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202화 (202/241)

202화. 혹시 음악이 들리시나요?

미술을 통해 음악과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해서는 일단 음악을 알아야 할 것이었다.

현생뿐만 아니라 전생에도 많은 음악 작품들을 향유해보았다.

그 음악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작품으로 옮기는 데에는 이미 익숙했다.

하지만 체스터의 말에 의하면 이번 연주회는 그림으로부터 연상되는 악상을 보이는 방식이라고 했다.

좋은 경험이 될 것이었다.

코지우스코 복원도 잘 이루어지고 있겠다, 나는 와이너리 홍보를 끝으로 멜버른의 일을 정리하고 오페라를 관람하기 위해 떠났다.

<21세기 문화 핵심 코드 ‘융합’ - 음악과 미술의 콜라보레이션>은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었다.

하버 브릿지를 지나며 내다본 오페라하우스는 해상 공연장처럼 멋져 보였다.

날씨도 좋고 바다도 맑아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듯했다.

특히 오래되어 부서진 듯 보이는 조개껍데기 형태의 디자인이 흥미로웠다.

그렇게 길을 돌아 건물 뒤편에서 접근하면, 바다를 등지고 있는 모습이 마치 해저 도시의 거대한 입구 같았다.

나 말고도 관광객이 꽤 되었다.

체스터처럼 오페라광들만 모인 것인지 하나같이 설레하는 표정들이었다.

날씨만 맑아도 마음이 편안해지기 마련이었다.

건물로 들어가는 계단 위에 <21세기 문화 핵심 코드 ‘융합’ - 음악과 미술의 콜라보레이션>이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다.

명화와 음악이 어떤 조화를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자 곧 공연이 시작되었다.

고전 예술이 아직 인기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대부분이 인상주의 전후의 그림이었다.

유명한 현대 음악가인 로버트슨이 명화에 어울리는 음악 작품을 만들어 그림과 함께 연주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 예외인 작품이 있었다.

마네,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

마지막에 등장한 그림은 내가 전생에 그렸던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였는데,

예외적이게도 그 작품엔 오펜바흐의 <캉캉>이 배경화면으로 그대로 활용되었다.

1858년에 작곡된 작품으로, 썩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와 어울리는 곡이기는 했다.

‘작품에 오펜바흐가 등장하기 때문에 오펜바흐의 곡일 거라고 생각한 건가?’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는 제목에 음악회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악단의 모습은 하나도 묘사하지 않았다.

대신 관람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작품 속 관객들의 시선을 통해 악단의 위치를 가늠하게 할 뿐이었다.

작품의 가장 좌측에는 나의 모습을 절반쯤 묘사했고, 순서대로 소설가 겸 비평가였던 샹플뢰리, 나의 친구 아스트뤼크, 보들레르, 그리고 베일을 쓴 나의 아내, 마지막으로 음악가 오펜바흐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어떤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는지가 관건이었던 작품인 만큼 <21세기 문화 핵심 코드 ‘융합’ - 음악과 미술의 콜라보레이션> 기획자도 나의 작품에 맞는 음악을 찾기 위해 애썼을 것이었다.

나 또한 작품의 분위기와 인물 배치의 암시를 통해 무슨 곡이 연주되고 있는지를 보이려고 했다.

곡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장점도 함께 가져가려고 했다.

연주되고 있는 건 <캉캉>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나서서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이제 와서 내가 그걸 주장한다고 받아들여 주는 사람도 없겠지만.

지금의 나는 마네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미술을 통한 음악을 한 번 시도했던 셈이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현재의 내가 더 많은 걸 경험한 상태니까.

당시 내가 작품 속 현장에서 어떤 곡이 연주되고 있을지 퀴즈를 내는 데에 그쳤다면, 이번엔 정말로 그 음악이 들려오는 작품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림을 통한 진정한 연주 말이다.

나는 그러기 위한 적절한 방법에 대해 고민하면서 공연이 끝난 오페라하우스를 빠져나왔다.

***

다시 오페라하우스 입구 쪽의 계단을 내려가며 휴대폰 전원을 켜는데 마침 체스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 시간 맞춰서 공연을 보러 온다고 했던 그였다.

-아, 전원이 꺼져 있으시기에 관람 중인 줄 알고 있었죠.. 공연 어땠습니까?

“굉장히 인상 깊던데요. 그림이랑 음악의 조화가 대부분 납득되고 잘 와닿았어요.”

-어휴, 아까워라!

그는 오던 도중 접촉사고를 당해 사고를 처리하느라 입장을 놓쳤다고 했다.

그래서 터덜터덜 다시 멜버른으로 돌아갔다고.

“저런. 많이 다치셨나요?”

-아뇨. 오토바이 한 대가 사이드미러를 치고 갔을 뿐입니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오히려 더 많이 다쳤죠. 대신 사이드미러 없이 운전을 할 수는 없어서 견인 조치를 하느라고 늦어진 거예요.

그는 언제쯤 돌아올 계획이냐고 물었다.

공연 관람은 끝났지만, 공연에 사용된 작품 전시가 기획되어 있다기에 들렀다 가겠다고 했다.

전시관은 오페라하우스 전시관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21세기 문화 핵심 코드 ‘융합’ - 음악과 미술의 콜라보레이션 전시회>라는 직관적인 제목이 적힌 플래그가 눈에 들어왔다.

오페라하우스 건물도 현대식이었지만, 전시관 건물은 지어진 지 5년도 안 되어 보이는 듯 완전한 최신식이었다.

창문 너머로 눈이 시려오는 조명들이 넘쳐 나왔다.

건물이 굉장히 컸지만 그만큼 휴게공간 비중도 큰 모양새였다.

전시와 사교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계획한 것이었다.

굉장히 많은 명작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만 운영하는 기획전시라서 단기간 대여해온 것일 터였다.

나의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도 물론 있었다.

그려진 지 굉장히 오래된 작품이었지만 그림을 보자 그 작품을 그리던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많은 관람객들이 나의 작품 앞을 배회하며 대화를 나눴다.

이벤트성 전시회라면 으레 그러기 마련이었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작품을 감상하러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그 순간 갑자기 관람객들이 조용해졌다.

“로버트슨 씨다!”

로버트슨이라는 사람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로버트슨이라면 나도 아는 이름이었다.

그가 이번 <21세기 문화 핵심 코드 ‘융합’ - 음악과 미술의 콜라보레이션> 공연의 담당 작곡가이자 오페라하우스의 관장이기 때문이었다.

로버트슨의 얼굴은 전시장에 크게 인쇄되어 있었고, 심지어 팸플릿에도 꽤 크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얼굴만으로도 홍보가 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관람객들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인사를 건네던 그는 나를 발견하고는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그와 관계를 트기 위해 괜히 말을 붙이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는데, 로버트슨은 그 시도들을 모두 고사하고 내 쪽으로만 똑바로 걸어왔다.

분명 나를 알아본 것이었다.

편안하게 그림 구경만 할 생각으로 눈에 띄지 않는 차림새로 왔는데,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결국 로버트슨이 내 앞에 완전히 다가와 섰다.

로버트슨이 제대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던 관람객들이 수군거렸다.

“뭐야? 저 사람 왜 비켜서지 않지?”

“로버트슨 씨를 모르나?”

지나는 길이라면 응당 비켜줘야 하겠지만, 아마 그는 지나는 길이 아닐 것이었다.

“오, 이럴 수가! 윤예준 화가님 아니십니까? 혹시 오늘 공연도 보신 겁니까?”

로버트슨이 반기며 묻자 관람객들이 더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윤예준이라고? 그 코지우스코의?”

그가 윤예준이라는 이름을 언급해버린 탓이었다.

“네. 공연을 보니까 전시회에 안 와볼 수가 없겠더라구요.”

공연을 보지 않았어도 전시회엔 왔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저를 알아보시네요?”

“물론이죠. 전에도 굉장히 유명하셨지만, 이번 코지우스코 일로 호주에도 유명세를 떨치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저는 그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요. 심지어 <아마란스>를 보러 미국까지 다녀오기도 했는 걸요.”

그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니 이런 공연도 기획했을 것이었다.

“어떠셨습니까? 이번 공연.”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에 <캉캉>을 연주한 건 그냥 오답도 아니고, 굉장히 단순한 발상이 만들어낸 오답이었다.

<캉캉> 또한 분위기가 밝고 화목해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또, 내가 그림을 통해 퀴즈를 냈다고 해서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가 퀴즈라는 뜻은 아니었다.

답을 틀리더라도, 답을 내지 않더라도 그 모든 게 저마다의 감상법이라는 것이었다.

“이번 연주회는 완벽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완벽했다는 나의 대답은 과찬이 아니었다.

적어도 미술 작품을 음악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시회는 썩 그렇지 않네요.”

“네?”

완벽했다는 나의 칭찬에 흐뭇해하던 로버트슨이 당황했다.

공연 하나 칭찬해줬으니 이 정도 소신 발언쯤은 해도 될 듯했다.

“연주회가 너무 훌륭해서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걸까요? 이 전시회는…… 반쪽짜리예요.”

***

로버트슨은 음악 관련해서는 달인이라고 해도 될 만큼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미술 작품을 포괄하는 음악회를 기획하면서도 굉장히 자신감이 넘쳤다.

벌써 몇 회의 공연을 마친 상태였고, 모든 관객 평가가 좋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윤예준에게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자신이 있었던 게 바로 이번 전시회였다.

물론 이곳에 음악은 사용되지 않았지만, 샤갈의 <첼로 연주자>, 마네의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등 전부 다 역사에 길이 남을 거장들의 작품만 모아놨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미술 전시 기획 전문가의 자문도 굉장히 많이 받았고 말이다.

그게 그가 전시회에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였다.

로버트슨 본인이 아무리 대단한 음악가라고 할지라도 그 미술계 거장들과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음악을 듣고 그림을 연상하는 것보다 그림을 보고 음악을 연상하는 게 더 쉬울 것이었다.

특히나 마네의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에 오펜바흐의 <캉캉>을 붙인 건 그로서도 굉장히 자랑스러운 해석이었다.

다른 작품들이라면 몰라도 마네의 작품 중엔 특히나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것들이 많았다.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가 그랬다.

솔직히 <캉캉>의 유명세만 생각하더라도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와의 융합은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반쪽짜리라니…… 그 이유가 뭡니까?”

로버트슨이 이런 냉정한 평가는 처음이라는 듯 목소리를 떨며 묻자 예준은 마네의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를 내다보며 말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저 작품을 볼 땐 오펜바흐의 <캉캉>이 선명하게 들려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예? 그야 틀어놓지를 않았으니……”

“네. 하지만 나중에 로버트슨 씨의 그 자작곡들을 듣는다고 치면 이곳에 있는 작품들이 눈앞에 그려졌을 거예요. 하지만 그 반대는 아니지 않나요? 공연을 막 보고 나온 제게도 저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에서는 <캉캉>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하기야 이제 와서 새롭게 악상을 심어놓기엔 그 작품들이 너무 유명하고 오래되었다.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를 통해 마네가 성공했다고 해서 로버트슨 본인도 가능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쉬운 일이 아닌 것이었다.

예준은 음악에서는 그림이 보인다고 했지만, 사실 <캉캉>을 듣고 마네의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가 떠오른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었다.

새로 이미지나 악상을 심어 넣기에 <캉캉>과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는 둘 다 고전 명작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아아…… 그런 의미에서 반쪽짜리라는 뜻이었군요.”

하지만 고전 명작에 음악을 흘려보낼 수 있는 천재가 존재할 수 있는가.

로버트슨 본인이 성공하지 못하는 작업은 아마 이전의 어떤 음악가도 해낼 수 없었을 터였다.

“로버트슨 씨가 작곡한 곡들은 모두 ‘보이는 음악’이었어요. 하지만 이 작품들은 전혀 ‘들리는 미술’이 되지 못했죠. 처음부터 들리는 미술로 그려진 작품들이 아니니까요.”

사실 로버트슨은 예준처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좋은 미술 작품과 어울리는 곡을 작곡함으로써 음악-미술의 일방향 연상만 가능하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음악과 미술의 융합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음악과 미술의 융합은 예준의 말대로 보이는 음악과 들리는 미술의 융합이어야만 했다.

전시회 제목에 가져다 쓴 ‘융합’이라는 단어가 창피하게 느껴지는 로버트슨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호주의 내로라하는 천재 음악가이자 거장인 로버트슨이 예준에게 의견을 구했다.

예준은 간단하다는 듯 말했다.

“호주의 천재 음악가 한 명이 보이는 음악을 성공시켰으니, 이제 들리는 미술을 해낼 화가를 만나면 되죠.”

“......”

“이번 전시회는 미술 작품을 선정하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실수가 있었던 것 같아 보여요. 처음부터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니 필연적으로 실패한 거죠. 다음 공연과 기획전시는 처음부터 들리는 미술로 그려진 작품을 선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예준은 그걸로 로버트슨의 융합 작업이 완전해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오페라미술관 관장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비평을 해본 로버트슨이었다.

‘비평할 땐 굉장히 날카로운 나인데. 왜 나의 작품을 할 때는 비평할 때만 못하게 되는가. 나도 세간의 찬사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구나.’

로버트슨은 예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너무 자명해서 공감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큰 확신이었다.

그나저나 예준 역시 이런 찬사를 끊임없이 받아왔을 것이었다.

남의 작품에 대해서라지만 이 정도 날카로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로버트슨에게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윤예준 화가님이라면 제게 적당한 화가들을 많이 소개해주실 수 있겠군요.”

마음 같아서는 예준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지만, 선뜻 제안하지 못했다.

요즘 코지우스코와 에보리진 일로 굉장히 바쁜 예준 아니던가.

그래도 미국의 아트밸리에 가면 미술과 음악, 문학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예술가들이 모여 토론하는 아고라 센터가 있다고 했다.

이 일에 적합한 미술가는 굉장히 많을 것이었다.

하지만 예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코지우스코와 에보리진 문제에 도움을 주신다고 한다면…… 제가 굉장히 적당한 미술가를 소개시켜 드릴 수 있는데요.”

“도움이요? ……일단 그 적당한 미술가라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예준은 웃었다.

“도움을 받는 게 저인데. 저도 로버트슨 씨에게 도움을 드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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