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비엔날레에서 생긴 일 (2)
며칠째 계속 비가 온다 했더니 결국 강이 범람한 듯했다.
갑자기 홀 바깥 천막이 뜯겨나가 들이친 비로 인해 놀란 방문객들은 결국 비 피하기를 포기하고 저마다 비를 뚫고 나가 모습을 감췄다.
“이런. 바람이 세서 우산도 필요가 없겠네요.”
“괜찮아요.”
나는 건물 다른 출구를 찾아 주차장으로 빠져나왔다.
스포츠카는 완전히 물에 잠겨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지대가 높은 곳을 따라 걸으며 도보로 이동해 보았지만,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데에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로변으로 나오자 다행히도 대중교통이 운행 중이었다.
나와 조세핀은 아무 버스에나 올랐다.
버스 운전석 쪽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신호는 불안정했지만, 내용을 확인하기는 충분했다.
앵커는 홍수 피해가 심각하고 비행기는 줄줄이 결항 처리되었다고 했다.
보통 수준의 우천이 아니었다.
그때 CEEA 번호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네, 윤예준입니다.”
-TED 강연 정말 잘 봤습니다. CEEA 협회장입니다. 지금 베니스에 계신 건가요?
“네, 방금 강연 끝나고 나왔어요. 비가 엄청나네요. 피해 없으세요?”
자신은 프랑스에 있지만, 곧 이탈리아로 들어가 봐야 한다고 했다.
CEEA 이탈리아지부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있는 복원가들이 현재 전부 이탈리아로 향하고 있다고.
“네? 무슨 일이 있나요?”
-지대가 낮은 산 마르코 성당이 지금 완전히 수몰되었습니다. 난리도 아니에요. 19세기 종교화들이 지금 모두 물에 잠겼다고 합니다!
큰일이었다.
아직 그리 늦은 건 아니었지만, 물에 젖었다면 빨리 확보해서 복원에 들어가야 했다.
강우량도 많고 바람도 강해 물살이 셌으니 지금쯤 모두 유실되었을지도 몰랐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다던가요?”
-최대한 대처하고 있지만, 인명사고 위험이 있어서. 일단 떠내려가는 것이 없도록 그물망을 쳐놓았다고까지만 들었습니다.
현재 베니스 정부 측에서는 ‘모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석호도시 베니스에 방벽 설비를 갖추고 예술품도 복원하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예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 많아 그들의 손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연락드렸습니다. CEEA 명예 협회원으로 되어 있으시지 않습니까? 그 정도 이름이라면 이탈리아에서의 복원 활동도 가능하실 텐데. 도와주실 순 없으실지……
그는 자신을 포함한 외국 복원가들이 이탈리아에 진입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CEEA 이탈리아지부 복원가들은 현장에 다 도착해있으니 가서 도움을 달라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었다.
나는 조세핀을 근처에 내려주고 운전기사와 함께 CEEA 이탈리아지부로 향했다.
***
CEEA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유물이 담긴 수레를 끌고 입구를 오갔다.
머리에 헤드라이트를 달고 있었는데, 산 마르코 광장 일대 전기를 다 내려놓았기 때문에 그 일대가 완전히 어둡다고 했다.
전기 합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도 굉장히 많은 양의 유물을 확보하는 데에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윤예준 화가님이시죠? 이야기 들었습니다. 선뜻 도와주겠다고 하셨다고.”
이탈리아 지부장이 인사를 건네고 나를 바로 복원실로 안내했다.
하나를 제외한 모든 복원실에서 복원가들이 작품을 복원하고 있었다.
내게 전달된 작품은 보티첼리의 <봄 ‘primavera’>이었다.
보티첼리의 이 <봄>은 이탈리아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파리로 빼앗겼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나폴레옹의 원정이 실패해 왕국이 바뀐 뒤 다시 돌려받은 것이었다.
그만큼 값진 작품이라는 뜻이었다.
내가 복원실에 들어오자 복원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간단히 설명했다.
“산 마르코 대성당 내부 미사실에서 발견된 작품입니다. 원래 더 안쪽에 있는 박물관에 있어야 하는 물건인데, 멀리 떠밀려온 것 같습니다.”
박물관에서 미사실까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꽤 긴 여행길이었나 보았다.
표면이 완전히 긁혀 처참한 수준이었다.
“흠집들 모양을 보니 스테인드글라스가 깨져 작품 위로 쏟아졌나 보네요. 찍히고 긁힌 자국이 너무 심해요.”
젖은 채로 유리 조각을 뒤집어쓰니 완전히 구멍이 뚫린 부분도 많았다.
복원가들은 표면을 특수 천으로 덮고 마른 롤러로 작품에서 물기를 빼기 시작했다.
침수 작품을 복원하려면 자연건조가 필수인데, 빗물과 바닷물의 섞여 작품 산화가 굉장히 염려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방치해 둘 수는 없었다.
롤러질을 멈추고 천을 떼어내자 작품은 바싹 마른 상태가 되었다.
신속한 복원을 위해 CEEA에서 개발한 기술이라고 했다.
마른 작품을 면밀히 살펴보며 곳곳의 문제 지점을 살폈다.
지지대층에 문제가 있을 경우 다른 조각 천을 가져다 대었고, 그로부터 사이징, 초벌, 애벌바탕, 물감층과 바니시까지 역순으로 작품의 상태를 검토했다.
특히 지지대층 작업은 윤예종이를 사용했다.
복원은 원활했지만, 비너스의 오른쪽에 위치한 여성이 입고 있는 메디치가의 로브를 묘사하는 데에 다들 애를 먹었다.
그걸 포함한 어려운 작업은 내가 도맡았고 다른 복원가들은 기타 보조를 맡았다.
그렇게 복원을 성공시켰다.
물론 계속 복원할 작품들이 CEEA로 보내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복원가들은 완성된 <봄>을 두고 감탄을 하며 원본 자료와 비교했다.
외국 복원가를 기다릴 수 없는 입장이라 난처했는데 나 덕분에 한시름 돌렸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꼭 보상을 해드려야 할 텐데요.”
“금전적인 보상은 필요 없어요.”
이미 벌이고 있는 사업만 해도 돈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의 돈까지 가져다 쓸 필요는 없었다.
“금전적인 게 아니라면 어떤……?”
돈 말고 특별한 보상을 해달라는 것도 그들에게는 곤란한 요구일 것이었다.
대신 다른 걸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의사를 확실히 전달하는 게 좋을 듯했다.
“지금 침수피해를 받은 작품들이 더 많잖아요? 다친 주민들도 있을 거고요. 그 수해 기금으로 잘 써 주세요.”
“아, 이것 참…… 굉장히 감사한 일입니다……”
복원가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여전히 불편해하는 듯했다.
“혹시 이건 어떠십니까?”
듣던 복원사 한 명이 제안했다.
그는 침수 피해를 보고받기 직전까지 TED 강연을 청취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CEEA지부에서는 예술계 사건들을 다루며 몇몇 도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에 TED 강연으로 수요를 확인했으니 전기를 한번 만들어보는 건 어떻냐는 것이었다.
강연 내용은 영상에 남아 지금도 다시 볼 수 있지만, 결국 후세까지 남는 건 책이었다.
대충 만든 책도 잘 보관한다면 영상 사이트보다는 오래 갈 테니까 말이다.
좋은 제안인 것 같았다.
“만약 화가님 개인이 하신다면 출판사에 원고를 청탁해서 진행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본인께서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럼 아예 집필진을 구성해야 하는데, 아마 그럴 시간이 없으시겠죠. 저희가 그걸 도맡아 진행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흔쾌히 CEEA 직원들의 제안을 수락했다.
여러 언어로, 윤예종이로 나의 전기를 출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비용도 보상보다는 적을 테니 다 CEEA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
곳곳의 미국을 여행한 끝에 로드아일랜드 아트밸리에 도착한 원은 뜻밖의 일에 부딪혀 작품활동을 전면 중단해야 했다.
물론 꼭 중단해야만 했던 건 아니었다.
원은 하루라도 빨리 아트밸리의 일원이 되고 싶었고, 처음 일주일간은 아고라 센터를 돌아다니면서 그곳 예술가들에게 얼굴도장을 찍었다.
소심한 성격 탓에 무던히도 애를 먹었지만, 그 성격은 얼굴에서도 티가 났는지 친절한 예술가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기도 했다.
덕분에 아트밸리에 적응하는 데엔 성공했다.
이제부터는 수많은 원형 작품들을 많이 제작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작품을 구상하려고 스케치북을 들고 다시 아고라 센터로 나섰을 때엔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텅 빈 아고라 센터를 청소하고 있는 모 예술가에게 묻자, 다들 메사추세츠에서 로드아일랜드로 넘어오는 북부 고속도로로 간 상태라고 했다.
로드아일랜드와 메사추세츠 사이에는 미국 동부 유일의 큰 사막이 조성돼 있는데, 그곳에서 발생한 마른 회전초들이 고속도로를 습격했다는 것이었다.
회전초는 사막에서 자라는 잡초로, 마른 뒤 바람에 이곳저곳을 구르며 곳곳에 씨를 뿌리는 식물이었다.
속이 텅 비어있어 맞아도 그리 아프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회전초 표면에 자리 잡고 있는 가시들이었다.
거기 잘못 맞으면 온몸이 찢겨 생명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다고.
회전초 때문에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양의 회전초 무리가 고속도로를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에 아예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그곳을 사용하지 못해 다른 곳으로 우회하는 차량들로 인해 교통 마비를 겪고 있었다.
기회는 그나마 회전초들이 모여 있는 지금이었다.
호주에서처럼 불이라도 붙으면 서로 불을 옮기며 마을 하나를 뒤집어 삼킬지도 몰랐다.
아트밸리 예술가들을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었다.
원도 이젠 아트밸리 예술가가 다 되었다.
그에게서 소식을 듣자마자 원은 아트밸리 셔틀버스에 올라탔고, 몇 시간을 달려 회전초가 습격한 북부 지역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상태였다.
여전히 인근 주민들과 예술가들은 갈퀴를 가져다가 회전초를 내려쳐 납작하게 누르는 작업을 계속했다.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불태우는 게 상책이었지만 옮겨붙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미처 자신에게 돌진해오는 회전초를 보지 못해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대응은 꽤나 체계적이었다.
인근 농민들은 방범용 그물을 풀어다가 쭉 늘여 트랙터에 달고 회전초가 더 이상 구를 수 없도록 쓸어 담았다.
원은 그들을 따라다니며 예초기로 회전초를 잘게 부수는 역할을 맡았다.
며칠간 몸에서 휘발유 냄새가 가시지를 않았다.
“빨리 회전초가 정리돼서 사람들이 안전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그나마 친해진 트렉터 담당 농부에게 작게 말하자 그가 코웃음을 쳤다.
“뭐 여기서 사람 얼마나 죽었다고. 아마 평상시에 더 죽었을걸?”
“네? 왜요?”
회전초가 위협이 되는 건 마을을 습격해 불을 지피거나 행인을 덮치는 경우라고 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즉시 폐쇄했으니 고속도로에서 회전초에 맞아 죽은 사람은 없었다.
농부는 오히려 이곳이 졸음운전 사고로 많은 목숨을 빼앗아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원은 직선으로 멀리 뻗은 고속도로를 내다보았다.
한국에서 이런 건 별로 본 적도 없었다.
농부가 먼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기 쭉 평지로 이어지다가 확 오르막길 나오는 곳 있지? 저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글쎄요, 한 십 분?”
“저기까지 차로 2시간이 넘게 걸려.”
말도 안 됐다.
꽤 긴 길이긴 했지만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 것 같기 때문이었다.
2시간 동안 탁 트인 고속도로에서 직진만 하다 보니 아무리 커피를 마셔도 졸음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다 중간에 고립된 사람을 치거나 차가 잘못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 낭패이지 않은가.
그렇게 회전초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났다.
아트밸리 예술가들은 슬슬 아트밸리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원은 쉽게 걸음을 뗄 수 없었다.
고속도로에서의 죽음은 이제 막 시작된 것 아닌가.
회전초 피해를 막았다면 응당 졸음운전 피해도 막아야 할 것이었다.
“저기……”
홀가분한 표정으로 짐을 싸고 있던 예술가들은 원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재차 부르자 한 예술가가 원의 말을 듣고 외쳤다.
“다들 잠깐! 여기 새로 온 한국인 조형예술가가 뭔가 할 말이 있나 본데.”
“뭔데요? 무슨 일이에요?”
예술가들이 관심을 가지며 원에게 모여들었다.
“저기, 그…… 여기 원래 회전초보다 졸음운전이 더 위험한 곳이래요. 그래서 그것도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원의 제안에 예술가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비관적인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긴 한데 방법이 없지 않나요? 졸음운전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걸 원천에 막을 방법은 없으니까요.”
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너무 긴 설명이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그렇게 긴 설명을 오랫동안 큰 목소리로 할 자신은 없었다.
원은 예술가 하나를 붙잡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원의 이야기를 들은 예술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야…… 윤예준 화가님이 직접 데려온 예술가라기에 뭐가 특별한지 궁금했는데. 역시 다르네.”
그리고 그는 예술가들에게 대신 공표해주었다.
“다들 좀 더 남아보자고! 이 친구가 하는 말대로 하면 졸음운전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