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아프니까 생명이다 (5)
며칠 뒤 내가 부른 예술가들이 타프라우트에 모였다.
표정과 행색들을 보니 다들 여행객 모드였다.
“즐거우세요?”
오는 동안 친해진 건지, 서로 초면일 예술가들이 밝게 웃으며 수다를 떨어댔다.
“아, 그럼요! 살면서 경험해본 적 없는 것들을 요 며칠 사이에 얼마나 많이 했던지. 말로만 듣던 모로코에도 다 와보고!”
“맞아, 맞아. 무슨 놈의 비행기가 대공포 몇 대쯤 맞아도 끄떡없게 생겼더라니까? 아주 푹 안심하고 왔지.”
살마 공주는 또 왕의 전용기를 가져다가 예술가들을 데려오기 위한 비행 동선을 짰다.
아프리카 전 대륙을 돌며 한 명 한 명씩 태웠다고 했다.
가나에서 들어올 때 한 번 타보니 내부 편의 시설이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한 사람만을 위해 개조된 비행기라서 그런지 일반 좌석은 하나도 없었고 말이다.
탑승 시간이 3시간밖에 안 돼 다 둘러보지는 못했는데, 물을 채워 넣지 않은 수영장도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타고 이동할 화물차에 테너리 안료를 실었다.
테너리만의 공법으로 제작한 ‘마렐블루’였다.
나폴레옹의 모자 바로 뒤에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계곡이 멋지게 펼쳐져 있었다.
페즈에서 봤던 마렐 블루가 그 풍경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또 모로코만의 색이라 의미도 깊고 말이다.
근처 국내 공항에서 몇 시간 정도 달려 다시 나폴레옹의 모자에 도착했다.
“와…… 정말 멋지군! 저 바위 전체에 그림을 그리라는 거지요?”
“네. 몸이 좀 힘들 것 같기는 한데, 도안은 제 머릿속에 다 있으니까 너무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몸이 힘들긴. 내가 외팔 화가이기는 해도 지구력은 누구한테도 안 밀리지.”
화가들은 서로 맞춰보기라도 한 것인지 화물차에서 소분된 마렐블루를 몇 통씩 한꺼번에 챙겨 바위 근처 곳곳에 배치했다.
준비가 끝났을 때 나는 화가들에게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할지 자세히 일러주었다.
핵심은 마치 나폴레옹의 모자 바위 곳곳에서 물이 쏟아져나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바위 전체가 분수대이자 그 뒤로 흐르는 계곡의 수원지처럼 보이게 할 생각이었다.
“이봐! 바위에 뭘 하려는 거야?!”
작업을 시작하려던 때였다.
화물차 너머에서 한 노인이 윽박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수행원이 막아선 끝에 겨우 발을 멈췄다.
계속 외쳐대기는 했지만 말이다.
수행원들은 노인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막아서기 바빴다.
방언이 너무 심해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인은 방언이 아니라 19세기 무렵의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내가 묻자 수행원들은 낯선 프랑스어 억양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노인이 말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 저 망할 페인트가 빨리 벗겨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또 물감들을 들고 와서 뭘 어쩌려는 거야?”
그 뒤 노인은 나폴레옹의 바위가 얼마나 신성하고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냥 바위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반박했다간 과격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왜 이 페인트들이 빨리 벗겨지기를 바라시는데요?”
“그야 보기에 흉물스러우니까 그렇지!”
노인은 꼴을 한번 보라며 바위들을 가리켰다.
확실히 흉물스럽기는 했다.
“그럼 보기 좋게 그리면 되잖아요?”
“흥! 그게 되겠어? 평생 조막만 한 골동품 같은 거에나 조금 붓질해본 게 다일 것 같은 치들이 나 예술가요, 하고 감히 우리 마을의 명물에 손을 대려고 하다니. 그렸다간, 봐. 내가 어찌하나.”
“세월의 흐름이 아름답다는 걸 보여드릴게요. 이 바위에 굉장히 어울리는 그림을 그릴 거거든요.”
그 뒤 다른 지역민들이 나타나 수행원을 도와 어르신을 어르고 달랬다.
노인은 더 이상 난리를 피우지 않았다.
결과물에 따라서 정말 시너를 끼얹을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거면 됐다.
어차피 내 결과물이 사람을 설득시키지 못한 적은 없었다.
노인과 대거리를 하려고 드는 예술가들을 잘 구슬려 붓을 잡게 했다.
난 어머니와 벽화 봉사를 갔을 때 본 적이 있는 롤러를 들고 다니며 물감을 칠할 구석을 살폈다.
“자, 그럼 제가 이야기했던 대로 바로 시작해봐요.”
바위에 자연히 생긴 굴곡과 형태를 고려해, 그야말로 캔버스와 그림이 상호작용하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은 서로 선 자리가 겹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조금씩 작품을 완성해나갔다.
나는 기본 칠을 마친 이후로 계속 예술가들의 그림을 살피며 음영 처리를 추가했다.
중간중간 아르간 오일 칠을 잊지 않았다.
“이 정도면 완성한 것 같군.”
붓에서 손을 떼고 멀찍이 떨어져 바위를 유심히 살폈다.
예술가들 중 누구도 선뜻 완성을 선언하지 못하고 작품만 세 번, 네 번 살핀 끝에 결국 한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그림은 완벽했다.
마렐블루를 통해 계곡을 더 청량감 있어 보이도록 하고 거울에 비친 듯한 표현을 해두었다.
그 덕분에 계곡이 더 넓어 보이는 효과가 나는 것이었다.
분명 표면에 붓질만 했을 뿐인데 칼을 들어다 조각을 한 것처럼 아예 달라 보였다.
“와…… 제가 안 본 사이에 혹시 어디 깎아내거나 그런 건 아니죠?”
수행원이 물었다.
당연히 아니었다.
나폴레옹의 모자라는 자연물을 철저히 분석하고 그 매력을 한껏 살려낸 결과였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만족감을 더하기 위해 모로코 국기에 있는 녹색의 별을 중앙에 크게 그려놓았다.
입체감을 살린 덕에 별은 계곡 위에 신비롭게 떠 있는 듯 보였다.
물론 이 아름다움도 시간이 지나면 모래바람에 부딪혀 계속 상처 입고 칠이 벗겨져 보기 흉해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수천 년, 수만 년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생명인 것이었다.
연신 탄성을 내지르며 나폴레옹의 모자를 살펴보던 수행원이 다급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빨리 기자들을 불러야……”
살마는 이 나폴레옹의 모자 때문에 40년이 넘도록 세계적인 조롱을 받아왔다고 했다.
콕 집어 언급한 건 무함마드의 형들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오래 조롱을 받아왔다면 그냥 큰돈을 들여 지울 법도 한데 오히려 그림을 더 그려달라고 하다니.
그 결단력도 대단한 것이었다.
공주 체면에 개인 휴대폰으로 문자 세례를 했을 때도 느낄 수 있었던 과감함이었다.
“어르신 어디 갔어. 시너 가지러 가셨나?”
예술가들이 사주 경계하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노인은 시너를 가지러 가지 않았다.
화물차 뒤에 숨어 입을 떡 벌린 채 나폴레옹의 바위를 살피고 있었다.
“이건…… 마치 카사블랑카 같구나!”
***
예준이 모로코에 돌아온 뒤로 그의 행적에 기민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함마드가 이끄는 사우디 문화부가 일단 그랬고, 며칠 전 살마도 마찬가지였다.
살마는 지금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살마의 가장 큰 업적으로 기록될 만한 성과였기 때문이었다.
[망작에서 명작으로. 나폴레옹의 모자의 충격적 변신!]
[윤예준, 신인 화가들 만나러 다니더니 결국 아프리카에서도 일냈다.]
[모로코 타프라우트 관광객 한 달 만에 훌쩍……! 지역민 생계 살린 예술가들의 정체는?]
바위 그림 제목은 인근 마을 주민이 지어준 <카사블랑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다고 했다.
대서양 쪽에 있는 항만도시의 낭만이 느껴지는 그림이라고.
살마가 알기로 처음 나폴레옹의 모자에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할 당시 의도했던 건 지금의 파격이었다.
유명한 자연물에 그림을 그린다는 파격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랬다는 사실 자체가 이슈였을 뿐 작품 자체에 대한 호평이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다.
소중한 자연물을 훼손했다는 의견은 조금씩 자취를 감춰갔다.
가끔 보이는 비판 게시글엔 그에 대한 반박이 길게 이어졌다.
-그런데 저거 안료가 몇 톤은 된다던데. 환경파괴 아님?
└천연 안료라는데? 글 안 읽음?
└환경파괴 타령하는 사람들 특: 분리수거 안 함
예준은 자신이 천연 안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살마가 보기에는 그냥 작품이 뛰어난 덕분이었다.
“아하하하! 기사 봤어? 봤구나! 아, 별거 아냐. 무함마드가 윤예준 화가를 소개시켜 준 덕분에. 사우디에는 큰 신세를 졌지 뭐야? 우리 때문에 뭐 하려던 일 못 했거나, 그런 건 아니지?”
살마는 바로 카프탄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하기에 바빴다.
놀림 받아온 세월이 있으니 복장 좀 터뜨려줄 셈이 이유의 전부였다.
기분이 좋아진 살마는 이전에 보냈던 만큼의 아르간 오일을 한 번 더 페즈로 보내주었다.
실제로 사우디는 배가 아팠고, 모로코는 배가 불렀다.
하지만 아직 예준으로 어떤 이익도 보지 못하고 침만 흘리고 있는 사업가 중에 눈에 띄는 사업가가 한 명 더 있었다.
마치 예준과의 접점을 찾느라 골몰하던 살마처럼 말이다.
명품 시계 브랜드 ‘스펙터클라크(Spector Clock)’의 책임 마케터장 제프가 그랬다.
그래도 제프는 살마보단 사정이 나았다.
살마가 윤예준과 한 번도 말을 섞어보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말이다.
그는 예준이 뉴욕 광고 페스티벌에서 3관왕을 차지했을 때 직접 만나 협업을 제안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거절은 당했지만, 그것만 해도 굉장한 연 아닌가.
‘그동안은 협업을 거듭 제안할 명분이 없어서 그러질 못했지.’
예준의 선택을 받는 기업들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모스크바 CMC, 빅토리, 발리서클.
그리고 이번 <카사블랑카>까지.
예준이 참여한 모든 작품 활동과 광고는 실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야.’
스펙터클라크는 지금 새로운 상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프는 그 상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몇 가지 악재가 겹친 탓이었다.
우선 최근 스펙터클라크는 브랜드 디자이너들을 대규모로 한 번 교체한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최고가 라인 디자인이 우후죽순 유출되는 바람에 짝퉁들이 판을 치게 되었다.
결국 수년 전까지만 해도 스펙터클의 특징 중 하나였던 문페이즈 기능이 너무 흔해져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원래 대부분의 시계 브랜드는 시계 알에만 신경을 쏟을 뿐 스트랩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스펙터클라크는 달랐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동안 다른 브랜드들이 스트랩을 무시해오던 것과 달리 전문 스트랩 공장이 따로 호황을 맞이하는 악재가 겹쳤다.
스펙터클라크만의 매력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된 것이었다.
모두를 성공시킨 예준과 협업해 문페이즈를 이집트 기준 태양력으로 바꾸고 멋진 디자인을 완성한다면 이 상황을 타개해나갈 수 있었다.
이번에 모로코의 가죽으로 액자를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곳의 가죽을 계기로 어쩌면 예준에게 연락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제프는 신상 기획안 담당 디자이너란에 윤예준의 이름을 적었다.
그의 이름을 적으면 사내에서는 통과되겠지만 중요한 건 윤예준의 동의를 구하는 일이었다.
윤예준은 스펙터클라크 입장에서나 매력적인 선택지이지, 그 반대도 그럴지는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솔직히 뉴욕 광고제 때 거절당한 이후로 상황적으로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변한 게 있다면, 스펙터클라크가 더 간절해졌을 뿐이었다.
‘예술성…… 예술성이 중요해. 윤예준은 광고를 하든 로고를 만들든 항상 예술을 하고 싶어 했지.’
제프는 그렇게 계속 예술성이라는 단어를 되뇌며 천천히 새로운 상품 기획안을 작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기획안이 통과된 뒤 제프는 민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민제는 현대 미국에서 제갈사월이라는 예술가와 함께 큐레이터를 하고 있었다.
그도 미국에서 몇 번 전시회를 연 끝에 굉장히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가늘고 느긋한 말투에는 변함이 없었다.
“예, 스펙터클라크 책임마케터 제프라고 합니다. 일전에 인사드린 적 있죠?”
-아아, 예! 반갑습니다.
민제는 목소리를 높이며 인사를 했다.
정말로 제프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스펙터클라크라는 브랜드로부터 협업 제의를 받았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는 건지는 잘 몰랐다.
“윤예준 화가님에게 부탁하고 싶은 상품 디자인 건이 있어서요. 이번에 저희 회사에서 전에 없던 최고급 디자인의 신상품을 기획 중이었거든요. 혹시 관심이 있으실까 싶어 전화 드렸습니다.”
-아……
민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정말 매력적인 제안인데요. 그런데 항상 예준이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을 때에만 연락 주시네요. 지금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예준이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가죽 액자 생산도 예정대로 착착 잘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모로코 바위 그림도 성공리에 마쳤으니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나?
“무슨 상황이신가요?”
-사실 아프리카로 간 이유가 있습니다. 저도 나중에 전해 들은 거기는 하지만…… 아프리카에 있는 전쟁 피해 예술가들과 함께 <챌린저스 아트워크> 아프리카 전시회를 하려고 하고 있어요. 지난번에 미국에서 했던 <챌린저스 아트워크> 아시죠? 그 두 번째 프로젝트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있는 예술가들을 불러모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직접 이름을 내놓고 활동을 하는 경우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 각지에서 수공예품이나 토기, 향수 같은 걸 만들러 다녔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을 전시장이 아니라 매대에 놓는 사람들 아닌가.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으니 직접 아프리카 전역을 돌며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거라면 저희가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네 어떻게요?
전쟁 피해 장애인 예술가들을 돕기 위해 아프리카를 혼자 여행하다니.
굉장히 도전정신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굳이 안 해도 되는 수고라면 피할 수 있지 않은가?
제프는 아프리카 전역에 구인 광고를 뿌려줄 수도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