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물레방아를 돌리는 물살 (3)
나의 인터뷰가 알려지자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코지우스코의 잿더미 위에 벌써 예술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나의 <생명의 나무>가 코지우스코 국립공원 복원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걸 알고 도움을 주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그들 중 몇몇은 임시 생활 시설에 그림을 기증하기도 했고, 내가 <생명의 나무>를 그려놓은 사일로 주변에 마찬가지로 사일로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목적 있는 예술을 시작했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항상 주차장의 월드피스 대책실에 모여 호소력 있는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술가뿐만이 아니었다.
기부금은 내가 오기 전에 꾸준히 모아놓았던 액수가 매일같이 계속 모였다.
모스크바CMC도 3년 동안 100억에 달하는 기부금을 내기로 약속했다.
피해민 지원은 서두를 수 있었지만, 자연을 되돌리는 건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으니 말이다.
나는 지속적인 홍보를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방송사 인터뷰에 쏟았다.
간만에 한국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월드피스 대책실로 돌아가려는데, 한 키 작은 농부가 와서 내게 말을 걸었다.
얼굴은 까맣게 탄 상태였지만 피부가 굉장히 반들반들한 다부진 남성이다.
“저, 윤예준 화가님? 저희 코지우스코를 위해 객지에서 굉장히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런데,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무슨 일이신데요?”
자신을 체스터 오스본이라고 소개한 농부는 근처에서 포도 농장과 와이너리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저런. 농장을 운영하셨으면 산불 피해를 보셨을 수도 있겠네요.”
“다행히 불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화재가 아니라 연기 피해라서요.”
사일로에서 언덕을 따라 쭉 내려가면 있는 농가에는 체스터처럼 포도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들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포도는 불뿐만 아니라 연기만 쬐어도 맛이 없어지기 마련인데, 대부분의 포도가 그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그런 걸 우스갯소리로 ‘산불빈티지’라고 하는데, 워낙에 맛이 없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아무도 사먹으려고 하질 않습니다. 화가님 덕분에 방문자는 늘었지만, 소비자는 늘지 않았죠.”
와이너리에는 산불 피해를 입지 않은 와인이 굉장히 많았고, 또 산불빈티지를 활용한 한정판 와인도 만들어놓은 상황이라 충분히 팔 수 있다고 했다.
모든 와인이 맛이 없어졌을 거라는 오해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 와인을 맛보신 다음 그걸 그림으로 그려주신다거나…… 그럴 순 없으실까요? 화가님이 그래 주신다면 편견이 없어질 것도 같아서요.”
요근래 술이 너무 먹고 싶었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위급 상황에 술이나 마시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철수하려던 방송사 기자들이 소곤대며 나와 체스터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술 마시러 간대요!”
“술을? 윤예준이 술을 마신다고?”
“이거 특종감인데요?”
그 말을 들은 체스터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자들이 특종감이라고 하니 한 번 마셔주는 것도 좋을 것이었다.
아주 작은 물살이라도 물레방아를 돌려내기엔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주시는 거 맛있게 먹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게 몇 년 만의 술이던가.
***
나와 체스터가 함께 그의 와이너리로 향하는 동안 열 명이 넘는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줄지어 따라왔다.
와이너리는 굉장히 거대하고 볼 만했다.
체스터의 말대로 관광객이 상당히 많았는데, 그들 중 구입을 희망하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굉장히 청소가 잘돼 있네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데도.”
“네. 굉장히 비싼 시설이라 이 근처 농장주들과 함께 쓰는 곳입니다. 그러니 잘 관리해야죠. 청소 상태가 맛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요.”
거대한 목제 드럼통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어서 술을 마셔볼 생각에 신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음악은 뭐예요?”
와이너리에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어딘가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오페라 음악인데, 무슨 노래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 이건 <사랑의 묘약>이라는 노래입니다. 제가 오페라를 좋아하거든요. 와이너리가 워낙 크다 보니 관광객들이 단조로워할까 봐 틀어놓은 것도 있고요. 그리고 오페라를 틀어놓으면 와인 맛이 더 좋아져요.”
“아, 정말요? 과학적인 건가요?”
“아뇨, 그냥 신념이죠.”
체스터는 나보다도 카메라를 든 기자들을 더 신경 쓰며 와이너리 소개에 전념했다.
언제 술을 줄 생각인지, 그래도 시장이 만찬이랬으니 그저 견뎠다.
“오래 기다리셨죠?”
와이너리를 다 구경하고 다시 입구 쪽으로 돌아온 뒤 체스터는 기자들 숫자를 세며 와인 잔을 챙겼다.
시간이 된 듯했다.
“아, 이제 시음하는 건가요?”
“네. 따라오시죠.”
나와 기자들은 체스터를 따라 입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완제품 창고로 향했다.
그곳도 상당히 넓어서 오크통이 수십 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이미 라벨까지 붙은 와인이 어림잡아 수천 개는 되어 보였다.
‘와…… 이게 다 재고란 말이지?’
체스터는 보관고에서 와인병 하나를 꺼내 상호를 보여주며 말했다.
“자, 일단 다 잔 드시고. 이게 이번에 개발한 ‘코지우스코 크림테일 더 니를 카베르네 메를로 와일드파이어 빈티지’입니다.”
“예?”
체스터는 장황한 이름을 소개하며 기자들이 든 잔에 와인을 조금씩 따라주었다.
기자들은 와인 냄새를 맡아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어보더니 한 모금씩 마셨다.
“켁!”
맛을 본 기자들이 와인을 각혈하듯 뿜어냈다.
마침 체스터에게 와인을 받으려던 찰나였다.
“왜들 뱉으시죠? 국내에 있는 다섯 명의 마스터 오브 와인 소믈리에분들이 참여해 밤낮없이 개발한 명품인데……”
“아니, 인분 냄새가.”
인분 냄새라고 말하자마자 체스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산불 피해를 입은 포도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신제품을 만들었다더니.
이게 바로 그 ‘산불빈티지’인 모양이었다.
“꼭 마셔야 할까요……?”
기자들의 반응을 보고 내가 묻자 체스터는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게 윤예준 화가님처럼 잘생긴 한류스타가 마셔주면 홍보가 좋을 것 같은데. 순하다는 이미지도 줄 수 있을 거고……”
외국인들에게 나는 거의 미성년자처럼 보이기 때문에, 술이 세지 않은 초년생들의 선호를 잡을 수 있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약한 척을 하고 나오니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곳 코지우스코 와이너리엔 카베르네…… 무슨 빈티지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체스터는 분명 산불 피해와 상관없는 와인들도 많다고 했고, 기자들은 그걸 맛있게 마시는 나의 모습만 찍어가면 되었다.
체스터는 나와 기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와인을 카트에 가득 싣고 다시 와이너리로 나왔다.
새 걸 따르기 전에 인분 냄새가 나는 와인 잔을 씻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오. 이건 정말 맛있네요.”
산불빈티지가 아닌 와인은 대부분 맛이 좋았다.
물론 기자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과장을 한 점도 없지 않아 있지만, 현대의 와인이라 그런지 전생에 먹어본 것들보다 더욱 맛있었다.
나와 체스터는 다시 와이너리를 산책하며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건 조금 특별한 와인인데, ‘코지우스코 웨일본 밀키 빈야드 까베르네 쉬라즈’라는 놈이죠. 제조가 끝난 뒤 곡물을 조금 섞어 고소한 맛을 더해놓은 겁니다.”
“와, 정말이네요. 감칠맛이 있는데요?”
기자들도 이젠 입가심이 다 됐는지 체스터가 주는 와인을 잘 받아먹고 있었다.
그렇게 몇 잔을 계속 들이켜니 조금씩 알딸딸해졌다.
“그런데 저건 뭐죠?”
나는 와이너리 깊은 안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거기 내가 전생에 그렸던 취객이 캔버스를 꺼내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네, <압생트를 마시는 남자>
‘뭐지? 헛것이 보일 만큼 취하지는 않았는데.’
취했다고 해서 헛것을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저곳에 보이는 남자는 나의 <압생트를 마시는 남자>에 나오는 취객과 정확히 동일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누더기옷 위에 상류층의 모자를 쓴 상태였다.
심지어 왼손에 팔레트 대신 들고 있는 술도 와인이 아니라 압생트였다.
“아, 저 친구 또 왔군.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가끔 와서 저렇게 그림을 그리는 동네 주민일 뿐이니.”
체스터가 설명했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호주 원주민인 ‘에보리진(Aborigine)’으로, 원주민 복지 수당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남자였다.
이 장소를 좋아해서 자주 모습을 비춘다고 했다.
“에보리진이요? 그러니까, 백인들이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원래 살던 사람들이라는 뜻인가요?”
“그렇죠.”
1700년대 후반 유럽 백인 이주민들은 호주를 식민지로 삼았다.
그 전엔 100만 명이 넘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지만, 백인이 옮겨 온 전염병과 식민지 탄압 때문에 지금은 인구가 완전히 줄었다.
체스터가 말한 복지 수당이라는 게 생겨서 그나마 지금은 조금 나았지만, 여전히 가난과 차별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야, 이 친구야.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고 내가 오지 말랬잖아?”
“내가 내 발 달고 들어오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속상하게 하는구만.”
체스터와 에보리진은 잠시 아옹다옹했다.
나는 그 에보리진의 뒤로 다가가서 그의 그림을 함께 보았다.
그의 붓은 선을 이루지 않고 오로지 점만을 찍고 있었다.
마치 점묘화처럼 말이다.
굉장히 낯설면서도 신선한 표현이었다.
“이 작품은 뭔가요?”
내가 묻자 에보리진은 고개를 돌려 나를 마주 보았다.
“에보리진 아트에 관심이 있소?”
에보리진 아트.
에보리진 전통 미술과 함께 호주에서 발달한 사조인 듯했다.
19세기 후반에 등장했다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표현법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니까, 인상적이었다는 뜻이었다.
그림 속엔 굉장히 거대해 보이는 박물관 앞에 흙을 깔고 모인 에보리진들이 모여 있었는데, 옛 복장을 그대로 입은 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돈을 모금하고 있었다.
일가족 모두 춤이 직업인 양 말이다.
“저도 캔버스 하나만 빌려주시죠. 지금 바로 그려보고 싶은데.”
“뭐? 당신도 화가요?”
“그럼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밤낮으로 나에 대해 떠들어대는데, 아직 모르는 걸 보니 세상일에 무관심한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체스터에게 부탁해 가장 비싼 와인을 받아 에보리진과 나누는 걸로 물감을 얻어다 쓸 수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물감은 조금 희끄무레한 게 특별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닌데. 잘 안 그려진다고 실망하기 없기요.”
“에이. 제가 완성했을 때 얼마나 놀라시려고 그러세요?”
코지우스코 국립공원 인근 주민들은 굉장히 많은 수의 가족을 잃었다.
에보리진들도 200년 전 굉장히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고 지금도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었다.
압생트가 얼마나 마음속 고통을 씻어내기 용이한 술이던가.
“흥. 허풍은. 이게 그냥 예술이 아니라니깐 그러네. 작품에 혼을 담을 줄 알아야 한다고”
에보리진은 콧방귀를 뀌었다.
물론 처음 시도해보는 화풍이기는 하지만 자신 있었다.
이름도, 나이도, 사연도 모르는 이 아무개 에보리진의 상처를 치료해줄 자신까지도 말이다.
나는 붓을 들어 캔버스에 점을 찍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며 하는 작업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에보리진 아트의 매력 때문인지 굉장히 즐거웠다.
에보리진이 바닥에 팔레트를 내려놓은 덕에 나도 왼손엔 와인 잔을 들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기자들은 내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았다.
곧 작품 하나가 완성되었고, 에보리진은 자신의 캔버스에서 시선을 떼고 내 쪽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