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끝나지 않은 인연
남녀 관계는 하늘도 모른다고 했다.
6.25 동란에도 아이는 태어났으니 내게 늦둥이 동생이 생겼다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10살을 전후로 너무 갑자기 철이 들어버렸다.
환생이라는 말 못 할 사연이 있기는 했지만, 겉으로 보이기에는 말이다.
부모님은 그게 좋은 한편으로도 보통 부모라면 하는 경험을 별로 해보지 못했다는 데에 대한 아쉬움도 가지고 있었다.
제대로 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니, 보통의 삶을 사는 아이를 낳아 키워보는 것도 그들에게 좋을 것이었다.
누가 의견을 제시할 것도 없이 이미 둘째…… 아니.
셋째는 생긴 뒤였지만 말이다.
몇 달이 흘러 어머니의 출산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아버지는 조금씩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기엔 너무 많은 나이라는 것이었다.
건강이 중요하다면서 매일 한약을 쒀오거나 다 먹지도 못할 영양제를 종류별로 싸오는 등 유난을 떨었다.
나도 걱정이 되어 태교에 좋은 그림을 그려주며 병간호에 나섰다.
10달 후 어머니는 4.8kg 우량아를 건강하게 순산했고, 보통의 산모들이 거치는 재활을 통해 퇴원할 수 있었다.
둘째 이름은 미술이든 음악이든, 아니면 공부든,
어떤 삶을 살든 예술적으로 살라는 뜻에서 윤예술이라고 지어질 뻔했다.
작명소에 갔더니 이 아이에게 그 이름 말고는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름에 ‘술’자를 넣었다간 나처럼 주당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획 하나를 지워 ‘윤예슬’로 결정했다.
태어날 때 우렁찬 울음을 내질렀던 것과는 대조적이게도 예슬은 제법 조용하게 자랐다.
날 때부터 머리털이 굵었기 때문에 의사가 아주 신기하다는 듯 웃으며 애가 아주 조숙할 것이라는 예고를 했는데, 별로 반가운 예측은 아니었는지 아버지가 씁쓸하게 웃었다.
10살까지 애를 키워본 경험은 있는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은 훈련된 보육교사처럼 첫 육아부터 손발이 척척 맞았다.
예슬이 울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삶아둔 젖병을 꺼내러 갔고, 아버지는 기저귀를 뜯어 확인했다.
감각건축에 급한 일이 생기면 아버지는 포대를 짊어진 채 하루 종일 우량아를 흔들어줘야 했다.
어머니는 건축사무소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이면 베이비 시트나 흔들이 요람 같은 도구들을 하나씩 얻어왔다.
부모님이 육아를 하는 동안 나는 예슬의 돌잔치 때 사용할 여아용 색동저고리를 제작하느라 바빴다.
붓이나 연필, 돈, 금목걸이 같은 돌잡이 이벤트를 위한 소품도 구해야 했고 말이다.
이미 돌잡이를 진행할 식장은 빌려뒀다.
오히려 구하는 것보다 고르는 게 문제였다.
나와 알고 지냈던 이들이 앞다퉈 자신들이 준비한 회장을 추천하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며칠이나 남은 상태였지만 벌써 많은 지인들이 돌잔치 축하를 위해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돌잔치를 열흘쯤 앞두고 윤예종에 있는 작업실에서 한참 저고리를 짜고 있었는데, 갑자기 발렌티나와 발리가 방문했다.
“윤 화가님! 혹시나 해서 여기부터 와봤는데 역시 여기 계셨군요.”
“아, 오랜만에 뵙네요.”
내가 재봉틀을 만지며 맞이하자 그녀는 팔을 걷어붙이며 관심을 보였다.
마침 옷을 만들던 과정이었다.
“이게 그 돌잔치라는 걸 할 때 입는 아이용 한복이구나. 뭐 도와줄 건 없어요?”
“대부분 제가 다 짜고 있어서. 아직 두건은 작업 안 들어갔는데, 혹시 해주실래요?”
발렌티나는 눈치 빠르게 두건 도안을 보며 실제 아이를 본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역할을 가릴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제가 세계적인 디자이넌데. 더 중요한 역할은 없어요?”
“글쎄요. 얼마 전에 왕위에 오른 살마 공주님은 지금 저희 집에서 예슬이 똥기저귀를 갈고 있는 상황이라.”
“그럼 그냥 두건 만들어야겠네요.”
살마는 아직 건강한 상왕에게 잠시 국정을 맡기고 돌잔치를 축하해주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하필 예슬이 가장 까칠한 시기에 와버려서 온갖 육아를 떠안고 있는 상황이었다.
부모님이 아무리 타고난 육아꾼이라고 하더라도 얼마간은 예슬을 그냥 울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렇게 발렌티나와 함께 오랜만의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작업실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미술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김선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세요?”
“학생들 정신과 진료 지원 중 조금 특수한 사항이 생겨서요. 잠시 대화 가능할까요?”
나는 발렌티나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복도로 나왔다.
“무슨 일이세요?”
“학생 중 자신이 프랑스 인상주의의 대부 클로드 모네라고 주장하는 친구가 있어서요. 평소에는 정신적으로 문제를 보였던 친구가 아닌데……”
***
요령 부족한 인사 같으니.
기존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닐 텐데, 눈치껏 학생인 척하지 않고 말이다.
학생을 한번 만나봐야겠다는 나의 말에 김선은 나를 예술고등학교의 상담실로 안내했다.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어쩌면 전생의 지인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집스러워 보이는 얼굴의 여학생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학생일 줄은 몰랐다.
하기야 내가 남자였다고 해서 남자의 몸으로 환생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일단 성별에서부터 50% 확률은 뚫고 성을 유지한 것이었다.
나는 입술을 모아 물었다.
“우리 학교 설립하신 윤예준 화가님이셔, 민아. 알고 있지?”
“지금 이분이 누군지가 중요한 게 아닌데요.”
‘권민’이라는 학생은 무언가 상황 판단이 되지 않는다는 듯 불안하게 주변을 돌아보면서도 말만은 조금 퉁명스러웠다.
그걸로 그가 환생을 했다는 게 분명해졌다.
물론 나는 환생 직후 퉁명스럽게 굴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게 바로 환생이라는 건 충분히 알았으니까 말이다.
“학생이 클로드 모네라고 했다면서요? 왜 그렇게 말한 거예요?”
“그야 정말로 내가 클로드 모네니까 그렇지.”
“그럼 그 사실을 왜 이제야 이야기해주는 건데요?”
내가 묻자 권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학교 근처에 도약관이 있잖아요? 제가 아직 1학년이라 동양화 수업은 없어서 그 근처를 잘 안 가봤거든요. 그런데 오늘 하교하는 김에 한번 구경해보자 하고 도약관 들어가 봤는데 거기 이상한 그림이 있더라고요. 제목이 <환생>이던가.”
<환생>.
나의 환생 후 첫 그림이자 팔지 않고 보관하기로 결정했던 그림이었다.
그나저나 하교 시간이라면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반말과 존댓말을 오가며 아직 혼란스러워하는 모습까지 명백히 환생자다웠다.
환생을 마친 후 내가 괜히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누가 프랑스 인상주의의 대부라는 거요?”
오래간만에 프랑스어 옛말로 말하자 권민과 김선 모두 당황했다.
권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마찬가지로 프랑스어로 답했다.
“말하지 않았나? 설마 클로드 모네라는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내가 프랑스어를 할 때엔 그저 놀라기만 했던 김선이 이번엔 기절할 듯 소리치며 프랑스어를 언제 배워뒀냐고 물었다.
나와 권민은 대화를 계속했다.
“알기는 알지요. 대신 에두아르 마네라는 이름도 알고 있고 말이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권민은 피식 웃었다.
“하긴. 그분이 있지. 그럼 마네 씨는 인상주의의 대부라고 하고, 나는 인상주의의…… 대모 정도로 하지.”
친밀감은 그렇다 치더라도 별로 부부지간이 되고 싶은 친구는 아니었지만, 르콩슐라의 로돌프는 그와 내가 둘 다 훌륭하다고 했으니 그렇게만 이해하기로 했다.
“당신이 정말 클로드 모네 씨가 맞다면 이곳에서도 분명 성공할 수 있겠지요?”
“모르지. 그건 해보는 수밖에.”
“누가 믿어주건 말건 신경도 안 쓰시겠지만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시오. 얼마든지 도와줄 테니.”
80년 넘게 살다 간 모네였지만 지금은 남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었다.
“무슨 도움 말이지?”
“뭐, 19세기 프랑스를 살다 21세기 한국인 아이로 환생한 사람이 알아두면 좋을 정보들을 줄 수 있지요.”
스스로 모네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믿기지 않았던지, 그는 쉽게 믿는 나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권민은 이젠 수염도 없는 턱 근처를 문지르더니 말했다.
모네만의 버릇이었다.
“초면부터 버릇없게 굴어서 미안하오. 지금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모든 게 다 생시인 것 같은데, 왜 내가 이런 일을 겪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소.”
“그래서. 환생한 기분이 별로 좋지가 않다?”
좋지 않다고 말하면 환생이 취소되기라도 한다는 듯 권민은 다급히 가로저었다.
“아니, 당연히 좋지요. 이렇게 혼탁하지 않은 풍경을 보는 것만 해도 오랜만인데 몸도 가뿐하고. 분명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는 나의 소망을 신께서 들어주신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장수한 편이라.”
“예술에 장수가 어디 있겠소? 예술을 하기에 인생은 언제나 짧지.”
권민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정보를 준다고 했는데. 한 가지 물어보겠소.”
“그러시지요.”
“나는 이제 뭘 목표로 살아야 하오?”
그는 자신이 17살인 것 같은데, 그냥 이 권민이라는 아이가 죽을 때까지 실컷 그리기만 하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 대한 대답 대신 나의 작품 <환생>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당신이 도약관에서 보았던 <환생>은 나의 첫 작품이오. 아직 가격 책정도 하지 않았지. 최근 작품을 421억 원에 팔았으니 아마 그보다는 무조건 비쌀 테지요. ……17살이면 돈 단위 정도는 아시지요?”
“네.”
나는 10살이라 몰랐는데, 17살은 괜찮은 조건인 듯했다.
3년 뒤에 내가 그 <환생>을 경매에 부칠 테니 클로드 모네 씨는 그때까지 그림으로 돈을 벌어 내 작품을 낙찰받으시오. 그리고 당신의 그림을 그려 팔아 무조건 <환생>보다 비싸게 파시오. 그게 두 번째 기회를 얻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첫 번째 과제요.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앞으로의 일생도 잘 풀려나가겠지.”
421억 원은 조금 무리라고 생각했던지 권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당신은 누구시오? 나처럼 미리 환생해본 분이신가? 만약 그렇다면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나는……”
대답했다.
“나는 그냥 윤예준이오.”
***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예슬이 자신의 첫 생일을 맞았다.
그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만났던 거의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식장을 찾았다.
내가 직접 딸을 낳으면 아마 야구장 하나를 빌려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돌잔치가 시작되고, 돌잡이 시간이 되자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돌잡이를 응원했다.
갑작스러운 고성방가에 예슬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살마가 옆에서 딸랑이를 흔들어주자 금방 그치고 돌잡이 세트 위를 기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예슬이 어떤 일을 하고 살든 상관없다고 했으면서도 은근히 붓 쪽으로 예슬을 유도했다.
그럼 식장에 모인 모두가 부모님을 기분 좋게 야유했고, 부모님도 알았다는 듯 손을 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붓이라는 게 흥미를 끌기는 했는지 명백히 붓 쪽으로 기어 다가가기 시작했다.
동양화용 붓을 드느냐 서양화용 붓을 드느냐가 핵심인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이탈해 돌잡이 세트 근처로 다가들었다.
나도 궁금해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이며 예슬의 결정을 관찰했다.
두 붓 사이에서 예슬이 고민하는 동안 자신의 동양화 붓을 선물한 일섭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동양화를 하더라도 어차피 실력이 출중하다면 구분의 무의미한 화가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예슬은 그 둘 중 무엇도 잡지 않았다.
오히려 영 딴 곳에 있는 윈스턴의 금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게리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완벽해! 진짜 아름다움이 뭔지 아는 아이로구나!”
게리의 환호성에 모두가 탄식을 내뱉었다.
“아, 윈스턴 씨. 저렇게 휘황찬란한 액세서리는 반칙 아닙니까?”
“반칙이라니요? 돌잡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라던데. 그럼 예슬이가 럭셔리하게 자랄 거라는 뜻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요……”
윈스턴의 목걸이를 빼고 다시 해보자는 걸 잘 마무리하고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여러 식사 자리를 돌아다니며 지인들의 근황과 미래 계획을 들어볼 수 있었다.
게리는 곧 윈스턴을 물려주고 세계 유랑이나 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테레즈는 아트밸리 아고라센터로 사무실을 이전하고 신진화가들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스털링 부녀와 현재는 아프리카 학교 건축 사업을 할 예정이었고, 데이비스 발리는 캐주얼복 시장에도 사업을 확장했다는 근황을 전했다.
“나는 이번에 금배지 달았어.”
YJ레딩을 관리하던 한이 말했다.
영국 하원에 당선되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축하드려요!”
“뭘. 다 YJ레딩 덕분이지, 뭐.”
국회의원 아들에게 폭행을 당하던 한이 이제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레딩시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증거이자 시효이기도 했다.
“저는…… 저는 낙선했습니다.”
마음이 아픈 건 찰리 주지사의 소식이었다.
재선을 도전하면 꼭 성공할 수 있다고 했지만, 아트밸리 출신의 사업가 겸 예술가가 경쟁 정당의 유력 주자로 나서는 바람에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미들타운에 햄버거집을 하나 내려고 하는데, 혹시 간판에 햄버거 캐릭터 디자인 좀 맡아주시면 안 됩니까?”
“햄버거 캐릭터요?”
어깨너머로 듣던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왜들 그렇게 비웃으십니까? 윤예준 화가님이 그려주신다면 제 사업이 굉장히 잘될 거란 말이에요.”
“에이! 아무리 친분이 있어도 그렇지. 윤 화가님이 한가한 줄 아세요? 안 그래도 그림 그릴 일이 얼마나 많을 텐데요!”
예슬을 포대에 업은 채 뒤로 젖병을 물려주던 살마가 말했다.
그 말에 찰리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내게 끝내 도움을 요청했다.
“좋아요. 해드리죠.”
“정말요? 그릴 그림이 엄청 많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당연하죠. 왜냐면.”
어차피 이제 내겐 더 가치 있는 그림 같은 건 없었다.
영화부터 캐릭터 디자인, 표지 삽화, 하물며 펭펭이 페이스 페인팅까지.
그 모든 게 내겐 다 똑같은 예술 활동이기 때문이었다.
“전 어차피 그림이 제일 쉬우니까요.”
-<그림이 제일 쉬움>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