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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제일 쉬움-221화 (221/241)

221화. Yes-originality (2)

그곳에 있었던 건 아메리카 원주민 방문객들이었다.

관장은 그들을 알아보고는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이 친구들은 이 일대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공연을 여는 친구들입니다. 보다시피 원주민들이죠.”

후줄근한 청바지 차림에 각자 팬플루트나 퉁소를 들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이번 선상 미술 파티로 인해 모여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근처 시가지에서 노상 연주회를 열었다고 했다.

오직 미술관뿐만 아니라 근처 관광지도 호황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한 프로젝트였던 만큼, 인근 지역 관광업도 활성화가 된 것이었다.

이들은 그 호황을 맞아 간만에 많은 사람 앞에서 공연할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람선 위에서 공연할 사람을 찾는 것 같은데. 우리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있는 이 친구는 그림도 그리거든요.”

그들은 그들끼리 공유되는 원주민 예술가 커뮤니티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도움을 받아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호주 에보리진들에게도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그들이 직접 움직여준다면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

원주민 예술의 현대화를 위해 누구보다 예술적 고민도 많았을 그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제안을 수락하고 즉시 기획에 들어갔다.

그렇게 다음 날 해 질 녘이 되었다.

근처를 여행하던 관광객들은 미술관 선착장으로 모여들었다.

메사추세츠로 출항하는 원초적 본능 호를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유람선이 경적을 울리며 움직이기 시작하면 관광객들은 그보다 더 큰 소리로 환호를 보내주었다.

유람선 안에서는 전보다 훨씬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원주민 미술가들이 그림 교육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관광객들이 동반한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점토 예술을 가르치거나 즉석에서 나무를 깎아 목각 예술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예술을 해온 세월이 오래되었기 때문인지 작업 퍼포먼스가 굉장히 준수했다.

원주민 회화 예술가는 뉴햄프셔 지역의 대표적인 철새 ‘아비’를 그려냈다.

크고 둥근 머리와 윤기 나는 검은 깃털이 인상적인 새였다.

전통 토템과 문양들이 곳곳에 시도되어 있었는데, 작품 <아비>를 본 관광객들은 어디선가 인디언 음악이 들려오는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정말로 쓸쓸한 인디언 퉁소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고 있었다.

들리는 미술이기 때문인 건 아닌 듯했다.

관광객들은 갑판 위로 나가 근처를 살폈다.

지도상으로 메사추세츠와 뉴햄프셔의 경계를 넘었을 즈음이었는데, 강 먼 곳 어둠 속에서 작은 인디언 카누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누 위엔 두 명의 원주민이 있었는데, 한 명은 노를 저었고 남은 한 명은 유람선 쪽을 본 채 앉아 퉁소 독주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연주를 최대한 오래 들을 수 있도록 유람선 속도를 줄이게 했다.

퉁소 연주가 끝나니 관광객들이 박수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아직 연주는 끝난 게 아니었다.

몇 대의 카누가 더 등장해 점점 빠른 템포의 음악이 연주되었다.

전통을 완전히 살린 채 현대 관람객의 이목도 사로잡을 수 있는 음악이었다.

쓸쓸하게 시작되었던 연주는 점점 격정적이어지더니 미술관에 다 도착해서는 클라이막스에 치달았다.

선착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원주민 연주자들은 카누 위 연주자들의 연주에 맞춰 일대가 완전히 울릴 정도의 장엄한 음악을 폭발적으로 터뜨려냈다.

그 프로그램의 반응은 굉장히 폭발적이었다.

호주 아치볼드 이후로 나와 아메리카 원주민 예술가들의 합작을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그걸 볼 수 있어 좋았다는 평가였다.

특히 선상예술회에서의 원주민 미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도왔다며 교육 프로그램으로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그 프로그램을 메사추세츠의 웰컴 연주회로 인지한 코네티컷주의 커리는 다급히 연주회를 꾸리기도 했다.

그렇게 코네티컷 선상 미술은 첫 번째 여정이 끝나기 전까지 수많은 발전을 거듭했다.

마티넬리 여행사 사이트에는 선상 미술에 대한 좋은 후기들이 수천여 건 등록되었다.

코네티컷 선상 미술의 주 무대가 되었던 미국 동북부 정계에서는 침체된 지역을 살리는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최근에 출판된 전기 덕분에 프랑스 몽마르뜨부터 시작해 과거 미들타운 시위와 기타 해외 활동들을 한 번에 확인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번 활동으로 인해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많은 관광객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 로드아일랜드에 아트밸리를 만든 뒤로 10년간 미국 동북부를 떠난 적이 없으시잖습니까? 종종 해외에 갔다 오기는 했어도 말이에요. 저희 뉴햄프셔를 포함한 동북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윤예준 화가님이 또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될 것인지가 큰 관심사입니다.”

뉴햄프셔 주지사가 말했다.

사람들의 높은 기대에는 감사할 따름이지만 나는 화가이지 정치인이나 공연기획자가 아니었다.

언제까지고 계속 이런 지역 화폐 전략이나 선상 미술 파티만 추진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상 미술만 하고 동북부 미술과 민생에 완전히 손 놓을 생각은 없었다.

“이번 코네티컷 선상 미술은 정기적으로 계속 진행될 거예요. 이번 행사로 인해 다음 항해에 필요한 비용은 충분히 모였잖아요?”

“맞습니다.”

“참여 미술관들 사이에 코네티컷 선상 미술을 위한 시스템이 생겼으니까 앞으로 계속 진행할 수 있겠죠. 주지사님이 지원만 제대로 해주신다면요.”

선상 미술이 진행되지 않는 기간에도 관광객들이 알아서 코네티컷 강변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선상 미술의 주인공 중 하나가 되어버린 원주민 예술가들의 지속적인 생계를 위해서라면 말이다.

주지사는 관광청과 함께 코네티컷 상시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원주민들의 일자리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드리는 말인데. 뉴햄프셔 코네티컷 강 하류에 건물 하나를 세우고 싶어요.”

“건물이요?”

“네.”

이번 일로 특히 뉴햄프셔주가 많은 돈을 벌었다.

지역 화폐에 더해 관광산업까지 발달하게 됐으니까 말이다.

특히 뉴햄프셔 광산과 아트밸리가 광물 계약을 맺고 있다는 소문이 뒤늦게 알려져 세계 각국에서 광물 계약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다고도 했다.

선상 미술을 진행할 유람선을 책임지고 마련한 마티넬리 여행사의 경우 미국 1위 여행사 반열에 올랐다.

“지금 뉴햄프셔에 멋진 관광지가 많다는 게 충분히 알려지기는 했지만 선상 미술에 있어서는 강변 자연경관이 유일한 상태예요. 자연물이 더 훌륭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겠어요? 랜드마크 같은 게 저 자리에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나의 말에 주지사가 놀라서 물었다.

“랜드마크요? 지금까지 해주신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한 상황인데…… 우리 주에도 랜드마크를 만들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영국과 호주에서처럼?”

***

현재 커리 미술관이 선상 미술 거점 미술관으로 있기는 하지만, 커리 미술관의 본분은 어디까지나 작품 전시였다.

선상 미술을 위한 사무실 건물을 꾸려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었다.

나는 주지사에게 내가 지정하는 위치의 부지와 랜드마크에 사용할 터키석 원석을 구해달라고 요구했다.

선상 미술이 진행되는 동안 눈에 가장 잘 띄는 위치에 뉴햄프셔의 상징과도 같은 터키석 건물이라면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었다.

나는 주지사에게 민제를 소개해준 뒤 아트밸리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이번 선상 미술이 솜니움에서 끝난 덕에 더 많은 관람객들이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고 했다.

예술의 전당 공연을 선상 미술 파티의 연장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AI FEEL U 가입자는요?”

“아주 잘돼 가고 있지. 벌써 가입자가 무려 1000만 명이야.”

YJ퓨리퍼즈 오프라인 경매를 제외하고 플랫폼 온라인 경매만 하루에 수백 건씩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가입자가 1000만 명을 넘겼으니 경매를 관전하다 종종 호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었다.

플랫폼 한쪽에서는 오프라인 경매를 홍보하는 배너도 표시해두었기 때문에 YJ퓨리퍼즈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가장 발전이 더딘 건 펀딩 프로그램이었다.

큰 규모의 작품 활동을 하고 싶지만 돈이 안 되는 경우 활용할 수 있는 작품 활동 자금 펀딩 말이다.

아버지는 내가 AI FEEL U를 처음 기획한 이유이기도 한 펀딩시스템이 부진하다는 데에 조금 속상함을 느꼈다고 했다.

“내가 여태까지 300억 원 정도를 모았는데, 지금 펀딩으로 올라온 기획들에 일괄적으로 지원하기로 했어.”

또한 발레단, 무용단, 예술단, 미술사학 등을 위한 펀딩 지원도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려면 아버지 본인의 작품 활동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것 같다고.

“그렇게까지 해주실 줄이야…… 정말 감사해요.”

“다 예준이 너한테 배운 게 있어서 그런 거야.”

아버지는 오히려 300억을 번 사람처럼 웃었다.

“너튜브는 어때요? 이번에 또 구독자가 많이 늘었을 텐데.”

“꽤 늘었지. 구독자는 4900만 명이고 영상 하나 올라갈 때마다 댓글이 5만 개씩은 달리고 있어. 대부분이 너를 찾는 댓글들인데, 나중에 시간 되면 얼굴 몇 초만이라도 비춰줘 봐.”

“그래요? 알겠어요. 다들 찾으신다는데, 그래야죠.”

처음 시작했을 때의 반응을 생각해보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반응이 굉장히 좋은가 봐요. 화가분들이 관리를 잘 해주고 계셔가지고.”

“뭐, 그렇지. 그런데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어.”

Artist YJ 채널을 보는 사람들 중에는 나의 라이브 방송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컨텐츠가 많아서 꾸준히 시청은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기대가 사라진 건 아니라고.

TED 강연 이후로 대중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요구가 더 강해진 것도 있을 것이었다.

“그럼 라이브 방송 바로 해봐야겠네요.”

곧 뉴햄프셔에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생길 것이었다.

랜드마크가 된다면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뉴햄프셔를 찾는 관광객들이 끊김이 없을 터였다.

뉴햄프셔주만의 홍보에 기대기는 힘들다는 뜻이었다.

랜드마크 홍보도 하고 새로운 포부도 밝힐 겸 아버지의 제안을 받았다.

***

며칠 뒤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자 전 세계 시청자가 모여들어 서버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너튜브 플랫폼에 자체적으로 있는 후원금 기능을 통해 큰 액수의 후원금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왔다.

-드디어 윤예준 라방이구나~

-너무 잘생겼잖아…! 나를 가져요ㅜㅜㅜ

-선상 미술 잘 봤어요. 다음에도 참여하시는 거죠? 목 빠지게 기다리다 깁스했어요!

-오늘 그림 그리나요? 눈정화시켜 주세요.

나는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들을 일일이 살피며 최대한 소통하려고 했다.

구독 감사 인사부터 시작해 뉴햄프셔의 새로운 랜드마크 착공에 들어갔다는 소식, 그리고 나만의 새로운 미술상을 만들어볼 생각도 있다는 계획까지.

방송에서 말하자마자 기사가 게시되는 걸로 보아 시청자들 중엔 기자들도 많은 모양이었다.

“아치볼드 일은 다들 아시죠? 저는 아치볼드 사건이 그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원래 수상 제도라는 게 부조리할 수밖에 없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줄 수 있는 상을 만들고 싶어요.”

나는 구독자들과 함께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는 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함께 구체화해나가는 과정을 밟았다.

고정된 심사위원이 없고, 누구나 상을 받을 수 있듯 누구나 심사위원 위치에 접근할 수 있다면 차별적인 심사가 오래 지속될 위험이 없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다.

미술계 거장과 자산가들이 큰 액수를 후원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곧 구독자 5천만 찍을 듯 ㅋㅋㅋ

- We all know it wouldn’t take too long.

-구독자 5천만 되면 뭐 하실 거예요?

-화제성 공약 ㄱㄱ

-お待ちしています。

- Perche sono in Italia? Per favore, torna in italia!

-读者公约~快点!

댓글 중에는 빨리 구독자 5천만 명을 찍기 위해 이벤트를 진행하라는 의견이 넘쳤다.

활동만 열심히 하면 그냥 두어도 5천만이 될 듯했는데, 아무래도 5천만 명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독자들을 위한 팬서비스를 해달라는 뜻인 듯했다.

처음으로 떠오른 건 많은 사람들이 원했던 공동 창작의 기회였지만, 나로서는 이미 다양한 예술가 집단을 만나보았다.

“그럼…… 여러분들이 뭘 원하시는지 한번 투표로 결정해보죠.”

스트리밍 기능 중 투표 기능을 활용해 여러 공약들을 추천받은 뒤 투표를 부쳤다.

1위로 뽑힌 건 ‘윤예준과의 점심 식사’였다.

“안 그래도 구독자분들께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그래도 모든 사람들을 다 만나볼 수는 없으니까 랜덤으로 한 명을 뽑아서 사드릴게요. 구독자분들 중 딱 한 명.”

내가 그렇게 말하자 4900만 명 초반대였던 구독자 수가 순식간에 5천만 명을 돌파했다.

그렇게 바로 ‘랜덤일일식사권’ 룰렛을 돌리게 되었다.

라이브 화면에 룰렛이 표시되었는데, 당첨자가 나타나자마자 댓글창이 난리가 났다.

-뭐야? 누구야,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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