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이 제일 쉬움-182화 (182/241)

182화. 태양의 권력을 당신에게 (3)

“알랑가 모르겠지만, 이 파피루스 종이 만드는 게 딱히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야. 박물관에서 본 적 있지?”

“네.”

오마르는 인사치레도 없이 바로 종이 제작 시범을 보였다.

“이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름 줄기식물이라서 결이라는 게 있어. 그 결을 따라서 찢으면 거미줄처럼 쭈욱 늘어지지.”

오마르는 파피루스 줄기 하나를 작살에 확 꽂더니 작두 위에 올리곤 조심스럽게 파피루스를 굴렸다.

그럼 마치 사과를 깎듯이 파피루스가 굉장히 얇게 펼쳐졌다.

오마르는 그걸 햇빛에 비춰 보여주었다.

정말로 아주 자세히 보면 희미한 세로 선들이 많이 보였다.

그가 그 선을 따라 힘주어 뜯으니 선을 따라 주욱 찢어졌다.

“정말이네요. 박물관에서는 이런 게 안 보이던데. 왜죠?”

“왜긴 왜겠어. 불량인 거지.”

오마르가 말하는 원인은 다음과 같았다.

방금 자신처럼 충분히 얇게 썰지 않고 물아 담가 바위로 빻아 펼쳐냈을 경우, 줄기가 다 뭉개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불량이라니. 4천 년이나 된 작품이라던데요?”

“옛날에라고 불량이 없었겠나? 내 방식대로 하면 4만 년도 갈걸. 이게 대충 썰어서 뭉개도 되는 이유는 흙탕물과 섞였을 때 끈질긴 접착력을 가져서 그런 건데, 나처럼 해봐. 품이 많이 들더라도 그게 종이 결도 깔끔하게 잘 뽑히고 찢어지지도 않아. 종이 봐서 가장자리가 너무 많이 소실돼 있으면 무조건 불량이야. 이 방식으로 하면 상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상하지 끝부분만 뜯겨나가고 그런 거 없어.”

그럴듯했다.

오마르는 계속 설명했다.

잘못 얇게 어슷썰어버리면 오히려 대충 썰어 빻아낸 것보다도 약해졌다.

썰린 방향에 따라 줄기가 하나로 이어져 있지 않고 셋, 넷으로 나뉘기 때문이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이 오마르만의 틀이라고 했다.

파피루스 제지술의 핵심이 바로 그 틀에 있다고.

오마르는 파피루스를 총 네 가닥 잘라낸 뒤 줄기 방향 기준으로 가로로 한 장, 세로로 한 장, 다시 가로로 세로로 한 장씩 총 네 겹을 겹쳤다.

어느 방향으로 잡아당겨도 찢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고운 흙탕물을 떠와 종이에 반복적으로 끼얹었다.

그 물을 잘 펴바른 뒤 넓고 평평한 패널로 종이를 전체적으로 꾹꾹 눌러주었다.

“콜록 콜록. 에헤이. 다 망쳐버렸군.

그 과정에서 오마르는 기침을 몇 번 했는데, 그럼 작업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었다.

기침하면서 튄 침이 다 불순물이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렇게 누르면 이게 접착. 물이 종이 곳곳에 스며들면 접착력이 나와서 이대로 서로 엉키는 거지. 나중에 틈이 뜨지 않도록. 그다음 이대로 말리면 끝.”

“와. 그럼 한 시간도 안 걸려서 한 장을 만든 거네요.”

“아니지. 크잖아. 이걸 잘라서 쓰면 웬만한 그림 네 점은 그리겠네.”

완전히 말려봐야 알겠지만, 오마르가 조심히 옮겨 틀 위에 널어둔 종이엔 가로세로 줄기 모양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접착되면서 종이가 완전히 붙었기 때문인데, 눈썰미가 좋은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결이 있는지조차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흙탕물과 함께 수분기가 완전히 증발해서 오래 썩지도 않고, 간편하면서도 굉장히 기능성 있는 방식이었다.

“이거 한 백 장쯤 만들어서 가져가야겠어요. 살까요, 아니면 전시회에 참여하신 걸로 하실래요?”

“산다고? 얼마에?”

“얘기해봐야죠.”

오마르는 조금 고민하더니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알겠어요. 그럼 전시회 끝나면 다시 찾아올게요. 그때 수익 정산해요.”

어차피 파피루스 종이 백 장 팔아봤자 얼마 받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펌킨노아에게처럼 수익으로 놀라게 해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그나저나 너처럼 어린 일본인이 여기서 무슨 사업을 벌이고 있는 거야?”

오마르는 다음 파피루스를 들고 틀 앞으로 휠체어를 끌며 물었다.

“이름이 윤예준인데 일본인이겠어요? 한국인이에요.”

“뭐?! 한국인이라고?”

오마르가 갑자기 놀라며 물었다.

“나 아는 한국인 한 명 있는데. 너 혹시 김화가라고 알아?”

문화교류가 별로 없는 지역에 가면 더러 이런 일을 겪게 된다던데.

그걸 내가 실제로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어…… 아뇨. 그냥 김 화가라고만 하시면 당연히 모르죠.”

***

파피루스 작두 틀을 조작할 땐 발로 작살을 굴리고 손으로 작두 높이를 미세하게 조절해야 했다.

다리가 없어서 오래 걸릴 거라는 오마르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오마르는 작살을 왼손으로, 작두를 오른손으로 한 번에 조절했다.

다리를 쓸 줄 아는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작업속도는 별 차이 안 날 것 같았다.

대신 오마르의 수다를 들어주는 데에 시간을 조금 쏟아야 했다.

예의 그 김화가라는 사람은 정말로 이름이 김’화가’로, 직업이 화가인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한지를 연구하는 연구원이었다.

그는 마찬가지로 유실된 한지 제조법을 유추하는 데에 참고하기 위해 몇 년 전 오마르에게서 파피루스 제지술을 배워갔다는데.

만약 전시회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안부 좀 물어달라고 했다.

‘한지 제조법이 유실됐다고? 환생해서 처음으로 한지에 동양화를 그리지 않았던가?’

둘 중 하나일 것이었다.

그가 일찍이 기술 복원을 마치고 대중화까지 마쳤거나, 아니면 오마르가 말했던 박물관의 파피루스들처럼 조잡하게 구현된 것들이었거나.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개인적으로도 김화가의 안부가 궁금해져서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그렇게 전시회 일정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무렵이었다.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윤예준 고객님 맞으십니까?

파피루스 내구성 측정을 의뢰했던 기관이었다.

그들은 일단 측정 결과를 메일로 발송해주겠다고 했다.

-보내주신 표본이 현재 측정 불가 대상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이게 대체 뭡니까?

“측정 불가 대상이라뇨?”

나는 관계자의 말을 들으며 도착한 메일을 살펴보았다.

메일에 첨부된 자료에는 여러 동일한 샘플을 대상으로 온도, 습도, 기압, 광선의 종류를 다양하게 조절해서 부식, 산화 속도를 확인하고 각각의 상태와 강도를 측정한 결과들이 적혀 있었다.

전시장 환경에서의 내구성 검사 항목에만 ‘-’가 적혀 있었다.

다른 항목 분해 시간이 초 단위로 적혀 있는 것과는 비교되는 구석이었다.

-저희 연구소 최대 측정 기간이 만 년입니다. 그보다 오래 가면 측정 불가죠. 저희도 유리 같은 걸 측정해야 가끔 보는 게 측정 불가인데, 이건 유리도 아니고…… 대체 뭔가요?

최대 만 년인데 측정 불가라니.

자신이 만든 종이는 4만 년도 갈 거라는 건 과장이 아니었다.

오마르의 파피루스를 분해하려면 찢어서 버린 후 곤충의 먹이로 만들어버리는 수밖에는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즉시 반전예술가협회에 모인 회화 예술가들에게 파피루스를 모두 전달했다.

그들은 기획자들에게만 미리 개방된 페즈 별궁을 돌아다니며 동선 체크에 여념이 없었다.

버리는 시간 없이 꽤 효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스펙터클라크에서도 일에 박차를 가했는지 내가 디자인한 ‘이집션 블루 트라바’ 디자인을 세상에 공개했다.

그렇게 두 번째 사전예약이 시작되었는데, 1시간도 안 돼서 모든 상품이 품절되었다.

‘태양의 권력을 당신에게’라는 카피와 함께 홍보되고 있는 이집션 블루 에디션은 상품이라기엔 차라리 유물처럼 보였다.

제프에 따르면 어디서 돈을 더 받고 미리 팔아놓은 것 아니냐, 어떻게 1만 개나 되는 상품이 한 시간도 안 돼서 품절될 수가 있냐, 항의 전화로 상담 직원들이 굉장히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했다.

물론 상담 직원의 고생은 높은 확률로 사업부와 홍보부의 기쁨이 되었다.

적어도 내가 계획한 상품에 대해서는 말이다.

-와. 정말…… 아직 출시도 하기 전에 최고 매출 계산이 끝났습니다. 노멀판도 한정판매라고 할 정도예요. 이 정도면 나오는 족족 팔려나갈 겁니다. 디자인이 정말…… 하나 몰래 빼놓을까 고민까지 했어요.

“그 정도인가요? 정말 고맙네요.”

-출시하면 한번 보시죠. 완전히 난리가 날 겁니다.

특히 남아공에서는 따로 판매장을 지어놓았다고 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천연 가죽 스트랩이라는 점에서 친환경주의자들의 취향에도 맞았고, 무엇보다 현대에 와서는 그리 메이저한 요소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이집트 디자인을 제대로 녹여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설 판매장도 굉장히 멋진 이집트 고대 궁전 컨셉으로 지었다고 했다.

“어? 그럼 그거 판매 끝나면 다시 철거하는 건가요?”

-그래야죠. 이번에만 한시적으로 인파가 예상되는 거라서. 딱히 유지할 이유가 없어요.

마침 페즈 별궁에서 <챌린저스 아트워크>를 기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 덕에 더 많은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굉장히 거대하고 넓은 페즈 별궁이었지만 작품들이 기획보다 더 많아지면서 공간이 부족해졌다.

“거기 몇 달간만 더 유지해주실 수 있나요? 안 그래도 저희 전시장이 하나뿐이라서 고민이었는데.”

어차피 <챌린저스 아트워크> 아프리카 전시회는 스펙터클라크에 대한 관심이 조금 빠진 후에나 시작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때맞춰 노를 저을 때가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적절히 해야 할 때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가능합니다. 지금 윤 화가님은 저희 회사에서 아주 위인이 돼 계십니다. 대표님도 제발 스위스로 한번 모셔와달라고 어찌나 그러시는지…… 아, 선물을 하나 하겠다고 하셨는데 이번 가설 전시장으로 말씀드리면 되겠네요.

아, 네네. 그렇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리미티드 에디션도 하나 보내드리죠. 저희가 자동차 기업이었으면 오르쉐처럼 나라마다 한 대씩 배치해드렸을 텐데. 시계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 참. 성의가 초라합니다.

그래도 값으로만 치면 꽤 비싼 성의였다.

이집션블루 에디션 판매가는 한화로 20억 원이나 했기 때문이었다.

제프는 굉장히 흥분한 채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요즘은 정말로 로또라도 맞은 기분입니다. 그동안 발리서클이나 오르쉐를 보면서 굉장히 배가 아팠는데. 이번엔 우리가 그 이익을 보게 된 거니까요. 남의 나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덕 많이 봤어요. 가설 판매장도 꼭 좀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전시회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제프는 급한 일이 있다며 전화를 끊었다.

가능하다고 했으니 조만간 가설 판매장을 사용하라는 연락이 올 것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바로 반전예술가협회 전시기획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

시계 제작의 마지막 공정은 스트랩 부착이었다.

하지만 모든 스트랩을 테너리 작업자들이 다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스펙터클라크의 홍보가 성공해 더 많은 가죽공예 예술가들이 모여든 덕분에 감당이 가능해졌다.

리미티드 에디션만큼은 아니지만, 일반 상품도 굉장히 고가의 시계였다.

생산량을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제프의 장밋빛 전망이 정확했다.

계속되는 예약 문의에 테너리 공장은 거의 불이 꺼질 틈이 없었다.

시계는 출시한 이후로 한 달이 넘도록 입고와 동시에 판매되었다.

가죽 공예 예술가들의 인지도를 지원하기 위해 자신이 담당한 스트랩 안쪽에 YJ라는 이니셜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적어넣게 했는데, 그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공유하는 유행이 생기기도 했다.

작업자마다 디자인을 전개하는 방식이 미묘하게 다르다고 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예술가로서 이름을 크게 알릴 수 있게 되었다.

판매 열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았다.

나는 수익액이 결정되기 전에 <챌린저스 아트워크> 아프리카 전시회 준비를 마치고 바로 개관했다.

[이집트 시계 판매 신화 기록한 윤예준, 이번엔 제 2회 <챌린저스 아트워크> 전시회로 예술계 전격 복귀]

[전설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오마르의 파피루스, 미국 유명 연구원서 측정한 결과 ‘만 년 이상’인 것으로 밝혀져 ‘만년지’ 별명 얻어 화제]

[<챌린저스 아트워크> 아프리카 전시회 아프리카에서만 총 두 군데. 어딘지 보니…… ‘충격’]

[모로코 살마 공주, 역사상 첫 페즈 별궁 공개에 대해 “페즈 별궁은 세계인 모두의 유산”]

솔직히 먼 타국의 전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페즈 별궁과 이집션블루 에디션으로 이름을 알린 나의 두 번째 <챌린저스 아트워크>라는 요소는 오마르의 제지술과 함께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관람객은 페즈 별궁 앞에 말 그대로 ‘밤낮으로’ 줄을 섰다.

별궁 내부 사진을 찍으려고 모여든 그들은 처음엔 관광객처럼 떠들었지만, 반전 예술가들의 작품을 본 뒤에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가죽 공예 예술가들의 고급 잡화로 가볍게 시작해 아프리카풍의 원시적 조형물들, 10세기 이전 원시 부족의 디자인을 활용한 가면, 상아를 꿰어놓은 드림캐쳐 등은 그들에게 미적 충격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회화 작가들이 파피루스 위에 그려놓은 전쟁의 참혹상은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듯 생생했다.

황토빛 진흙과 시뻘건 핏물이 곳곳에 섞여 그야말로 지옥의 현장을 보여주는 듯했다.

작품에 매료된 이들은 페즈 별궁 관람을 마친 뒤 아프리카를 종단해 남아공 전시장으로 갔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들 그 수순을 따랐다.

페즈 별궁을 보러 왔다가 전쟁 피해 예술가들의 그림만 보고 간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전시하게 두고 싶었지만, 전쟁 피해 예술가들의 생계에 도움이 되는 게 낫다고 판단해 작품은 모두 팔기로 했다.

많은 관심을 받은 만큼 작품은 경매를 통해 판매했는데, 모두 예술가들이 평생 만져본 적도 없는 고가에 팔렸다.

그래도 반전 예술을 홍보함으로써 그들에게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주겠다는 목적은 확실히 이룰 수 있었다.

페즈 별궁 정원의 경매 현장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에서 그 경매에 참여했다는 뜻이었다.

보통의 전시관에서 10년을 전시해도 그 생중계 한 번 만큼 인상을 심어줄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그 결과 아프리카 내에 있는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 중엔 전쟁 피해 신고를 받기 시작한 곳도 나타났다.

보상을 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판매가 끝난 이후 파피루스 작품 판매 수익의 10%씩을 정산받고 수단 파운드로 환전해 동골라로 왔다.

수단 파운드의 화폐 가치는 잘 모르지만, 듣기로는 수단의 수도 카르툼에 고층 빌딩을 하나 지을 수 있을 정도의 돈은 된다고 했다.

하지만 동골라의 강에 있는 섬에 도착한 뒤에야 깨달았다.

이곳은 약속 장소였을 뿐 그의 집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일전에 전화 받았던 번호로 다시 전화해보았지만 상대방이 통화 가능 지역 밖에 있다는 안내뿐이었다.

“거기 뉘시우?”

번쩍번쩍한 스포츠카에서 내렸기 때문인지 눈에 띄었던 모양이었다.

한 노인이 담배를 입에 물며 다가와 물었다.

“혹시 여기 오마르라고, 가끔 여기 나와서 종이 만드시는 어르신 있잖아요? 혹시 그분 어디 사는지 아세요?”

“어엉? 종이쟁이 오마르?”

노인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 그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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