말이야! 성공해도 우리가 무슨 광명을 누리겠나? 안 그래?”

“그렇지. 성공하면 이의방 행수님과 이고 행수님이 권세를 잡는 거지, 우리는 그다지 바뀔 것이 없어.”

“그러니까 잘 생각을 해보잔 말일세.”

병사 둘은 나직이 말하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 역시 이래서 인간은 배반의 동물이라는 모양이다.

‘내일 죽을 것을 걱정하는 네놈들은 오늘 죽겠군.’

나는 모질게 마음을 먹었다.

“그럼?”

“좌승선께 고해야지. 지금의 권세를 잡고 계신 분이 좌승선 김돈중 어르신 아닌가? 내전 환관이나 불알 없는 내시들이 아무리 극성부리며 권세 있는 척을 해도 결국 권세를 움켜쥐고 계신 분은 좌승선이시지.”

“좌승선?”

그들이 말하는 좌승선은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었다.어쩌면 그들은 옳은 판단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김돈중과 무신들은 오랜 앙숙처럼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것은 김돈중이 무신들을 경계하기 때문이었다.

의종의 미친 총신 중 오직 김돈중만이 이 시기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그것은 혈기 왕성한 젊은 김돈중이 지금 상장군으로 있는 정중부의 수염을 태우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 권력을 잡고 있던 김부식은 자식의 방약무인한 행동을 꾸짖지 않고 도리어 정중부를 질책하는 우를 범했다.이래서 자식을 벌할 수 있는 부모는 없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 우리가 살길은 그것뿐이네. 좌승선께 발고를 해야 우리가 사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이 순간 발고를 하려는 병사 둘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 물론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를 알고 있는 내가 봤을 때 저들만큼 어리석은 인간도 없었다.

‘밀고를 하겠다?’

난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스윽!

‘역사를 내가 바꿔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추게 할 수도 없지.’

그들은 자기들끼리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검집에서 단검이 뽑히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어림없다.’

힘껏 단검을 움켜쥐고 빠르게 몸을 일으키며 병사 하나의 발등을 단검으로 찍었다.

수욱!

“으악!”

순간 병사 하나의 비명이 내 귀를 찢었고, 그와 동시에 나는 빠르게 움직여 발등이 찍혀 쓰러진 병사의 목을 단검으로 힘껏 베었다.

스윽!

눈 깜짝할 사이에 기도가 베인 병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쿨럭거렸다.

그가 쿨럭거릴 때마다 입에서 붉은 피가 역류했다.너무나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이기에 나와 조금 떨어져있던 병사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있을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공황이 발생한 것이다.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내 몸이 빨라졌어!’

그런 생각을 하며 범처럼 날아 옆에 있던 병사의 숨통을 향해 단검을 쑤셔 박았다.

수욱!

“으윽!”

순식간에 가슴에 단검이 박힌 병사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나를 한없이 원망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놀라 뒤로 물러났다.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인 나였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나서 들고 있던 단검을 떨어트려 버렸다.

“내, 내, 내가 사, 사람을…….”

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떨면서도 내 몸이 내 의지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능력은 이 몸이 번개를 맞고 살아난 후에 생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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