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201화 (201/241)

201화. 누가 내 파이를 먹었을까?

코지우스코 주민이자 지역 화가인 나판 가리올디는 오늘도 시원한 와이너리에서 그림만 조용히 그리다 갈 생각이었다.

항상 소란 한 번 피워본 적 없는 나판이었지만, 와이너리 주인 체스터는 왜인지 그를 잘 반기지 않았다.

처음엔 와인을 안 사 먹으니까 그런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냥 와서 시음만 하고 가는 관광객이 더 많지 않은가.

나판은 자신의 술을 가져와서 먹었으니 그에게 아무런 피해도 준 적 없었다.

마땅한 이유 없이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는, ‘최대한 함께 있어 주기’였다.

이런 식으로 오는 게 싫다면 최대한 매일 와주겠노라고 마음먹었다.

이 와이너리가 마음에 들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원래 이곳의 모든 건 다 우리 거였어……!’

이제 와서 몇백 년 전 일을 들먹이며 소유권을 주장했다간 ‘역시나 에보리진 거렁뱅이들은……’이라는 손가락질이나 당할 게 뻔했다.

인종차별에 있어서는 무조건 냉정해질수록 좋았다.

차별 발언은 무심하게 이루어지지만 차별받는 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법이었다.

바로 거기서 힘의 불균형이 생기는 것이었다.

나판은 자신이 냉정해지는 만큼 이주민들과 동등해지는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산불로 동네가 한참 소란스럽던 차에 한 동양인 관광객이 기자들을 대동하고 와이너리에 들어왔다.

좀 유명하신가 본데, 솔직히 나판은 그를 몰랐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유명인사를 봤다고 해서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그림에만 집중했다.

원래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주목받게 되어 있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양인은 내게 와인을 건네며 함께 그림을 그리자고 제안했다.

그러니 캔버스와 붓을 빌려달라고.

곁눈질로 그가 그리는 모습을 봤는데, 과연 프로화가 같았다.

꼭 그림이 아니라 그리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나판이 보기에 그림은 행위였다.

그 행위를 얼마나 즐길 줄 아느냐가 그 화가를 위대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이 동양인은 술에 한껏 취해서 마치 그림을 즐기듯이 그렸다.

‘확실히 잘 그리긴 하겠어. 처음 하는 장르라서 서툴긴 하겠지만.’

동양인의 작업이 끝난 것 같아 그의 캔버스로 시선을 옮겨보았다.

“뭐야!”

그곳엔 엄청난 작품이 있었다.

나판은 살면서 많은 에보리진 아티스트를 만나봤지만 저런 건 처음 봤다.

그가 아는 누구보다도 완벽한 실력이었다.

“이거 해본 사람이었어?”

그제야 처음으로 나판은 동양인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동양인은 생각보다도 더 어렸다.

에보리진 아트란 말했듯 혼을 담아야만 하고, 자신의 인생, 경험, 시간을 고행으로써 담아내야만 가능한 예술이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대개 애들은 할 수 없는 경지라는 게 있다는 것이었다.

“야 이 친구야. 윤예준 화가님이 에보리진 아트를 어디서 해봤겠어? 이런 것도 한 번에 척척 해내실 만큼 천재적이신 분인 거야.”

“천재성으로 이걸 그렸다고? 말도 안 돼!”

윤예준이라는 화가는 나판과 체스터가 입씨름을 하는 동안 진중하게 나판의 그림만을 감상했다.

“이 작품 굉장히 슬픈 그림이네요.”

보던 예준이 와인을 삼키며 말하자 일대가 조용해졌다.

나판은 그 예준의 짧은 감평에 속으로 조금 놀랐다.

“슬프다니. 어째서?”

예준은 박물관과 에보리진의 배치에 집중했다.

그들은 박물관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지만, 그럼에도 백인들의 구경거리 신세까지는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나판이 생각하는 에보리진의 진짜 비극이었다.

나판도 예준의 그림을 다시 감상했다.

앞서 나판이 놀랐던 이유는 예준의 기법이 굉장히 세밀했기 때문이었다.

에보리진 아트는 점을 여럿 찍어 형상을 만드는 점묘의 일환이었지만, 그렇다고 점을 느낌대로만 대충 찍어선 안 됐다.

다른 점과의 거리와 배치, 색깔을 모두 신경 쓰면서 하나하나 찍어야만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준은 별하늘보다도 더 많은 양의 점을 찍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말이다.

그런데 모든 점의 배치가 유의미했고 적절했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로부터 완전히 도망치기 위해 얼마나 애써왔던가.

현실을 벗어나려면 나판에겐 이 예술뿐이라는 걸 알았을 때 느껴진 무력감에 얼마나 크게 좌절할 뻔했던가.

그럼에도 알게 된 예술이라는 행위를 통해 또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던가.

결코 꿀 수 없는 단꿈을 꾸었던가.

“제목은 <꿈 속의 꿈>이에요. 꿈 속의 꿈은 꿈 속에서도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하죠.”

윤예준이 말하자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밀며 작품을 화면에 담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원 안에 원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형상이었다.

‘꿈’이라는 걸 그렇게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정말로 보고 있으면 몽롱한 동시에 가슴이 설렜다.

“무슨 꿈을 그린 건데?”

나판이 기자들에게 자리를 비켜준 예준에게 물었다.

그 말에 예준은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

그 후로 나와 나판은 에보리진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호주에서 에보리진으로서 겪고 있는 건 차별이 아니라 침략이라고.

그 침략은 여태 250년간 그들에게 진행 중인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삶의 터전를 빼앗겼다는 건 지구상 어디를 가든 이방인 취급을 받을 수밖엔 없다는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이민자들을 호주에서 도로 내쫓으려는 노력을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고향을 돌려달라는 건 너희의 고향을 빼앗아달라는 말밖엔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호주는 소중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 고향이겠지. 그들의 할아버지도, 또 그의 할아버지까지도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왔을 테니. 그건 나와 피차일반인 문제인데 왜 나와 그들의 삶이 이렇게 다른 건지……?”

매 순간 실향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에보리진들이 나판처럼 술에 찌들어 산다고 했다.

불에 타는 등 그저 고향이 파괴되었을 뿐이라면 그들은 꿈속에만 남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재건에 힘쓰면 되었다.

하지만 에보리진의 호주를 경험해보지 못한 건 나단도 이민자들과 마찬가지였다.

에보리진이 이방인이 아니던 시절의 호주를 그는 모르니까.

나판에게 에보리진의 호주는 꿈보다도 더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무언가였다.

술은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도 아주 좋은 묘약이 되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술이 선사하는 꿈은 너무 허황되어서 잠이 깨면 씻은 듯이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꿈 속의 꿈>이란 에보리진의 잃어버린 고향으로, 그것을 되찾지 않는다면 감히 꿀 수도 없는 미약한 하나의 ‘점’이었다.

꿀 게 아니라 실제로 이룬다면 에보리진은 이방인 정체성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었다.

내가 그 꿈을 이뤄주겠다고 말하자 나판은 처음 만났던 때와 비슷한 투의 비웃음을 흘렸다.

250년간 이루지 못한 꿈을 무슨 수로 당장 이루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냉소를 비웃기라도 하듯 굉장히 긍정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일단 수많은 기자들과 방송사 직원들이 담아간 영상이 굉장히 큰 이슈를 몰았다.

술과 윤예준, 안 어울리는 두 가지가 합쳐지니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성적으로 떠들어대기 바빴다.

기자들의 예상대로 술잔을 들고 경쾌하게 찍어 그리는 나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와이너리는 <꿈 속의 꿈>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붐볐다.

특히 10대 초반으로 얼굴도장을 찍어둔 바 있는 한국에서가 더 난리였다.

내가 성인이 되었다는 걸 알고는 있어도 술을 마시는 모습을 직접 보는 건 또 다른 문제 아니던가.

또한 방송사 마이크에 흘러 들어간 나와 나판의 대화도 화제가 되어서 그들의 역사를 다루는 다큐도 여럿 편성되었다.

원주민과 이민자는 여태 단순히 장소를 공유해왔을 뿐이지만, 그들의 <꿈 속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공생과 완전한 화합을 먼저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체스터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어차피 와이너리를 구경하는 사람만으로는 그에게 큰돈이 되지 않는다고 했으니.

<꿈 속의 꿈>을 아트밸리로 가져가는 대신 새로 출시할 와인의 라벨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덕분에 와이너리의 수익은 예년의 10배 수준을 찍었다.

그동안 산불 때문에 얻지 못한 이익의 수십 배를 한 달 만에 얻게 된 것이었다.

나의 사업도 순항 중이었다.

세리가 제작한 다큐 <소통의 사조>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미국, 아랍, 아프리카, 영국, 호주에서 보여온 나의 활동을 ‘소통의 사조’라는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다큐를 기점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아트밸리에 기부금을 보내주었다.

또한 아직 건설 중인 시계탑을 구경하기 위해 아직 폐허에 불과한 코지우스코 국립공원을 찾는 관광객이 굉장히 많아졌다.

사일로 담당자가 찍어 올린 드론 영상과 <소통의 사조>에 등장한 코지우스코 전경의 모습이 오히려 장관을 이룬다고 생각한 듯했다.

산불에 폐허가 된 풍경이 유명세를 얻었다면, 당연히 그 끝 사일로에 그려둔 나의 그림도 다시 주목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특히 담당자가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탁월하고 아름다운 색, 준 블루를 이용해……’라는 문구가 화제가 되어 ‘준블루’가 무엇이느냐는 궁금증을 낳았다.

실제로 사일로를 방문해 그림을 확인해간 사람들은 알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그냥 미지의 신비로운 색에 불과했다.

그 추세를 감지한 스펙터클라크는 시계탑에 들어갈 시계 바탕색을 준블루로 변경할 수 있도록 다시 구상하겠다고 했다.

아직 시계탑이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완공까지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판은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은 굉장히 맑은 정신으로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이제 그가 굉장히 큰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이곳저곳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인지 인터뷰 요청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어. 그것만 다 해도 상황이 꽤 나아질 것 같아.”

그는 얼떨떨해하는 표정이었다.

마치 사우디에서의 무함마드와 영국의 잭과 한처럼 말이다.

“그래서 저는 이번 라벨 디자인료를 모두 기부할 생각이에요. 호주 원주민의 차별을 방지하는 데에 잘 쓰이도록 말이에요.”

나판과 그림을 그렸던 건 그의 고통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수익금도 나판과 에보리진을 위해 사용해야 할 것이었다.

“체스터 씨는요?”

싱글벙글 판매수익을 정리하던 체스터가 당황했다.

이번에 많은 돈을 벌게 된 그였다.

그는 아깝지만 감수해야 한다는 듯 고민하더니 말했다.

“이번에 방문객이랑 와인 수요가 더 늘게 되었으니…… 에보리진들을 와이너리에 채용하는 건 어떨까요?”

“오, 그거 좋아 보이는데요?”

정부 보조금이 나온다지만 일을 하는 건 에보리진들에게 또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요?”

“네? 뭐 더 필요합니까?”

“에이! 채용은 계약이지 시혜가 아니잖아요? 당연히 그걸론 부족하죠.”

천연덕스럽게 퉁치려던 체스터는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화들짝 놀라서 덧붙였다.

“아이고, 그러믄요 그러믄요! 저는 그럼, 그, 어디 보자…… 오페라하우스 관람권을 추첨하는 행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체스터는 서랍에 넣어두었던 오페라 공연 티켓을 꺼내 보여주었다.

여러 회차 상연되는 오페라였는데, 그의 것은 바로 이번 주 주말 회차의 티켓이었다.

제목은 <21세기 문화 핵심 코드 ‘융합’ - 음악과 미술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융합이요?”

“네. 들어보니 그림을 바탕으로 한 음악 공연일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윤예준 화가님도 이 공연을 굉장히 좋아하시겠네요.”

체스터는 자신은 다시 구매하면 된다며 그 티켓을 내게 돌려주었다.

그림을 바탕으로 한 공연이라.

여태 세계 각지에 예술 공동체를 만들어오면서 종종 음악가들과도 만났다.

미술 쪽으로는 다방면에서 활동을 해왔지만, 음악에는 그런 적이 없었다.

‘음악 예술이라…… 어쩌면……’

나는 체스터가 준 티켓을 주머니에 접어 넣었다.

예술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나는 잘 알았지만, 음악은 해본 적이 없었다.

만약 음악까지 포괄할 수 있다면 내가 발휘하는 예술의 힘은 그동안의 두 배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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