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벤저민이 되어보자
“윤예준이 대단하긴 하구나.”
뉴햄프셔주 주지사는 미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난리통을 지켜보며 속으로 감탄만 하고 있었다.
항상 미국에서는 연말에 미국 주 사회 기반 시설과 재정조사를 실시했다.
대부분의 조사에서 항상 사회 기반 시설이 가장 낙후된 주는 로드아일랜드였다.
뉴햄프셔도 로드아일랜드 못지않게 낙후되어 있었는데, 조사 때마다 항상 2위를 하는 걸 보면 그렇지만도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로드아일랜드 덕분에 낙후 지역 1위라는 오명은 벗을 수 있었지만, 10년 전 윤예준이 로드아일랜드에 아트밸리를 만든 뒤부터는 쭉 뉴햄프셔가 그 영광의 이름을 누리게 되었다.
이제 로드아일랜드는 뉴햄프셔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성장해 있었다.
주지사는 윤예준의 해바라기 프로젝트와 지금 착공만 남겨두고 있는 예술의 전당을 떠올려보았다.
그것들로 인해 로드아일랜드의 점수는 더 크게 올랐다.
윤예준이 하는 모든 활동은 그 주의 사회기반시설을 확대시키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심지어 뉴햄프셔에서도 꽤 잘 산다는 사람들도 몇몇 로드아일랜드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으니……
현재는 인구 감소는 물론이고 지역 경제 침체까지 맞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자리는 감소했고, 교육 여건은 후퇴했고, 지방 분권 미흡이라는 사회시스템상의 한계까지 더하면 회생의 여지는 없는 것 같았다.
“공약을 지킬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어떻게 하는 게 좋단 말인가……”
주지사는 후보 시절 뉴햄프셔의 도로 절반 이상이 노후화되어 있다는 걸 지적하며 손상이 심한 도로의 비중을 10% 미만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공약을 세웠던 바 있었다.
그럴 돈이 없는 건 아니었다.
도로를 다시 깔면 다른 사업을 할 예산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게 문제였을 뿐이었다.
다 나 몰라라 하고 공약 이행률만 채워 다음 선거를 노려볼 수는 있었지만 주지사는 그렇게 양심 없는 인사가 아니었다.
“어려운 문제구나……”
주지사는 윤예준 관련 뉴스 창을 띄워놓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
비슷한 시기 아트밸리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인터뷰를 위해 모여들어 있는 상태였다.
미국에서 유명한 현대 한국화가 윤민제 내외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북유럽 이사회 환경상을 받으셨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아, 예. 정말 그런 상을 받게 될지는 몰랐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민제는 예술의 전당 진행과 더불어 자신만의 예술의 길을 개척하고 있었다.
아트밸리에서 미술관을 관리하는 일은 물론이고 틈이 날 때마다 캐나다를 오가며 환경 예술을 했다.
특히 이번엔 캐나다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단풍잎을 활용해 만든 작품 을 통해 2035 북유럽 이사회 환경상도 받았다.
“최근에 아드님이신 윤예준 화가가 새로 플랫폼을 런칭하지 않았습니까? 혹시 그 부분에 있어서 영향을 미치셨다거나 하는 부분은 없습니까?”
“네. 제가 기계에 관해서는 일자무식이라. 예준이가 큰 포부를 가지고 알아서 잘해 낸 거죠.”
사실 민제는 몇 년 전 예준이 호주에서 산불 관련 참여예술을 할 때 가서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캐나다의 좋지 않은 날씨의 영향으로 이동하기 쉽지 않았다.
“환경상을 받은 윤민제 화가님도 대단하시지만, 아드님도 굉장히 특이하신 것 같습니다. 윤예준 화가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지는데, 실제로 어땠습니까?”
그 질문에 민제는 먼 과거를 돌아보듯 고개를 치켜들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게요. 정말 특이한 아이였죠. ……원체 어른스러워서 부모 역할이랄 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철이 일찍 들었다고 할까요.”
예준이 굉장히 어른스럽기는 했지만, 아버지로서 걱정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호주에서 무상 전시를 진행한 후 때마침 예준이 호주 오페라하우스에서 그렸던 ‘들리는 미술’작품 이 솜니움에 반환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미국으로 복귀했다.
그 뒤부터는 쭉 예술의 전당을 짓는 데에 시간을 쏟고 있었던 것이었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그럼 아내 분은 어떠십니까? 실내 디자인으로 한국에서는 굉장히 유명하다던데.”
“가족들과 굉장히 오래 떨어져 계신데, 그에 따른 불편함은 없으십니까?”
“아, 네. 오래 못 봐서 조금 그리워요.”
민제 옆에 앉아 있던 연희가 조용히 동의했다.
연희의 경우 시계탑을 지으러 간 현재가 복귀한 후 바로 대형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예준의 전기가 세계적인 히트를 치게 되었다.
연희도 한 권 구해서 읽어봤는데, 내용은 훌륭했지만 연희가 알던 예준의 모습은 적혀 있지 않았다.
CEEA에서 보낸 사람이 그녀를 찾아와 예준에 대해 묻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그의 예술적 재능에 대한 질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저희 집사람 같은 경우는 원래 관심사가 다양하고 다재다능해요. 최근에 예준이 전기 출판된 거 보신 적 있으세요? 그 전기를 몇 번이고 읽더니 관련 문학 작품을 하나 내고 싶다고, 지금은 창작 욕구에 불타있는 상태입니다.”
아직 누가 덧붙여 질문한 것도 아니었지만 민제가 나섰다.
“작품이요? 허연희 디자이너가 문학 작품을 내신다는 겁니까?”
“네. 제대로 된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놀라운 소식에 일대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연희는 예준이 아직 미술을 접하기 전 어린 시절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했다.
예준이 얼마나 귀여운 아이였는지 말이다.
그렇게 예준의 전기에는 빠져 있는, 연희만이 알고 있는 예준의 모습을 직접 출판하기로 마음먹었다.
동화 삽화가였던 경험을 살려 연희는 예준의 어린 시절을 동화책으로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글 쓰는 데에는 자신이 없어 동화를 안 써왔지만, 예준의 어린 시절을 적으면 되는 건데 어려울 게 있겠는가.
그렇게 동화를 완성한 뒤 전기 출판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의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했다.
며칠 만에 바로 편집자에게서 연락이 왔고, 윤예준의 전기 다음 출판부터는 비매품으로 엮어 출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동화와 전기를 함께 파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허연희 디자이너님. 시대가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윤예준 화가가 어려서부터 성숙했다고는 했지만, 워킹맘으로서도 배울 게 많으신 분인데요. 전 세계에 있는 워킹맘들에게 한 마디만 해주시겠습니까?”
기자 한 명이 마무리 질문을 했다.
“아, 지금 집에 예준이 말고 애 하나가 더 있어서요. 확실히 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네요.”
“네? 윤예준 화가 말고 또 아이가 있다는 건가요? 그게 누구죠?”
기자의 그 질문에 연희는 웃으며 민제를 돌아보았다.
예준이 성공하기 전 무명 화가로 애쓰던 민제를 뒷바라지해준 이력이 있으니 썩 틀린 농담은 아니었다.
***
어느덧 예술의 전당 완공식 날이 되었다.
그때까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터뷰가 계속 소소한 화젯거리로 회자되었는데, 질문마다 내 이야기가 아닌 게 없어서 팔불출 부모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아버지도 참……’
사람들은 팔불출이라고 했지만, 어느 부모가 마음만은 팔불출이 아닐 것인가.
전생의 내 아버지도 나의 미술 활동을 비판하며 냉정하게 굴었지만 지금은 알았다.
그게 그의 내리사랑 방식이었다는 걸 말이다.
아버지에게 예술의 전당 일을 부탁한 게 엊그제 같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
출판사에서는 내게 어머니의 동화책 시안을 보내고 한번 검토를 해보라고 했는데, 나로서는 볼 수 있는 게 없었다.
마네가 아니던 시절의 윤예준이었으니까 말이다.
삽화 실력은 역시나 우수했고 내용도 짜임새가 좋았다.
어머니가 예준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내게 그 책은 오히려 어머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상철은 내 옆에 앉아 함께 동화책을 들여다보며 계속 감탄했다.
“역시 허연희 씨의 동화 삽화는 굉장히 퀄리티가 높네요.”
“아, 그래요?”
듣던 중 이상하게 여겨지는 데가 있어 캐물었다.
“어머니가 삽화가로 유명한 편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잘 알고 계시네요?”
“아, 그거야 뭐.”
상철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워낙에 철저하게 취재를 했다 보니. 아무튼 뭐, 이것도 잘 홍보가 될 수 있도록 기사로 내겠습니다.”
F.C 코리아 기자 시절에 내 뒷조사를 하다 알게 되었다는 뜻으로 들렸다.
이제 와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게 뜻깊게 느껴졌다.
“그리고 저희 부모님이 이 예술의 전당 첫 공연을 직접 기획하신다고 했어요.”
“아, 그래요? 무슨 공연 말이에요?”
항상 내게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며 나의 전기를 모티브로 한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상철은 굉장히 이슈가 될 만한 소식이라며 공연에 관해 자세히 물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물은 알고 받으면 재미없지 않은가?
나도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아는 게 없었다.
“그리고 또 무슨 소식이 있죠?”
내가 묻자 상철은 수첩을 꺼내 읽어보더니 말했다.
“이일섭 화백님이 대한동양재단의 재단장으로 추대받아 최근에 취임식을 끝냈답니다. 그리고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던데요. 왕복이랍니다.”
“네? 왕복이면, 돌아가는 비행기 일정은요?”
“그 정도까지는 뒷조사에 해당되기 때문에 따로 알아보지는 않았는데요. 실력 발휘 좀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었다.
공연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 한 가지는 뻔해졌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최근에 공연 기획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는데, 상철이 전하는 일섭의 미국행 일정이 얼추 어머니와 비슷했다.
“한국화 컨셉으로 공연을 준비 중인가 보네요.”
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상철이 제 무릎을 딱 쳤다.
“그렇네! 아, 윤예준 씨도 감각이 있으시네요? 그럼 대충 귀국 시기도 알 수 있겠는데요?”
“예술의 전당 첫 공연이 끝나면 그 뒤에나 들어가시겠죠.”
아마 극은 어머니가 쓰고 무대 연출은 아버지가, 그리고 소품은 일섭이 담당할 듯했다.
한국화를 컨셉으로 한 공연이라……
나로서도 기대가 될 정도였으니 이슈가 되기 충분했다.
“하…… 이렇게 확실한 정황이 있는데 그동안 추측성 기사를 어떻게 참으셨어요?”
“못 참고 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해고됐고요.”
상철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홍보하면 굉장한 효과를 발휘할 것 같았지만 부모님과 스승님의 선물이기도 하니 꾹 참아주기로 했다.
그때였다.
“윤예준 대표님?”
누군가 회의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아트밸리 사옥 직원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아, 지금 뉴햄프셔주 주지사님께서 건물 1층에 계신데, 어떡할까요? 회의실로 안내해드릴까요?”
“햄프셔주 주지사요?”
햄프셔주라면 미국의 극동부에 있는 작은 주였다.
나와는 아직 연이 트인 바가 없었다.
하지만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뉴햄프셔를 두 번째 로드아일랜드로 만들어달라는 이야기일 것이었다.
“네. 일단 회의실로 안내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주지사는 몇 분이 지난 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
“먼 길 오셨더라구요. 고생하셨습니다. 윤예준이라고 합니다!”
“이렇게나 환대해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주지사는 악수를 건네받으며 내가 안내한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나와 주지사, 상철 세 사람이 나란히 앉게 되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내가 간단한 다과를 주문한 뒤 묻자 주지사가 말했다.
“일단 굉장히 팬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번 호주에서 <제로 헝거를 위하여>에 공개하신 <생명의 노랑> 작품도 감명 깊게 봤죠. 화가님의 모든 작품이 위대하지만, 제겐 유독 그 작품이 진하게 와닿더라고요.”
“어떤 점에서요?”
주지사는 햄프셔주가 굉장히 가난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전했다.
햄프셔주는 본래 지반에 화강암이 많아 채석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지역이었다.
모래부터 시작해 자갈, 기타 광물도 많이 발견되어 광부들에게는 거의 성지나 다름없었다고.
햄프셔주는 그 광산업으로 산업화의 첫발을 떼었다.
“하지만 광산업이라는 게 요즘은 유망한 그런 어떤…… 산업이 아니잖습니까? 세계의 추세가 그랬듯 저희 햄프셔도 낙후하게 된 거였습니다.”
화강암 채석장은 모두 폐장되었고, 광산업으로 평균적인 경제 수준을 유지하던 햄프셔주의 경제는 완전히 바닥을 쳤다.
사람들은 떠났고, 풍광은 말 그대로 버려진 도시나 다름없게 되었다고.
“주민들이 많이 굶고 있습니다. 도로에 차도 다니지 않아요. 부서진 도로를 수리할 돈이 주에 없기 때문에요. 여태 떠나지 않고 고향을 지켜주고 계시는 주민분들을 생각하면 제가 참 면목도 염치도 없어 고개를 들고 다니지를 못합니다.”
주지사는 햄프셔주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사람처럼 고개를 조아리며 설명했다.
그래도 선출된 정치인이 그러기 쉽지 않을 텐데.
애향심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었다.
‘광산 폐쇄와 함께 쇠퇴한 도시라…… 떠오르는 곳이 있네.’
처음 벽화를 그렸던 어머니의 고향, 현재 한국의 본가 지역이 바로 그랬다.
지금은 쇠퇴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재기에 성공했지만 말이다.
“그런 햄프셔보다도 낙후된 지역으로 꼽혔던 로드아일랜드를 발젼시켜 주셨죠? 졸음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로드아일랜드 북부 고속도로의 사고량을 급감시키셨고요. 그래서 염치 불고하고 와서 도움을 요청드리는 겁니다. 제발 저희 햄프셔주를 살려주시길 바랍니다.”
어머니의 고향에는 그림을 그리고 멋진 집을 지음으로써 마을 되살리기에 성공했다.
그러니까 예술로 지역을 살린 것이었다.
마찬가지 로드아일랜드도 예술로 지역을 되살렸다.
햄프셔에서도 그러지 못할 것은 없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되살리겠다고 한다면 로드아일랜드의 이익을 덜어 햄프셔에 메우는 꼴밖에는 안 되었다.
그보다 더 적극적인 도움이 되어야 했다.
듣던 상철이 말했다.
“지역화폐는 발행해보셨나요?”
“지역화폐요? …… 아아, 아뇨.”
지역화폐 제도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미국이 워낙 레드컴플렉스가 심해 실행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거 아쉽네요. 한국에서는 소멸 위험 도시에서 지역화폐를 많이 발행하는데. 그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돈을 무상으로 뿌리고 그만큼 보상을 해주는 거예요.”
그게 문제되어 추진하지 못한 사업이라면 됐다.
내가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역화폐를 하려면 결국은 복지 비용이 투입돼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희에게 그럴 돈이 있을지 잘……”
상철의 설명을 다 듣고도 주지사는 비관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그랬다.
지역화폐를 가지고 있어도 소상공인에게 아무런 메리트가 없다면 다들 지역화폐를 거절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가능해요.”
“어떻게 말입니까?”
나는 말했다.
“미국 전역에 뿌리면 되죠. 뉴햄프셔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화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