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잃어버린 무언가
어머니와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에서 ‘화가 윤예준, 예술을 위해 월북하기로 밝혀져 충격!’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를 처음 접했다.
독일어로 비유가 시도된 제목을 한국어로 단순 번역했더니 생긴 해프닝이었다.
터무니없는 소식이었지만, 나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말리러 온 것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외교부에서 따로 일러준 콜밴 차량으로 함께 안내해 한시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아.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지독하다, 지독해.”
“그러게 말이야.”
땀에 완전히 절여진 어머니와 아버지는 옷을 펄럭이며 몸을 말렸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북한을 가요. 말도 안 돼.”
“와보니까 사람이 저렇게 많으니. 정말 그 정도 사안인 줄 알았지.”
외신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일마다 주목을 많이 받아오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많은 기자들이 모여든 적은 없었다.
각국 언론사에서도 일본과 중국의 야욕을 대충 눈치채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세한 건 나도 알지 못해 일단 부모님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곧 청와대에 가면 정치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을 것이었다.
***
일본 교토에 위치한 일본고미술협회에서는 협회장과 10여 명의 회원들이 좌식 탁자를 두고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통식 다다미방으로 꾸며진 소회의실이었다.
“윤예준이가 예술 교류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소식, 다들 들으셨지요? 한국의 정부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누군가 고견 없으십니까?”
고미술협회원들은 대부분 윤예준을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가 처음 한국화의 신예로 등장했을 때부터 고미술협회는 삐걱대기 시작했고, 다케시마의 날 프로젝트 이후부터는 완전히 세계 미술계에서 버려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윤예준과 같은 일본화 스타를 만들어보려 노력했지만 평범한 아트밸리 졸업생 수준의 화가를 발굴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지금 홋카이도에 조성하고 있는 게이쥬츠 밸리가 조금씩 인지도를 얻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홍보전에 임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호오. 흥미가 동하긴 합니다.”
협회장은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게이쥬츠 밸리도 결국은 미국의 아트밸리를 벤치마킹한 것. 윤예준을 상대할 땐 좀 더 전통적인 물건으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 맞습니다.”
듣던 회원들 중 몇몇은 홋카이도의 뛰어난 자연경관을 언급하며 충분히 상대해볼 만하다고 덧붙였지만, 대부분은 협회장의 말을 들으려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게, 다들 의견이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답답하긴. 다들 도대체 사명감이라는 게 있기는 한 겁니까? 이렇게 멍청히 앉아만 있으니 대한동양재단이 역사를 왜곡해도 일언반구 하지 못한 거 아닙니까.”
협회장이 대한동양재단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회원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대한동양재단과는 안 좋은 추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먼 과거 그들은 한국 사학계와의 합동 연구를 통해 백제의 미술이 당대의 일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동북아 3국 간의 문화적 영향 관계라는 게 원래 명백히 밝혀지기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지만, 한국이 어디 로비라도 한 것인지 이제는 전 세계 사학자들 대부분이 그 주장을 거의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히려 백제가 당시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역사적 사료를 제시해도 누구도 들어먹지를 않게 된 것이었다.
학자란 사람들이 그 명백한 원천봉쇄의 오류를 범하고도 당당하게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는 게 역겨울 지경이었다.
한국인들의 그 잘못된 역사의식의 근저에는 바로 이일섭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야지요. 어쩌면 역으로 그들의 주장을 뒤집을 수 있는 사료를 발견할 수도 있고요.”
“맞아요. 만약 북한에 백제와 일본의 진짜 관계가 묘사된 작품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그걸 은폐하려고 들 게 틀림없어요!”
그 전에 일본 미술학자들을 미리 북한으로 보내 작품을 확인해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일본은 한반도를 두 번이나 호령한 적이 있는 선진국이었다.
뭐든 백제와 일본의 관계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 기회를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
정부에서는 시차를 적응 기간을 이틀쯤 준 뒤 바로 의전 차량을 보내왔다.
“아마 북한에 들어가게 될 텐데. 몸조심해야 한다. 옛날엔 근처만 가도 납북되는 일이 많았어.”
그 납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일섭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굉장히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평화 무드가 조성되었다고는 하더라도 직접 북한에 들어간다니.
악어 입 안에 팔을 집어넣는 꼴이라는 것이었다.
“에이. 팔이 물렸어도 다이아 반지 낀 손이면 배를 갈라서라도 구출해줄 테니까 너무 걱정은 마시죠.”
듣던 모민수가 일섭의 걱정을 만류하며 내게 다가와 물건 하나를 건넸다.
휴대용 전기충격기였다.
그는 전압이 높은 초소형 전기충격기이니 잘 챙겨서 가라고 했다.
외국에서 비싸게 주고 샀다고.
하지만 필요는 없을 듯했다.
북한은 다이아 반지를 삼킬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아니, 내가 다이아 반지쯤이나 되는 인물이라는 가정까지는 필요도 없었다.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만큼은 확실했으니까 말이다.
“걱정 말라고 해놓고 전기충격기는 왜 주시는 거예요?”
“혹시 모르잖아요? 공명의 함정일지도.”
민수는 전기충격기 사용법을 알려주며 이런저런 농담을 건넸다.
“공명의 함정이라니. 삼국시대 때 그런 게 어디 있어? 다 나룻배 수준의 누선뿐이지.”
어느새 민수에게 옮은 일섭이 농담을 던졌다.
멀리서 뒤늦게 농담을 이해한 미술치료사 김선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틀어막았다.
“아무튼 알겠어요. 당장 북한 가는 것도 아닌데 왜들 그러세요? 북한은 위험해도 청와대는 아직 안 위험해요.”
나는 배웅을 나오는 윤예종 직원들을 돌려보내고 정부 차량에 올랐다.
그렇게 오래간만에 청와대에 방문했다.
독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방문했던 것과 느낌이 색달랐다.
청와대의 주인인 대통령이 바뀌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리야드부터 버킹엄까지 견문이 더 넓어졌기 때문인지는 몰랐다.
임시 국무회의였기 때문에 나와 같은 정부 외 인사도 몇 명 초대된 상태였다.
회의장엔 의장 대통령, 부의장 국무총리를 포함한 각 부 장관들뿐만 아니라 한국 방송통신위원회장, 북한학자, 일본사학 전문가, 중국 경제 전문가 등이 모여 앉아 있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북한, 일본, 중국 전문가들이 각각 나서서 북한의 평양미술관 개방에 대한 그들의 예상 반응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중국의 경우 만주족이 직접적으로 묘사된 고미술작품 공개를 꺼리기 때문에 아마 미술관 개방을 취소하라고 외압을 가했을 겁니다. 하지만 문화교류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밝히기도 했고, 또 윤예준 화가님께서도 참여한다고 하셨으니 북한이 흔들릴 일은 없을 겁니다.”
중국은 한족 중심의 중화사상에 걸림돌이 되는 작품들을 세간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에서 감추고 있던 다수의 작품을 일시에 공개한다고 했으니 크게 신경이 쓰였을 거라고.
아마 한국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북한에게 어떤 의사 표명 정도는 했을 텐데, 북한이 미리 작품을 제외시켜 뒀든, 아니면 거절했든 둘 중 하나일 것이었다.
다음은 일본사학자였다.
“일본 주류사학계에서는 별 움직임이 없지만, 고미술협회는 보수적인 식민사학자들 몇몇을 동원해 북한 방문 계획을 마쳤다고 합니다.”
“북한 방문 계획을 마쳤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듣던 대통령이 묻자 사학자는 마치 대본이라도 읽듯 자연스럽게 답했다.
“그러니까, 개방이 시작되자마자 다른 누구보다도 빨리 미술관에 접근해 백제 관련 작품을 파악해두려 한다는 뜻입니다. 달리기하듯이 말입니다.”
그 말에 의원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찼다.
일본 사학계에서는 조용한 것을 정작 고미술협회에서 백제와 일본의 문화 교류 사실을 부정하려 한다는 뜻이었다.
분명 한국이 은폐할 만한 게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그들의 해묵은 오만도 어이가 없었다.
과거 미술 작품을 은폐하려는 나라는 지금 따로 있지 않은가?
“둘 다 쓸데없는 일들을 벌이고 있네요. 한국에서의 일일 뿐인데. 아니 그럼 평양에 밀항이라도 할 생각인가요?”
대통령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았지만, 그들이 따로 무슨 일을 벌일지는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음은 북한학자였다.
“우선 방금 대통령께서 밀입국…… 관련해서 말씀하신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아마 북한은 남북예술교류를 위한 제한적인 미술관 개방이 아니라 완전한 개방을 추진하려 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대부분이 전통 예술 작품일 테니 꽁꽁 감추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북한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쉽게 쉽게 대문을 열어주는 나라가 아니지 않던가.
“북한은 오래전부터 천연가스 수출국을 다국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보려는 속셈이죠. 그렇기 때문에 안전한 국가라는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어필할 필요성이 있는데, 폐쇄된 국가라는 이미지도 탈피할 겸 예술 교류를 개최할 생각인 겁니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외신들이 방문할 수 있는 형태로 미술관을 개방하겠죠.”
굉장히 다양한 이해관계가 뒤섞여 있었다.
한 번의 전시회를 위해 이렇게 다양한 걸 고려해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국력이 강한 나라는 자신의 이웃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법이었다.
국무총리가 정리했다.
“그럼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군요. 북한 측에서 이번 정상회담에 윤예준 화가님을 데려오라고 한 이유가요.”
“네?”
내가 당황해서 묻자 국무총리가 덧붙였다.
“아, 너무 놀라지는 마십시오. 정해진 것도 아니고, 어차피 협상은 할 테니까요.”
“북한 쪽에서 저를 참여시켜달라고 하던가요?”
“네. 윤예준이 없이는 정상회담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했죠. 당연히 납치하려는 계획은 아닐 테고, 방금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번 문화 개방을 통해 최대한 이슈 몰이를 하고 싶은 겁니다.”
신중한 표정으로 생각하던 대통령이 말했다.
“아무리 평화와 예술 교류를 위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모든 조건을 고분고분 들어줄 수는 없죠. 개방 미술관은 평양이 아니라 작품을 서울로 보내면 이곳에서 예술 교류전을 진행하겠다고 전달하세요.”
대통령의 말에 모든 의원들이 수긍하는 듯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서울은 이미 개방된 곳이었다.
새로운 개방지는 평양인 게 좋았다.
또한 같은 국가였다고는 하지만 80년이 넘도록 다른 문화를 꾸려온 한국과 북한이었다.
북한에서는 어떤 현대 동양화가 발달했을지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북한은 쉽게 말하면 평행세계의 한국 같은 곳이었으니까 말이다.
“아까 중국과 일본이 그림 은폐 문제로 민감하게 굴고 있다고 하셨죠?”
내가 묻자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개방 장소가 서울이든 어디든 중국과 일본의 활동 무대는 평양이 되겠네요. 논란의 소지가 있다면 서울로 그림을 보내주지 않고 평양에 내버려둘 테니까요. 숨겨진 작품이 있다는 게 다 알려진 상태라면 말이에요.”
“그렇다는 말씀은……”
“제가 평양을 직접 가겠습니다. 또 나름 유명한 한국인인 제가 평양을 가야 북한과 관련해서 우선권을 가진 것은 한국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요.”
나의 이 생각을 이야기하자 대통령이 물었다.
“아프간 반군과도 맞서셨다고 들었는데. 굉장히 정의로우십니다. 하지만 반군과 북한은 위험의 질 자체가 달라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하죠.”
어차피 그냥 평양도 아니고 개방된 평양이었다.
그리고 이미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북한은 다이아 반지를 삼키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