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생명의 해바라기
원이 제안한 방법은 이 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이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기능적인 원인을 완전히 바로잡을 수 있는 묘책이었다.
비결은 바로 ‘해바라기’였다.
“해바라기라면 노란색이 굉장히 예쁜 꽃이잖아요. 대가 억세기도 하고. 노란색은 잠을 깨게 하거든요. 그…… 해바라기를 길가에 쭉 심으면 될 거 같은데.”
그거라면 운전자가 들이받을 벽이나 가로수가 되지도 않을 것이었다.
예술가들은 원의 아이디어를 받아 해바라기를 얻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꽃이 너무 비싸 구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길이 워낙에 길기도 했고 말이다.
그때 가장 결정적인 도움을 준 건 ‘빈센 조’라는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빈센 조는 미국 환경미화원 대표로, 꽃 종자 수요를 조절할 수 있을 만큼 인공 농원에 줄을 많이 대놓은 인물이었다.
원은 해바라기 종자와 관련해서 빈센 조를 직접 만나보았는데, 한국어가 굉장히 유창해서 놀랐다.
들어보니 원처럼 원래 한국에서 살았지만 몇 년 전에 미국으로 이주해온 이주 미국인이라고 했다.
“아무튼 해바라기를 심으려면 이곳 기후와 지질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아무래도 사막지형이다 보니 비용이 조금 더 들 거예요. 그러려면 흙도 좀 얻어와야 하는데 비용이 그러니까……”
빈센 조는 장부를 검토하면서 예상 지출 금액을 이야기했다.
사막이지만 해바라기를 관리할 수는 있다고 했다.
매일 도로를 한 번씩 오가며 물을 뿌려주고 1년에 한 번씩 비료도 뿌려주면 가능하다고.
어차피 아프리카에 있는 사막처럼 푹푹 찌는 사막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가능만 할 뿐 돈은 엄청나게 들 거라고.
그 비용은 미국 환경단체에서 지원해주었다.
그렇게 주민과 예술가들 그리고 환경미화원들이 나서서 해바라기를 심는 작업에 돌입했다.
땅을 하고 해바라기 씨를 심으면 해가 질 무렵 노동자들을 데려가는 셔틀이 먼 곳에서부터 접근해왔다.
허리를 펴고 그 셔틀을 내다볼 때마다 원은 벌써 해바라기가 다 펴 길을 장식하고 있는 환각을 보곤 했다.
***
복원을 마치니 베니스의 날은 맑게 개어 있었다.
지중해 연안에 대부분이 맑은 베니스였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고 있으니 그 모든 게 환각처럼 느껴졌다.
너튜브 채널에 올라간 나의 TED 강연 영상은 조회 수 4700만을 돌파했다.
TED 영상 중 단연 1위였다.
그 영상 정보란에 ‘Artist YJ’ 채널의 링크가 첨부되어 있어 나의 너튜브 채널도 빠르게 구독자를 모을 수 있었다.
채널엔 굉장히 많은 컨텐츠가 업로드되고 있었다.
쇼츠 영상을 활용해 미술 작품을 보여주는 ‘잠깐만미술관’도 그중 하나였는데, 최근자 영상은 내가 새로 복원한 <비너스의 탄생>이 소개되었다.
사조를 알릴 만한 메인 콘텐츠로는 TED강연 내용과 그림에 얽힌 스토리를 말해주는 ‘그림 이야기’가 있었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아트밸리의 일상’, 아고라 센터의 화가들이 주도해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구독자 참여형 콘텐츠 ‘아고라의 화가들’ 등 활동이 굉장히 활발했다.
-레딩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인데 윤예준 화가님 가시고 나서 들어온 게 너무 아쉬워요ㅜㅜ
-전에 그림 그리다가 윤예준 화가님이 그림 조언해주셨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저 모로코 공주 살마인데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 니가 모로코 공주면 나는 세종대왕이다.
└ 죽을래? 너 어디 사냐?
-구독자 이벤트는 안 하나요?
구독자는 순식간에 400만 명을 돌파했다.
아버지에게 부탁했던 예술의 전당도 완성되어 가고 있었고, 솜니움 10주년 기념행사부터 2회 예술 올림픽까지 홍보할 게 굉장히 많았다.
그렇게 복구작업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아트밸리로 들어오니 호주에서 보낸 거대 아치볼드 3관왕 트로피가 사옥 건물 1층에 전시되어 있었다.
새로 출범한 아치볼드 임원들의 개인적인 인사말과 기존 임원들의 사퇴서도 도착한 상태였다.
그 밖에도 황금사자상, 그리고 너튜브에서 보낸 골드버튼까지 있었다.
종종 와서 상 진열대를 비워두곤 했는데, 얼마간 아트밸리를 비운 사이 다시 가득 차 있었다.
로비 진열대를 내가 다 차지할 수는 없었다.
아트밸리 예술가들을 위해 황금사자상을 제외하고 모두 서랍 아래로 내려두었다.
아트밸리 곳곳을 돌아보았다.
미디어아트센터에서는 무함마드를 만날 수 있었는데, 차기작 계획을 위해 잠시 들어와 있는 상태라고 했다.
“위대한 나의 행보는 완벽한 우상향을 이루고 있지. 다음 작품이 또 얼마나 성공할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지 않아, 예준?”
“뛰어요.”
사우디에서의 예술 활동이 그에게 생각보다 큰 즐거움을 주고 있는 듯했다.
조금만 있다가 바로 아트밸리로 들어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영화 산업을 통해 아프리카에 예술 사업을 뻗치고 있다고 했다.
딱 미국이나 사우디 사람들이 영화를 낼 때 가지는 상대적인 부담만 융통하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스펙터클라크를 통해 했던 전단지 홍보를 생각하면 영화 사업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또 사우디의 자본력을 생각하면 그리 큰 어려움도 아니었다.
현재 사우디 영화가 할리우드와 발리우드, 그다음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아, 그리고 네가 들여온 그 예술가 있잖아? 그 친구도 진짜 대단하더라. 지금 아트밸리 예술가들에서 가장 인기 많은 게 그 친구거든.”
“제가 데려온 예술가라뇨?”
“그 원이라는 조형예술가 있잖아?”
원은 아트밸리로 들어오자마자 미국 환경단체를 만나 고속도로 해바라기 심기 사업을 진행했다고 했다.
회전초 피해도 막고 졸음운전 피해도 막을 수 있다고.
그렇게 해바라기를 길가에 조성을 해놓았더니 정말로 졸음운전 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었다고 했다.
해바라기의 키가 다 똑같은 게 아니라서 운전자에게 지루하지 않은 시각적 변화를 선사하기 때문이었다.
“가장 인기 많은 사람은 카프탄 감독님 아니셨어요?”
“아, 그렇지. 맞아. 두 번째로 인기 많은 예술가가 바로 그 친구라는 뜻이야.”
나는 무함마드와의 대화를 마치자마자 원이 주로 모습을 비춘다는 아고라센터로 방문했다.
얼굴이 꺼멓게 탄 원이 캔버스를 하나 세워두고 화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진짜 과장 엄청 심하시네. 이렇게 시퍼런 하늘이 어디 있어요?”
“시끄러 이 녀석아. 허구한 날 점토나 조몰락거리는 놈이 뭘 안다고 참견이야?”
“저도 전공이 그림이거든요? 요즘은 조형을 하든 영화를 하든 기본적으로 그림은 다 그릴 줄 안다고요.”
원이 지적하자 듣던 예술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가에게 바꿔라, 바꿔라, 했다.
그럼 화가는 콧방귀를 뀌면서도 검은 물감을 묻혀 하늘을 덧칠했다.
아트밸리에서 두 번째로 인기가 많다는 무함마드의 말엔 과장이 없었다.
한지 테마파크에서 보았던 원이 맞나 싶을 만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고라 센터 예술가들을 인솔해 해바라기를 심었다더니 다들 피부색이 똑같았다.
그리고 가장 낯선 건 원의 성격이었다.
원래는 사람들에게 말도 제대로 못 붙이는 성격 아니었던가.
지금은 아고라 센터 예술가들 중에서도 가장 목소리가 컸고 활발했다.
가느다랗던 팔다리는 그 사업 한 번만으로 다부지게 근육이 붙었고, 하얗던 얼굴색은 무함마드와 비슷해져 있었다.
활발해진 성격에 걸맞은 생김새였다.
“어? 윤예준 화가님.”
나를 발견한 원이 외치자 화가들이 모두 이쪽을 돌아보았다.
“아고라센터의 화가들 컨텐츠 잘 보고 있어요. 그런데 거기서 원 씨 얼굴은 못 본 거 같은데?”
“아, 그래요? 저 친구 낯가림이 심해서 절대 영상엔 나오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성격이 그리 잘 고쳐지는 건 아니었다.
아트밸리에 들어오면 예술가들과 친해져야 하는데, 그게 무서워서 미국 1인 여행을 먼저 한 뒤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그랬다.
아트밸리를 추천하면서 그 성격을 고치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이곳에서 어울릴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어디인가.
백 년, 천 년은 유지할 아트밸리였으니 상관없었다.
“그 해바라기 일은 어떻게 된 거예요?”
화가들이 설명했다.
아마 그곳에서 회전초를 막지 못했으면 지금쯤 아트밸리 곳곳에도 회전초들이 나뒹굴며 피해를 줬을 것이라고.
물론 아트밸리에 닿기 전에 로드아일랜드 곳곳의 민가에 큰 민폐를 끼쳤겠지만 말이다.
그 발원지인 메사추세츠 사막 인근 고속도로에서 해바라기 심기를 주도한 게 원이라고 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제일 늦게 갔죠. 그냥 아이디어만 냈을 뿐이에요.”
“그게 진짜 대단한 거죠.”
내가 칭찬하니 원이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런데 운전 기사분은 어디 계세요?”
원이 물었다.
나는 직접 운전석에 앉고 말했다.
“타세요.”
“이럴 수가.”
원은 조수석 문을 열고도 얼마간 타지 않고 스포츠카 외형만 구경했다.
“이건 내 드림카인데……”
***
나는 조수석에 원을 태우고 스포츠카를 직접 운전해 그 소문의 해바라기 고속도로로 향했다.
미국으로 오자마자 면허를 따두길 잘했다.
운전기사를 부르려면 또 괜한 시간이 소요됐을 것이었다.
“와, 이 차 진짜 좋은데요!”
“그래요? 나중에 가끔 필요하실 때 쓰세요. 저는 이거 말고도 몇 대 더 있어서.”
몇 대 더가 아니라 몇백 대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었다.
아마 무함마드가 가진 전차 대수보다도 더 많았다.
아니, 그러고 보니 영화관을 짓기 위해 대부분 팔았다고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바라기가 심어진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굉장히 길게 늘어선 해바라기들 덕분에 거의 명소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어때요?”
원이 물었다.
이 해바라기들은 졸음을 쫓는 노란 색으로 도로를 밝히고 있었다.
더구나 또 건조한 날이 오면 도로를 습격할 회전초들로부터, 일종의 차단선 역할을 해줄 것이었다.
보기에도 좋고 기능성도 있었다.
‘이런 일이야말로 진짜 하모니즘 예술이지.’
소통은 그 자체로 위기 상황을 없애주는 원초적인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
아트밸리 해저터널과 노스브라더 섬 미술관을 지을 때 활용했던 동선 전시회관의 아이디어가 이곳에도 있는 것이었다.
작품이 직접 감상자에게 다가간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리고 내버려뒀다간 아트밸리까지도 위험해졌을 거라고 하지만 그건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이곳에서 아트밸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대도시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말이다.
예술가들이 사양한 것과 달리 그들과 원은 이곳 주민들에게 공감 능력을 발휘한 것이었다.
“여기 이렇게 해바라기가 생기면서 전보다 이용자가 훨씬 더 많아졌대요. 그래서 주에서는 졸음운전은 줄어드는 대신 일반 차 사고가 더 늘어날 거라고 해서 조금 속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랬다.
주에서는 운전자들이 한눈을 팔아 사고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나와 원의 하모니즘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었다.
운전자는 해바라기로 시선을 줄 필요도 없었다.
정면만 똑바로 주시하더라고 해바라기의 눈부신 노란빛은 잘 느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원은 이 해바라기의 효과를 밤에는 볼 수 없다고 했다.
아예 안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가로등을 달아두기에는 비용이 너무 커지고, 실제로 달아둔다고 해도 가로등 빛을 받은 해바라기는 너무 은은한 색을 내기 때문에 오히려 졸음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제가 처음 해바라기를 떠올렸을 때는 모두가 대단하다고 박수도 쳐주고 그랬는데. 이 문제는 정말로 해결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아마 다들 저한테 실망했을 거예요. 말은 안 해도요.”
원이 풀이 죽어서는 말했다.
이런 때 딱 좋은 대안을 말해주는 게 바로 자신에 대한 예술가들의 기대라고 말이다.
그 생각에는 공감했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저한테 좋은 아이디어가 있거든요.”
내가 말하자 원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웃기 시작했다.
밤에 해바라기가 안 보여서 문제라면, 보이게 만들면 그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