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익명의 누군가
에단이 로빈슨 섬의 군바리들에게 제압당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그는 시리아 난민 출신의 독일인 입양아로, 컴퓨터 프로그래머 아버지와 엔지니어인 어머니 사이에서 키워졌다.
당연히 그들 부모 사이에서 컴퓨터를 자주 다루게 되었다.
독일어보다도 컴퓨터 언어를 먼저 배웠으니 보통 해커들보다도 컴퓨터와 일찍 친해진 편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전쟁을 겪고 입양된 것이었지만, 전쟁 당시의 기억은 선명했다.
당시 시리아는 반복된 내전과 국제 정세에 대한 민감한 정권교체로 인해 국내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예쁜 새소리와 바람에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데.
유년기를 떠올려보았자 포탄과 비명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전쟁은 부조리했다.
정다운 고향에서 수십 년을 가족과 함께 살아온 수백 명의 주민들이 하나의 작은 포탄 낙하로 인해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무기 화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그 포탄 하나에 들어가는 재료가 그리 많을 리도 없었다.
가루 같은 걸 조금 섞고, 화약이나, 뭐 그런 것들을 조금 뒤섞어 가열을 해줬을 뿐인데 수백의 목숨이 갑작스럽게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에단은 그 부조리함을 절실히 통감했지만 모든 원인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그에 비해 컴퓨터의 언어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이었다.
그게 어린 에단의 마음을 하루아침에 사로잡아버린 건 그 손쉬운 예측 가능성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의 세계에는 야간 공습도, 반군 게릴라도 없었다.
누군가는 작은 변수가 걷잡을 수 없는 오류들을 산출해내는 게 프로그래밍의 매력이라고 하지만, 그래서 프로그래밍은 신비한 작업이라고들 했지만 모르는 소리였다.
이 세상에 신비로운 건 오직 인간뿐이었다.
그렇게 에단은 인간들과 프로그램 세계 사이의 번역가가 되었다.
그게 바로 해커라는 직업이었다.
해커로서의 일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일의 목적만 법에 합치시키면 보수도, 장래도 보장이 되었다.
큰돈이 묶여 있는 불법 해킹 건 한두 가지로 평생 먹고살 돈을 얻을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위험한 황금과 안전한 임금 둘 사이에서 고민할 만큼 에단은 멍청하지 않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 프로그램을 구축해 그때그때 업데이트하면서 멍청이들의 접근을 감시하기만 하면 당당하게 어깨 펴고 살 수 있는 게 해커라는 직업 아니던가.
그렇게 에단은 독일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전 세계로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물론 세계 제일의 해커는 되지 못했지만 제법 안정적으로는 살아가던 스무 살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윤예준이라는 화가가 아프리카에서 <챌린저스 아트워크>라는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쟁피해자들을 위한 전시회라고 했다.
전쟁피해자.
단순한 단어였지만 에단은 평생 그런 단어의 조합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선 안 되었지만, 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챌린저스 아트워크>의 개관을 맡은 ‘반전예술가협회’의 인트라넷의 최고 권한에 접근했다.
영리 단체도 아니니 신중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람에 성공하는 순간 모든 컴퓨터가 일시에 다운되었고, 가운데 화면엔 이런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Ai-da: “F**k off! You little kid.”
아이다라는 천재 화이트해커에게 완전히 역추적 당한 것이었다.
그 첫 만남에서 아이다는 에단에게 꼬맹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동갑이었다.
하지만 아이다는 에단이 절대로 실력적으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프로그래머였고, 그 사실 때문에 오히려 친밀감을 쌓을 수 있었다.
아이다나 에단이나 성격이 그리 온화하지는 않아서 절친한 사이까지는 되지 못했다.
그래도 업무적인 연은 갈수록 끈끈해졌고, 그렇게 수년이 지나 현재에 이르렀다.
윤예준이 전쟁피해 군인들과 포로 생환을 위한 군사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챌린저스 아트워크> 당시엔 아이다가 심어놓은 크랙 파일을 찾아내 복구하느라 방 안에서 몇 달을 보내야만 했다.
아프리카는커녕 집 밖으로 나가볼 시간도 없었다.
별로 예술엔 조예가 없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시리아 난민 에단은 그를 계속 예준의 전시회로 이끌었다.
노이즈도 있겠다, 당장 가보기는 뭐하고 일단 윤예준의 담당 프로그래머인 아이다에게 먼저 연락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Edan: 야, 아이다. 일 잘 돼가?
-Ai-da: 그럭저럭.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메신저상으로는 어색함 없이 대화하는 게 가능했다.
-Edan: 도와줄 건 없고?
-Ai-da: 뭐 딱히.
아이다의 경우 원칙이 확고해서 프로그램 공격을 잘 하지 않았다.
그녀가 공격을 하는 경우는 위협적인 접근이 포착됐을 때 그것을 역추적해서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심어놓는 자동 보안 프로그램을 작동시켜놓는 경우뿐이었다.
그 자동 프로그램만 해도 알고리즘 경우의 수가 수십 개는 되었던 터라 거의 적극 공격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다가 철저한 해킹 대비였다는 식으로 일관하면 잘못은 접근한 당사자에게 있게 되니 상도에 문제는 없었다.
아이다가 에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그 보안 프로그램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뿐이었다.
자신은 아트밸리 프로그램의 관리자이기 때문에 작은 불법도 저지를 수가 없다고 말이다.
그 정도 불법은 법관도 눈감아줄 텐데.
-Ai-da: 자꾸 귀찮게 하는 놈이 있기는 해.
-Edan: 뭔데?
한 번 도움을 줄 때마다 아이다는 섭섭지 않게 사례를 했다.
이번엔 사례 대신 윤예준에 대한 정보를 들을 생각이었다.
-Ai-da: 며칠 전부터 자꾸 AI FEEl U를 찔러대는 녀석이 있어. 그것만 놓고 보면 예삿일이라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심상치가 않네. 다운시켜버리면 다시 찔러오고, 다시 다운시키면 또 찌르고.
-Edan: 집념이 강한가 보지. 계속 복구해서 들어오든가.
-Ai-da: 근데 복구를 하려면 적어도 사흘은 걸리잖아? 그런데 다운시키면 몇 초도 안 지나서 바로 들어온다니까? 그놈 IP 줄 테니까 신상 좀 털어줘.
정체를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다도 못해서 안 하고 있었던 건 아니니까 말이다.
놈은 5종의 PC를 정확히 동일하게 세팅하고 공격당한 PC와 네트워크를 차단해둔 PC를 대조해 크랙을 바로 찾아냈다.
크랙을 바탕으로 백신 프로그램을 구축한 뒤 같은 수법의 접근을 시도해 아이다의 역공을 제때제때 막아낸 것이었다.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찌르고 들어가면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가 감염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 건데, 결국은 무의미한 공격만 했다는 뜻이었다.
실력이 형편없는 놈이었다.
-Edan: 이런. 굉장히 위험한 놈이었어. 조금만 더 늦었으면 AI FEEL U 서버 전체가 다운됐을지도 몰라.
-Ai-da: ㅇㅋ ㅅㄱ.
-Edan: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윤예준은 진짜 반군에게 기체 부품을 넘겨주려는 거야? 그럴 만한 분이 아닌데.
아이다는 응답이 없었다.
먹고 튄 것이었다.
전쟁피해 예술가들을 위한 적극적 지원 활동을 벌인 윤예준이 그런 무모한 짓을 벌일 리는 없었다.
여론에서 아트밸리에 대한 안 좋은 소식이 들릴 때마다 에단은 자신이 윤예준의 팬이었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포로도 되찾고 아프간 시민도 지킬 방법이 예준에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어차피 군사 박물관 개관 날엔 모든 게 밝혀질 것이므로 에단은 직접 방문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박물관에 도착해 조금 서성거리고 있을 때 모든 해명 기사가 줄을 이었다.
역시나 윤예준이 포로와 시민 둘 다 구해냈다는 것이었다.
윤예준에게 접근하려 할 때마다 아이다의 날 선 공격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아는 건 언론에 비치는 모습밖에 없었지만, 그 모습만 놓고 보아도 그는 굉장히 멋진 인물이었다.
공개된 전화번호는 에플사와 협업을 하던 때 감춰졌기 때문에 직접 연락을 취할 방법은 없었다.
직접 만나는 수밖엔.
그래서 전시관 어딘가에 예준이 있다기에 두리번거리다가 군인들에게 붙잡히게 된 것이었다.
“후드티 쓴 아랍인이 미국에서 두리번거리면 무조건 테러리스트야? 차별주의자 자식들!”
“그러게 신분증만 좀 보여달라는 거 아닙니까.”
“왜 나만 검사하냐고!”
절대로 신분증은 보여줄 수 없었다.
그밖에 다른 증명이 필요했다.
그때 IP 추적에 사용하기 위해 아이다에게 제한적 열람 권한을 받았던 AI FEEL U의 예비 서버 주소가 떠올랐다.
그 예비 서버라면 윤예준의 내밀한 관련자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듯했다.
솔직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주어왔다는 것만은 사실이니까 관련자라면 관련자였다.
에단은 예비 서버를 군인들에게 보여줬고, 그 즉시 팔이 꺾여 바닥에 처박혔다.
“붙잡아!”
***
나는 그 해커의 인상착의를 한 아랍인을 관장실로 데려왔다.
미공개 서버에 접속한 듯한데, 그에 대한 해명 정도는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에단이라는 별명으로 자신을 소개한 그는 ‘인생 종 치고 싶지는 않다’라는 이유로 본명과 신상을 이야기해주진 않았지만, 그 밖의 정보에 대해서는 숨김이 없었다.
“저는 해커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인데, AI FEEL U 관련 보안 프로그램 세팅이 너무 견고해서 공부 좀 해볼 생각으로 종종 접근해왔어요. 아시겠지만 그 어플에는 1차 방화벽이 형성돼 있는데……”
에단은 방화벽을 조사하던 중 특징적인 접근을 발견했다.
방화벽에 집요하게 같은 대응 통계가 되어 있는 걸 보고 이상하다 싶어 조사를 해보았다.
보통 사용하는 대중적인 우회 접근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교활한 접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놈을 역추적해 다운시켰다.
“그럴 리가 없는데요. AI FEEL U 보안은 적극적인 방어 체계라서 그런 게 있었을 리가 없어요.”
“그렇긴 한데 저는 불법프로그램도 쓰거든요. 그 정도 공격성을 감수하지 않으면 못 잡아내는 게 분명 있어요. ……신고는 말아주시고요.”
나는 에단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내가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리고 아무리 사소한 범법 행위라고는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공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차피 신상을 모르니 신고해도 별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다른 거짓말을 숨기려고 솔직한 척을 하고 있는 거야.’
미공개 서버에 접근한 인물이었다.
귀찮지만 캐봐야 했다.
“그래서 누구였는지 알아냈나요?”
“아뇨. 알아내는 게 어렵지는 않은데, 혹시나 문제 될 때를 대비해서 소프트웨어 계정엔 일부러 접근을 안 하고 있어요. 알아볼까요?”
“아뇨, 됐어요.”
휴대폰을 들어 올려 조작하는 시늉을 하는 에단을 일단 말렸다.
아트밸리에 최고의 해커가 있으니 그녀에게 물어보는 게 어차피 더 빠를 터였다.
나는 아이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예준 씨.
나는 AI FEEL U에 대한 수상한 접근은 없었는지 물어보았다.
-엄청 많죠. 수상한 접근이야 항상 있는 거고, 그런데 요즘 해외 트래픽이 엄청나게 증가했더라고요. 그게 특별히 수상하다면 수상한 점이긴 해요.
갑자기 급증한 해외 트래픽 중 절반은 아프간발이라고 했다.
반군 소속 해커들이 정보를 캐내기 위해 시도한 접근일 것이었고, 그걸 제외하고도 많았다는 게 아이다의 설명이었다.
-아. 그런데 일반적이지 않은 공격도 있었어요. 보통 해커들은 공격 주기를 두고 공격하는데, 마치 기관총을 쏘듯이 마구 쏘아대더라니까요.
“지금은요?”
-지쳤는지 요즘은 감감무소식이네요.
그래도 위협적인 건 없었다고.
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에단을 마주 보았다.
아이다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고, 초짜 해커가 그 접근 사실을 알고 있을 리는 없었다.
‘집요한 공격’이 있었다는 에단의 말은 사실일 거라는 뜻이었다.
“혹시 해커 중에 에단이라는 사람 있어요?”
-에단이요?
아이다는 그 이름을 듣고 당황하더니 말했다.
-알죠. 실력은 좋은데 너무 순수해서 탈인 친구예요. 그런데 그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그냥 어디선가 거론된 해커 이름인데, 아이다 씨라면 알 것 같아서 여쭤봤어요. 일단 알겠어요.”
여태까지 아이다와 대화를 나누며 맞춰본 정황도 에단의 증언과 일치했고, 무엇보다 순수하다는 아이다의 평가만 놓고 보더라도 믿을 만한 인물이었다.
“돈을 받으신 것도 아닌데. 안 보이는 곳에서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이곳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나의 질문에 에단은 조금 고민하더니 말했다.
“이 사실을 알아내긴 했는데, 솔직히 저도 더 큰 불법까지 저지르면서 봉사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래도 공격자가 누구인지 추측 정도는 하고 있거든요. 그 얘기 정도는 드려야 할 것 같은데 뭐 연락할 방법이 있어야 말이죠. 그래서 직접 찾아와서 윤예준 씨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붙잡힌 거예요.”
심증은 내게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충고는 새겨들어야 했다.
나와 그의 예상이 일치한다면, 에단과 나는 같은 예측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앞선 접근들은 탐색전이었을 뿐이고, 이젠 어느 정도 AI FEEL U에 대한 파악이 끝났겠죠. 곧 진짜 큰 공격이 들어올 거예요. 아까 아이다 이야기하셨죠? 그 친구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서버 관리자는 이 일 못해요. 장담하건대, 그 공격은 저만 막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