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우주의 비밀 (2)
는 처음 스티븐과 했던 약속대로 클라우드에 즉시 업로드되었다.
그렇다고 당장 세간에 공개된 것은 아니었다.
당장은 에플스토어의 YJ에디션 초판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에플 5번가 뉴욕에 위치한 에플스토어에서 우선 가 공개되었다.
쇼룸 한가운데에 위치한 는 정말 일섭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VR고글이 결합된 안경 형태의 휴대폰이라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구매 의욕을 불태웠지만, 에플스토어에는 구매 희망자들만 찾는 게 아니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체험용 YJ에디션을 착용하고 줄을 서서 를 구경했다.
유튜버들은 자신의 휴대폰에 VR뷰어를 다운로드하고 를 촬영해 방문을 인증했다.
그밖에도 관련 영상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그렇게 시작된 YJ에디션에 대한 관심은 점차 거리에 가상의 예술작품을 남겨놓는 소비자들의 예술 유행으로 자리 잡아갔다.
YJ에디션을 착용하고 길을 걷다가 작품이 발견되면 캡처를 해서 커뮤니티에 공유하는 것이었다.
YJ에디션을 착용하고 거리를 걸으면 도처에서 작품들이 발견된다고 했는데, 그 양이 너무 많아 보행 중에는 필터 기능이 자동으로 적용된다고 했다.
안전상의 문제 때문이었다.
상용화가 성공해나가고 있을 때쯤 스티븐이 벙커 위치에 그려진 나의 를 복사해 에플스토어 옆자리에 옮겨놓았다.
A.SA의 ‘최후의 날 저장고’ 프로젝트에 내가 참여해 예술적 자산을 제공했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기획 당시 ‘최후의 날 저장고’ 프로젝트의 원명은 ‘지구 종말 저장고’였는데, ‘종말’이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이 느낄 거부감을 생각해 현재의 명칭으로 바꿔 공개했다고 했다.
바뀐 이름이 익숙지 않아 A.SA 관계자들끼리는 아직 습관적으로 ‘지구 종말’을 운운하는 것 같은데, 나조차도 처음에 기겁했던 걸 생각하면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하는 건 쉬웠다.
- 종말이 진짜 다가오고 있어서 저런 프로젝트까지 하는 거야?
- 종말을 위한 작품이라니. 나도 볼래! 나도 YJ에디션 사줘!!!
┖ 구세대 에플고글 끼고 봐도 잘 보임. 근데 미간 아픔.
-휴대폰 안경으로 만들자는 것도 윤예준 아이디어라던데. 아이디어도 내고 작품도 그리고 다 했네. 남천동 사시나.
-와, 내 거랑 같은 기종 맞냐. 나도 저렇게 햇볕이랑 우주 그리고 싶은데 저거 어떻게 하는 거임?
┖ 다시 태어나면 됨.
-유니버스 지렸다. 이제 화가들 다 에플폰으로 그림 그리겠네.
새로 공개한 는 YJ에디션으로 그려진 데다가 작품성도 뛰어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방 안에서도 공간을 당겨 에플스토어 쇼룸에 업로드된 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하루 평균 가상 공간 방문자가 50만 명을 넘어섰다.
작품성 평가도 좋았지만 YJ에디션에 대한 소비욕을 자극하는 역할도 훌륭히 해내 준 덕분에 결국 판매 실적 3억만 대를 달성했다.
스티븐은 경량화 작업에 몰두할 것이라고 했다.
그럴 만한 자금이 마련되었다고 말이다.
일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콘택트렌즈로 개발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했는데, 렌즈가 편해도 안경을 끼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 걸 생각하면 그 목표는 이미 반쯤 이뤄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
나의 대표작이 될 만한 것들을 모작해서 다시 한 번 최후의 날 저장고를 찾았다.
긴 통로를 지나 식물원을 거쳐 예술저장고에 도착했다.
지난번처럼 버즈얀마웨이가 나를 맞았다.
“아, 모작을 가져오셨군요? 듣기로 윤예준 화가님이 하시는 모작은 100%짜리라서 원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던데. 화가님 파트는 달성률이 굉장히 높을 것 같아요!”
“달성률이요? 살아 있으니까 그런 이점도 다 있네요.”
버즈얀마웨이와 잡담을 나누며 예술저장고 ‘윤예준섹션’에 도착했다.
모작을 가져다 놓기 위해 창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아르투아가 창고 한구석에 앉아 멍하니 창고 중앙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보관용 YJ에디션을 착용한 채로 말이다.
나는 조심히 모작을 가져다 놓고 걸어 나왔다.
내 눈치를 확인한 버즈얀마웨이가 일러주었다.
“지난번에 를 그리고 떠나신 뒤부터는 항상 저러세요. 평소엔 일 때 아니면 잘 찾아오지도 않는 분이 거의 매일 들러서 작품만 보고 가신다니까요?”
나는 다시 아르투아를 돌아보았다.
초라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에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사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유독 그랬겠죠. 저도 엄청 감명 깊었는걸요. 누구보다 우주를 그리워하는 닐 씨는 오죽하겠어요?”
닐 아르투아는 과거에 우주비행사였고 현재는 총괄 연구원이라고 했다.
버즈얀마웨이의 말대로 오랫동안 비행을 안 한 건 맞지만 그는 베테랑이 아니던가.
마음만 먹으면 다시 우주선에 오를 수 있을 것이었다.
“닐 씨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우주비행사였고, 까다롭고 혹독한 훈련을 통해 우주비행사가 되셨어요. 알고 계시다시피 우주비행사로서의 업적도 화려하죠. 누구보다도 적성에 맞았고 만족도도 높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우주를 탐사하고 있던 아르투아에게 아주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우주비행사에게는 별일도 아니었다.
화성 바깥에 위치한 우주 셸터에서 외부 시설을 정비하던 중 그의 우주복을 걸고 있던 걸쇠가 빠져버린 것이었다.
안전끈을 잡고 다시 셸터 안으로 돌아가 고리를 수리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고리가 빠져있는 걸 본 순간 패닉에 빠진 그는 그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숨이 막혀오는 고립감을 느꼈고, 얼마 가지 못해 기절해버렸다.
일찍이 동료에게 발견되어 무사할 수 있었지만, 그 작은 공포가 아르투아를 집어 삼켜버렸다.
그 공포로 인해 아르투아는 지구 복귀 일정까지 몇 달간을 사람 구실도 못한 채 폐인처럼 지냈다고 했다.
“솔직히 닐 씨의 경우가 유독 특이하긴 했죠. 대부분의 우주비행사들이 우주를 두려워하거든요. 굉장히 큰 불안증세를 보이기도 하고, 약물 남용 문제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아르투아는 자신의 자서전에 이렇게 적었다.
‘처음 우주에 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세상 모든 걸 다 얻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마지막 비행을 끝으로 모든 걸 잃게 되었다.’
아르투아는 빠진 고리를 보고 공포감에 휩싸이는 그 순간 자신의 천진하고 순수한 꿈 하나를 완전히 잃어버렸을 것이었다.
어떻게든 A.SA에 남아 우주 관련 일을 하고는 있었지만, 매사가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는 평범한 연구원 신분에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로 인해 잃어버린 꿈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작품이 굉장히 좋더라구요. 우주복 같은 걸 입지도 않고 마치 꽃밭이라도 산책하는 아동복 원피스 차림의 여자아이. 우주는 그 아이를 겁주지도, 질식시키지도 않잖아요. 우주비행사를 꿈꾸던 닐 씨의 모습이 딱 그렇지 않았을까요? 저 작품을 볼 때면 꿈을 이룬 것 같은 착각에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닐 씨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지금 닐 씨에게는 저 작품이 꼭 필요하거든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군들 힘들지 않겠느냐만요, 라고 버즈얀마웨이가 덧붙였다.
를 감상하는 아르투아는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그가 자서전에 적은 대로 YJ에디션을 벗는 순간 허무하게 잃어버릴 행복이겠지만 말이다.
아르투아는 행복해 보이는 만큼 불행했다.
‘우주비행사에게는 이게 예삿일이라니……’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었다.
지구의 최전방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도 그런 큰 고통 속에 살고 있다니 말이다.
나는 로빈슨 섬의 미술치료 센터를 떠올렸다.
그리고 식물원으로 돌아간 버즈얀마웨이에게 물었다.
“혹시 은퇴한 우주비행사분들만의 커뮤니티가 있나요?”
“커뮤니티요? 흠…… 글쎄요. 딱히 없지만, 모두 A.SA 출신일 테니 비행사 보직의 퇴직자 명단을 보면 연락 정도는 취해볼 수 있겠죠. 연금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왜요?”
나는 그들에게 미술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아트밸리에 있는 로빈슨 섬에 요양하러 오시면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은퇴한 우주비행사들 중에는 약물 중독에 빠져 사는 경우도 있다고 했잖아요? 다들 힘드신 것 같은데, 그 정도는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나의 제안에 버즈얀마웨이는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문제를 다루듯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인가요……? 이건 저와 상의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A.SA 인사팀장님을 불러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제가 해주는 건데요. 굳이 A.SA의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죠.”
“아, 그렇죠. 맞아요. 그러고 보니까 우주비행사 한 분만 알아도 나머지 분들에게 전부 연락을 취할 수는 있어요. 닐 씨만 하더라도 선후배 비행사들과 자주 만나거든요.”
미술치료를 위해 연락을 취하는 건 버즈얀마웨이가 나서서 해결해주기로 했다.
“……그래도 높은 사람과 대화는 나눠봐야 하겠네요.”
“왜요?”
“치료보다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다고들 이야기하잖아요? 이 문제도 미리 예방할 수 있다면 더 좋을 테니까요.”
아르투아의 경우도 그랬지만, 우주에 대한 공포감으로 인해 정신 질환을 앓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했다.
우주의 무언가가 그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아낸 후 선제적인 미술치료를 진행하면 예방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우주선에서 그림을 그리려면 A.SA의 허가를 받아야겠죠?”
***
나는 버즈얀마웨이가 소개해주는 은퇴 비행사를 몇 명 만나본 뒤 아르투아의 자서전을 읽어보았다.
그와 좀 더 효율적으로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그 뒤 다시 아르투아를 만났는데, 생각보다 마지막 비행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었다.
자서전에 관련 내용을 써 놓을 정도면 자신의 상처를 감춰둘 마음은 없다는 뜻이었다.
“우주에서의 고립감에 대해 궁금하신가 보군요…… 다른 비행사들은 뭐라고 이야기하던가요?”
“글쎄요. 다들 형언하기 어렵다고만 하더라고요. 그게 과연 고립감이라고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사실 무한한 우주 공간에 대한 공포스러운 경외감을 고립감으로 착각하는 것인지. 심리적으로는 고립감이 확실하지만 왜 그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다고.”
나의 말에 아르투아는 눈을 감고 잠시 침묵했다.
그날의 기억을 되새겨보는 듯했다.
꿈을 포기하고 오래 도망쳐 있었던 사람 치고 과감한 회상이었다.
괜히 일류 우주비행사가 아니었다.
“잘못된…… 장소에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잘못된 장소요?”
“네. 우주는 신비로운 장소가 아니라 잘못된 장소였어요. 신이 있다면 인간이 이 우주 공간에 나올 수 있다는 걸 상정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텅 빈 우주 공간인데 숨은 쉬어지지 않고, 그렇게 무한한 공간이 모두 나서서 나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아르투아는 자서전에 우주를 ‘공백’이라는 단어로 적었다.
우주 전문가답지 않은 단어였다.
우주와 공백은 엄연히 다른 단어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고리가 빠진 순간에야 비로소 솔직하게 체감해본 우주는 공백이 아니고서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에게 우주는 그 순간 없는 공간이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인류가 감히 나서지도 못하는 영역이 되었다.
이 넓은 공간 중 인류는 고작 지구에나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 깨닫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투아와 비행사들이 느꼈던 고립감은 보다 근원적인, 존재론적인 고립감이었다.
“조금 웃긴 질문일 수도 있지만, 그 감정에 대해 우주전문가 닐 아르투아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냉정하게 생각해보라는 뜻이군요.”
물론 물리학적으로 진짜 ‘공백’은 따로 있다고 했다.
어떤 암흑물질도, 심지어 공간조차도 발견할 수 없는 텅 빈 공간 말이다.
우주는 그가 느꼈던 것과는 달리 이론적으로 지구 공간의 연장이 확실하다고 했다.
비행사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공포감을 정면 돌파할 정신적인 근거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됐네요. 미술치료를 도입해보고 싶어요. 현장에서 그 공포감과 직접 맞설 수 있는 예술 활동을 개발하는 거예요.”
“미술치료요?”
이미 비행사들의 정신 치료를 위해 AI머신을 도입하고 수면 질 향상을 위한 약품이나 가상 현실 게임 팩 등이 모두 시도되었다고 했다.
실패했으니 아직도 비행사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일 터였다.
“그렇다면 소개해드릴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아르투아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