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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제일 쉬움-237화 (237/241)

237화. 잃어버린 무언가 (2)

며칠 뒤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이 진행되었다.

남북한 예술 교류라는 의제가 있었던 만큼 윤예준이 그 자리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동안 해왔던 어떤 정상회담보다도 더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 건 그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정상회담과 평양미술관의 무제한 개방에 있어서 예준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에 주목했다.

예준은 완전히 평양 미술관 예술 교류 전시회의 담당 기획자가 되었다.

윤예종 예술가들의 걱정대로 북한에서 며칠쯤 보내게 된 것이었다.

북한 지도자 김정훈은 정상회담으로 인해 굉장히 큰 관심을 받았다.

광복 이후 몇 차례 부자 세습을 해오는 동안 김정훈만큼 세계 언론에 노출이 잦은 인물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북한이라는 나라의 수장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종의 신비감 같은 게 있었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됨에 따라 김정훈의 음성과 위트라고 할 만한 것들이 더욱 가감 없이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김정훈은 보도국 기자들의 출입만 허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평양 미술관 홍보를 위해 자신의 정상회담 참석을 제안한 김정훈의 의도를 간파한 예준이 오히려 완전 생중계까지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김정훈은 오히려 좋았다.

오히려 한 국가의 지도자도 아닌 예준의 그 추진력에 감탄했을 지경이었다.

김정훈은 내친김에 확실히 홍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어린 시절 미국 유학도 해본 인물이고, 생각 외로 외국 문화에 밝았다.

요즘도 몰래 외국 드라마를 챙겨보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 생중계 덕분에 김정훈은 한 가지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뤘다.

북한 외부 세계의 보편적 감성에 맞는 김정훈의 인간상을 내보여 선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제 남은 건 김정훈에 대한 관심을 평양 미술관의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돌려 북한 문화에 대한 관심을 유도해내는 것뿐이었다.

윤예준에게 맡길 것이니 아마 그 일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정상회담을 통해 가장 큰 이익을 챙겨간 건 김정훈이 아니라 윤예준이었다.

윤예준은 정상회담 막바지에 김정훈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번 미술관 무제한 개방이 끝나면 또 다음번 개방은 언제가 될까요?”

다음 개방까지는 아직 생각이 없었던 김정훈은 얼마간 말을 고르더니 대답했다.

“상 차리기 전에 찔게래부터 봐둬야지 않갓슴까? 두고보시디요.”

찬거리를 알아야 상을 차릴 수 있다.

이번 미술관 개방이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정확히 알아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윤예준에게 맡길 일이니 단번에 끝날 일은 없겠지만 한 나라의 수장이란 일종의 사업가이기도 했다.

기대감만으론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으니 다음 대화는 미술관 개방 이익 정산이 끝난 뒤에나 해볼 수 있을 것이었다.

김정훈의 애매한 대답에 예준은 자신이 하고 있는 스탬프 하우스 사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재 7가지 국가를 이동하며 도장을 모으면 관람객들에게 몇 가지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일종의 예술 관광 사업이었다.

“결과가 만족하실만하다면 공항에서 평양 미술관에 이르는 셔틀을 운행해주세요.”

김정훈은 무엇 때문에 그런 부탁을 하느냐고 물었다.

예준은 답했다.

“미술관 개방이 끝나도 도장을 다 모은 아트밸리 예술가들은 그 셔틀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니까, 저와의 제휴를 통해 상시 개방을 해달라는 뜻이에요.”

도장을 다 모은 사람들에겐 평양 미술관 방문 목적에 한해 북한 입국을 허용해달라는 뜻이었다.

그에 따른 수익은 어차피 북한에서 다 가져가게 될 테니 김정훈으로서는 손해 볼 게 없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관광객이 찾게 될 것이고, 감수해야 할 건 그중에 이례적으로 한국인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김정훈은 외부와의 더 적극적인 문화적 교류를 바라는 지도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예술 교류를 통해 중진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문화 교류가 북한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말이다.

거기 경제적 이익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그만큼 장점으로 내세우기 쉬운 것도 없고 말이다.

어차피 조금 수틀리면 만족스럽지 않다고 잡아떼면 되었다.

김정훈은 예준의 제안을 수락했고, 그렇게 예준의 평양행이 결정되었다.

***

정상회담이 끝나고 온 뒤엔 나에 대한 걱정이 더더욱 심해졌다.

한국 집으로 돌아가니 부모님이 나를 맞으며 나쁜 병이라도 진단받은 사람 대하듯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있는 거야?”

“지하창고 같은 데에 가둬놓고 그림만 그리게 할 수도 있는 놈들이라고!”

문제는 미술관이 개관되는 날에 맞춰 평양도 개방된다는 점이었다.

개관 준비를 한 달 정도 잡는다면, 그 한 달간 평양에 있는 한국인은 나 포함 몇 명 되지 않았다.

개방 이후에는 외국 기자들이 감시해준다고 치더라도 준비하는 동안엔 그런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문자를 보내왔다.

발리 남매부터 시작해 존, 노라, 게리 등등.

안 그래도 전화 폭탄을 받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문자만 줄줄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성격이 급한 무함마드는 바로 전화를 걸어왔지만 말이다.

-북한에 간다니! 몸은 괜찮은 거야? 병력은 충분하지?! 당연히 한국 군인들의 보호를 받는 거겠지?

무함마드는 숨도 쉬지 않고 질문 세례를 했다.

“군인이 들어가면 침략이죠. 나중에 개방되면 남북한 경비 인력이 정확히 반반 배치된다고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차하면 그분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무함마드는 아직 결정되지도 않은 건수들에 대해 미리 자세히 물어왔다.

비행 시간부터 시작해 비행기 종류, 평양 공항 활주로 근처 고층 빌딩 유무 등 사소한 것들까지 말이다.

그는 만약 공항에서 평양미술관까지의 거리가 멀다면 자신의 방탄 차량 하나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정중히 웃으며 거절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기획단을 꾸려서 간다던데. 어떻게 꾸려서 가는 거야?

대표단장으로는 일섭을 거론해둔 상태였다.

현재 북한엔 현대 동양화가 많다고 들은 바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일섭만 한 적임자는 없을 듯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의 화가들 작품도 그곳에 전시할 수 있었다.

일단 내가 미리 입국해 작품들을 봐둔 후 함께 기획하기 좋은 작품들을 일러줄 것이었다.

그럼 일섭은 한국인 서양화가, 건축가, 조각가들과 함께 작품을 가지고 북한으로 뒤따라오면 되었다.

“평양 근처에 관광객들이 많이 묵는 호텔이 있나 봐요. 미술관 기획 도중에는 그곳의 외국인 가이드들과 함께 행동하게 될 것 같아요. 저에 대한 걱정을 미리 의식하고 북한 쪽에서 배려를 해주는 거죠.”

-생각보다 평화롭게 진행되나 보네.

무함마드만큼 유난을 떨지는 않았지만, 일섭도 걱정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섭은 예전부터 남북이 함께 진행하는 사업에는 일본과 중국, 미국의 간섭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 3국이 아무런 첨언도 없이 조용하니 참 이상한 일이라고.

일섭은 특히 중국과 일본에서 북한의 작품을 탐내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이었다.

대외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면 암투를 벌이려고 할지도 몰랐다.

그야말로 폭풍전야라고, 일섭은 말했다.

일본과 중국이 어떤 일을 벌이고 있었는지는 미술관에 방문해본 후 알 수 있었다.

나는 예정된 날에 맞춰 인천행 정부 차량의 상석에 올랐다.

아버지는 밤새 충전해둔 민수의 전기충격기를 주머니에 넣어주며 아트밸리 사보를 통해 계속 나의 신병을 언급하며 감시를 해주겠다고 했다.

납북될 확률이 0%가 아닌 이상 부모라면 걱정되는 게 당연했다.

나는 빨리 한 달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며 차 문을 닫았다.

***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해 길로 나서면 멀리 높게 솟은 주체탑과 고려호텔이 내다보였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하늘은 굉장히 흐렸다.

내 안내를 맡은 북한 정부 관계자는 원인불명의 미세먼지 때문이라고 했다.

“자, 따라오시지요. 호텔로 안내해드리갓습니다.”

관계자는 정상회담 때 잠시 대화를 나누어보았던 김정훈보다 방언이 굉장히 약한 편이었다.

금강산 개방 때마다 한국인 사업가들을 주로 안내했던 이력이 있어 한국인 대하는 데에 능숙한 사람이라고 했다.

관계자는 제법 매끈하게 빠진 검은 차량에 나와 경호원을 태웠다.

꼭 평양뿐만 아니더라도 도로는 제법 깔려 있는 편이라고 했다.

차 통행량이 많은 편은 아닌지 마모된 구석 없이 깔끔한 도로였다.

“남측 사람들은 우리 북한 사람들을 뿔 달린 즘승이라고 생각하지 않슴까? 실제로 보니까 어떻습니까?”

운전대를 잡은 관계자가 사람 좋게 웃으며 물었다.

뿔 달린 짐승은커녕 그리 많은 사람이 내다보이지도 않았다.

종종 눈에 띄는 사람들은 행선지를 알 수 없었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들만 늘어선 모습이라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관계자의 말에 경호원은 자신이 어렸을 때 봤던 반공 만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북한군이 간악한 승냥이로 묘사되어 있는 만화라고.

그래서 경호원은 어린 마음에 정말 북한 사람들이 승냥이의 머리를 하고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한참 웃고 떠들던 관계자는 그에 대해서는 어떤 감상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들도 미제 승냥이, 미제 승냥이 하는데. 남한도 다를 바 없구나, 야’라고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앞으로 교류가 더 과감해졌으면 좋겠다거나 하는 의견 정도는 말할 수 있었을 텐데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개선문을 지나 5분쯤 걸려 고려호텔에 도착했다.

인근에 공사 중 버려진 고층 호텔과 허름한 아파트 단지들이 내다보였는데, 내가 갈 곳은 고려호텔이었다.

나는 경호원의 옆방을 배정받았다.

정말로 곳곳에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는데, 여행잡지 작가들이 대부분인지 다들 전문가용 카메라를 손에 든 채 복도를 오갔다.

나를 알아본 이들은 허락을 구하고 나를 촬영하기도 했다.

“화가님이 굉장히 먼 걸음 하셨으니 다들 자제해주시지요. 큰 기획을 앞둔 분이시라 조금 쉬셔야 합니다.”

운전할 때까지만 해도 북한말 억양을 채 지우지 못하고 말하던 관계자가 서툰 영어로 그들을 물리쳤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말렸다.

“잠시만요. 오래 걸릴 일도 아니니 잠깐 이야기 나누고 들어갈게요. 다들 기자도 아니신데요.”

“아, 알겠습니다.”

그러자 관계자는 나를 호텔 로비 한쪽 넓은 공간으로 안내하곤 자리를 떴다.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고 있으니 종종 이렇게 외국 사진 작가들과 대화 정도는 나눠야 할 것이었다.

“이번에 북한 쪽 관련 원고 청탁받은 게 있어서 들어왔는데 갑자기 정상회담에 윤예준 화가님이 참여하셨다는 뉴스가 나오더라고요. 혹시나 몰라서 투숙 기간을 쭉 늘려놨더니 용케도 이렇게 뵙게 되네요.”

다들 우연히 호텔에 묵다가 나를 보게 된 것이라고 했다.

내가 예술 교류 미술관 개방 담당자가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고려호텔 투숙을 원하는 사람이 쏟아져나와 두 달간의 모든 방문이 마감되었다고 했다.

우연이 아니었다면 구하고 싶어도 못 구했을 것이었다.

그들은 오래간만에 나의 케니 공모전 일화나 <예술가의 눈>을 영웅담처럼 떠들며 웃음을 나눴다.

어느 곳이든 다 사람 사는 곳이라는 점에서 웃음소리가 귀하겠느냐만, 앞서 이동 중에 관계자가 보였던 웃음과 이들의 웃음엔 어떤 특별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 공통점을 아직 이해할 수 없어 일단 대화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수십 분간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복도 한쪽에서 추레한 인상의 한 사내가 걸어 나와 이쪽을 내다보았다.

그를 발견하고 작가들은 조금 말소리를 낮췄지만 그렇다고 대화가 완전히 끊긴 건 아니었다.

“저 사람 뭐 하시는 분인가요? 북한분 같던데.”

그가 사라진 뒤 묻자 작가들은 자신들끼리 눈치를 교환하며 대답했다.

“북한 측에서 윤예준 화가님을 감시하라고 보낸 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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