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183화 (183/241)

183화. 사람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살다 살다 그 친구 손님을 다 보는군. 따라오시게.”

지평선이 끝도 없이 늘어선 사막지형이었지만 근처에 걸어서도 방문할 수 있는 상가가 하나 있었다.

노인은 그중 한 시멘트 건물로 안내했다.

오마르의 집이었다.

“누구쇼.”

경첩이 다 떨어진 문을 열고 얼굴을 내놓은 오마르의 안색은 이전보다 많이 창백해져 있었다.

실내가 어둡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휴대폰이 꺼져 계시더라고요. 그런데 어디 아프세요?”

“아, 그랬지. 얼마 전에 길가에서 나이 어린 미친놈이 탄 오토바이에 치였어. 내 남은 다리와 함께 휴대폰도 완전히 개박살이 났지.”

오마르는 이제 무릎 아래로는 남지도 않은 자신의 왼쪽 다리를 걷으며 말했다.

철심 같은 걸 박아놨는지 붕대가 많이 들떠 있었다.

“아, 저런. 많이 다치셨네요. 조금 괜찮아지셨나요?”

허벅지 뼈 골절은 전쟁통에도 보기 힘든 부상이었다.

총이 완전히 뚫고 지나간 게 아닌 이상 말이다.

“괜찮긴 무슨! 나이 먹어 뼈 부러지면 잘 붙지도 않아. 수술 후유증 때문에 있던 폐병도 심해져서 꼼짝도 못 하고 있다고.”

“폐병이요? 아니, 그런 게 있으신데 왜 입원을 안 하세요?”

“그냥 다리 잘렸을 때 감염돼서 생긴 만성 폐렴이야. 컨디션 안 좋을 때마다 재발하는 거라고.”

계속 병원을 안 가겠다고 버티는 오마르를 휠체어에 태워 자동차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카르툼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으로 가 종합 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근처 호텔에서 묵게 했다.

“이렇게 비싼 여행이라니. 고맙네, 젊은 친구.”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제 돈이 아니라 어르신 이번 수익금으로 다 계산한 거니까요. 기름값 빼고.”

“......그렇게 많이 벌었나?”

오마르 앞으로 총 250만 달러가 떨어졌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전시회 관람객은 대부분 관광객이었기 때문에 수익 정산을 달러화로 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 달러 기준으로 이야기했을 때 오마르는 그게 얼마나 큰 금액인지 몰랐다.

“제가 수단 세법도 잘 모르고, 혹시 몰라서 10만 달러만 환전해봤는데 4500만 수단 파운드가 나왔어요.”

“뭐?! 4500만?”

오마르의 눈이 보던 중 가장 커졌다.

“10만 달러가 그 정도면…… 다 합쳐서 우리 돈 10억이 넘는 거잖아.”

강가에 흔하게 널린 파피루스를 조금 다듬었을 뿐인데 10억을 번 것이었다.

오마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허허 웃을 뿐이었지만 애써 흥분감을 감추려는 티가 났다.

그렇다고 오마르에게 좋은 소식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며칠 뒤 검진 결과를 들으러 병원으로 갔는데, 의사는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했다.

“이거 다리 상태가…… 그냥 폭탄을 맞은 것 같지 않던데요?”

“예…… 그, 백린탄이라고 하던데……”

의사 앞에 앉은 오마르는 지나치게 주눅 들어 했다.

“말씀하신 대로 폐병이 있기는 한데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아무리 만성이라도 몇십 년이 지속되는 건 말도 안 되죠…… 골수염이십니다.”

“예?”

의사는 부상 당시 조치가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척추 골수염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아마 이식 수술이 필요할 거라고.

의사는 차라리 기증량이 많은 미국 같은 국가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볼 것을 추천했다.

수단에 있는 병원은 대부분 국제 장기기증 협회에 가입된 게 없기 때문에 이식이 필요할 경우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었다.

진료실에서 나와 진료의뢰서와 처방전을 기다리는 동안 오마르는 시한부 판정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

“늙으면 죽어야지……”

“그런 말씀 마시고요. 환전 조금만 해놓길 잘했네요. 미국 가셔야 하는데.”

오마르는 영혼이 떠나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간에. 자네는 그럼 이제 중국으로 돌아가는 건가?”

“지난번엔 일본이라고 하시더니……. 한국으로 갈 거고요,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김화가 씨를 한 번 찾아가 보려고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오시리스의 법정>이 그려진 파피루스 종이에 대해 ‘불량’이라고 표현한 게 두고두고 충격이었다.

그 종이가 오래갔기에 망정이지,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선 불량인 종이에 명작이 그려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일단 한지 연구원 김화가 씨를 찾아 연구에 대해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아, 그 친구.”

오마르는 김화가 씨를 생각하는 듯 잠시 침묵했다.

“그 친구도 돈 많이 벌었겠지? 종이를 연구하고 있으니까.”

엄밀히 말해 이번 그의 수익금이 종잇값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마르만 한 일확천금은 없었을 것이었다.

“......한국에서 치료받아도 되나?”

잠시 고민하던 오마르는 뜻밖의 질문을 해왔다.

“가서 직접 만나시게요?”

“응. 도와줄까도 생각했지만, 돈이 없어서 그러지를 못했거든. 카르툼도 평생 한두 번 와본 게 다니까. 근데 이제 억만장자가 됐으니 못 그럴 것도 없지.”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던 오마르가 뒤늦게 덧붙였다.

“어차피 멀리 갈 거면 친구 하나라도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

늙으면 죽어야 한다던 오마르는 그렇게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신촌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치료목적으로 장기 비자를 받았기 때문에 꽤 긴 여행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사이 인터넷에 ‘한지 연구원 김화가’라는 키워드를 다양하게 검색해보았다.

그 결과 ‘한지산업기술연구소(한지연)’라는 기관에 그런 이름을 가진 인물이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화가라는 이름이 그리 흔한 이름도 아니고, 그 직업도 희귀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동일 인물인 듯했다.

나는 한지연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김화가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한지연 홈페이지 번호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김화가 연구원님 맞으시죠? 저 윤예준이라고 하는데요.”

-윤예준이요……? 혹시 그 YJ예술종합학교의?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굉장히 반가워하며 수선을 떨었다.

오마르 나이대의 어르신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젊은 목소리였다.

-아! 정말 팬입니다. 윤예준 화가님의 <환생>은 정말 지금 봐도 온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예요.

“가장 첫 작품인데. 그걸 언급해주시니까 기분이 묘하네요.”

-첫 작품이긴 하지만 아직 6년밖에 안 된 신작 아니겠습니까? 명작은 수천 년을 간다는데.

내 생각이 바로 그거였다.

명작은 수천 년을 가지만 불량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모든 화가가 제대로 된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면 현재 우리들은 훨씬 많은 작품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제가 이번에 아프리카를 다녀왔는데. 거기서 만난 파피루스 기술 명인분께서 김화가 연구원님을 소개해주셨어요. 자신의 한국인 친구고, 파피루스 기술을 전수해주셨다는데.”

-오마르 선생님이요?

김화가는 오마르의 이름을 듣더니 전보다 더 격양되었다.

-그분이 아직 저를 기억하고 계시다니. 지금은 어떻게, 건강히 잘 지내신답니까?

“아뇨. 좀 어려운 병을 앓고 계세요. 나이도 있으시다 보니. 그래도 치료 겸 김화가 연구원님도 볼 겸 한국에 들어왔어요.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보고 싶다고 하시네요.”

직접 만날 수도 있다고 하면 더 좋아할 줄 알았는데, 김화가는 오히려 침울해졌다.

-아, 그런가요? 이런……

“왜 그러세요?”

-사실 그분의 파피루스 기술을 한지에 적용해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해봤는데 결국 실패했습니다. 뭘 해도 안 되더군요. 지금은 반쯤 포기 상태요.

실패의 이유를 묻자 김화가는 한지와 파피루스의 재료 차이를 꼽았다.

먹을 쓰기에는 한지의 원재료가 되는 닥나무가 제격인데, 그 닥나무는 오마르처럼 포를 뜨는 게 아니라 아예 푹 삶은 뒤 풀을 마구 뒤섞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한지 제조법의 특성상 파피루스 줄기의 결을 구현할 수 없고, 또 여러 장을 겹치기도 어렵다는 것이었다.

오마르의 말을 빌리자면 ‘불량’을 만드는 기법과 비슷한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그래요? 혹시 제가 가면 제작 공정을 좀 보여주실 수 있나요?”

하지만 절대로 불가능한 건 없었다.

적어도 불가능 선언이라도 하려면 그게 왜 어려운지는 직접 경험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네, 그러죠. 현대 한국화의 등용문을 하나 만들어 주신 분인데. 당연히 그래야죠.

김화가는 대덕연구단지 근처에 있는 한지연 주소를 보내주었다.

실제로 만난 김화가는 한 5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였다.

원래는 서예가로 활동하던 사람이었는데, 수많은 동양화 명작이 불량 한지 때문에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연구원으로 전향했다고 했다.

그는 우선 자신이 복원한 전통 한지를 보여주었다.

“한번 사용해보시죠. 우리 조상님들을 이렇게 좋은 종이를 썼던 겁니다.”

김화가는 내가 종이를 만져보는 동안 벼루와 붓을 가져와 먹을 갈았다.

한지는 굉장히 거칠고 투명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촉감이 따뜻했다.

그리고 김화가가 건네준 붓으로 한 번 선을 그어봤다.

“어?! 아예 번짐이 없는데요?”

“닥나무를 치밀하게 풀어내어 만든 한지입니다. 침윤이 굉장히 원활해 오히려 번짐이 없는 거죠. 번지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에 깊이 있는 먹빛을 내는 게 바로 한지의 매력이죠.”

정말로 그랬다.

보통의 한지는 먹에 물을 많이 섞으면 투명한 모양으로 번지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방금 그은 선은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진한 검정이었다.

“한지도 쓰임에 따라 제작법이 굉장히 다른데, 그럼 이제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기법의 제작 과정을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김화가는 닥나무 한 무더기를 쪄서 껍질을 벗긴 뒤 아예 물 안에 담고 끓이기 시작했다.

끓이는 사이사이 잿가루를 조금씩 섞어 넣었는데, 그렇게 해야 고열에 섬유가 파괴되지 않는다고 했다.

일련의 과정을 진행한 뒤 김화가는 잘 풀어진 닥나무를 망치로 두드렸다.

종이 모양으로 잘 펴주기 위해서였다.

“닥나무 섬유가 골고루 섞이고 잘 펴져야 강해집니다. 이 과정에 정성을 들이면 들일수록 튼튼해지는 거죠. 지금은 단순히 보여드리는 거니 이쯤 하겠습니다.”

김화가는 그렇게 펼쳐진 한지를 풀을 탄 물에 넣고 마구 휘저었다.

전체적으로 닥나무 조각이 섞인 물이 완성되면 평평한 판으로 얇은 물층을 떠냈다.

그걸 프레스로 쭉 짜주면 물에 젖은 한지가 완성되었다.

김화가는 그것을 건조장에 넣고는 다른 완성된 한지를 가져와 보여줬다.

“저대로 마르면 이렇게 됩니다.”

나는 김화가가 건네는 한지를 건네받았다.

여태까지 써왔던 어떤 한지보다도 훌륭했다.

굉장히 부드러웠지만 잔털이 적었고, 무엇보다 곱게 배치된 닥나무 조각들의 배치가 인상적이었다.

“굉장히 좋아 보이는데. 이 한지의 문제점이 뭐예요?”

“이 한지 자체에 문제점은 없습니다. 힘든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든 한지니까요. 시중에서는 보기 힘들죠. 그런데 한지는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는 옷에 쓰이는 한지, 창호에 쓰이는 한지, 같은 그림에 쓰더라도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또 한지 제조법이 달라진다고 했다.

현재 전해지는 기법은 지금 김화가가 보여준 게 다고, 나머지는 후세 사람들이 남은 한지를 연구하고 기록을 찾은 끝에 불완전하게 복원해낸 것들이라고.

“그런데 아까 한지에는 결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네.”

그 결이 오직 내구도를 위해서만 필요한 거라면 한 가지 떠오르는 제조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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